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유민재는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만약 하지율이 정말 이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히 예상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고온의 열기에 노출된 탓인지 하지율이 끼고 있던 반지에 내장된 초소형 위치 추적 칩은 손상된 상태였다.현재 기술팀이 동적 추적 기능을 복구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 정보만 남아 있었다.문제는 그 위치에서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됐다는 점이었다.화재가 워낙 심했던 탓에 주변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무엇이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고 시신 역시 신체적 특징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다.유민재는 원래 시신을 수습해 감식을 의뢰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주용화의 상태를 보니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그때 직원 한 명이 급하게 달려왔다.“위치 추적 기능 복구가 완료됐습니다.”그 말을 들은 순간, 굳어 있던 주용화의 얼굴이 아주 조금 풀어졌다.흐릿하게 흔들리던 검은 눈동자에도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유민재가 곧바로 지시했다.“노트북 가져오세요.”잠시 후 직원이 노트북을 들고 왔다.하지만 화면에 표시된 위치는 여전히 이 근처였다.유민재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밖에는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공기는 차가웠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서늘한 기운이 실려 있었다.주용화는 위치 정보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발길이 멈춘 곳은 한쪽에 쌓여 있는 잿더미 앞이었다.이곳은 조금 전 확인했던 장소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시신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불에 타 있었다.김경환은 주변을 살피다가 시커멓게 탄 물체 하나를 발견했다.언뜻 휴대전화처럼 보이는 물건이었다.김경환은 그것을 집어 든 뒤 옆에 있던 직원에게 건넸다.“확인해 봐. 안에 있는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는지.”“알겠습니다.”직원은 물건을 받아 들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바로 그때, 김경환은 주용화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된 것을 발견했다.시선이 향한 곳
그랬다면 다음으로 위험해질 사람은 고윤택이었을 것이다.고윤택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하지율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함우민은 확신했다.함우민이 나직하게 말했다.“저도 가능하면 주변 사람들까지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어요.”함우민은 마치 자신이 피해자라도 되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니 절 원망하지 마세요, 지율 씨. 전부 주용화 때문이잖아요.”함우민의 눈빛에 집착이 서렸다.“주용화는 지율 씨에게 지나치게 집착해요. 하루 종일 지율 씨 곁을 지키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잖아요. 윤택이를 이용하는 것 말고는 주용화를 지율 씨 곁에서 떼어 놓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어요.”그러고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결국 성공했네요.”하지율은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자칫하면 또다시 함우민의 뺨을 때릴 것만 같았다.그때 손가락 끝에 닿은 차가운 감촉이 간신히 무너질 듯한 이성을 붙들어 주었다.하지율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감정을 억누르고 조금씩 이성을 되찾아 갔다.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안에는 위치 추적 기능이 탑재된 초소형 칩이 들어 있었다.‘이 반지만 있으면 용화 씨가 어떻게든 나를 찾아낼 거야.’바로 그때 함우민이 의미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리고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들어 보였다.“지율 씨, 제가 직접 디자인한 커플링이에요. 마음에 드세요?”하지율은 본능적으로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처음 보는 낯선 디자인의 반지가 손가락에 끼워져 있었다.주용화와 함께 맞췄던 반지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함우민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주용화를 속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지율 씨가 끼고 있던 반지가 없었다면 주용화는 쉽게 믿지 않았을 거예요. 지율 씨가 죽었다는 사실을 말이죠.”잠시 후 함우민이 덧붙였다.“주용화 그 자식 정상이 아니잖아요. 지율 씨의 죽음을 알게 되면 더더욱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 거예요.”하지율은 함우민을 노려보며 한 글자씩 내뱉었다.“비열하기 짝이 없네
