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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작가: 정대천
봉소야는 눈앞의 준수한 얼굴을 바라보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때 정 씨와 주변 사람들이 무릎을 꿇으며 일제히 예를 올렸다.

“왕야께 인사 올립니다.”

봉소야는 눈앞의 잘생긴 남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설마 이 사람이 왕야라고?

수년간 풍진 속에서 살아온 그녀의 직감이 이 사람은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힘없이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흐느꼈다.

“왕야, 구해 주세요….”

그러더니 힘을 잃은 듯 그의 품에 푹 쓰러지며 정신을 잃은 척했다.

이도현은 이 광경을 2층 창문 너머로 지켜보며 장난스럽게 눈빛을 보내던 여인을 떠올렸다.

결국 그는 봉소야를 안고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 여자는 정말 대담하구나!’

깊게 숨을 들이쉰 그는 정 씨를 향해 날카롭게 꾸짖었다.

“너와 이 여자는 무슨 관계인 것이냐? 감히 사사로이 처벌을 가하다니, 이건 법을 무시한 것이 아니냐!”

“제 죄를 알았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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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11화

    어린 녀석은 이도현 품에 안기자마자 신이 난듯 까르르 웃었다.그리고 작은 손으로 그의 옷깃을 꼭 붙잡고는 다리에 힘을 주어 버둥거리기까지 했다.그러자 곁에 있던 유모가 웃으며 말했다.“왕야, 도련님께서 이제 조금 크셨다고 가로로 안겨 있는 걸 싫어하십니다. 가끔은 세워 안아 드리는 걸 더 좋아하세요.”이도현은 아직 자신의 품에 안긴 채 힘차게 발버둥치는 아이를 보고는, 통통한 볼을 손끝으로 가볍게 꼬집었다.“본왕이 안아 주는 것도 네 어미 체면 봐서 하는 거다. 그런데도 이것저것 가리느냐.”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그는 결국 아이를 세워 안아 올렸다.어린 녀석은 더없이 즐거운 듯 두 손으로 이도현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가끔은 “아우” 하는 알 수 없는 소리까지 냈다.이도현은 그 작고 보드라운 손이 제 얼굴 위를 마음껏 헤집고 다니는 감촉을 느꼈다.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아이의 까만 눈동자는 내내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도현도 더는 무뚝뚝한 얼굴을 유지할 수 없었다.어느새 눈가에는 웃음이 가득 번져 있었다.이 녀석은 참 기막히게도 컸다.생김새가 신수빈을 꼭 빼닮아서, 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누그러졌다.그때 어린 녀석이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싸더니, 입맞춤하듯 그의 뺨을 쪽 빨아 물었다.이도현은 순간 멈칫했다.말랑하고 축축한 입술이 살짝 그의 뺨을 빨아들이는 감촉은 묘하게 따뜻하고 부드러웠다.설명할 수 없는 감각에 마음 한구석이 가볍게 흔들리는 듯했다.그는 잠시 멍하니 굳어 버렸다.그사이 아이는 고개를 갸웃한 채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도현은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작은 손을 가볍게 쥐었다.눈빛과 미간 사이에 감출 수 없는 다정함이 번졌다.“네 어미랑 똑같군. 타고나길 재롱이 많아.”그때 밖에서 장녕이 알현을 청했다.이도현은 아이를 무릎 위에 앉혔다.이제는 허리를 받쳐 주면 잠시 앉아 있을 수 있는 정도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10화

