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그러자 주용화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사람을 몇 명 붙여서 감시해. 아무래도 그 사람이 좀 수상해.][조금이라도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보고해.]유민재는 주용화가 더 이상 단보현의 일을 묻지 않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당분간은 단보현의 목숨이 붙어 있을 듯했다....주용화는 평소 하지율을 대신해 외부의 복잡한 문제를 자주 해결해 줬지만 사업 협력이나 프로젝트와 관련된 업무에는 좀처럼 직접 나서지 않았고 대부분 하지율이 스스로 처리하게 했다.하지율이 아직 신입이었을 때는 모르는 게 생길 때마다 주용화에게 조언을 구했고 주용화는 방향과 의견을 제시하며 하지율이 직접 보완하도록 도와줬다.주용화는 무척 훌륭한 스승이었다.일부러 기를 꺾거나 비난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무조건 칭찬만 늘어놓지도 않았다.완전한 초보였던 하지율에게는 더없이 좋은 방식이었다.그런 주용화가 직접 기획안을 작성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사업이라는 뜻이었다.하지율은 연경 그룹 사무실에 앉아 눈앞의 서류를 꼼꼼히 살펴봤다.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소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지율아, 화야 씨가 준 기획안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완벽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거의 전부 들어가 있고 미처 떠올리지 못한 세부적인 부분까지 다 고려해 뒀어.”잠시 말을 멈췄던 하지율이 다시 말했다.“화야 씨는 정말 대단해. 내가 지금까지 일하면서 본 기획안 중 가장 완벽해.”유소린은 그 말을 듣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유소린이 아는 주용화는 원래 못 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유소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그런데 화야 씨가 왜 직접 만든 거야? 이 프로젝트가 특별히 중요한 거야?”하지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정말 중요해. 지금 심씨 가문에 문제가 생겼잖아. 화야 씨는 연정미와 심씨 가문의 혼인을 이용해 두 집안이 협력하게 만들고 연경 그룹이 어느 정도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심씨 가문도 연경 그룹에
그제야 하지율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과거 주용화가 임채아를 도왔던 건, 그저 임채아를 손안에서 가지고 놀기 위해서였다는 걸.하지율은 그 과정에 우연히 끼어든 존재에 불과했다.주용화는 애초에 하지율을 진심으로 상대할 생각조차 없었다.주용화가 정말로 마음먹고 나섰다면 하지율은 영원히 다시 일어설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연정미의 추문이 폭로된 일부터 심씨 가문의 사업 기밀이 유출된 일, 그리고 지금 주용화가 들고 있는 협력 제안서까지 모든 과정이 치밀하게 설계된 듯 빈틈없이 맞물려 있었다.‘그렇다면 심씨 가문의 기밀이 유출된 일도 화야 씨가 벌인 일이 아닐까?’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상황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주용화를 적으로 돌린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그 순간, 하지율의 머릿속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언젠가 나와 화야 씨가 서로 반대편에 서게 된다면... 화야 씨는 날 어떻게 대할까?’하지율은 그림처럼 정교한 주용화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그 순간, 등줄기를 타고 알 수 없는 한기가 스며들었다.주용화는 하지율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챈 듯 고요한 눈빛으로 얼굴을 살폈다.“지율 씨, 왜 그러세요?”하지율은 주용화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화야 씨, 앞으로 병을 치료하려면 단종건 회장님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단보현 씨를 먼저 풀어 주면 안 될까요?”주용화의 미소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지율 씨, 그 사람은 저한테 없어요.”“화야 씨, 단보현 씨가 지금 어떻게 됐는지 솔직히 말해 주실 수 있나요?”주용화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지율 씨가 저랑 함께 있으면서 자꾸 다른 남자 이름을 꺼내는 건 싫어요.”하지율은 주용화가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율이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주용화가 고개를 기울여 입술을 막았다.미처 꺼내지 못한 말까지 모두 삼켜 버리듯 깊이 입을 맞추며 하지율이 다른 남자를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았
“연씨 가문이 연정미에게 그렇게 많은 공을 들인 건, 결국 가문을 위해 자기 몫을 해내길 바랐기 때문 아닙니까? 그토록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하니 지율 씨를 위해 가치를 발휘할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죠.”그 순간, 하지율의 긴 속눈썹이 가볍게 떨렸고 눈빛도 미세하게 흔들렸다.연정미는 스캔들이 터진 뒤 모든 실권을 빼앗겼다.연태훈이 연정미에게 지분 3퍼센트를 남겨 주기는 했지만 연상진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실권을 쥘 수 없었다.오히려 연정미는 연상진보다 상황이 더 나빴다.연경 그룹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없었고 회의나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조차 금지됐다.하지만 어쨌든 연정미가 심수현과 결혼하면 연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혼인으로 맺어지는 셈이었다.그리고 지금 연씨 가문의 실권을 쥔 사람은 하지율이었다.결국 연정미의 결혼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도 하지율이었다.