주용화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이었다.하지율은 누군가에게 뒤에서 가격당하고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함우민은 뜨거운 시선으로 하지율을 바라봤다.“지율 씨,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주용화를 지율 씨 곁에서 떼어 놓는 일이 말이에요. 그래도 결국 해냈네요. 아줌마의 목숨을 대가로 치른 보람이 있네요.”하지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지금 뭐라고 했어요?”함우민은 태연하게 웃었다.“지율 씨, 아줌마는 늘 지율 씨를 괴롭혔잖아요. 사실 저도 오래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다만 지후 그 녀석 체면 때문에 참고 있었을 뿐이죠.”함우민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하지만 지율 씨를 괴롭힌 사람을 제가 그냥 둘 리 없잖아요. 아줌마도 대가를 치를 때가 된 것뿐이에요.”하지율은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 가는 기분이었다. 감동은커녕 소름만 돋았다.함우민은 그런 하지율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지율 씨. 제가 있는 한 누구도 지율 씨한테 상처 주지 못해요.”하지율은 이를 악물었다.“윤택이는요?”함우민이 미소 지었다.“윤택이는 주용화가 무사히 구해냈어요. 지금쯤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하지율은 곧바로 물었다.“그 화재... 저를 납치하려고 일부러 불이라도 지른 거예요?”함우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지율 씨, 저는 이미 다 준비해 뒀었어요. 설령 주용화가 윤택이를 구하지 못했더라도 결국 제가 직접 구했을 겁니다.”하지율은 차갑게 웃었다.함우민의 속셈이 너무 뻔하게 보였다.“화야 씨가 없었으면 윤택이도 함께 납치했겠죠. 그리고 윤택이를 이용해 저를 협박하려고 했을 테고요. 아닌가요?”함우민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하지율의 말은 정확했다. 함우민의 원래 계획은 하지율과 고윤택을 함께 납치하는 것이었다.하지만 고윤영은 예상 이상으로 무능했다.고윤영이 고윤택 하나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탓에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솔직히 함우민도 아직 이해되지 않았다. 주용화가 어떻게 그 짧은 시간 안에 고윤택을 찾아냈
고지후의 목소리는 한층 더 가라앉아 있었다.“지율아, 고맙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하지율은 그 말만으로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알겠어.”하지율은 더 묻지 않았다.전화를 끊은 뒤 하지율과 주용화는 다시 고윤택을 데려왔다.고윤택의 기분은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었다.하지율과 최혜은의 관계가 아무리 좋지 않았다고 해도 최혜은은 고윤택의 할머니였다.게다가 최혜은은 진심으로 고윤택을 아껴 왔다.그런 사람이 위독한 상태에 놓였으니 고윤택이 힘들어하는 것도 당연했다.다행히 주용화는 아이를 다루는 데 능숙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고윤택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덕분에 고윤택의 기분도 조금씩 나아졌다.그날 저녁, 하지율은 테이블 옆에 앉아 고윤택과 주용화가 바둑을 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발신자는 고지후였다.하지율은 화면을 확인한 뒤 시간을 봤다.‘저녁 여덟 시인데?’순간 이유 모를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하지율은 휴대전화를 들고 발코니로 나갔다.“무슨 일 있어?”전화기 너머로 고지후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어머니가…… 윤택이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셔.”하지율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마지막이라는 말은 최혜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뜻이었다.전화를 끊은 뒤 하지율은 실내로 들어왔다.그리고 고윤택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윤택아, 준비하자.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주용화도 상황을 짐작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하지율을 바라봤다.“제가 데려다드릴게요.”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약 30분 뒤, 하지율과 고윤택은 병원에 도착했다.고지후는 병실 밖에 서 있었다.얼굴에는 짙은 피로가 드리워져 있었고 눈가에도 수척한 기색이 역력했다.“지율아, 일부러 와 줘서 고마워.”하지율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병실 안에서 고윤영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복도 끝까지 울려 퍼질
하지율은 놀란 눈으로 유소린을 바라봤다.“유소린, 설마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한테 빠진 거야?”유소린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유소린은 곧바로 해명했다.“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술집에서 모임을 했었거든. 그런데 거기서 가면을 쓴 피아니스트를 만났어. 피아노도 정말 잘 치고 분위기도 엄청 좋았어.”유소린은 당시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그날 누가 돈을 주고라도 가면을 벗겨 보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걸 목격하고... 내가 좀 도와줬어.”하지율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가면을 썼다고? 왜 굳이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유소린이 어깨를 으쓱했다.“본인 말로는 명문가 도련님이래. 집안 사람들이랑 갈등이 있어서 집을 뛰쳐나왔다던데, 정체가 들키면 가족들이 잡으러 올 거라며 얼굴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하지율의 표정은 미묘하게 굳었다. 쉽게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그래서 얼굴 못 봤어?”“응.”유소린은 휴대전화로 답장을 보내면서도 덤덤하게 말했다.“어차피 나도 곧 M국으로 돌아가잖아. 그 사람이랑 진지하게 이어질 일은 없을 것 같고.”유소린은 웃으며 말했다.“가볍게 썸 타는 것도 나쁘지 않지.”하지율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유소린, 정말 연애가 하고 싶으면 차라리...”하지만 하지율이 말을 마치기 전에 유소린이 먼저 말을 끊었다.“지율아, 내 성격 모르냐? 가볍게 만나면서 기분 전환하는 건 괜찮지만 결혼은 됐어. 나는 아직도 결혼이 무서워.”그러다 문득 하지율을 바라봤다.“너는 S시에 얼마나 있을 거야?”“아마 2주 정도?”유소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랑 그 사람도 앞으로 2주 정도 인연이 남은 거네.”유소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미래까지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이 감정만큼은 진심이야.”하지율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알겠어. 네가 좋다면 됐지.”하지만 그때의 하지율은 알지 못했다.유소린이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사람이 훗날 유소린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될
