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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

Author: 차노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4-29 23:06:22

차가운 바닥에 얼굴이 닿기 직전까지도 황미영은 믿고 있었다.

사람 인생이 이렇게까지 망가질 수는 있어도,

어디선가는 한 번쯤 멈춰 줄 거라고.

누가 어깨라도 붙잡아 주든가,

아니면 적어도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 생각 하나쯤은 정리하게 해주든가.

하지만 세상은 그런 친절이 없었다.

빛이 번졌다.

차가운 공기 대신, 이상할 만큼 달콤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세제 냄새도, 고기 연기 냄새도, 길바닥 먼지 냄새도 아니었다.

어디 비싼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나 맡을 것 같은 향.

황미영은 눈을 뜨려 했다.

눈꺼풀이 무거웠다.

겨우 뜬 시야엔 천장이 보였다.

샹들리에였다.

“……어?”

목소리가 이상했다.

쉰 목소리도 아니고, 지친 중년 여자 목소리도 아니었다.

맑고, 가볍고, 너무 어렸다.

황미영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자 하얀 이불이 가슴께에서 부드럽게 들썩였다.

가슴께.

뭔가 이상했다.

황미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주름도 없고, 세제에 튼 흔적도 없었다.

손톱은 반짝거렸고,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그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이게…”

황미영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드러난 팔과 다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희고 매끈했다.

툭 건드리면 부러질 것처럼 가늘면서도, 또 이상하게 생기 있어 보였다.

침대 옆엔 거울이 있었다.

황미영은 숨도 못 쉬고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엔 금발의 여자애가 서 있었다.

햇빛을 녹여 얹은 것 같은 머리칼, 파랗게 빛나는 눈동자, 작고 도톰한 입술.

심지어 잠에서 막 깬 얼굴조차 예뻤다.

예쁜 정도가 아니라, 남이 쳐다볼 수밖에 없는 얼굴.

황미영은 거울을 짚었다.

“……미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분명 한국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옆에 놓인 향수병이며 책등이며 화장품 라벨이 전부 한눈에 읽혔다.

영어였다.

Rose Mist.

Hydrating Cream.

Briana.

황미영은 멍하니 탁자 위를 바라봤다.

은색 액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지금 거울 속 얼굴과 똑같이 생긴 금발 소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 아래엔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Briana Rose

황미영은 천천히 그 이름을 읽었다.

“브…리…아나… 로즈?”

브리아나 로즈.

남의 이름 같았다.

아니, 당연히 남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거울 속 여자애는 분명히 자기였다.

“아니, 잠깐만…”

황미영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식당. 시어머니. 박진수. 그 젊은 여자.

“오늘은 들어올 생각하지 마라.”

책이 떨어지던 소리.

횡단보도.

빛.

그리고—

“…브리!”

누군가 부르던 목소리.

그 순간, 방문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브리 아가씨? 괜찮으세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황미영—아니, 브리아나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손에 닿는 건 실크 같은 커튼, 발밑엔 푹신한 카펫.

문이 열렸다.

중년의 여자 하나가 놀란 얼굴로 방 안을 들여다봤다.

단정한 옷차림에, 어딘가 집사 같고 가정부 같은 분위기.

“세상에, 브리 아가씨. 괜찮으세요?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브리아나는 입을 벌렸다가 다물었다.

악몽.

그래.

이게 악몽이면 좋겠는데.

그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아침 식사는 아래에 준비돼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묘하게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버님이 오늘은 꼭 내려오시라고 하셨어요.”

아버님?

황미영은 그 말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버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아버진 저렇게 부드러운 침대가 있는 집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나는—

“브리 아가씨?”

그 여자가 걱정스럽게 불렀다.

“…네?”

대답이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 여자 눈빛이 잠깐 이상해졌다.

“오늘… 많이 달라 보이시네요.”

황미영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여자는 금세 미소를 지었다.

“얼른 내려오세요. 그리고, 오늘은 에이든 도련님이 직접 데리러 오신다고 하셨어요.”

에이든.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이상하게도 가슴 어디가 먼저 반응했다.

문이 닫히자 방 안엔 다시 정적이 흘렀다.

황미영은 거울을 다시 보았다.

금발의 예쁜 여자애가, 놀란 얼굴로 자기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나… 진짜 죽은거야?“

바로 이어 한 가지 생각이 뒤따라왔다.

”아니, 다시 태어난 거야? 그것도... 퀸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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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아나? 음? 너 어디가?“ 엘리샤가 작게 불렀다. 브리는 성큼성큼 단상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단상 위에는 작은 현악단이 있었다. 턱수염이 긴 첼로 연주자가 무릎 사이에 첼로를 낀 채 브리를 바라보았다. 브리는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순간 홀 안이 술렁였다. “쟤 지금 뭐 하는 거야?” “설마 노래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상황에서?” 뒤늦게 파티장으로 들어온 에이든이 무대로 걸어가려 했다. “야, 비켜.” 그가 낮게 내뱉으며 사람들 사이를 지나려는 순간, 누군가 옆에서 그의 팔을 잡았다. 이안이었다. 그는 파티에 조금 늦었다. 이안 케네디. 캘리포니아의 가장 유명한 갤러리 소유자의 아들이었다. 그의 가문은 노블리스오블리주로 유명했고, 겸손한 애티튜드와 자선활동으로 유명했다. 금발의 머리카락, 짙은 쌍커풀과 꽤 귀여운 눈매. 끝이 완벽하게 올라간 입꼬리와는 대비되는 근육질의 어깨. 에이든이 날카롭게 그를 돌아보았다. “놔.” 이안은 단상 위의 브리를 바라본 채 낮게 말했다. 은근한 미소로 브리를 바라보면서. “기다려봐. 뭐하는 진 봐야 할 거 아니야.“ 브리는 마이크 앞에 섰다. 손이 떨렸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아까보다 차분했다. 브리는 로버트 선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마거릿 여사께서 Cyndi Lauper의 〈Time After Time〉을 좋아하셨다고요.” 로버트 선생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브리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제가 감히 이 자리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그 노래만큼은 진심으로 부르겠습니다.” 홀 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브리는 현악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혹시 연주해주실 수 있을까요?” 첼로 연주자는 잠시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옆의 피아니스트와 눈을 마주쳤다. 짧은 침묵. 이윽고 피아노가 조심스럽게 첫 음을 눌렀다. 익숙한 전주가 아주 느리게 흘러나왔다. 물결이 흐르듯 전주가 나왔다. 브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첫 소절을 불렀다. 화려

  • 불혹에 하이틴 퀸카로 환생하다   해결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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