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윤겸은 대답하지 않았다.소란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동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관아에서 밝혀 주겠지.”연주는 그 말을 들으며 소란을 바라보았다.전생에는 아무도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고, 이번 생에도 남편은 형수의 말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약방 뒤편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고 있었고, 누가 약재를 옮겼으며 어느 시각에 소란이 나타났는지도 알고 있었다.문제는 그 사실을 증언해 줄 사람들이 모두 소란의 손아귀에 있다는 것이었다.그때 본채 쪽에서 또다시 비명이 터졌다.“큰도련님께서 숨을 쉬지 못하십니다!”윤겸은 소란의 어깨를 감싸고 급히 돌아섰다.연주는 그가 형의 처소로 달려가는 모습을 바라보았으나, 소란이 뒤따르기 전에 잠깐 자신을 돌아보았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그 눈빛에는 걱정도 슬픔도 없었고, 오직 계획한 일이 뜻대로 흘러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사람의 냉정함만이 남아 있었다.연주는 하인들에게 끌려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빗장이 걸리고 발소리가 멀어지자 그녀는 벽에 기대어 천천히 주저앉았다. 강윤석이 죽으면 민소란은 남편을 잃은 불쌍한 과부가 될 것이고, 윤겸은 형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더욱 가까이 머물 것이며, 독살의 죄는 연주에게 돌아올 것이다.전생에 그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연주는 손바닥을 펼쳤다.약재를 뒤지던 밤 손톱 밑에 끼어 있던 마른 잎 조각이 아직 남아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떼어 내 작은 종이에 감쌌다. 소란이 가져간 손수건이 유일한 증거는 아니었으므로, 연주는 종이를 이불 솔기 깊숙이 밀어 넣은 뒤 바깥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한참 뒤 늙은 하녀와 사내 둘이 문 앞에 멈췄다.“작은마님, 나오십시오.”연주는 고개를 들었다.“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하녀가 대답하지 못하자 사내 하나가 허리춤에 매달린 쇠고리를 만지며 말했다.“도련님께서 별채에 더는 두지 말라 하셨습니다. 따로 조사할 곳을 마련하셨답니다.”연주는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강씨
“그래. 반드시 확인해야지. 부군께서도 네가 이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테니까.”그녀가 방을 나간 뒤에도 연주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하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면서 방 안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으나, 이번에는 오래가지 않아 본채 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큰도련님께서 피를 토하셨습니다!”연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두드리며 의원을 부르라고 외쳤다. 약재를 버리지 말고 윤석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지 말라고 몇 번이고 소리쳤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고, 얼마 뒤에는 수많은 발소리가 마당으로 몰려왔다.윤겸이었다.그는 소란을 부축한 채 별채로 들어왔으며, 소란은 눈물로 젖은 손수건을 쥐고 있었다. 윤겸은 형수의 어깨를 감싼 채 연주의 방문 앞으로 다가왔고, 문이 열리자 분노에 찬 눈으로 아내를 노려보았다.“네가 형님의 약에 손을 댔느냐?”연주는 그가 무엇을 듣고 왔는지 짐작했다.“저는 약을 바꾸지 않았습니다.”“그런데 어째서 네 방에서 약재가 나왔느냐?”“버려진 약재를 가져와 살펴본 것입니다. 형님의 약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윤겸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은 채 형님께서 쓰러지신 날 방에서 약재가 나왔는데도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이냐며 몰아붙였다.연주는 소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윤겸의 품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었는데, 마치 남편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아내처럼 보였으나 연주와 눈이 마주치자 잠깐 울음을 멈췄다. 그 짧은 순간 소란의 눈에는 눈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빛이 스쳤다.연주는 다시 윤겸을 바라보았다.“부군, 형님께서 드신 약을 먼저 조사해야 합니다. 약방에서 누가 약을 달였는지, 마지막에 누가 손을 댔는지 확인하십시오.”윤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지금 형수님을 의심하라는 말이냐고 따졌으나, 연주는 형님을 살리려면 확인해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차분하게 대답했다.