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하지율은 몇 걸음 앞으로 나서서 주용화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리고 주용화를 바라보며 말했다.“화야 씨, 혹시 어디서 짐승이 짖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쌓인 호흡이 있었기에 주용화는 하지율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주용화는 연상진을 의미심장하게 한번 흘겨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어디 집에서 풀어놓은 강아지가 도망쳐 나온 모양이네요. 지율 씨가 말해 봐요. 목줄도 안 하고 함부로 돌아다니는 개가 얻어맞아 죽는다면 그건 자업자득 아닐까요?”그 말을 못 알아들을 리 없는 연상진은 주용화를 가리키며 버럭 소리쳤다.“누가 개라는 거예요. 방금 한 말 다시 해 봐요!”하지만 주용화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우리는 짐승 얘기한 건데요. 연상진 씨의 얘기는 한 적이 없는데요. 그런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세요? 설마 연상진 씨네 집의 개가 돌아다니다 여기저기 물어뜯다가 맞아 죽기라도 했어요?”원래도 성질이 급한 연상진은 주용화가 이렇게 대놓고 비웃자 더는 참지 못했다.연상진은 그대로 주용화 멱살을 움켜쥐었다.“이 새끼가...”바로 그 순간이었다.띵!엘리베이터에서 도착 알림음이 울렸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막 계약을 맺으러 올라오던 주주들과 회사 고위 임원들이 환한 얼굴로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그들은 연경 그룹에 행운을 안겨 줄 큰손 주용화를 맞이하려던 참이었다.그런데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광경에 모두가 그대로 얼어붙었다.지금 연상진은 주용화의 멱살을 잡고 당장이라도 주먹을 날릴 듯 서 있었다.사람들은 순간 혼이 나갈 뻔했다.연태훈 쪽 주주 몇 명은 놀라서 곧바로 연상진을 향해 소리쳤다.“연상진 씨,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당장 주용화 씨를 놓지 못 해요!”연상진은 하지율과 주용화가 번갈아 받아치며 몰아붙인 탓에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그래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눈앞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연상진은 멍하니 굳어 버렸다.연상진은 본능적으
하지율은 주용화를 바라봤다.그러자 주용화는 초대장 한 장을 꺼내 보였다.“이번 주말에 참석해야 하는 연회가 하나 있는데... 제 파트너로 와 주실 수 있을까요?”하지율은 거의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좋아요.”주용화는 옅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잠시 후에 비서가 계약서를 가져올 겁니다. 보시고 더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면 같이 수정해도 됩니다.”주씨 가문 쪽의 계약서는 하지율도 대강 훑어본 적이 있었다.그런데 손볼 만한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마치 처음부터 하지율에게 맞춰 만든 것처럼 완벽했다.아마 주용화가 직접 초안을 잡았을 가능성이 컸다.하지율은 말했다.“따로 요구할 건 없어요.”주용화는 곧장 전화를 걸자 얼마 지나지 않아 유민재가 계약서를 들고 들어왔다.유민재는 하지율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지율 씨, 오랜만이네요.”하지율도 웃으며 받아 주었다.“민재 씨, 정말 오랜만이에요.”그제야 하지율은 유민재가 예전부터 자신에게 유난히 예의를 갖추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유민재는 주용화의 친구가 아니라 주용화의 비서였다.유민재가 하지율에게 계약서를 내밀었고 하지율은 내용을 꼼꼼히 확인한 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문제없어요.”그러자 주용화가 입을 열었다.“그럼 연경 그룹 주주들과도 바로 조율하시죠. 오늘 안에 계약까지 마무리하면 됩니다.”“좋아요. 소린이한테 바로 준비시키겠어요.”어차피 이번 계약은 연경 그룹 쪽이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주용화가 시간을 끌지 않겠다고 나선 이상 연경 그룹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삼십 분쯤 지났을 때쯤에 유소린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지율아, 다 준비됐어. 지금 내려가면 바로 계약할 수 있어.”그러자 하지율과 주용화는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안에 서 있던 연상진이 눈에 들어왔다.연상진은 하지율을 싸늘하게 한번 훑어본 뒤 시선을 주용화에게로 옮겼다.연상진도 얼마 전에 주용화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연상
“그때 지율이 거의 매일 밤새우면서 일했어요. 살도 눈에 띄게 빠졌고요.”협업은 단순히 조건만 맞춘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상대 요구에 맞춰 기획안을 완성해야 했고 그쪽이 만족해야만 계약이 체결됐다.하지율의 기획안은 두 번이나 반려됐다.그때마다 유소린은 밤늦게까지 수정 작업을 이어가는 하지율을 보며 깊은 자책과 미안함을 느꼈다.업무적으로는 자신이 하지율만큼 해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결국 대부분을 하지율 혼자 감당하게 둘 수밖에 없었다.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나현우가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쏠렸다.나현우의 웃음이 그대로 굳었고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왜... 대표님이랑 소린 누나, 형님까지... 다들 왜 저렇게 쳐다보지?’그는 마른침을 삼켰다.“저기... 저는, 그... 서류 좀 드리러...”발걸음이 문턱에서 멈췄고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다.