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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1화

Author: 정대천
의원이 도착하자 신도연은 방으로 돌아갔고 신수빈도 어머니를 따라 함께 안으로 향했다.

신 가의 집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신 가 형제들은 앞마당에서 손님들을 배웅하러 나갔고, 윤수혁은 연회청에서 하녀들에게 부축되어 밖으로 나가는 신수빈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조금 전, 모두가 신도연이 자신의 살을 베어 어머니께 돌려드리겠다고 한 그 충격적인 장면에 넋을 잃고 있을 때, 그는 거리낌 없이 신수빈의 눈을 가려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끊어질 듯 이어지는 흐느낌이 윤수혁의 생각을 현실로 끌어냈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울고 있는 진하빈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녀를 외면했다.

같은 얼굴이라 해도 그녀에게서는 단 한 점의 빛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의원은 신도연의 상처를 꿰매고 있었다.

신도연은 피비린내 나는 광경이 될 것을 염려해, 신수빈에게 병풍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안쪽에서는 의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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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21화

    이도현은 맑고 투명하게 반짝이는 그 눈을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느슨하게 끌어올리며 아이의 작은 발을 살며시 쥐었다.“네 어미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아이는 몸을 일으켜 보려는 듯 이불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이도현은 녀석이 품에 싫증 난 걸 알아차리고는 아이를 안아 제 가슴 위에 엎드리게 한 채, 자신은 침상에 편히 누웠다.아이는 고개를 바짝 치켜들며 그의 머리 쪽으로 기어 올라가려 애썼지만, 아직 힘이 모자랐다.이도현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버둥거리면서도 꼼짝 못 하는 아이를 보며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참 둔하군.”바로 그때, 온몸에 힘을 주고 있던 아이가 뽀드득 방귀를 뀌었다.이도현은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가슴이 들썩일 만큼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웃음소리에 아이도 신이 난 듯 까르르 웃어 댔다.“재주는 그것뿐이네.”이도현은 아이를 뒤집어 제 팔 안에 눕혀 안았다.신수빈이 목욕을 마치고 나오던 참이었다.안채 안쪽에서 들려오는 아이 웃음소리에 그녀는 곧장 걸음을 재촉했다.머리도 채 말리지 못한 채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남자의 품 안에 안긴 아이를 보자마자 웃으며 허리를 숙여 아이를 안아 들었다.“우리 아들, 이 어미가 보고 싶지 않았느냐?”이도현은 그녀가 아이를 품에 안아 드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젖은 머리카락 끝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서늘한 감촉은 금세 멀어졌다.그는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를 바라봤다.물기 어린 듯 윤기 도는 눈동자, 그 안에 가득 번지는 환한 기쁨.그래, 지금 이 순간의 그녀는 진짜였다.하지만 그것은 자신 때문만이 아니었다.신수빈은 한참 동안 아이를 품에 안고 다정히 위로해주다가, 뒤에 있던 남자가 계속 말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잠든 줄 알고 몸을 돌려 바라본 순간, 그대로 그의 짙고 깊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그 순간, 신수빈은 살짝 멈칫했다.탐색하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혼란스러운 눈빛까지, 평소의 그답지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왕야, 왜 그러세요?”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20화

    신수빈은 무의식중에 그의 옷깃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취기가 오른 사람처럼 느릿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왕야께서 전에 제게 호국부인 작위를 내리시고 삼천 식읍까지 주셨잖아요. 그때 어디를 원하는지 물으셨는데... 이제야 생각났어요. 전 정양을 갖고 싶어요.”이도현은 그녀를 안은 채 계속 안쪽으로 걸어갔다.방금 전과 다를 바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어째서 정양이냐?”“선항족이 성을 포위했을 때 정양왕이 절 그렇게 괴롭혔잖아요. 그 사람 봉지를 제가 가져야 속이 좀 풀릴 것 같아서요.”신수빈은 술기운을 빌린 듯 어린애처럼 투정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하지만 그녀 손바닥엔 이미 얇은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이 남자가 과연 허락할지, 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다.안채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시녀들이 욕실에 물을 받아 두고 있었다.이도현은 그녀를 안은 채 곧장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그녀를 내려놓고 손을 뻗어 겉옷부터 벗기기 시작했다.안쪽 옷까지 벗기려는 순간, 신수빈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왕야...”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서로의 속내까지 흐려 놓는 듯했다.남은 건 봄기운 어린 붉은 얼굴과 물기 어린 눈빛뿐이었다.이도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웃음을 흘렸다.“고작 정양 하나가 너의 ‘청’이라는 말까지 들을 일이냐?”그 말에 신수빈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가 몸을 숙여 속옷 매듭을 푸는 틈을 타, 그녀는 그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고마워요, 왕야.”이도현은 그녀의 옷을 천천히 벗겨 냈다.커다란 손이 한 손에 다 들어올 듯 가는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너와 나 사이엔 그럴 필요 없다. 얼마든지 솔직해져도 된다.”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 등 뒤 배두렁 끈을 풀어 내렸다.봄빛 같은 살결이 드러나기 직전, 신수빈은 황급히 가슴 앞 자수를 붙잡았다.봉황과 모란이 수놓인 얇은 속적삼이 미끄러져 내리는 걸 겨우 막아 낸 그녀는, 그를 밀어내며 끝내 함께 목욕하길 허락하지 않았다.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19화

