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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화

Author: 서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2 00:52:36

“아니, 없어.”

사라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서희가 자신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다리를 한번 내려다봤다. 정말 종아리가 조금 뻐근했던 것뿐이었다.

“그냥 오래 서 있어서 그런가 봐.”

“그래?”

“응.”

사라는 소파에 앉은 채 발목을 몇 번 까딱였다.

“이제 괜찮아.”

강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라의 다리로 내려갔다.

“아프면 말해.”

“알았어.”

짧은 대화였다.

그런데 서희에게는 또 그게 걸렸다.

조금 전에도 그랬다.

사라가 다리 아프다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강수는 바로 알아차렸고, 앉혔고, 종아리까지 살폈다. 지금도 괜찮다는 사라의 말보다 직접 상태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

“근데 당신 왜 그렇게 예민해?”

강수의 시선이 서희에게 향했다.

“뭐가.”

“사라한테.”

사라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서희는 강수를 똑바로 바라봤다.

“다리 좀 아프다는데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그러잖아.”

“큰일이라고 안 했어.”

“그럼 왜 그래?”

강수의 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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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온한 정착   207화

    사라는 휴대전화 화면을 잠갔다. 준호가 자신보다 먼저 알았느냐는 질문까지는 이해했다. 서희 입장에서는 자신만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충격일 수 있었다. 하지만 준호가 언제 알았는지,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왜 말하지 않았는지까지 이야기가 번지는 건 달랐다. 준호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라가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서희야.” 서희가 바라봤다. “더 궁금한 거 있으면 앉아서 우리들 이야기해.” “……뭐?” “자꾸 다른 사람 끼지 말고.” 사라는 맞은편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 서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너 지금 나한테 앉으라고 하는 거야?” “응.” “여기서?” 사라는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계속 서 있을 거야?” 너무 사라다운 대답이라 서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까 복도에서도 계속 서 있었고 여기 와서도 계속 서 있잖아. 나도 다리 아프고.” 강수가 사라를 내려다봤다. 사라가 바로 덧붙였다. “이제 괜찮아.” 강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라는 다시 서희를 봤다. “너 궁금한 거 많잖아.” “당연하지.” “그럼 물어봐.” 서희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사라는 피하지 않았다. 아까도 그랬다. 알고 만났다고 했고, 강수를 좋아하는 것까지 미안하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제는 아예 앉아서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하고 있었다. “다 대답할 거야?” “내가 대답하고 싶은 건.” 서희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럼 싫은 건 또 안 하고?” “응.” “민사라.” “왜.” “너 진짜 그대로구나.” 그 말에 사라가 잠시 멈췄다. 서희가 기억하는 민사라는 원래 이랬다. 어디서든 자기 마음대로였고, 하기 싫은 건 싫다고 했고,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좋았던 적도 많았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걸 너무 쉽게 하는 친구라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성격이 견딜 수 없이 미웠다. 사라는 한동안 서희를 바라보다 말했다. “응

  • 불온한 정착   206화

    “응. 오래 알았어.”사라는 숨기지 않았다.서희의 눈이 흔들렸다.“얼마나 오래?”사라는 잠깐 생각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날짜까지 헤아릴 필요는 없었다. 준호는 강수와 자신의 관계를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꽤 됐어.”“그런데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어?”사라가 눈을 깜빡였다.질문의 방향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꼈다.“준호가 왜 너한테 말해?”“뭐?”“준호는 내 친구지, 네 친구는 아니잖아.”서희의 표정이 그대로 멈췄다.사라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준호가 내 연애를 알고 있었으니까 알고 있었던 거지. 걔가 너한테 그걸 왜 말해.”“내 연애?”서희가 헛웃음을 흘렸다.“너 지금 이걸 그냥 네 연애라고 하는 거야?”사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서희에게는 그렇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강수와의 관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른 말을 찾을 수도 없었다.“나한테는 연애 맞아.”“사라야.”“그게 잘했다는 뜻 아니야.”사라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너한테 잘못한 거랑 오빠랑 내가 만나는 건 같은 말이 아니잖아.”서희는 기가 막힌 듯 사라를 바라봤다.“어떻게 그게 다른 말이야?”“다르지.”“내 남편을 만나면서?”“응.”사라가 짧게 대답했다.강수는 소파 옆에 선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사라가 직접 대답하는 동안에는 끼어들지 않았다.사라는 말을 조금 고르다가 덧붙였다.“내가 너한테 미안한 건 너 몰래 오빠 만난 거고, 네가 상처받은 거야. 그건 미안해.”서희의 입술이 굳었다.“근데 내가 오빠 좋아하는 것까지 미안하다고는 못 하겠어.”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멈췄다.“준호가 그걸 안다고 해서 걔가 너한테 가서 말해야 된다고도 생각 안 하고.”“왜?”“내 친구니까.”사라는 너무 단순하게 대답했다.“내가 말한 걸 걔가 다른 사람한테 왜 말해.”서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논리만 놓고 보면 사라다운 말이었다.준호는 사라의 친구였고, 사라가 자신에게