연정미가 꾸민 모든 계획은 고스란히 하지율을 위한 일이 되어 버렸다.자신의 야망을 이루기는커녕 정말로 가문 지간의 혼인을 위한 도구가 된 것이다.그때 주용화가 다시 말했다.“연씨 가문과 심씨 가문의 약혼 과정이 아무리 엉망이었어도 결혼이 유지되는 동안 두 집안은 이해관계를 함께할 수밖에 없어요. 지금 연경 그룹이 심씨 가문과 협력 관계를 맺고 두 집안을 단단히 엮어 두면 돼요. 심씨 가문을 연씨 가문의 배에 태우기만 하면 앞으로 방향을 정하는 건 연씨 가문이 될 겁니다. 심씨 가문은 우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고요. 예전의 심씨 가문이라면 남의 눈치를 보며 움직이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주용화는 미소를 띤 채 하지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연정미가 심수현의 아내로 있는 한, 두 집안의 협력도 쉽게 깨지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 심씨 가문이 한발 물러선 순간부터 앞으로의 협력은 우리가 주도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연정미도 그 자리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나서겠죠. 지금의 연정미는 심수현보다 더 나은 남자와 결혼하기 어려우니까요.”연재영이 의식을
하지율의 손이 순간 멈췄다.평소 남의 물건을 뒤져 본 적이 거의 없던 하지율의 눈빛에는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하지율은 금세 평정을 되찾았고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깨어났는데 화야 씨가 안 보여서 나와 봤어요. 화야 씨는 어디에 간 거예요?”주용화가 천천히 하지율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방금 유민재에게 전화가 와서요. 지율 씨를 깨울까 봐 밖에서 전화를 받고 왔습니다.”주용화의 시선이 하지율의 손에 들려 있던 서류로 향했다.주용화는 평소처럼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보다 지율 씨는... 이 늦은 시간에 안 자고 제 서재에 두고 간 물건이라도 있으셨나요?”하지율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주용화처럼 예리한 사람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하지율은 주용화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화야 씨, 죄송해요. 허락도 없이 서재를 뒤져선 안 됐는데...”주용화는 하지율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지율 씨는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우리 사이에 거리감이나 비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휴대폰도 서재도 얼마든지 보셔도 됩니다. 제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요.”주용화는 고개를 숙여 하지율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댔고 이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제 몸도 전부 지율 씨 겁니다. 그러니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죠.”주용화의 따뜻한 숨결이 볼을 스치자 하지율은 묘한 전율이 일었다.하지율은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주용화는 하지율의 뒤통수를 감싸 쥔 채 도망치지 못하게 붙들었다.그리고 망설임 없이 하지율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주용화의 키스는 깊고도 길었고 하지율은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숨이 막혔다.하지율이 밀어내려 하자 주용화는 하지율의 손까지 붙잡아 품 안에 단단히 가둬 버렸다.하지율이 온몸에 힘이 풀리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무렵이 되어서야 주용화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하지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용화의 품에 기댔다.주용화는 더 이상 아무 행동
하지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메일을 닫으려 했다.그런데 메일 내용을 보는 순간 손이 멈췄다.[주용화가 지율 씨가 단보현의 행방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이미 사람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손형원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는 놀랍지 않았다.애초에 하지율이 손형원의 사람들을 움직였기 때문이다.하지만 하지율은 주용화가 이렇게까지 빨리 눈치챘을 줄은 몰랐다.손형원의 사람들을 썼는데도 결국 주용화에게 들키고 말았다.하지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손형원에게 답장을 보냈다.[단보현은 지금 어디에 있죠?]손형원은 아직 자지 않은 듯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아직 더 찾아봐야 합니다.]이곳은 M국이니 손씨 가문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었다.정보력이 뛰어난 손형원조차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고 할 정도라면 주용화가 얼마나 치밀한 상대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하지율은 메일을 삭제하려던 순간, 린에게서 또 다른 메일이 도착했다.[새로 들어온 여성 비서 세 명은 주용화의 사람입니다.]그 말에 하지율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화야 씨의 사람이라고?’혹시라도 주변 사람들이 침투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 나현우와 강원희는 모두 유소린이 강씨 가문에서 직접 키운 인재들 가운데 선발한 사람들이었다.충성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고 돈으로 매수되거나 배신할 사람들도 아니었다.지금은 연경 그룹의 실권을 손에 넣었지만 하지율에게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여 줄 사람들을 새롭게 키워야 할 필요가 있었다.하지만 나현우와 강원희가 차례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서 결국 새로운 사람을 다시 키울 수밖에 없었다.그때 하지율이 크게 낙담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믿을 수 있고 능력까지 뛰어난 사람을 키워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런데 지금 손형원은 새로 들어온 여성 비서 세 명이 모두 주용화의 사람이라고 했다.하지율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혹시 손형원이 일부러 나와 화야 씨 사이를 흔들려는 건 아닐까?’지금까지 하지율은 주용화를 단 한 번도