    아무리 순한 술이라 해도 술은 역시 술이었기에, 주량이 약한 사람은 결국 취할 수밖에 없었다.신수빈은 어느새 살짝 취기가 오른 얼굴로 팔을 탁자에 괸 채, 눈웃음 어린 시선으로 아직도 술을 따르고 있는 이도현을 바라보았다.몸은 앞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었다.얇고 부드러운 상의는 그렇게 몸을 숙이는 순간 자연스레 느슨해졌고, 벌어진 옷깃 아래로 목선 밑 희고 고운 피부가 아슬아슬하게 드러났다.“왕야께서는 저를 취하게 만들 생각이십니까?”그 남자의 시선이 어찌 그곳에 머물지 않을 수 있겠는가.잔 안의 술이 넘쳐흐르는 것조차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신수빈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왕야는 겨우 두 잔 드셨는데 벌써 먼저 취하셨나 봐요? 술병도 제대로 못 드시네...”비록 취기가 오른 상태였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지금 자신의 모습이 그의 눈에 얼마나 유혹적으로 비칠지.오라버니는 이렇게 말했다.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세상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서하랑 역시 그랬다.한 걸음 내딛어 볼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스스로를 가둬 두면 안 된다고.하지만 계산하고 손익을 따지는 일은 이미 그녀 뼛속 깊이 새겨져 있었다.신수빈은 이도현 앞에서 진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었고, 그에게 마음을 온전히 열 수도 없었다.심지어 무심코 흘리는 말조차, 그 안엔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그가 좋아할 만한 표정을 계산했고, 그가 빠져드는 눈빛을 계산했고, 그가 욕망에 흔들릴 순간까지 계산했다.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 같은 자신이, 어떻게 한 남자와 서로 의심 없이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그 순간 이도현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는 그녀의 뒤로 다가와 손을 뻗었다.커다란 손바닥이 뒤에서 그녀의 목덜미를 천천히 쓸었다.길고 가는 목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손길을, 얇게 풀어진 옷깃 따위가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빈아, 본왕을 취하게 하는 건 술이 아니다...”등 뒤로 단단한 무언가가 닿아 왔다.그게 무엇인지 그녀는 알고 있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18화