    신수빈은 괜한 망상을 하는 것이 아닌, 이 모든 일이 반드시 서로 이어져 있다고 느꼈을 뿐이었다.장 가는 여 귀비가 총애를 받기 시작한 이후부터 줄곧 조정 안에서 세력을 키워 왔다.본래 장 가 자체에는 별다른 생업도 없었기에, 황실에서 내린 하사와 봉읍만으로는 가문이 지금처럼 점점 거대해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선황이 살아 있을 당시에는 태후를 지나치게 총애했고, 장 가의 권세 또한 그 틈을 타 더욱 커졌다.그러니 그 시절 손에 쥔 권력을 이용해 사광을 손에 넣은 것은, 어쩌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정말 이 가짜 은자 사건이 장 가와 관련되어 있는 걸까?이전 양회의 염세 문제와 제방 공금 횡령 사건에도 장 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는데... 장 가는 대체 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장 가의 외조카는 이미 천자가 되어 있었다.게다가 이도현이 곁에서 받쳐 주고 있으니 황위 역시 굳건했다.그런데도 그들이 이토록 막대한 돈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신수빈은 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과 자신의 추측을 정리해 편지 한 통을 썼다.다 쓰고 봉해 은보에게 보내려던 순간, 그녀는 문득 손을 멈추었다.이도현과 태후 사이가 어떻든, 예전에 이도현은 분명 직접 말했었다.여 귀비는 장 가에게 큰 은혜를 입었고, 자신에게 능력이 닿는다면 장 가 자손들만큼은 평안하게 지켜 주고 싶다고.그렇다면 이 일을 이도현에게 알렸을 때, 결국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해 적당히 덮어 버리는 건 아닐까?괜히 경계심만 자극하고 끝나는 건 아닐까?신수빈은 망설였다.이번만큼은 한 걸음도 잘못 디딜 수 없었다.전생에서 겪었던 모든 일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장 가가 끝내 어디까지 가려 하는지 직접 보고 싶었다.그녀가 원하는 건 장 가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며 자손이나 지키는 결말이 아니라, 가문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단 한 사람도 남지 않는 것이었다.신수빈은 한참 동안 편지를 바라보다가 끝내 촛불 곁으로 가져가 불태워 버렸다.재가 되어 흩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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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수빈은 금자 손에 들린 주머니를 받아 안에 있는 은괴를 전부 쏟아냈다.안에 든 은자는 하나같이 똑같은 모양이었다.그때 은괴와 함께 조잡하게 그려진 손그림 한 장도 바닥으로 떨어졌다.구불구불 이어진 선들이 무언가의 길을 나타낸 듯했지만, 대체 무엇을 그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신수빈은 직감했다.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서하랑도 고개를 기울여 살펴보았다.평소 금이나 은 같은 재물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문제라도 있느냐?”신수빈은 은괴를 손안에서 가볍게 무게 재어 보며 말했다.“이 은자들, 십중팔구 가짜가 섞인 것 같아요.”남북이 통일된 뒤 조정은 민간의 주조권을 모두 회수했다.그런데 이런 위조 은자가 나오고, 그 사람이 이토록 큰 상처까지 입고 있으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금자, 은보. 사람을 마차에 태우거라. 우선 성 안으로 데려가 의원부터 보이게 해야 한다.”금자와 은보가 막 사람을 마차 위에 옮겨 태우고 출발하려던 순간이었다.옆 관도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먼지를 잔뜩 일으키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말을 몰아 장안성 방향으로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서하랑은 선두에 선 사람을 보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저 사람...”“아는 사람입니까?”“장가의 관사다. 아마 전 시아버님의 심복일 거야. 예전에 장가에 있을 때 자주 드나들던 걸 봤거든.”신수빈은 멀어져 가는 일행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그러고는 이내 금자와 은보를 불렀다.“잠깐. 호국사 큰스님께서는 의술에도 밝으셨지. 그 사람, 호국사로 데려가거라.”말을 마친 뒤 신수빈은 몸을 돌려 서하랑에게 조용히 말했다.“저 사람은 상처가 너무 심해요. 몸에는 가짜 은자까지 지니고 있고, 살아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어요. 괜한 화를 부르지 않도록 언니께서도 당분간은 비밀로 해 주세요.”서하랑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태원 서가 출신이었다.집안은 삼대에 걸쳐 이어져 온 명문가였기에, 이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충분히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08화