  • 불온한 정착   205화

    사라는 잠시 서희를 바라봤다.술을 마시느냐는 질문 하나에 대답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안 마신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이유를 물으면 요즘 그냥 안 당긴다고 둘러댈 수도 있었다.그런데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다.서희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하다고 했다. 강수를 알면서 만났다는 것도 인정했다.그렇다고 자신의 생활 전부를 하나씩 꺼내놓고 대답해야 하는 건 아니었다.사라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그걸 내가 왜 말해야 되는데.”서희의 표정이 멎었다.“뭐?”“내가 요즘 술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사라는 소파에 기대 있던 등을 조금 바로 세웠다.“그걸 왜 말해야 돼?”“사라야.”“우리 얘기랑 상관없잖아.”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싸우자는 투도 아니었고, 일부러 숨기려고 날을 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사라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얼굴이었다.서희는 잠시 말을 잃었다.“난 그냥 물어본 거야.”“그러니까. 난 대답하기 싫어.”사라는 거기서 말을 끝냈다.강수의 시선이 사라에게 머물렀다가 천천히 서희에게 돌아갔다. 더 묻지 말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사라가 스스로 선을 그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서희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또 저랬다.강수는 사라가 직접 말할 때는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사라가 싫다고 하면 그다음부터 누구도 그 선을 넘지 못하게 할 사람처럼 옆에 있었다.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사라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사라가 화면을 확인했다.“준호네.”서희도 아는 이름이었다.사라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사라는 별다른 생각 없이 전화를 받았다.“어, 왜.”- 야, 민사라. 너 언제 시간 돼?준호의 목소리가 조용한 거실에 그대로 흘러나왔다.“갑자기?”- 갑자기가 아니라 나 청첩장 줘야 되잖아. 날짜 잡자고.사라의 얼굴이 금세 풀렸다.“아, 맞다. 너 진짜 결혼하지.”- 진짜 결혼하지는 뭐냐. 청첩장 나온 지가 언젠데.“신기해서 그래.”- 뭐가 신기해.“네가 한 여자랑 평생 살

  • 불온한 정착   204화

    “아니, 없어.”사라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서희가 자신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다리를 한번 내려다봤다. 정말 종아리가 조금 뻐근했던 것뿐이었다.“그냥 오래 서 있어서 그런가 봐.”“그래?”“응.”사라는 소파에 앉은 채 발목을 몇 번 까딱였다.“이제 괜찮아.”강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라의 다리로 내려갔다.“아프면 말해.”“알았어.”짧은 대화였다.그런데 서희에게는 또 그게 걸렸다.조금 전에도 그랬다.사라가 다리 아프다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강수는 바로 알아차렸고, 앉혔고, 종아리까지 살폈다. 지금도 괜찮다는 사라의 말보다 직접 상태를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보고 있었다.“근데 당신 왜 그렇게 예민해?”강수의 시선이 서희에게 향했다.“뭐가.”“사라한테.”사라가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서희는 강수를 똑바로 바라봤다.“다리 좀 아프다는데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그러잖아.”“큰일이라고 안 했어.”“그럼 왜 그래?”강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아프다잖아.”“그게 다야?”“어.”서희는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사라가 끼어들었다.“서희야, 나 진짜 어디 아픈 거 없어.”“알았어.”서희의 대답은 사라에게 향했지만 시선은 여전히 강수에게 있었다.이상했다.오늘 처음 관계를 알게 돼서 모든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는 건지도 몰랐다. 자신이 몰랐던 일 년을 한꺼번에 보고 있어서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의미를 찾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그래도 강수는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원래도 이렇게 챙겼어?”이번 질문은 사라에게 향했다.사라가 눈을 깜빡였다.“뭘?”“너.”“오빠가?”“응.”사라는 강수를 한번 올려다봤다.“그런가?”정작 본인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사라는 피식 웃었다.“왜. 나 잘 챙겨?”“몰라?”“그냥 원래 그런 줄 알았지.”그 말에 서희의 표정이 굳었다.원래 그런 줄 알았다.사라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서희가 모르는 사이 쌓인 수많은

