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가 사람들은 듣자마자 의심스러웠다. 북명왕이 공가의 좋은 소식을 전하다니?많은 사람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고 오 대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북명왕은 엽현에서 송가 둘째 소장군과 닮은 어린 거지를 발견했네. 그래서 무심히 서우라고 불렀고 뜻밖에도 그 어린 거지가 반응을 했지..."공양은 다소 황당함을 느끼고 오 대반의 말을 끊었다."오 대반, 전하께서 서우를 닮은 아이를 만나 폐하에게 주본을 올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우를 닮았지만 서우가 아닌데, 어찌 폐하께 주본을 올릴 수 있습니까?"공양은 황당함과 동시에 약간의 분노도 느꼈다.문청과 서우는 공가 사람들 마음속의 큰 아픔이다. 특히 노부인은 이런 말을 듣지도 못하신다.서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고 기쁜 소식이라 전하다니? 이게 어떻게 경사란 말인가? 다들 급히 돌아왔는데 이렇게 황당한 소식을 들으니 공양은 저도 몰래 북명왕에게 화가 났다.오 대반은 손을 흔들었다."공대감 조급해 하지 말게. 만약 닮기만 했으면 엽현에서부터 영주까지 쫓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네. 송가 아가씨도 이미 수일 전에 영주로 갔고 지금 이미 그 어린 거지의 신분이 둘째 소장군의 아들 송서우라 확인했네. 아마 며칠이 지나면 진성에 도착할 것이네."이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공양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연신 부인했다."그럴 리 없습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서우는 이미 죽었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안고...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오 대반, 더 이상 말하지 마십시오. 이 일을 저희는 믿을 수 없습니다. 송가 아가씨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지 않고 비슷한 아이를 만났다고 서우라고 하다니. 서우가 살아있거나 송가 사람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갈망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일은 불가능합니다."송가 노부인은 이미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딸과 외손자는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2년이 지난 지금 또 이런 소란이 생긴단 말인가?송가 아가씨는 정말 미친 것인가?오 대반은 상황을 보고 말했다."폐하께서
하지만 어떻게 진짜일 리 있을까?실망할 운명이다.모두 마음이 괴로웠지만 또 송석석을 동정했다. 희망에 가득 찬 채 그곳에 갔다면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오 대반이 그들이 머지않아 진성에 도착할 것이라 했는데 정말 그 거지를 서우로 여기고 데리고 온 건가?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듬직하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경솔하다니.송석석은 추석에 진성을 떠났고 돌아올 때가 되니 이미 10월 초가 되었다.천고마비의 상쾌하고 좋은 날이다.진성을 지키는 장병들은 마차를 끄는 사람이 북명왕인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하가 마부 노릇을 하다니, 대체 마차 안의 사람은 누구인가?친왕의 마차가 성으로 들어오는 것은 검사가 필요 없이 바로 통과된다. 그래서 마차는 곧장 국공부로 향했다.국공부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송석석과 서우에게 말했다."난 들어가지 않을 테니 당분간은 서우와 잘 지내고 있소. 며칠 지나서 다시 올 테니."아마도 송석석과 서우는 내일 공가로 갈 테니 그는 내일 올 필요가 없었다.송석석이 감사의 말을 전하려다 지겹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말을 고쳤다."고생하셨습니다. 어서 돌아가서 쉬십시오.""그럼 가겠소."사여묵은 서우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내일 사람을 보내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라 하마."서우는 비록 어색했지만 그래도 기뻐서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사여묵은 그의 미소를 보며 지금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그가 간 후, 송석석은 서우를 데리고 국공부의 대문으로 들어갔다.양 마마와 황 마마는 서우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진복도 눈물을 훔치고 달려와 울먹였다."작은 도련님. 돌아오셨습니까? 오셨으니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그는 서우를 보며 방금 눈물을 닦고도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정말 불쌍할 정도로 말랐다. 대체 얼마나 고생을 한 걸까?그는 몸을 돌려 하인에게 부엌에 가서 음식과 차 그리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라 분부했다.양 마마와 황 마마는 원래 국공부에서 모시다 송석석
