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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틈

Author: 데이지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0 11:07:09

인터뷰 기사가 올라온 다음 날 아침,

도시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깨어난 느낌이었다.

이수는 미용실 문을 열며 잠시 골목을 바라봤다.

밤사이 비가 조금 내린 것 같았다.

아스팔트 위에 얇게 남아 있는 물기가 햇빛을 받아 흐릿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공기도 평소보다 차분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미용실 안으로 들어오자 익숙한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드라이어의 열기, 샴푸 향, 오래된 나무 선반의 냄새가 섞여 있는 공간이었다.

이수는 전등을 켜고 커튼을 절반쯤 걷었다.

거울에 빛이 닿자 실내가 천천히 밝아졌다.

그녀는 가위를 정리하며 잠시 생각했다.

어젯밤 이후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흐름이 조금 바뀌었다. 사진이 먼저 던져지고,

그 다음에 인터뷰가 나왔다. 두 장면이 겹치면서 이야기가 하나의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게 된 상태였다.

문 위의 종이 가볍게 울렸다.

하빈이었다.

그는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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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륜해드립니다.   244. 틈

    인터뷰 기사가 올라온 다음 날 아침,도시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깨어난 느낌이었다.이수는 미용실 문을 열며 잠시 골목을 바라봤다. 밤사이 비가 조금 내린 것 같았다. 아스팔트 위에 얇게 남아 있는 물기가 햇빛을 받아 흐릿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공기도 평소보다 차분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미용실 안으로 들어오자 익숙한 냄새가 먼저 느껴졌다. 드라이어의 열기, 샴푸 향, 오래된 나무 선반의 냄새가 섞여 있는 공간이었다. 이수는 전등을 켜고 커튼을 절반쯤 걷었다. 거울에 빛이 닿자 실내가 천천히 밝아졌다.그녀는 가위를 정리하며 잠시 생각했다.어젯밤 이후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흐름이 조금 바뀌었다. 사진이 먼저 던져지고, 그 다음에 인터뷰가 나왔다. 두 장면이 겹치면서 이야기가 하나의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게 된 상태였다.문 위의 종이 가볍게 울렸다.하빈이었다.그는 손에 커피 두 잔을 들고 있었다.“아침 먹었어?”이수가 고개를 저었다.“아직.”하빈은 컵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그래도 커피는 마셔.”이수는 컵을 받아 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에 전해졌다.잠시 후 하빈이 말했다.“기사 반응 계속 올라오고 있어.”이수는 컵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어때.”하빈은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어제보다 균형 잡힌 느낌이야.”인터뷰가 올라온 이후 댓글의 흐름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사진만 봤을 때는 단정적으로 말하던 사람들도 인터뷰 내용을 읽은 뒤에는판단을 유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었다.“완전히 바뀐 건 아니야.”하빈이 덧붙였다.“근데 한쪽으로 쏠리진 않네.”이수는 화면을 잠깐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됐어.”그녀의 대답은 짧았다.하빈이 물었다.“그게 목표였어?”이수는 잠시 생각했다.“아니.”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그냥… 내가 말해야 할 걸 말한 거야.”그녀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이야기는 사람들이 만드는 거니까.”

  • 불륜해드립니다.   243. 사진 한 장에 담기지 않은 진실과 기사의 파장

    인터뷰가 기사로 올라온 것은 그날 밤이었다.늦은 시간이라 거리의 소음은 대부분 가라앉아 있었지만, 휴대폰 화면 안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깨어 있는 듯했다. 기사 알림이 몇 번 연달아 울렸고, 같은 내용을 다루는 다른 매체들도 조금씩 기사를 올리고 있었다.이수는 소파에 앉아 화면을 천천히 넘기고 있었다.제목은 크게 자극적이지 않았다.『사진 당사자 인터뷰… “보내 주는 것도 사랑이었다.”』본문에는 인터뷰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병원에서 들었던 설명, 그날의 상황, 그리고 마지막에 했던 말까지 비교적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었다.하빈은 주방 쪽에서 물을 한 잔 들고 나왔다.“올라왔어?”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녀는 휴대폰을 잠깐 들어 보였다.“생각보다 담담하게 썼네.”하빈이 화면을 들여다봤다.기사는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옮긴 형태에 가까웠다. 사진도 함께 올라와 있었지만, 기사 자체의 분위기는 공격적이지 않았다.잠시 후 하빈이 말했다.“댓글 봤어?”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아직.”하빈은 화면을 아래로 내려 보았다.댓글 수는 이미 몇 천 개를 넘어 있었다. 다양한 의견이 올라와 있었지만, 흐름은 사진이 공개된 직후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누군가는 여전히 비난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인터뷰 내용을 읽고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하빈이 말했다.“완전히 한쪽으로 쏠리진 않네.”이수는 잠시 화면을 바라봤다.“그럴 거야.”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다.사진이 던져졌을 때 사람들은 그 장면 하나에 집중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다른 정보가 나오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사진 하나로는…”이수가 말을 이어 갔다.“…모든 걸 설명할 수 없으니까.”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소파 옆에 앉으며 말했다.“민준이 예상한 흐름은 아닐 수도 있겠다.”이수는 잠시 생각했다.“그래도 아직 몰라.”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았