    이제 막 등불이 하나둘 밝혀지고, 달빛이 버들가지 끝에 걸릴 시간이었다.아직 밤은 길었다.이렇게 일찍 그와 함께 침상으로 들어갔다간, 정말 밤새 시달리다 죽을지도 몰랐다.신수빈은 이도현의 무릎 위에 앉은 채 두 팔을 느슨하게 그의 어깨 위에 얹었다.힘없이 그의 품에 기대어 턱을 살짝 치켜든 채 나직이 속삭였다.“왕야, 아이가 보고 싶어요. 아이를 데려오게 해 주시면 안 됩니까?”이도현은 고개를 숙여 품 안의 그녀를 바라보았다.별빛 어린 눈동자는 물기 어린 듯 흔들렸고, 고운 얼굴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며, 사람을 홀리는 목소리는 나른하고도 부드러웠다.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엄지손가락이 붉은 입술을 천천히 쓸었다.목소리는 어느새 살짝 잠겨 있었다.“본왕은 보고 싶지 않으냐?”이런 질문쯤은 이제 너무 익숙했다.신수빈은 눈빛을 천천히 흘리며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몸을 더 가까이 기대어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귓가에 속삭였다.“왕야는 왕야고, 아이는 아이잖아요. 어떻게 같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오늘 밤 내내 왕야의 사람인데, 왕야께서 굳이 아이에게 질투하실 필요가 있나요?”그 말에 이도현 마음속을 슬쩍 스치던 시큰한 질투가 눈 녹듯 사라졌다.사실 그는 오늘 밤만큼은 그녀와 조용히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아이를 일부러 왕부에 두고 온 참이었다.“우선 밥부터 먹어라. 본왕이 사람을 보내 데려오게 하지.”“고맙습니다, 왕야!”신수빈은 금세 얼굴 가득 웃음을 피웠다.목소리에도 감추지 못한 기쁨이 묻어났다.그 미소에 이도현마저 따라 웃고 말았다.그는 그녀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얌전히 앉아서 먹어라. 호국사 음식이 너무 담백했던 거 아니냐? 보아하니 또 살이 빠진 것 같구나.”신수빈은 옆자리로 내려앉으며 웃는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왕야는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전에 산후조리하면서 좀 살이 붙었던 거예요. 몸조리 끝나면 원래 천천히 빠지는 법이고요. 곧 봄옷도 갈아입어야 하는데 지금 딱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17화

    신수빈은 내시가 성지를 모두 읽어 내리자,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눌러 담았다.이도현은 윤서원이 호국사에 온 걸 분명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서둘러 조서를 내린 게 틀림없었다.“윤 대인, 성지를 받드십시오.”윤서원은 고개를 숙인 채 음침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결국 이도현은 어마원의 목마 일을 그에게 “하사”해 버렸다. 윤서원은 속이 뒤집힐 만큼 분했다.“내관께 아룁니다. 소인은 아직 상중이라 조정의 벼슬을 받기 어렵습니다.”그러자 내시가 곧바로 답했다.“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지난해 장안성 전란으로 죽은 자가 많아 지금 조정은 사람이 부족한 때라 하셨습니다. 많은 관리들 역시 상복을 입은 채 직무를 보고 있으니, 윤 대인께서도 사양하지 마십시오.”“받들겠습니다.”내시는 곧 시선을 신수빈 쪽으로 돌렸다.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호국부인께서도 짐 정리를 하시고 노신과 함께 입궁하시지요. 폐하를 알현하신 뒤 다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예, 수고를 끼쳐 드리겠습니다.”신수빈은 사람을 시켜 내시를 먼저 쉬게 한 뒤, 은보와 금자를 데리고 짐을 챙기러 갔다.어차피 내일 다시 돌아올 예정이라 많이 챙길 필요는 없었다.그때 은보가 낮게 물었다.“마님, 객방의 그 사람은 어찌할까요?”신수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지금은 중상이 심해서 치료가 가장 중요한 때다. 함부로 옮기긴 어려우니 금자는 남고, 넌 나와 함께 돌아간다. 암위들도 절반은 여기 남겨 두고.”“예.”윤서원은 남고 싶다면 남으라지. 어디서 자든 그녀 알 바 아니었다.내일 윤서원이 어마원으로 가면, 그때 다시 돌아오면 됐다.신수빈은 내시를 따라 호국사를 떠났다. 윤서원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음침한 눈빛을 드리웠다.그는 어젯밤 그 사람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저 그녀를 이곳에서 떠나게만 만들면 된다고.호국사 주변에는 이도현의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자신이 굳이 남겠다고 버티고, 신 씨에게 집착하며 가까이하려 드는 모습을 보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16화