진복은 그가 살던 원래 정원으로 안내하지 않았다. 비록 곳곳을 새로 손보았지만 괜히 슬픈 과거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그래서 진복은 여인이 살고 있는 자목원으로 안내했다. 다행히 자목원은 꽤 넓어 두 사람이 살기에도 충분했다.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 아가씨 곁에서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했다.게다가 서우는 아직 8살도 되지 않았으니 여인들과 함께 정원으로 지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나중에 아가씨가 출가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봐야지.’서우를 안정시킨 뒤 송석석은 모두를 별장으로 불렀다. 그리곤 진복에게 송태공과 공씨 가문 사람들에게도 사람을 보내라고 일렀다.“며칠 뒤에 감정적으로 좀 안정되면 찾아뵙겠다고 전하여라.”그리고 송석석은 말을 이어갔다.“참, 공씨 가문 사람들이 서우를 보고 싶어하면 모시고 와도 돼. 서우의 외조부모는 삼촌과 워낙 막역했으니 아마 쉽게 받아들일 거야. 태공님 쪽은 며칠 뒤에 알리는 걸로 하고.”하지만 상황은 송석석의 예상 밖으로 번졌다. 공씨 가문 쪽에선 애초에 이 사실 자체를 믿지 않고 있었다.그랬기에 진복이 직접 사람을 보냈음에도 오지 않은 건 물론 국공부에서 작위를 물려받기 위해 가짜 아들을 데려왔다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다른 아들을 입양한다 해도 굳이 서우의 이름을 빌릴 필요가 있냐며 말이다.진복이 보낸 사람은 바로 보영이었다.보영은 다시 외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아직 경험이 부족한데다 서우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기에 공대인의 호통에 제대로 된 반박도 못하고 풀이 죽어 돌아오고 말았다.보영의 보고에 의외다 싶던 송석석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세형은 믿기 힘들겠지. 서우의 시체를 직접 처리한 게 공세형이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단신의가 서우의 몸을 검사한 뒤 함께 공부(孔府)로 가는 게 좋겠어.’서우가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자 마침 단신의가 도착했다.단신의는 송씨 가문의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 집안 사정
뼈가 부러졌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송석석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통 작용이 있는 탕약을 마시고 침을 맞았음에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고통이었다.‘불쌍한 것.’송석석이 물었다.“전에 의존성이 생기는 약을 복용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이에 단신의가 대답했다.“새목단이라는 약이야. 복용하면 의존성이 생기는 약인데 지금 상태만 봤을 땐 중독이 심하진 않은 것 같아. 돌아온 뒤에 불편함을 호소한 적은 있었느냐?”송석석은 여기까지 오는 내내 발작을 일으킬 뻔했지만 번마다 참아내던 서우의 모습을 떠올렸다.‘그리고 저택에 돌아온 뒤엔 발작은 없었지.’“발작은 거의 없었습니다. 발작이 일어났을 때도 결국 참아냈고요. 참. 왕야님 말로는 영주에 있을 때는 발작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자해도 서슴치 않았다고 들었는데 제가 갔을 때 그런 증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이에 단신의가 한숨을 내쉬었다.“첫 발작이 가장 힘들지 참아만 낸다면 증상은 점차 약해지고 결국 완전히 끊을 수 있을 거야.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약이니 끊는 데 성공하면 보약도 지어야 할 것 같아. 키가 자라지 않은 것 역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것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중독성 있는 약을 먹어서일 수도 있어.”단신의의 눈동자에는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보통 사람들은 새목단을 끊기 위해 침도 맞고 약도 먹어야 하는데 서우는 온전히 정신력만으로 이겨냈어. 그 의지가 아주 대단해. 병을 치료하고 몸조리만 제대로 하면 앞으로 큰 인재가 될 상이야.”단신의의 말에 송석석은 그녀가 영주로 가기 전 금단 얼마나 심했을까 싶어 마음이 욱신거렸다.그 무서운 북명왕의 안색이 초췌해졌을 정도니 본인은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오죽했을까 싶었다.서우는 지금도 많이 여윈 상태였지만 적어도 송석석이 처음 그를 만났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창백하던 안색에는 점차 혈색이 돌기 시작했고 얼굴에도 조금씩 살이 붙었
송석석이 단신의를 배웅하려 하던 그때, 단신의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인신매매단에 잡혀갔으니 그 고생이 얼마나 심했겠어. 뭐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불행 중 다행이지 뭐.”하지만 송석석의 생각은 달랐다.서우가 약과를 장군부로 배달했다면 그녀는 직접 서우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을 테고 어쩌면 그날 밤 저택에 하룻밤 묵었을지도 모른다.서경의 밀정들이 저택을 공격했을 때 그녀가 있었다면 모두를 지켜낼 수 있다 장담은 할 순 없어도 멸문지화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송석석은 그들이 더욱 증오스러웠다.‘뿌리채 뽑아버려야 해.’단신의가 문을 나선 뒤 송석석은 바로 마차를 준비하라 명했다. 일단 서우를 데리고 황제와 태후를 알현한 뒤 공부로 갈 생각이었다.또한 송석석은 옷을 새로 지으라고 명했다.