“조심해서 와.”하지율은 가볍게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화야 씨도 같이 갈 거니까 위험에 처할 일은 없을 거야.”고지후는 애초에 주용화가 함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하지만 하지율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주용화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니 가슴 한편이 답답해졌다.고지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래.”그렇게 통화가 끝났다.전화를 끊은 뒤 하지율은 곧바로 주용화에게 통화내용을 전했다.이야기를 들은 주용화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갑자기 왜 교통사고가 난 거죠?”하지율이 설명했다.“원래부터 두통이 심했대요. 고지후 말로는 운전하다가 갑자기 두통이 심해져서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고요.”주용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고씨 가문 운전기사는요?”“그날은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운전기사를 데리고 가지 않았대요.”하지율은 주용화가 유난히 자세하게 묻자 조금 의아했다.“왜요, 화야 씨? 사고에 문제라도 있어 보여요?”주용화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조금 이상해서요.”하지율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지후도 자기 어머니 사고니까 가만있지는 않을 거예요. 이번 사고가 정말 우연인지, 누군가 의도한 건지는 당연히 조사하겠죠.”사고가 발생한 곳은 S시였고, 사고를 당한 사람은 하지율이 무척 싫어하던 최혜은이었다.따지고 보면 하지율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과거 최혜은은 하지율을 여러 차례 곤란하게 만들었다.그래서 최혜은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하지율의 마음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모든 준비를 마친 뒤 하지율과 주용화는 고윤택을 데리고 전용기에 올랐다.그리고 곧 S시로 출발했다....S시 공항.하지율이 S시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유소린은 직접 공항으로 마중을 나왔다.하지율은 고윤택을 병원까지 데려간 뒤 직접 고지후에게 맡기고 나서야 자리를 떠났다.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유소린이 운전하며 말했다.“지율아, 네가 예전에 살던 아파트는 내가 사람 불러서 청소 다 해 놨어. 너랑 화야 씨는 바
경호원들이 하지율을 둘러싸고 밀려드는 인파를 막아섰지만, 누군가 물건을 던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하지율은 무언가가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달걀이 얼굴에 닿기 직전, 한 실루엣이 불쑥 앞을 가로막았다.곧이어 하지율의 시야에 들어온 건, 화야의 손에 잡힌 달걀 몇 개였다.하지율이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화야가 다시 달걀을 던졌다.달걀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던 한 젊은 여성의 얼굴에 떨어졌다.“꺄악!”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순간 현장은 얼어붙었다.하지율은
전화는 금세 연결되었고, 건너편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누구십니까?”목소리는 맑고 서늘했다. 젊고 정상적인 그 목소리는 광기가 전혀 없어 보였다.어디가 비정상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그런데도 단보현은 어쩐지 이 목소리가 낯익게 들렸다. 하지만 어디서 들은 목소리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단보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주씨 가문 가주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단씨 가문의 현 가주 단보현입니다.”건너편 남자가 웃음 섞인 톤으로 받았다. “예전부터 성함은 많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전화를 주신 건 무
임채아는 문득 떠올렸다. 조금 전 주용화가 임채아더러 연정미를 찾아가 보라 했던 걸 말이다.그 말은 곧 주용화도 연정미의 귀걸이를 봤다는 뜻 아닐까?‘날 떠보는 건가? 아니면 무언가를 알아낸 건가?’하지만 설령 주용화가 봤다 한들, 그 귀걸이가 연정미가 잃어버린 바로 그 귀걸이라는 보장은 없다.세상에는 비슷한 물건이 너무 많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채아의 가슴 한구석이 너무 불안했다.연정미도... 바이올린을 켠다.혹시 똑같은 귀걸이를 두 쌍 갖고 있는 건 아닐까?임채아가 입을 열었다.“그 귀걸이요, 예전에 누가 낀
“아무리 권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해외에서 나댈 수는 없으니까요.”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임채아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다른 건 참을 수 있지만... 선생님을 공경하지 않는 건... 전 정말 용납이 안 됩니다.”그러면서 지난번 대회장에서 하지율을 마주쳤을 때, 하지율이 현성 대가에게 눈곱만큼도 예의를 보이지 않았던 일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곧이어 하지율에 대한 남은 호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레이나가 콧방귀를 뀌었다.“저런 인물이 무대에서 활개를 치다니, 음악가의 수치와 다름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