  • 불륜해드립니다.   242. 말의 방향

    인터뷰는 예상보다 오래 이어졌다.기자는 처음 질문을 던진 뒤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이수가 말을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안에서 다시 하나의 질문을 꺼내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대화의 흐름은 급하게 이어지지 않았고, 카페 안의 시간도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이수는 몇 번이나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 갔다.그 멈춤은 말을 고르는 시간이라기보다 기억을 정리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몇 년 전의 일을 설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실을 말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기자가 물었다.“그날 결정이 내려진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이수는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거리에는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휴대폰을 보며 걷는 사람들. 평범한 하루의 풍경이었다.그녀는 다시 시선을 기자에게 돌렸다.“병원에서는 이미 여러 번 설명을 했습니다.”이수가 말했다.“상태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고.”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차분했다.“그때는… 선택이라는 말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기자는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선택이 아니라면요.”이수는 잠시 생각했다.“확인에 가까웠어요.”기자는 눈을 조금 좁혔다.“어떤 확인이었습니까.”이수는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이미 끝난 시간을 인정하는 일.”그녀의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장면이 담겨 있었다.하빈은 옆에서 그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는 이수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있는지, 어떤 기억을 꺼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몇 년 동안 거의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였다.잠시 후 기자가 질문을 이어 갔다.“사진이 공개된 이후 많은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그는 잠깐 화면을 확인하듯 노트북을 내려다봤다.“누군가는 보호자의 결정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기자는 다시 이수를 바라봤다.“그런 반응들을 어떻게 보

  • 불륜해드립니다.   241. 후회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결정

    오후 햇빛이 조금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었다.미용실 안은 한동안 조용했다. 아침부터 이어지던 긴장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대신 그 자리에 다른 종류의 집중이 들어와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결정한 사람의 침착함에 가까웠다.이수는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한 번 묶었다가 다시 풀었다. 특별히 꾸미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인터뷰를 위해 외모를 바꾸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결국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정리하는 쪽을 택했다.하빈은 창가 근처 의자에 앉아 있었다.노트북 화면에는 기자와의 메시지 창이 떠 있었고, 그 아래에는 몇 개의 기사 링크가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그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수에게 말했다.“장소 정했대.”이수가 고개를 들었다.“어디.”“근처 카페.”하빈이 메시지를 보여주었다.이수는 화면을 잠깐 확인했다. 미용실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거리였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였고, 창이 넓은 카페였다.“괜찮네.”그녀가 말했다.잠시 후 하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질문… 준비 안 해도 돼?”이수는 잠시 생각했다.“어차피 예상 가능하잖아.”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왜 그날 그런 결정을 했는지.”“사진 속 상황이 뭔지.”“후회하는지.”이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민준.”그 이름이 조용히 공기 속에 떨어졌다.이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사람 얘기도 나오겠지.”그녀는 그 사실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민준이라는 이름은 이미 사건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하빈이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이수.”“응.”“말 다 할 거야?”이수는 그 질문을 바로 이해했다.그날 병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 뒤에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그 모든 것을 어디까지 말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잠시 후 그녀가 말했다.“다 말할 필요는 없어.”하빈이 바

  • 불륜해드립니다.   240. 방향이 바뀌는 순간

    사진이 공개된 다음 날 아침이었다.도시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수의 휴대폰 화면 안에서는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밤새 기사 조회 수가 몇 배나 늘어 있었고, 같은 사진을 인용한 다른 기사들도 계속 올라와 있었다. 방송사 온라인 채널에서도 짧은 클립을 만들어 사건을 설명하고 있었고, 댓글의 흐름은 계속 바뀌고 있었다.이수는 화면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생각보다 빠르네.”하빈이 말했다.그는 노트북을 켜 두고 여러 기사 창을 동시에 띄워 놓은 상태였다. 몇몇 기사들은 사진의 출처를 추적하려 했고, 어떤 기사들은 병원의 연명치료 결정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사진 하나로는 방향이 안 정해져.”하빈이 말했다.“사람들이 아직 판단 못 하고 있어.”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이 맞았다. 댓글을 보면 분명히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보호자의 선택을 이해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사진만 봐도 상황이 명확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로 다른 해석이 부딪히면서 이야기는 계속 확장되고 있었다.이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민준이 원하는 건 이거야.”그녀가 말했다.하빈이 시선을 들었다.“뭐.”“사람들이 계속 얘기하게 만드는 것.”이수의 목소리는 차분했다.사진이 공개된 순간 사건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민준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사진을 확대해 보고, 누군가는 병원 구조를 분석하고, 누군가는 과거 사건을 찾아보며 새로운 추측을 만들 것이다.하빈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근데 하나 이상한 게 있어.”“뭔데.”“사진 출처.”이수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하빈은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기사 하단에는 사진 출처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제보자 제공』“민준 이름은 없어.”하빈이 말했다.이수는 그 문장을 잠시 바라봤다.“당연하지.”그녀는 천천히 말했다.“그 사람은 직접 나오는 타입 아니야.”민준은 항상 한 발 뒤에서 움직였다. 다