키가 얼마 자라지 않아 전에 입던 옷을 입을 순 있었지만 몇 벌 남지 않아서였다.장례를 치를 때 거의 다 태워버리고 가끔씩 그리울 때 꺼내보려고 남겨둔 옷가지 몇 벌뿐이었으니 말이다.살짝 짧긴 했지만 좋은 옷을 입으니 혈색이 더 좋아보였다.얼굴에 자잘한 상처는 이미 나은 뒤고 전에 있던 옷까지 입으니 마치 2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하지만, 착각은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이라는 걸 송석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서우의 손을 잡은 채 송석석은 천천히 문을 나섰다.다리를 저는 터라 조금만 빨리 걸으면 넘어질까 송석석은 특별히 발걸음을 멈추었다.황제는 태후궁에서 두 사람을 맞이했다.눈물을 글썽이던 태후가 서우에게 손을 젓고 여기까지 오는 사이 다리병이 도진 서우는 고통을 참으며 한쪽 다리로 폴짝폴짝 뛰어갔다.참지 못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태후는 서우를 부축해 자신의 곁에 앉히더니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어휴, 마른 것 좀 봐. 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많았느냐.”그런 태후를 보며 서우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젓고 고개를 돌렸다.그 모습에 황제 역시 연민이 일어 격려의 말과 함께 선물을 하사했다.황제는 흐
출궁한 뒤 송석석은 서우와 함께 공부로 향했다.이미 저녁이라 공가의 남정네들도 이미 집으로 돌아왔을 시간이었다.마차 안, 서우가 송석석의 손바닥 위에 글씨를 적어냈다.“외할아버지네 댁으로 가는 겁니까?”이에 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외할아버지네 집으로 가는 거다. 보고 싶으냐?”“네!”고개를 끄덕인 서우는 손바닥 위에 글씨를 적곤 곧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공씨 가문 사람들이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역시 들었기 때문이었다.워낙 민감한 나이라 행여나 가족들이 그를 버린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다.그런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 송석석이 말했다.“서우야, 걱정하지 마. 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숙부들도 다 널 그리워하셔. 그저 네가 정말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드신 것뿐이야. 네 얼굴을 보면 분명 기뻐하실 거야.”이에 송석석의 팔에 기댄 서우는 고개를 번쩍 들고 뭐라고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결국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내가 절름발이에 벙어리가 됐다고 실망하시면 어떡하지?’잠깐 고민하던 서우가 송석석의 손바닥에 이렇게 적었다.“절 싫어하진 않으실까요?”그 말에 콧등이 시큰해진 송석석은 서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를 건넸다.“바보야. 당연히 기뻐하시지. 왜 널 싫어하시겠어. 괜한 생각하지 마. 분명 널 반갑게 맞이하실 거야.”하지만 2년 동안 수많은 괄시와 폭력에 시달려온 서우에게 이미 자신감은 사라진 뒤였다.‘게다가 내가 돌아온 걸 믿지 않으시니까... 내가 거지로 있었다는 걸 싫어하면 어떡하지...’이런 생각 때문인지 공부 앞에 도착한 뒤에도 서우는 마차에서 내리길 거부하며 송석석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그러자 송석석은 설명을 이어갔다.“서우야, 겁 먹지 마. 전에 너희 외숙부랑도 얘기했는데 여전히 널 그리워하고 계셔.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정말이야.”그럼에도 서우는 고개를 젓더니 자신의 다리와 목을 가리키며 속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그
이런 오해를 하는 게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솔직히 섭섭하한 송석석이었다.사여묵에게서 온 서신을 받자마자 송석석은 영주로 달려갔었다.가는 내내 괜한 기대를 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래도 직접 얼굴은 한 번 보고 싶었던 게 그녀의 마음이었다.그런데 왜 얼굴 한 번 보려하지 않는 건지 싶어 괜히 욱한 송석석은 발을 걷어내 서우를 안아 공양 앞에 섰다.“그래도 얼굴 한 번 볼 수는 있지 않습니까? 오는 내내 서우는 제 손바닥에 가족들에게 버림받는 게 두렵다고 했었습니다. 그런 서우를 전 그럴 일은 없다고 위로했고요.”비록 송석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공양은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시선이 닿는 순간, 공양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고 숨이 먿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닮았어... 너무 닮았어. 많이 마르긴 했지만 정말 너무 닮았어.’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공양이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서우야?”어느새 서러움의 눈물이 얼굴을 잔뜩 적신 서우가 버둥거리며 송석석의 품안에서 내려오려 했다.송석석을 서우를 내려놓자 그는 손을 뻗어 공양을 향해 손바닥을 세 번 마주치는 동작을 하더니 손가락 두 개로 모양을 그리곤 고개를 푹 떨어트리고 어깨가 떨릴 정도로 울기 시작했다.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공양은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우리 둘만 아는 동작이야...’사고 나기 한 달 전, 공양은 부인과 함께 송씨 가문으로 향해 여동생과 서우를 보러 갔었다.그때 서우는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자랑하듯 보여주었고 공양은 글씨를 잘 썼다는 칭찬과 함께 손바닥을 부딪히며 이렇게 약속했었다.“더 열심히 공부하여 스승의 칭찬을 받으면 방단주에서 온 벼루를 선물로 주마.”스승에게서 단주의 벼루가 최고라는 말을 들었다는 서우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함이었다.하지만 경조부 일이 바빠 공양은 이 작은 약속을 잊고 말았고 사고가 난 뒤론 그 약속이 가시처럼 그의 가슴에 콕 박히고 말았었다.어떻게 하면 마음이