    신수빈의 눈가에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새 생명의 탄생은 언제나 사람을 기쁘게 만들었다.서하랑은 그녀를 끌어 앉힌 뒤, 눈앞의 신수빈을 바라보았다.화사한 빛을 머금은 얼굴에 자태는 고왔고, 빼어난 아름다움이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그러다 문득 안타까운 듯 말했다.“윤가 같은 집안은 정말 아깝다. 네 나이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윤서원 곁에서 세월을 허비하다니.”신수빈은 서하랑의 뜻을 모를 리 없었다.다만 지금 윤서원이 아직 살아 있는 이상,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지금의 윤서원은 딱히 흠잡을 만한 잘못이 없어요. 예전에 제가 화이를 꺼낸 적은 있었지만, 그 사람이 받아들이지 않았죠. 지금으로선 이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어요.”서하랑 역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세상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사내는 아내를 내칠 수 있지만, 여인이 화이를 하려면 관부에서 절혼서를 내려야 했다.그런데 윤서원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관부조차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서하랑은 그녀의 손을 감싸 쥔 채 조용히 위로했다.“너는 복이 있는 아이니, 진창 같은 곳에 오래 갇혀 있진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빠져나올 날이 올 거야. 나는 요즘도 가끔 조옥에 갇혀 있던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 일을 겪은 덕에 내 곁에 있는 게 아군인지 적군인지 제대로 볼 수 있었구나 싶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신수빈은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언니가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다행입니다.”“나도 나중에서야 깨달았단다. 처음엔 거의 떠밀리다시피 섭정왕 앞에서 지금의 혼사를 받아들였잖니. 헌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불안했다. 세상 사내들이란 대개 박정한 법이니까. 정말 큰일이 닥치면 숲속 새들처럼 각자 흩어져 날아가 버릴 거라 생각했지. 헌데 선항족이 성을 함락시키던 날, 그 사람은 나를 숨겨 두고 스스로 집안 하인들을 이끌고 선항족과 맞섰다. 불쌍하게도 문인에 불과한 사람이 온몸에 상처를 입고도 끝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07화

    신수빈이 호국사로 돌아가는 길에, 금자는 점점 멀어져 가는 성문을 바라보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전 마님께서 도련님이라도 보고 가실 줄 알았어요. 왕부에서 하룻밤 묵으셨다가 내일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신수빈은 담담히 말했다.“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멋대로 경성에 돌아온 데다 왕부까지 드나들었으니, 누가 보기라도 하면 괜한 말거리가 되겠지.”무엇보다 그녀 역시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 씨의 말을 곱씹어 볼 시간이 필요했다.신수빈은 마차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이월 초의 장안성 밖은 봄기운이 완연했다.풀은 무성히 자라고 꾀꼬리는 날아다녔으며,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둑가를 스치고 있었다.교외에는 봄놀이를 나온 젊은 공자와 규수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신수빈은 버드나무 곁을 나란히 걷는 한 쌍을 한참 바라보았다.마르고 늘씬한 사내가 마음에 둔 여인의 머리끝에 스친 버들가지를 살며시 치워 주었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그 눈빛 사이로 애틋한 정이 길게 얽혀 있었다.그 모습을 보던 신수빈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가능하다면, 마음에 품은 사람과 의심 없이 사랑하며 백발이 될 때까지 함께하고 싶지 않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 걱정 없이 규방에서 웃고 지내던 소녀가 아니었다.칠 년 밤낮 없이 타오르던 불길은 이미 그녀의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이제는 다시 마음 하나를 온전히 누군가에게 기대어 둘 수 없었다.“앞에 계신 분이 혹 호국부인의 마차이십니까?”마차 밖에서 들려온 물음에 신수빈이 물었다.“누구십니까?”금자가 밖으로 나가 살펴본 뒤, 환한 얼굴로 돌아왔다.“부인, 숙혜부인과 그 부군께서 앞쪽 정자에 계신데, 부인의 마차를 보고 인사를 청하셨어요.”숙혜부인은 바로 장가와 화이한 뒤 송치연에게 재가한 서 씨였다.어차피 호국사로 돌아가도 딱히 할 일이 없던 신수빈은 마차에서 내려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숙혜부인과 송치연은 신수빈이 내리는 모습을 보자 앞으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506화