유소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화야 씨가 안 돌아올 줄 알고... 잘생긴 남자로 뽑은 건데. 아니, 아니지? 경호원이라서 뽑은 거야. 뭐, 어쨌든... 이왕이면 잘생긴 사람으로 뽑는 게 맞지. 눈 호강도 할 겸.”둘 사이에 다른 감정이 없다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었다.하지율이든 나현우든, 지금은 그런 데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평소라면 연애라도 해보라고 등을 떠밀었겠지만, 지금의 하지율에게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그런데 막상 이 상황이 되자, 유소린은 괜히 뜨끔했다.마치 친한 친구 소개해 주다 현장에서 들킨 사람처럼 묘하게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유소린은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나현우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이건 제가 받을게요. 이제 가보세요.”나현우는 더 묻지도 않았다. 고개만 꾸벅 숙이고는 그대로 문을 닫고 빠져나갔다.주용화는 소파에 앉은 채, 탁자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찻잔을 천천히
여기까지 말하던 유소린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그중에 D국 거래처 대표 한 분이 있었어요. 시간 약속을 어기는 걸 정말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연상준이 늦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죠. 결국 계약은 저희가 가져왔고요.”하지율은 주용화의 ‘수제자’였다.연상준이 못마땅하다고 해서 단순히 화를 풀기 위해 움직이지는 않았다.하지율이 늘 하던 말이 있었다.“감정만으로 움직이는 건 의미 없어. 한 번 손을 쓸 거면 반드시 남는 게 있어야 해. 괜히 건드렸다가 경계만 높여 놓으면 다음 기회를 잡기란 더 어려워져. 이득도 얻고 쌓였던 감정도 정리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해.”하지율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끝까지 기다릴 줄도 알았다.그리고 결국 기회를 잡았다.유소린의 설명을 들은 주용화가 물었다.“교통사고도 두 사람이 유도하신 겁니까?”그 말에 유소린이 곧바로 발끈했다.“연상준이 그렇게 말했죠? 정말 속 좁은 사람이에요. 계약 뺏기고 나서는 온갖 말로 험담이나 하고 다니고요.”숨을 고른 뒤, 단호하게 말했다.“저희는 그런 짓 안 했습니다. 정말이에요. 만약 그랬다면 연씨 가문에서 가만있었을 리가 없죠. 그걸 빌미로 바로 문제 삼았을 겁니다. 지율이도 그런 약점을 스스로 만들 정도로 멍청하지 않고요.”하지율 역시 선을 분명히 긋고 있었다.아무리 경쟁이라도, 사람의 안전을 건드리는 일만큼은 하지 않았다.그 선을 넘는 순간 연씨 가문은 물론, 연경 그룹 내부에서도 명분을 잃게 될 테니까.주용화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되물었다.“정확히 어떻게 된 일입니까?”유소린이 곧바로 답했다.“사고 자체는 있었어요. 다만 저희가 낸 게 아니라, 연상준이 앞차를 들이받은 겁니다.”그녀의 눈빛에 다시 장난기가 스쳤다.“추돌 사고는 생각보다 간단하거든요. 앞차가 갑자기 급정거만 해도 피하기 어렵잖아요.”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저희는 그다음 상황만 만들었어요. 사고 나자마자 미리 준비해 둔 사람들을 보내서
그러나 그것은 주주들이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다.인맥과 처세, 그리고 운까지도 결국은 실력의 일부였다.애초에 주주들이 연정미의 연경 그룹 합류를 지지했던 것도 손화 그룹과 단아 그룹이 내놓은 조건 덕분에 수익을 얻었기 때문이었다.지금의 하지율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연상진을 밀어냈고 단아 그룹의 일부 자원까지 확보했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 역시 분명했다.그리고 단아 그룹이 내놓았던 몇 건의 조건도 더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연태훈 측 주주들 중 일부는 이미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방향은 서서히 하지율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물론 이런 변화가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연태훈은 상황을 지켜볼 여유가 있었지만 연재영은 그렇지 않았다.하지율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주용화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연재영은 단순히 후계자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실력도 분명한 사람이죠. 손형원이나 단보현처럼 만만한 상대는 아닙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연경 그룹 내부에서 쌓아온 신뢰도도 큽니다. 단기간에 그 자리를 흔드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연태훈 회장의 지원에, 연상진, 연상준, 연정미까지 힘을 보태고 있고요.”그리고 낮게 덧붙였다.“지율 씨, 앞으로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겁니다.”주용화의 단정한 눈매를 마주한 순간 하지율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걱정하고 있었다.점심 식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협력 건을 더 논의하기 위해 함께 연경 그룹으로 돌아갔다.같은 시각, 유소린은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하지율의 사무실에서 하지율을 기다리던 중이었다.문이 열리고 주용화가 들어서자, 유소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화야 씨, 언제 돌아오셨어요?”주용화는 그동안 유소린에게 귀국 소식을 따로 전한 적이 없었다.그러니 유소린이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주용화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오늘 오전에요.