모두가 달려들어 인중과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공가 노부인이 다시 눈물을 지었다.“하늘도 무심하시지. 저 어린 아이에게 어찌 그런 시련을 내리신단 말이냐. 송씨 가문은 평생 이 나라를 위해 헌신했거늘, 어찌 이리 비참하단 말이냐. 하늘도 무심하시지.”그 말에 송석석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해 그녀는 부랴부랴 밖으로 도망쳤다.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요즘따라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리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서우는 마지막에서야 태부인의 방으로 향했다.미리 호심완을 먹어서인지 다행히 태부인은 정신을 잃진 않았으나 서우가 벙어리에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말에 역시나 쉼없이 눈물을 흘렸다.“우리 착한 손주가 왜 이렇게 됐는냐.”직접 기른 손녀를 잃은 것도 속상한데 그 아이를 꼭 닮은 서우마저 이꼴이 되어 돌아왔으니 가슴을 칼로 베는 듯했다.반나절 정도 지난 뒤에야 다들 눈물을 거두고 나름 차분해진 상태로 정청에 앉았다.부축을 받아 나온 태부인까지 모이자 송석석은 그동안 있었던 자초지종을 전부 밝혔다.서우가 송석석에게 줄 약과를 사러 갔다 그 사고를 면했다는 소식에 다들 2년간 받았던 고초만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지만 적어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다행스러움을 느꼈다.송석석을 감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공부 일가는 인신 매매범에 대한 증오도 감추지 않았다.물론 송석석의 생각은 조금 달랐지만 말이다.한편, 어느새 감정을 추스른 공양이 중독 상태와 다리 부상에 대해 물었고 송석석은 단신의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독은 시간이 걸리지만 매일 해독약을 마시고 침까지 맞으면 해독할 수 있을 거랍니다. 중독석인 있는 새목단 역시 서우가 스스로 금단 현상을 이겨내 생각보다 치료가 쉬울 것으로보 이고요. 아마 1년 정도면 다시 목소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잠깐 망설이던 송석석이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다리 부상은... 뼈가 잘못 이어붙은 탓에 다시 부러트리고 정골을 받아야 한답니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단신의님의 의
소씨 가문의 반응을 보니, 진성의 다른 가문들이 평소에 그들과 친밀하지 않아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시만자는 소 부인이 놀란 틈을 타 말을 이었다.“우리 부군이 가장 아끼는 조카가 바로 지아인데, 큰 억울함을 당해서 태후마마께 아뢰려던 걸 내가 간신히 말렸소. 지아를 때린 자가 스스로 나서서 벌을 받으면 그만인 것을!”왕이장은 진성에서 여러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시만자의 부군, 만종문의 제자, 병부 효고사, 그리고 진성 내 만종문 산업의 주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와 왕씨 가문의 관계는 일부러 밝히지 않았지만, 이럴 때 활용해도 괜찮을 만큼 중요했다. 태후마마가 만종문의 임 사부를 존경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 관계를 의심하는 이는 없을 터였다.시만자는 말을 마치고 혼자 의자에 앉았는데, 그 표정은 송석석과 다를 바 없었다. 이때 소씨 가문은 비로소 섭정왕비가 직접 소 세자를 데려온 것도 왕지아를 위한 조치임을 깨달았다. 소 부인은 왕지아에게 이토록 강력한 배경이 있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아이고, 제가 소인의 말만 믿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네요…”소 부인이 급히 사죄했다.“반드시 뒤에서 함부로 지껄이던 자들을 찾아내 왕씨 아가씨에게 사과하겠습니다. 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그러자 시만자가 차분히 말을 끊었다.“처벌할 마음이 있는데, 왕지아의 눈을 더럽힐 필요까지 있겠소? 백작부에서 처벌하지 못한다면, 마침 섭정왕비께서 사람을 데리고 오셨으니 소 세자를 처벌할 때 함께 처리하면 되겠소.”소 백작은 급히 수긍하며 하녀와 종들을 불러내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넘겼다. 송석석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소 세자가 덕행에 흠이 있는 탓에 작위 수여는 불가능할 것이오. 그리고 오늘 누군가 경위부에 고소한 이상 내가 방관할 수도 없소. 대충 몇 대 맞고 넘어가려 한다면 법이 왜 있겠소?”시만자는 속으로 생각했다.‘화풀이하러 온 게 아니었나? 