“끝까지 형수님을 모함하는구나.”윤겸은 연주의 팔을 거칠게 붙잡으며 형님께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 밝혀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여보! 제발 눈을 떠 보세요! 의원을 부르세요!”연주는 문을 두드리며 큰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겼느냐고 외쳤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더욱 세게 문을 두드리자 하인 하나가 다가와 큰도련님께서 갑자기 정신을 잃으셨으니 가만히 계시라고 소리쳤다.“의원은 불렀느냐?”“큰마님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연주는 문에 이마를 기댄 채 전생의 그날을 떠올렸다.그때도 윤석이 쓰러지자 소란은 의원을 불렀다고 말했지만, 의원은 한참 뒤에야 도착했고 윤석은 그 사이 약을 더 먹은 뒤 의식을 잃었다.연주는 급히 외쳤다.“큰도련님께 약을 더 드리지 말라고 전해라! 의원이 오기 전까지는 남은 약도 버리지 말고 그대로 두어야 한다!”하인이 대답하지 않자 연주는 문을 세게 밀었다.“들었느냐? 지금 드시는 약이 원인일 수도 있다!”그때 문밖에서 소란의 목소리가 들렸다.“동서가 어찌 그리 자세히 알고 있니?”연주는 움직임을 멈췄다.잠시 뒤 빗장이 열리고 소란이 들어왔는데, 눈가는 붉었지만 머리카락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손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흰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큰도련님께서 쓰러지셨다는 말을 듣자마자 약을 먹이지 말라고 하다니, 마치 무슨 일이 생길지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 같구나.”연주는 소란을 바라보며 형수님께서 직접 약을 챙기셨으니 누구보다 잘 아실 것이라며, 큰도련님께서 언제부터 어떤 약을 드셨는지 말해 달라고 요구했다.소란은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오며 자신은 부군의 병을 낫게 하려고 밤낮없이 애썼는데 연주는 그 약을 의심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고는 물동이와 침상, 낡은 이불을 차례로 살피다가 연주가 약재 찌꺼기를 숨겨 둔 자리에서 시선을 멈췄다.“동서, 혹시 네가 약방에 다녀온 것은 아니겠지?”연주의 심장이 내려앉았다.소란은 어젯밤 누군가 약방 뒤편을 서성이는 것을 보았다는 하인이 있다며, 설마 연주가 그런 위험한 곳까지 나갔겠느냐고 웃었다.그제야 연주는 자신이 얼마나 좁은 덫 안에 있었는지 깨달았다.소란은 연주가 약재를 의심할 것
연주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하지 마라. 네 목숨을 걸고 내 일을 도울 필요는 없다.”소매가 뜻밖이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자, 연주는 잠시 침묵하다가 약을 달인 뒤 찌꺼기를 어디에 버리는지만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직접 확인할 방법을 찾겠다는 말에 소매는 한참 망설이다가 서쪽 약방 뒤의 작은 부엌에서 약을 달이고, 찌꺼기는 담장 밖 재구덩이에 버린다고 알려 주었다.연주는 그 말을 기억해 두었다.그날 저녁에는 밥상이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고, 소매가 죽그릇을 거두어 간 뒤 연주는 문 아래에 놓인 나무 쐐기를 살폈다. 낮에 늙은 하녀가 물동이를 들여놓다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은 틈을 발견한 뒤부터 빗장과 문틀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여러 번 확인해 두었기 때문이다.바깥 빗장은 여전히 걸려 있었으나 나무가 오래되어 문짝이 조금씩 휘어 있었고, 연주는 문을 당겼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빗장이 홈에서 벗어날 만큼의 틈을 만들었다.나무가 마찰하는 소리가 나자 그녀는 숨을 죽이고 발소리를 기다렸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시 힘을 주자 문이 손바닥 하나만큼 열렸고, 연주는 몸을 옆으로 돌려 그 틈 사이로 빠져나왔다.찬 공기가 얼굴을 스쳤고 다친 발목이 땅에 닿을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녀는 회랑의 기둥을 짚으며 뒤뜰로 향했다. 본채의 등불이 보이는 곳까지는 가지 않고 별채와 약방 사이의 낮은 담장을 따라 움직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젖은 약재 냄새가 풍기는 재구덩이가 나타났다.연주는 무릎을 꿇고 나뭇가지로 재를 헤쳤다.아직 따뜻한 찌꺼기가 아래쪽에 남아 있었으며, 그 안에는 잘게 썬 뿌리와 말라붙은 잎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향이 강한 조각 몇 개를 골라 손수건에 감쌌는데, 그 순간 담장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약방 문은 잠갔느냐?”남자의 목소리에 연주는 숨을 죽이고 재구덩이 옆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예. 큰마님께서도 확인하셨습니다.”“큰도련님께서 오늘은 약을 다 드시지 못하셨다더라.”“그럼 내일은 어떻게 한답니까?