주용화의 말을 듣고 나서 하지율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나현우의 외모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매일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막상 떠올리려 하면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는 애매한 사이였다.주용화의 말을 계기로 하지율은 뒤늦게 생각을 정리했다.생각해 보니 나현우는 분명 잘생긴 편이었다.유소린이 경호원을 구할 때 잘생긴 사람을 구할 거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원래도 외모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이어서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하지율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괜찮은 편이죠.”주용화는 길게 드리운 속눈썹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괜찮은 편이라고요?”하지율은 왜 계속 나현우의 외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마음에 안 드세요?”주용화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짧은 침묵이 흐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요즘, 잘 지내셨어요?”하지율은 컵을 쥔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네. 잘 지내고 있어요. 일도... 전반적으로 순조롭고요.”하지율은 무심코 컵을 가볍게 흔들었다.고맙다는 말을 꺼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지금 이 순간의 긴장은 단순한 어색함 때문이 아니었다.이유를 설명할 수 없이 묘하게 심장이 조여 오는 느낌이었다.마치 중요한 결정을 앞둔 순간처럼 긴장이 조여왔다.주용화가 말했다.“주씨 가문 쪽 일은 거의 정리됐습니다. 당분간은 M국에 머물면서 연경 그룹과의 협업도 마무리할 예정입니다.”하지율은 그를 바라봤다.“연경 그룹과... 정말 협업하실 생각이세요?”하지율의 표정을 읽은 주용화가 입을 열었다.“제이원 그룹은 그동안 사업 구조가 지나치게 단조로웠습니다. 내부에 머무르기만 했죠. 이제는 외부로 확장할 때입니다.”그는 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요즘 주씨 가문에 대한 평판도 좋지 않습니다. 협력 제안을 해도 선뜻 나서는 곳이 많지 않죠. 이런 상황에서는 외부와 손을 잡기 위해 초반부터 확실한 이익을 제시해야 합니다.”주용화의
남하연은 사방에서 연정미를 칭찬하는 사람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이 정도면 일부러 눈에 띄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옆에 있던 심다희가 웃으며 말했다.“그건 아니지. 연정미가 진짜로 작정하면 완전히 판을 쓸어버릴 거야. 이 바닥 최고 여신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야.”문지아가 고개를 기울였다.“혹시 작정한 연정미를 본 적 있어?”심다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몇 년 전 얘기야. 그때도 꽤 유명한 재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이 서현아였어. 원래는 소꿉친구랑 약혼까지 약속해 둔 사이였지. 둘 사이는
그러나 하지율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연상진이 바닥에 무릎 꿇은 채 고통에 신음을 흘리는데도 그녀에게서는 당황이나 부축하려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연상준은 평소와 달리 동생을 챙길 여유조차 잊은 듯 멍하니 하지율을 바라보았다. 이성적이고 침착한 그조차 지금의 하지율이 낯설다고 느꼈다.‘이게 정말 하지율이 맞나? 예전의 지율이는 이렇게 차가운 사람이 아니었는데...’연상준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지만, 손형서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주용화를 곧장 겨냥했다.‘용화 씨가 왜 하지율 편에 서는 거지? 이 상
고지후의 말은 두 사람의 가식적인 가면을 벗겨버렸다. 연태훈과 연재영의 표정은 아주 어두워졌다.연태훈은 하지율의 손을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지율아, 네 손... 앞으로 바이올린을 못 드는 거냐?”하지율은 붕대가 감긴 자기 손을 내려다보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네.”연태훈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손형원, 이 자식이...”연태훈은 하지율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바이올린 면에서도 하지율에게 높은 요구를 한 적이 없다.하지만 하지율은 바이올린 쪽으로 특출난 재능을 보여주었다.연정미보다 더욱 뛰
하지율과 유소린은 오히려 가장 늦게 그 소식을 들었다.J시는 관광 도시라, 둘은 경기가 끝난 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음을 식히고 있었다.그러다가 연재영에게서 전화가 와서야 하지율은 연정미의 소식을 알았다.전화기 너머 들리는 연재영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아버지가 당장 들어오래.”하지율은 연재영의 말투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챘다. “무슨 일 생겼나요?”연재영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더니 비웃음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몰라서 물어?”하지율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비꼬는 듯한 이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