소씨 가문 때문에 지아와 소민이를 갈라놓을 순 없는데…’소 부인은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시만자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소씨 가문이라는 작은 백작부가 감히 이렇게 날뛴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평생동안 막돼먹은 여자를 많이 보았지만, 귀족 가문의 막돼먹은 여자는 처음이었다.왕지아가 끌려 나가 뺨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 시만자는 소씨 가문의 대문을 박차고 사람들을 끌어내고는 한바탕 때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화가 나더라도 참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왕지아와 왕청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모르니 그들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그렇게 시만자가 급히 왕씨 가문으로 달려갔을 때, 왕지아가 손목을 그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또 왕청여가 하녀들을 모두 내보냈다는 말을 듣고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곧장 그의 방으로 달려갔다. 왕청여가 목을 매려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 또한 화가 나서 그의 뺨을 때렸다.최근 몇 년간 자신의 성격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던 그였지만, 왕청여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자 공방에서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을 수 없었다.왕청여를 때린 후, 시만자는 즉시 소씨 저택으로 향했다. 소씨 저택에 도착하자 석석이 현갑군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의심이 앞섰다.‘석석이는 관직이라 복수 같은 걸 할 수 없는데…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송석석은 관복을 입고 정좌에 단정히 앉아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필명이 그의 곁을 따르고 있었고, 몇 명의 현갑군이 소민의 형인 소 세자를 붙잡고 있었다.백작부의 모든 어르신과 도련님들이 모여 있었고, 가문을 책임지고 있는 주모인 소 부인도 나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시만자는 옆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미리 말이라도 해줄 것이지. 이러니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네.'백작과 소 부인이 송석석에게 굽실거리며 사정하는 모습을 보자 시만자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했다. 알고 보니 소 세자가 부유한 상인의 양첩과 결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걸렸고, 자신의
왕청여에게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게 한 것은 방시원이 돌아올 때도, 전북망과 이혼했을 때도, 왕씨 가문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아니었다. 그가 진정으로 후회한 것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였다.왕씨 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왕청여는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니 자신에게 잘못이 많음을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고, 고생한 자신을 비난할 자격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형수님이 자신의 오만한 성격 때문에 고생했음을 알면서도, 과거를 들추며 상처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가 왕지아가 혼담을 나눌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뼈저리게 후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왕지아는 안백작부의 도련님 소민과 정이 들었다. 비록 평서백 작위는 없어졌지만, 형수가 선제의 찬사를 받아 고명을 얻었고 가업 경영에도 능숙했으며, 셋째 동생이 시씨 가문의 딸 시만자와 결혼해 왕씨 가문은 여전히 병부에서 중용되고 있었다. 두 가문의 위상은 비슷했다.그러나 소민이 어머니에게 왕지아와의 혼인을 청하자, 소 부인은 강하게 반대했고, 심지어 만나는 것조차 금지했다. 비록 소민은 세상에 없는 효자이지만 왕지아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녀 외에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허락하지 않으면 출가하겠다고까지 하며 반항했다. 이에 소 부인은 그를 감금해버린 것이다.왕청여는 아마 소 부인이 방문하던 날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소 부인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왕씨 저택에 난입해 최씨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감히 우리 아들을 넘보다니! 윗사람이 바르지 못하니 아랫사람도 바르지 못한 건가? 당신 시누이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뻔뻔하게 굴더니, 이제는 딸까지 그 꼴이로군! 어린 나이에 남자를 유혹하고, 우리 아들에게 부모를 협박하는 법까지 가르치다니! 이 가문에는 악랄한 자들밖에 없는 것이냐?!”말을 마치자 하인들에게 저택을 부수게 했고, 왕지아를 끌어내 사람들 앞에서 뺨을 때리며 머리와 얼굴에 침을 뱉었다. 왕청여와 최씨