  • 불륜해드립니다.   239. 복도가 아닌 병실 안에서 찍힌 각도

    사진이 올라온 뒤 몇 시간 동안 세상은 생각보다 조용했다.폭발이라는 단어는 대개 순간적인 소리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큰 사건이 세상에 던져질 때 처음 나타나는 것은 오히려 잠깐의 정적이었다.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판단하기 전까지 생기는 짧은 공백 같은 시간이었다.이수는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기사 제목은 예상했던 것보다 단순했다.『병실 사진 공개… 보호자 결정 논란 확대』자극적인 표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지목하는 문장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사진이 기사 한가운데 크게 올라와 있었다.병실.침대 옆에 서 있는 여자.그리고 산소호흡기 장치.사진 속의 장면은 너무 선명했다. 몇 년 전의 순간이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하빈이 조용히 물었다.“괜찮아?”이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사진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이거…”하빈이 물었다.“왜.”“복도 사진 아니야.”이수가 말했다.그녀는 화면을 확대했다.“병실 안이야.”하빈이 휴대폰을 가까이 들여다봤다.그 말이 맞았다. 사진은 복도에서 몰래 찍은 장면이 아니었다. 병실 안에서 찍은 각도였다. 침대와 장비가 바로 앞에 있었고, 카메라의 위치도 복도 쪽이 아니라 병실 내부에 가까웠다.잠시 정적이 흘렀다.하빈이 천천히 말했다.“그럼…”“병실 안에 누군가 있었던 거야.”이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했다.그녀는 사진을 다시 바라봤다.그날 병실 안에는 몇 사람이 있었다. 담당 의사, 간호사, 그리고 잠깐 들어왔다 나간 보호자 몇 명. 그러나 이 장면을 이런 각도에서 찍을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민준.”하빈이 말했다.이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녀의 눈이 사진 위를 천천히 훑었다.“민준이 직접 찍은 거 아닐 수도 있어.”하빈이 물었다.“왜.”“이 각도…”이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 불륜해드립니다.   2. 흔들리는 선

    남자들은 너무 완벽한 것 앞에서 경계한다.완벽은 함정의 냄새가 난다.대신 ‘조금 과한 듯한 자연스러움’이 필요했다.그래야 자기 욕망을 자기 탓으로 돌릴 수 있다.이수는 파운데이션을 얇게 올렸다.눈매를 길게 뺐다.립은 선명하지만 젖지 않게. 향수는 거의 쓰지 않았다.향은 기억을 남기고, 기억은 나중에 문제가 된다.옷은 고민하지 않았다.고민이 길어지면 마음이 늦어진다.이수는 얇은 니트와 코트를 걸쳤다.너무 화려하지 않은 색.하지만 얼굴은 눈에 띄게.거울 앞에서 한 번 더 확인했다.표정은 비워두었다.웃는 얼굴

  • 불륜해드립니다.   1. 제의

    비는 천천히 내리고 있었다.급하지도, 망설이지도 않는 속도였다.우산을 쓴 사람보다 쓰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어차피 젖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얼굴들 같았다.구급차가 교차로를 가르며 지나갔다.사이렌 소리는 빗소리에 섞여 둔해졌고,사람들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어떤 소음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오후였다.이수는 미용실 안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정확히 말하면, 들었다기보다는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진동을 느꼈다.장미 미용실.간판의 ‘장미’는 오래전에 색이 바랬다.붉었던 글자는 연분홍

  • 불륜해드립니다.   4. 닿은 손등

    비는 밤새 그쳤다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아침이 되자 길 위엔 물기가 남았고, 공기는 묘하게 가벼웠다.무언가 씻겨 내려간 뒤의 냄새였다.이수는 카페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어제와 같은 말이었다.하지만 어제와는 조금 다른 눈빛이었다.말보다 먼저 인식하는 방식.그건 습관이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다.“네.”이수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집어 들었다.손이 앞치마 끈을 묶는 동안,진상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손을 따라갔다.손목, 손가락, 매듭.이수는 그 시

  • 불륜해드립니다.   3. 틈

    카페의 아침은 생각보다 빨랐다.문을 열기도 전에 커피 향이 먼저 퍼졌고,기계가 예열되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진상은 그 소리를 들으며 셔터를 올렸다.매일 같은 시간, 같은 순서였고 그래서 더 생각하지 않는 동작들이었다.이수는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문을 열자 종이 울렸고, 그 소리에 진상이 고개를 들었다.“일찍 왔네요.”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계는 보지 않았다.시간을 확인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네.”이수는 짧게 답했다.목소리는 낮았고, 불필요한 온도는 없었다.앞치마를 두르는 동안 그녀는 카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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