  • 불온한 정착   203화

    한동안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서희는 눈물을 닦은 채 강수를 바라봤고, 강수 역시 더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이혼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협박인지, 정말 끝까지 붙잡겠다는 뜻인지 지금 당장 따질 생각도 없어 보였다.사라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무거운 공기 속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처음에는 괜찮았다.그런데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었다가 반대쪽으로 옮기는 일이 반복됐다. 현관에서부터 계속 서 있었고, 긴장까지 겹치니 종아리가 뻐근했다.사라는 발목을 한번 돌렸다.그리고 다시 섰다.잠깐 뒤 또 자세를 바꿨다.강수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사라가 한쪽 발을 살짝 들고 있었다.“왜.”사라는 강수를 올려다봤다.“나 다리 아파.”서희의 눈이 순간 커졌다.이 상황에?강수는 아무 말 없이 사라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뻗었다.“앉아.”“응.”너무 자연스러웠다.사라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서려 했다.서희가 기가 막힌 얼굴로 두 사람을 봤다.“지금 나랑 얘기하는 중이잖아.”사라의 걸음이 멈췄다.“알아.”“근데 다리 아프다고?”사라는 잠깐 서희를 바라봤다.“아픈데 어떡해.”정말 그뿐이라는 얼굴이었다.서희의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강수는 사라의 팔을 잡아 소파 쪽으로 데려갔다.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였지만 사라가 소파에 앉는 것까지 보고서야 손을 놓았다.“어디.”“종아리.”강수가 사라 앞에 섰다.“쥐 났어?”“그건 아니고 그냥 뻐근해.”“계속 서 있어서 그래.”“그런가 봐.”사라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다리를 쭉 뻗었다.강수는 잠깐 그 다리를 내려다봤다.“가만있어.”“응.”그리고 몸을 숙였다.사라의 종아리를 손으로 감싸 천천히 눌러보는 순간, 서희의 얼굴에서 마지막 남은 어이없는 웃음마저 사라졌다.사라는 그제야 서희를 의식하고 강수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됐어.”“아프다며.”“지금은 좀 그래.”강수가 고개를 들었다.사라가 눈으로 서희 쪽을 가리켰다.그제야 강수도 손을 뗐다.

  • 불온한 정착   202화

    강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서희가 무엇을 묻는지는 정확히 알았다.아내와 불륜 상대.결혼과 연애.과거와 현재.그렇게 단순하게 나누어 묻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서희는 자신에게 사라가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강수는 잠깐 사라를 봤다.조금 전까지 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한참 말을 고르던 여자는 이제 입을 다문 채 서 있었다. 강수와 눈이 마주쳐도 대신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그게 사라였다.강수에게 무엇을 증명하라고 한 적이 없었다.“달라.”짧은 대답이었다.서희의 눈이 흔들렸다.“뭐가.”“다 달라.”“어떻게 다른데?”강수는 시선을 돌려 서희를 봤다.“너 사랑했어.”서희의 입술이 굳었다.이미 들었던 말이었다.그런데 이 집에서 다시 듣자 전혀 다른 말처럼 느껴졌다.“네가 좋았고, 결혼하고 싶었어.”강수는 그 시간을 부정하지 않았다.서희와 함께했던 사 년도, 결혼했던 이유도 거짓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그때의 자신은 정말 서희를 사랑했다.“그럼 지금은?”강수의 침묵이 짧게 내려앉았다.서희가 물었다.“나는 과거고 사라는 지금이야?”강수의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그렇게 자를 일 아니야.”“그럼 어떻게 잘라?”“안 잘라.”“오빠.”“있었던 건 있었던 거야.”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너랑 있던 시간 없어지는 거 아니야.”서희의 눈가가 붉어졌다.그게 더 잔인했다.차라리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면 미워하기라도 쉬울 것 같았다. 결혼생활이 전부 거짓이었다고 하면 속았다고 욕할 수도 있었다.그런데 강수는 사랑했다고 했다.사랑해서 결혼했고, 그 시간도 진짜였다고 했다.그러면서 지금은 다른 여자와 이 집에 살고 있었다.“그럼 사라는.”서희가 물었다.강수의 시선이 움직였다.사라에게 닿았다.“뭔데?”이번에는 대답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내가 있고 싶은 데.”사라의 눈이 커졌다.서희의 얼굴도 그대로 멎었다.강수는 더 꾸미지 않았다.“그래서 여기 있는 거고.”사라는 아무 말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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