그러자 송석석이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왕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아주 잘 대해줍니다. 조카딸의 혼담에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집간 부군이 잘 대해준다 하더군요. 다만 그녀는 자신이 두 번 시집갔음에도 처가에 머무는 것이 조카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되어 그러는 모양입니다.”그 말에 전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순간 번개처럼 날렵하지만 마음씨 따뜻한 최씨 부인이 떠올랐다. 최씨 부인에게는 적자와 서자녀들이 있었고, 아직 혼담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혼인 문제로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에 시달렸을지 생각하니, 전북망은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형수로서의 최씨 부인을 존중하며, 그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 없었다. 이때 송석석이 그의 생각을 끊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 보십시오.”전북망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물었다. “우리 단둘이 여기에 있으면, 섭정왕이 질투하지 않을까요?” 송석석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하게 답했다. “이 정도 신뢰도 없다면, 제가 어찌 현갑군 지휘사로 오래 근무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합니다. 이번 만남 역시 그분께 이미 알려두었죠.”송석석이 떠나자 전북망도 따라나섰다. 그는 섭정왕이 어딘가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의심했지만, 정작 별청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앞마당에서야 섭정왕을 발견했는데, 그는 대장군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송석석을 보자 미소로 맞이하며 불러세우는 섭정왕의 모습에 전북망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진정한 부부란 저런 것일까.'그러나 성릉관이든 진성이든, 남녀의 단독 만남은 명예에 흠이 될 수 있음도 잘 알았다. 특히 높은 지위에 오른 이들은 더욱 조심해야 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을 걱정하는가.’자조적인 생각이 들었지만, 왕청여의 제안은 여전히 그의 가슴을 두드렸다. 5일의 고민 시간이 주어졌다. 사여묵과 송석석이 진성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씨 부인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답은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 전북망은 송석석과 다시 만났다. 사실 그전에도 송석석이 성릉관으로 갔을 때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서로 서먹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이 매번 성릉관을 떠날 때마다 몰래 배웅하곤 했다. 전북망은 자신이 당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늘 송석석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이방과 왕청여에게도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과는 서로 감정을 소모하고 다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장군부만 송석석에게 상처를 줬을 뿐, 송석석은 장군부에게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았다. 비록 이혼한 후에는 전북망 어머니의 병세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지만 큰형수에게 어떻게 단설환을 얻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까지 했다. 소 대장군의 팔순 생신 때는 이미 섭정 왕비가 되어있고 나서였다. 변방의 전사들에겐 양식과 무기가 풍부하고, 봉록까지 올라, 그들에겐 이득이기에 이제는 조정의 정세에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다. 섭정왕은 한때 장수였기에 병사들이 배불리 먹어야만 국토를 지킬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북망과 송석석이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섭정왕과 함께 소 대장군에게 생신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그녀를 보는 소 대장군의 눈빛은 여전히 자애롭고 인자했다. 전북망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멀리서 그 광경을 보며, 그때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다면 지금 송석석과 함께 노장군의 생신을 축하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것이라는 후회를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같은 생각인 걸 보니, 자신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번에도 송석석과 대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생일잔치가 끝난 후에 송석석이 뜻밖에도 먼저 그를 찾았다. 그와 송석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섭정왕은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걱정되지도 않는가?’전북망은 당황하고 불안해 보였고, 송석석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먼저 입을 열지도 못하고 송석석이 말하기만을 기다리