그녀가 나간 뒤에도 방 안에는 짙은 향이 남아 있었고, 연주는 찻잔을 들어 냄새를 맡아 보았으나 향이 너무 강해 차의 본래 냄새를 구분할 수 없었다. 결국 찻잔을 그대로 내려놓고 소란이 다녀간 시각과 동행한 하녀의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그날 저녁 죽을 가져온 것은 처음 보는 어린 하녀였다.하녀는 쟁반을 내려놓으면서 자꾸 문밖을 살폈고, 손목에는 낡은 천 조각이 감겨 있었다. 연주는 그 천의 색과 매듭이 옥분의 상처를 싸맬 때 쓰던 것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네 이름이 무엇이냐?”하녀는 놀라 고개를 숙였다.“소매라고 합니다.”“옥분을 보았느냐?”소매의 손이 떨리자 연주는 그녀가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짐작하고 한 걸음 물러섰다.“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고개만 끄덕여라. 다른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소매는 문밖을 살피다가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연주는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것이 잠시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옥분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으나, 곧 그 아이가 어떤 상태로 누워 있을지 떠올라 눈앞이 흐려졌다.“의원에게 치료는 받았느냐?”소매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이 말씀드리면 벌을 받는다고 겨우 대답했다.연주는 더 묻지 않고, 그 아이에게 자신이 살아 있다고만 전해 달라며 절대 혼자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소매는 잠시 연주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고, 그 뒤로는 아무 말 없이 그릇을 거두어 나갔다.그날부터 연주는 소매가 밥상을 가져오는 시각을 따로 기억했다. 아침에는 늙은 하녀가 왔고 저녁에는 소매가 왔으며, 우물가의 호위는 해가 기울 무렵 한 차례 교대했다.별채 뒤편으로는 본채의 물동이를 나르는 하녀들이 지나다녔는데, 그들은 서쪽 약방과 연결된 좁은 길을 이용하고 있었다. 연주는 창틀 아래쪽의 썩은 나무를 손톱으로 조금씩 긁어 내어 그 길을 더 잘 볼 수 있게 만들었다.그러던 어느 날 밤, 낯선 수레 소리가 들렸다.연주가 창틀의 틈으로 바깥을 살피자 작은 수레 하나가 담장 너머
연주는 국을 입에 대지 않은 채 밥만 조금 먹고 그릇을 돌려주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물조차 들어오지 않았다.문을 두드린 끝에 나타난 늙은 하녀는 연주의 얼굴을 보자마자 혀를 찼다.“큰마님께서 작은마님이 음식을 가리신다고 들으셨습니다.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드실 필요가 없으니, 오늘부터는 정해진 시간에만 식사를 올리라 하셨습니다.”“그렇다면 물이라도 다오.”“물도 저녁에 드립니다.”연주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물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냐고 물었으나, 하녀는 큰마님이 작은마님의 몸을 생각해 정하신 일이라며 자신들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고 대답했다.문이 닫힌 뒤에도 연주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그날 낮에는 물동이 바닥에 남은 물을 세 번으로 나누어 마셨고, 마른 입술이 갈라지며 혀끝이 거칠어졌지만 문을 두드려 소란에게 물을 구걸하지는 않았다.해가 기울 무렵에는 손끝까지 저려 와 침상에 앉았는데, 눈을 감으면 옥분이 매를 맞던 장면이 떠올랐고 눈을 뜨면 창호지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 그림자가 멈출 때마다 혹시 옥분일까 싶어 몸을 일으켰으나, 문 앞에 나타나는 사람은 언제나 다른 하인이었으며 옥분의 이름을 꺼내면 모두 고개를 돌렸다.셋째 날 아침, 민소란이 별채를 찾아왔다.연주는 마당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문 앞으로 다가갔고, 잠시 뒤 빗장이 풀리자 따뜻한 털외투를 걸친 소란이 들어왔다. 그녀의 머리에는 여전히 연주의 봉황 비녀가 꽂혀 있었으며, 뒤따르는 하녀는 향이 짙은 차와 과자를 담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동서,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소란은 연주의 갈라진 입술과 퀭한 눈가를 살펴보더니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기에 걱정되어 왔단다. 몸을 상하게 하면 도련님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실 텐데.”연주는 그녀가 가져온 찻잔을 바라보다가 물을 주지 말라고 하셨다 들었다고 말했다.그러자 소란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고 되물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