Share

제5화

문하은이 서재를 나간 뒤, 차우미는 오래도록 일어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생각에 잠겼다.

이 집안 사람들은 규칙적인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열 시가 되면 모두 씻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었는데 예은이는 차우미랑 같이 잔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엄마인 서혜지가 겨우 달래서 방으로 데려갔다.

“큰엄마, 안녕히 주무세요!”

아이는 생기발랄한 얼굴로 차우미에게 굿나잇 인사를 했다.

차우미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자.”

서혜지가 아이를 재우고 난 뒤에야 남편 나준우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의문을 던졌다.

“큰집 동서랑 아주버님 결혼한지 3년이 넘지 않았나요? 동서도 애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여태 아이가 안 생기는 게 신기하네요.”

나준우는 외투를 벗어 그녀에게 건네며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상준이 형보다 결혼을 빨리했어도 바로 예은이가 생긴 건 아니잖아. 그래도 우린 2년만에 예은이가 태어나긴 했는데 3년이나 소식이 없는 건 좀 그러네. 아까 큰어머니가 형수를 따로 불러내신 것 같던데 아마도 그거 얘기하시려고 불렀을 거야.”

서혜지는 남의 집안 사정을 주절주절 떠드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저 차우미가 예은이를 예뻐하는 걸 봐서 애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여태 임신 소식이 없으니 궁금한 것뿐이었다.

그런 아내를 이해하기에 나준우도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마 문제는 상준이 형 쪽에 있는 것 같아. 사업 확장하느라 가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겠지.”

서혜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상준 아주버님은 다 좋은데 너무 바쁜 게 흠이긴 하죠.”

평소 말이 없던 아내가 푸념을 늘어놓자 나준우가 웃으며 물었다.

“당신은 형수가 안타까운가 봐?”

서혜지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남편을 흘겨보고는 다가가서 시계를 풀어주며 말했다.

“동서지간에 잘 지내는 것도 지혜가 필요하죠. 형님은 성격도 좋고 현명한 분이에요. 출신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다른 재벌집 아가씨들보다 형님이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나준우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

그녀가 정색한 표정을 짓자 나준우도 표정을 바꾸며 진지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며칠 전에 친정에 가서 들은 얘기인데 큰어머니가 요즘 주혜민 씨와 자주 만나신다고 하더라고요.”

“주영그룹 주혜민?”

나준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주혜민은 나상준의 소꿉친구였다. 만약 이혜정 여사가 차우미를 손주며느리로 지목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상준의 결혼상대는 그녀가 되었을 것이다.

나상준이 결혼식을 올린 뒤, 주혜민은 해외로 출국했다.

“그 여자가 귀국했다고?”

서혜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한테 들은 건데 큰어머니는 여전히 주혜민 씨를 아주버님과 이어주고 싶으신가 봐요.”

“아직 결혼 안 했대?”

무심코 던진 말에 서혜지가 눈을 부릅뜨며 핀잔을 주었다.

“결혼했으면 우리가 몰랐을 리 없잖아요.”

나준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

“환자들만 신경 쓰지 말고 집안 일에도 관심 좀 가져요.”

나준우는 서운해하는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달래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최대한 시간을 내볼게.”

“됐거든요? 저리 비켜요!”

한편, 차우미는 홀로 침실로 돌아왔다. 나상준은 이혜정 여사와 아직 사업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혜정은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었지만 회사 일에 줄곧 관심이 많았다. 나상준이 매번 돌아올 때면 노인은 손자와 회사의 미래에 관해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었다.

이혜정은 타고난 사업가인 나상준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차우미는 간단히 씻고 나상준이 갈아입을 옷을 미리 준비한 뒤, 욕조에 물을 받고 침대로 돌아갔다.

번잡한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이곳에 빗소리를 벗삼아 누워 있으니 솔솔 잠이 왔다.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살짝 지친 기색을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그래. 일단은 지켜보지.”

차우미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그의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그는 외모뿐 아니라 목소리마저 완벽한 사람이었다.

차우미는 소리없이 뒤돌아서 창밖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통화를 마친 나상준은 침대머리에 핸드폰을 던져두고 욕실로 들어갔다.

곧이어 샤워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상준은 침대로 다가가서 조용히 누웠다.

그는 잠잘 때마저 철저한 사람이었고 절대 선을 넘어오는 법이 없었다.

그는 그대로 반듯하게 누워 전등을 껐다.

어둠이 내려앉자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우리 이혼해.”

Bab terkait

Bab terbaru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