전북망은 성릉관에서 몇 년 동안 두 번이나 발탁되었고, 지금은 장군의 신분으로 수천 명의 병사를 관리하고 있다. 계속 성릉관에 주둔하고 있어 다시 진성으로 돌아간 적이 없었고, 진성의 부름 없이는 제멋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재혼도 하지 않고 여전히 혼자 살아갔다. 성릉관의 모래바람은 해마다 그의 얼굴에 흔적을 남겨 또래들보다 몇 살이나 더 늙어 보였다. 심지어는 몇 년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기에, 진정제를 먹어야만 잘 수 있었다. 그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그때 이방과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었을까? 송석석과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었을까? 아마도 우린 귀여운 자녀도 낳았겠지. 그리고 나는 군대에서 열심히 일하고 석석은 가문의 내무를 책임지며 부모님을 모시고 아이를 돌보고 있었겠지? 설령 내가 승진을 하지 못하고 평생 장군으로만 살아도 그는 날 떠나지 않았겠지.’ 이전의 전북망은 송석석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였는데 자신을 위해 날개를 부러뜨리고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군부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책임지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그가 알아차렸을 땐 이미 돌이킬 수도 없었다. 전북망에게는 이미 이방이 있었고 이방을 사랑한다고 했으니, 송석석이 이혼하자고 했을 때 그는 심한 말을 하고 후회하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송석석 또한 후회할 게 없었다. 이혼을 하면서 전북망을 위해 부러뜨렸던 날개가 다시 자라나 전쟁터로 날아가 쉽게 공을 세웠으니까 말이다. 이방은 송석석이 큰 가문의 아가씨인 데다가 부친과 오라버니가 그를 위해 길을 닦아주었기에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북망은 송석석의 성공은 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문이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주된 원인은 아닐 것이다. 만종문에서 송석석의 무공은 거의 최고였는데, 그건 송석석이 그만큼 노력을 했고, 그만큼 땀을 흘렸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전북망은 송석석을 존경했지만 그는 자신이 송석석을
어머니께 간청해도 소용이 없자 신이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더 심한 꾸지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이가 이 혼사를 반대하는 것은 양지춘과 접촉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양지춘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가서 놀며 감정을 쌓으라고 했다. 신이는 가기 싫었지만 어머니가 억지로 그녀를 마차에 태웠고, 심지어는 하녀에게 그녀가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엄명했다. 양지춘의 얼굴은 그나마 멀쩡하게 생겼는데, 처음에는 신이를 조금이나마 존중하는 척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그는 신이의 외모와 품평을 논하며 신이가 외모가 예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그를 부인으로 들이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그의 오만한 태도는 신이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아마도 신이가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양지춘은 일부러 신이를 마차에 태워주는 척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꼬집었다!그 순간 신이는 온몸의 피가 머리 위로 솟구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경박한 눈빛에 신이는 이내 눈물이 쏟아졌고, 모욕감에 온몸을 떨었지만,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집에 돌왔는데, 하녀와 마부는 그의 동작을 보지 못한 탓에, 오히려 그가 세심하고 자상하다며 그녀의 어머니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이는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가 일부러 꾸민 말이라고 생각해, 그녀를 꾸짖으며 사흘 동안이나 외출을 금지했다. 신이는 그렇게 방에 갇혔고, 매일매일을 눈물로 얼굴을 씻었다. 심지어 그날 선비의 말을 듣고 호수에 뛰어들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내가 양지춘에게 시집가는 것이 물에 빠져 죽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사흘 후, 외출 금지가 해제되자마자 신이는 다시 경산사로 가서 같은 핑계로 하녀를 내보냈다. 이번엔 정말 죽을 각오로 호숫가에 간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다시 그 선비를 만났다.그는 쓸쓸하게 호숫가에 앉아 작은