    “게다가 거기서 묵고 갈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이도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러자 장풍이 황급히 그를 붙잡았다.“왕야, 지금 가셔도 소용없습니다! 저쪽은 엄연히 정실 부군인데 왕야께서는 지금 명분도 없고 순서도 없으니... 끼어든 외실 같은 처지 아닙니까...”장풍은 이도현의 싸늘한 시선 속에서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끝내 마지막엔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였다.이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정말 장풍의 말을 들은 듯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갔다.“네 말이 맞다. 본왕은 명분도 없고 순서도 없지.”장풍은 속으로 슬며시 기뻐졌다.역시 왕야는 자기처럼 직언하는 사람을 좋아하시는군.왕야 같은 명군은 원래 남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는 법이었다. 그런데 장풍이 다 기뻐하기도 전에, 그 명군께서 담담히 입을 열었다.“보아하니 네가 요즘 꽤 한가한 모양이구나. 뒷마당 마구간에 말 먹일 사람이 부족하다더라. 가서 한 달쯤 말이나 먹이고 있어라.”장풍은 눈을 크게 떴다.“…예?”‘형은 말을 받고, 나는 말 먹이를 주라고? 같은 어미 배에서 나왔는데 어째서 차이가 이렇게 심한 것일까?’장풍은 급히 해명했다.“왕야, 속하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속하는 왕야께서 외실이라 한 적 없습니다! 왕야와 마님께서는 서로 마음이 통하시고, 마님 마음속엔 왕야뿐입니다. 사랑받지 못하는 쪽이야말로 끼어든 사람 아닙니까…”“두 달.”장풍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이도현은 그 멍청한 놈이 물러난 뒤에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원래도 짜증났는데, 윤서원이 지금 호국사에 있다는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혔다. 게다가 뻔뻔하게 거기서 묵고 갈 생각까지 한다니, 생각할수록 열이 치밀어 올랐다.이제 춘위도 끝났겠다, 슬슬 봄 사냥도 준비해야 했다. 저 눈엣가시 같은 놈부터 빨리 처리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그리고 우선은 당장 눈앞의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신수빈은 점심을 먹은 뒤 다시 중상을 입은 그 사람을 보러 갔다.상처가 워낙 심해 요 며칠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73화

    지난번 책봉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궁에 들어가 감사의 예를 올려야 했다.다음 날 이른 새벽, 궁중에서 이미 전갈이 내려왔다. 신수빈은 서둘러 일어나 청하의 시중을 받아 고명복을 단정히 입고 마차에 올라 궁궐로 향했다. 이번에는 청하를 데리고 가지 않고 은보만 동행시켰다. 궁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은보의 침착한 얼굴빛과 신중한 거동을 살펴보던 신수빈은 자신의 추측이 점점 더 확신으로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궁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가마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녀는 그 위에 앉아 느릿느릿 영수궁을 향해 나아갔다.그 시각 바깥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67화

    후부 내의 장부들은 모두 창란원에 모여 있었으나 신수빈은 책을 뒤적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저쪽이 바로 분가 이후, 이십 해 가까이 이방과 삼방의 점포와 전답에서 들어온 수지 기장입니다. 옛 평양후께서 세상을 떠난 지도 십 해가 되어가죠. 그 십 해 동안은 조모님 곁을 지키던 배필 관사들이 매달, 매해의 출납을 빠짐없이 적어 두었습니다. 그중 몇몇 의복 가게들은 천하가 평정되면서 남쪽에서 진상된 촉비단과 소주 자수가 경중을 휩쓸자 진부한 양식만 내놓던 가게들은 매해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거기에 세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33화

    금자는 주먹을 쥐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불과 몇 번의 동작만에 남자는 땅에 나가떨어졌고 청하는 재빨리 여자를 부축했다. 신수빈은 다가가 두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며 얼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여인은 신수빈이 분명 어느 대가의 귀한 부인임을 알아차리고 두 아이를 데리고 얼른 무릎을 꿇어 절을 했다. 신수빈은 그녀들을 일으켜 세웠다."어찌하여 그자와 이혼하지 않으시고 이리도 그에게 휘둘리며 고생만 하십니까?"여자는 목이 메어 답하였다. "이혼이 말이 쉽지, 친정에서도 저를 받아주지 않을 터이고 무엇보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8화

    그의 손은 왼손 호구 자리에 희미하게 남은 이자국을 천천히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것은 어젯밤, 신수빈이 자해하지 못하도록 막다가 그녀에게 물린 자국이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치는 자는 없었고 모두가 저절로 머리를 떨구었다.이제서야 모두는 깨달았다. 소위 고명대신, 삼족정립의 형세는 모두 허상일 뿐, 실로 생사대권을 손에 쥐고 있는 자는 줄곧 이도현 한 사람뿐이었다.검시관이 계속 시신을 살폈고 조정에는 감히 다시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동각대학사, 내각차보라 할지라도, 그가 죽이라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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