유소린도 목소리를 낮췄다.“근데 말이야. 강원희 씨가 진짜 제법이더라. 꽤 중요한 단서를 찾아냈어.”그녀는 한층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거의 확실해. 단보현은 정말 화야 씨가 납치한 게 맞아. 다만 단보현이 어디에 감금돼 있는지는 아직 더 조사해야 해. 아쉬운 건... 강원희 씨가 급한 일 때문에 당분간 자리를 비우잖아. 새 사람이 들어와도 이런 중요한 일은 당분간 맡길 수 없잖아.”잠시 말을 멈춘 유소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지율아, 차라리 정기석 씨한테 부탁해서 조사해 보는 건 어때?”하지율은 고개를 저었다.“안 돼. 화야 씨는 너무 예리해. 기석 씨가 M국에서 어느 정도 기반은 있어도 화야 씨 눈을 피하기는 어려워. 게다가 이건 힘만 들고 득은 없는 일이야. 혹시 화야 씨가 기석 씨가 나 대신 단보현의 일을 조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기석 씨가 일부러 우리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유소린도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수긍했다.“듣고 보니 그렇네. 근데 지금 강원희 씨도 없고 우리 사람들도 움직일 수 없고 다른 사람 도움도 못 받으면... 단보현의 일은 그냥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거야?”하지율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눈빛을 깊게 가라앉혔다.“손형원 씨의 지분은 동결됐지만 그쪽 인력 일부는 내가 움직일 수 있어. 정보력만큼은 손씨 가문이 훨씬 뛰어나니까.”유소린이 놀란 듯 되물었다.“너... 손형원의 사람들을 쓰려고 그러는 거야?”그러자 하지율이 물었다.“왜?”유소린이 작게 말했다.“난 네가 평생 손형원의 세력에 손도 안 댈 줄 알았어.”하지율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앞으로도 단 어르신의 도움이 필요해. 화야 씨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먼저 단보현을 찾아야 해. 시간이 길어질수록 단보현이 죽을 가능성도 커져. 우리 쪽 사람이 당장은 움직일 수 없으니까 손형원의 사람들을 먼저 쓰는 수밖에 없어. 어차피 그때 이미 서류에 사인하고 받아들였잖아. 이제 와서 괜히 선 긋는 척할 필요는 없지.”
경호원들이 하지율을 둘러싸고 밀려드는 인파를 막아섰지만, 누군가 물건을 던질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하지율은 무언가가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달걀이 얼굴에 닿기 직전, 한 실루엣이 불쑥 앞을 가로막았다.곧이어 하지율의 시야에 들어온 건, 화야의 손에 잡힌 달걀 몇 개였다.하지율이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화야가 다시 달걀을 던졌다.달걀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던 한 젊은 여성의 얼굴에 떨어졌다.“꺄악!” 여성이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감쌌다.순간 현장은 얼어붙었다.하지율은
“아무리 권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해외에서 나댈 수는 없으니까요.”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임채아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다른 건 참을 수 있지만... 선생님을 공경하지 않는 건... 전 정말 용납이 안 됩니다.”그러면서 지난번 대회장에서 하지율을 마주쳤을 때, 하지율이 현성 대가에게 눈곱만큼도 예의를 보이지 않았던 일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곧이어 하지율에 대한 남은 호감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레이나가 콧방귀를 뀌었다.“저런 인물이 무대에서 활개를 치다니, 음악가의 수치와 다름없
그날 밤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연정미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몇 번이나 그대로 잠들 뻔했다.그러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문 쪽에서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꾸벅꾸벅 졸던 연정미는 순간 번쩍 정신이 들어서 곧바로 몸을 바로 세우고 문 쪽을 바라봤다.밖에서는 손형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보현 오빠, 어제 정미한테 계속 연락이 되지 않아서 무슨 일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되어서 보현 오빠한테까지 연락할 수밖에 없었어요.”단보현이 말했다.“내가 사람 시켜 조사해보니 연정미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곳은 여기였어.”손형서
손형서는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메뉴판을 주용화 앞으로 내밀고 저도 모르게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얘기했다.“화야 씨, 뭐 마실래요?”주용화는 메뉴판을 받지 않고 말했다.“연정미 씨 말로는 여기 라테가 대표 메뉴라던데요. 라테로 할게요.”손형서의 미소가 미세하게 굳었다.“정미가... 왜 그걸 화야 씨한테 말했죠?”이 카페는 연정미가 예전부터 자주 오던 곳이었다.주용화가 태연하게 답했다.“지난번 같이 식사했을 때 들었어요.”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그날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둘은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