신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고, 나무 그늘에 몸이 가려져 있었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은 초라해 보였고 눈 밑에는 검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사람은 바로 다리 앞에서 그림을 팔던 선비이자, 학정이 말하던 퇴학 해서 기녀를 키우는 학생이었다!“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짜증을 냈지만, 그가 한 말을 떠올리자 내심 두려웠다. “나는 여기에 물귀신이 있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거짓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이는 죽음은 두렵지 않았지만, 귀신은 두려웠고 진흙탕에 영원히 깔려 있는 건 더욱 두려웠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가 걸어 나오자 얼굴은 더욱 여위어 보였다. “호숫가의 주변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없겠습니까?” “그건 사람들이 이곳으로 예불하기 위해 오는 것이지, 경치를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절을 하고 바로 돌아가니 당연히 보지 못하겠지요.” 신이는 그렇게 말했지만, 순간 깊이가 보이지 않는 호수에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여전히 굳게 서서 말했다. “예불하는 사람은 천지와 자연을 경외하기 때문에 이런 좋은 경치가 있다면 반드시 한 번 보러 올 것입니다. 이런 곳은 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좋은 곳일 텐데 아무도 없다는 게 아기씨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것이 사실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감히 그런 무서운 곳에서는 죽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그러자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절대 쉽게 자신의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고 싶어도 살 지 못하지 않습니까?” 신이는 그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져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 밑은 이내 붉어졌고 눈물이 고여 반짝이는 것 같
신이의 사촌 여동생과 하녀는 신이를 찾으러 돌아왔다. 신이가 하녀보고 이순에게 삼백문을 주라고 하자 이순은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원래는 우연한 만남일 뿐이라 다시는 접점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 조모님의 생신 때 가문 연회에서 공학정이 데리고 온 제자들 중에 이순이 있었다. 강남의 예의 규율은 진성처럼 엄격하지 않아서 연회에 참석할 때 여인들도 앞마당에 갈 수 있었다. 이순은 신이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신이는 그때 면사포를 쓰고 있었고 두 눈만 드러냈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순은 식사를 하지 않고, 신이의 조모에게 생신 축하 그림만 드린 후에 집에 일이 있다며 작별을 고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학정이 그를 언급하며 안타까운 말투로 말했다. “총명하긴 한데 진취심이 없어서 계속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걸 여기로 데려와 진취성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하려고 했는데… 이 정도로 사리분별을 할 줄 모르다니. 정말 실망이군. 학교를 그만두겠다면, 이젠 마음대로 하라고 해야겠어.” 그러자 신이의 부친이 위로했다.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껜 학생이 많으니 그가 나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학정은 마치 울화가 쌓인 것처럼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네. 그런데 진취성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창에게 돈을 빌리질 않나, 게다가 집에 기녀까지 키우고 있다더군.” 신이의 아버지는 그런 사람을 가장 싫어하였다. “그런 사람은 얘기할 가치도 없습니다.” 신이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서 왠지 마음속으로 실망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같다고 생각해 마음이 갔던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달 후, 신이의 혼사도 낙착되었다. 그녀의 약혼자는 회주 지부의 둘째 아들인 양지춘이고, 올해 22살이었다. 22살인데도 결혼하지 않았던 건 첩을 통해 서자를 낳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좋은 가문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