    해 질 무렵이 되어서야 신가에서 사람이 찾아와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신수빈이 떠나기 전 남겨둔 것으로, 왕야께서 귀부한 뒤 전해 달라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오늘 된통 재수 없는 일을 겪은 장풍은 이번엔 눈치껏 물러나 있었고, 대신 장녕이 편지를 들고 갔다.장녕이 편지를 올리자, 이도현은 그녀가 보낸 편지라는 말을 듣고도 눈꺼풀만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딱히 상대하고 싶은 기색은 아니었다.그는 여전히 손에 든 이번 과거 응시자 명부를 넘겨보고 있었다.장녕 역시 재촉하지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잠시 뒤, 이도현이 명부를 내려놓고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펼쳐서 읽거라.”마치 제 손으로 읽을 가치조차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장녕은 그대로 편지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당신을 보지 못하니 마음이 시름에 잠겨 밥조차 넘기기 어렵고, 잠 또한 편히 들 수 없습니다. 당신을 보지 못하니 근심이 깊어져...”고작 두 줄 읽었을 뿐인데, 편지는 곧 이도현의 손에 낚아채이듯 빼앗겼다.뒤에는 아직도 한참 더 남아 있었고, 장녕은 속으로 신수빈의 문장이 제법 좋다고 감탄하려던 참이었다.이도현은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다시 끝에서 처음까지 훑어보았다.그러다 마지막 부분에 적힌 문장을 본 순간, 시선이 잠시 멈췄다.편지 봉투 안에는 그녀가 호국사에서 직접 구해 온 평안부 하나가 들어 있다고 했다.반달 동안 불전에 올려 두고, 날마다 기도하며 경문까지 베껴 썼다면서, 이번에 가져와 그에게 건넨다고 했다.앞으로 부디 평안하고 순탄하기만을 바란다는 말과 함께.“봉투.”장녕이 얼른 봉투를 건네자, 이도현은 안에서 평안부 하나를 꺼냈다.그는 손안의 부적을 이리저리 한 번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가 이내 다시 눌러 담았다.“재앙을 막아 준다는 건 여인들이나 믿는 거지.”그렇게 말하면서도 눈가에는 감출 수 없는 흡족함이 어려 있었다.“그래도 양심은 있었군.”장녕이 슬쩍 보니, 그저 호국사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흔한 평안부일 뿐이었다.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37화

    이도현은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더니 가볍게 웃으며 읊조렸다.“아리따운 여인과 함께 걷고 있는데, 얼굴이 무궁화처럼 곱도다. 훨훨 날 듯 걷는 자태에 옥패 소리가 고요히 울리네. 아름다운 맹강이여 그 고운 수빈이 잊히지 않도다. 네 이름도 여기에서 따온 것이냐.”신수빈은 줄곧 그를 무인이라고 여겼다. 글 몇 편쯤 읽었을지는 몰라도 문인들만큼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진 시경의 구절까지 줄줄이 읊는 것을 보고는 자신이 그를 얕잡아보았다는 걸 깨달았다.“맞아요. 저와 오라버니의 이름은 모두 조부께서 지어주셨습니다.”“좋은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229화

    신수빈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런데 곧 닥칠 것이라 여겼던 통증은 끝내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웅크린 채 벽 모퉁이에 기대어 있다가 조심스레 눈을 떴다.눈앞에 펼쳐진 것은 허리를 굽혀 작은 공간 하나를 떠받치고 선 이도현의 모습이 보였다.그 광경에 그녀는 잠시 멍해졌다.이도현은 고개를 숙여 창백한 얼굴로 움츠리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무언가에 맞은 줄로 여긴 것이다.“어디 다쳤느냐?”신수빈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젓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니요.”사방에는 흩어진 책들이 널려 있었고 그의 등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49화

    마님이 걱정할까 두려웠던 금자는 섭정왕의 좌시위에게 부탁해 많은 상처약을 보내오게 했다. 신수빈은 이도현의 겉옷을 벗기고 조심스레 피 묻은 속옷을 벗겼다. 검은 겉옷에서는 피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연한 속옷은 그의 상처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오른팔의 속옷은 거의 붉게 젖어 있었고 찰나의 그 한 번 움켜쥔 것이 결코 가볍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신수빈은 이전에 감싸 두었던 붕대를 한 겹씩 벗겼다. 비록 눈앞의 이 남자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차디찬 뼈가 드러난 상처는 그녀조차도 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이

  •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제150화

    “본왕이 너를 대하는 것이 아직도 부족하단 말이냐?”억지로 화를 내는 그의 목소리에는 본래의 위협이라곤 전혀 없었다. 귓가에 스치듯 낮고 허스키하게 들려오는 음성에 신수빈은 자연스레 그의 진짜 감정을 분간할 수 있었다.“족합니다. 한데 남녀의 일에서 좋고 나쁘다는 기준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자신만큼은 그 속에 담긴 차가움과 따뜻함을 아는 법이지요. 저도 한때는 꿈꾸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과 혼례를 올리고 서로 의지하며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을요. 한데 저는 결국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닿으려 하면 멀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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