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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과 용 (2)

Penulis: 이온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03-20 21:30:58

붉빛미르.

붉은 빛깔을 가진 용.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몸통이 새빨간 거대한 산천초목을 불태우는 광경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용이라는 짐승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음에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열기가, 비명이, 잿가루가 그대로 덮쳐드는 듯했다.

절로 숨이 막혔다.

“윽…….”

천우는 불현 중에 기침을 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사당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살이 타는 열기와 귀청을 찢는 비명과 목구멍을 간지럽히는 재는 실제로 거기 있었던 것처럼 생생했다.

“붉빛…&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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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빛미르   포도청으로 가는 길 (1)

    포청으로 향하는 길은 복잡했다.행인들을 지나 좁게 뻗은 골목을 몇 개 통과하다보니, 제법 널찍한 공터가 나왔고 그곳에서 다시 동쪽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한양의 중심부로 더욱 가까워지는 길이었다.“그 곰보놈 말일세.”한발 앞서 걷던 이포교가 문득 입을 열었다.“아까 내가 유명한 놈이라고 말했던 것 기억하나?”“기억하네.”천우가 대답했다.손에 익은 창포검 대신에 옷 밑에서 달랑거리는 환도가 제법 거슬렸다.“꽤나 골치 썩이는 놈이었나 본데.”“그래. 놈은 이름난 범죄자야.”이포교가 중얼거렸다.“천우 자네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처음 곰보에게서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조금 기뻤다네.”“기뻤다고?”“곰보 놈이 나타났다는 것 때문에 말일세. 이 바닥에서 자질구레하게 악명을 떨치면서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놈이었거든.”이포교는 그리 말하면서도 혹시 골목 어귀에서 곰보 비슷한 놈이 나타나지를 않나 살피는 눈치였다.말마따나, 한양의 수사기관을 성가시게 만든 협잡꾼임은 분명해보였다.“그런데 그 곰보가 금화도감하고는 무슨 관련이 있나?”천우가 물었다.“내가 겪은 곰보는 칼 쓰고 협박하는 강도

  • 붉빛미르   불의 조종 (2)

    과연 무엇에 홀렸다는 말인가? 수상하다면 수상하다고 할 수 있는 사건의 연속이었으나, 붉빛미르나 기우사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아니, 애초에 불과 물을 다루는 기이한 존재들을 사람의 눈으로 탐구한다는 것이 허황된 일일지도 몰랐다.대화재, 검은 연기, 짐승의 울음소리, 홀린 방화범들.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기이한 파편들.일견 관련없어 보이는 이 파편들을 하나로 꿰어낼 만한 연결고리가 필요했다.‘차라리.’천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대화재에서 살아남았던 생존자를 찾아 도움을 구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군.’그게 최선일 성싶었다.무엇보다, 2년 전의 대화재를 직접 몸으로 겪었던 장본인의 증언이 필요할 듯했다.‘내가 하릴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 2년 전 대화재를 겪었던 사람이라면…….’주상전하? 아니었다.지운 영감? 기우사의 수장이지만 친구 만나듯 뵐 수 있는 분은 아니었다.‘그렇다면 이포교뿐이군.’그러다 불현듯, 또 한사람이 떠올랐다.‘어리.’불쑥 그 이름이 생각났다.어리 또한 그 불지옥을 겪었다고 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었다.물어볼만한 사람이 한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 붉빛미르   불의 조종 (1)

    ‘뭔가 급하게 마무리를 지은 느낌인걸.’2년 전에 큰 불이 났고, 갑자기 장대비가 내렸고, 물과 불이 만나자 수상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고, 안개 속에서 정체불명의 짐승 울음소리가 들렸다.그리고 이 모든 것은 화재로 피폐한 백성들이 집단으로 증언한 망상이라는 것.관청에 정식으로 등록된 문서에서 그리 말하고 있었다.마치 그 이상 호기심을 가지지 말라는 듯 건조하고 딱딱하게 말이다.사건일지를 여러 번 들춰봐도 그것이 끝이었다.더 이상 2년 전의 한양 대화재를 알아낼 수 있는 단서는 보이질 않았다.‘화재로 불탄 가옥이 2천 4백 7십채.’‘사상자는 3백여명.’‘대부분의 사인(死因)은 연기로 인한 질식.’‘복구에 필요한 나무를 캐기 위해 경상도에까지 파발이 당도하다.’애초에 금화도감보다 먼저 발생한 사건인 탓인지 당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은 듯했다.피해를 입은 가옥의 숫자, 사상자, 손실된 재산의 규모 등 행정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백사성,기우사,붉빛미르 등등 천우를 괴롭히는 것들은 무엇 하나 모호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산술은 있으나, 천우에게 필요한 정보는 없었다.“후우…….”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터져 나왔다.사건일지를 살펴보고 난 뒤에 찾아드는 감정이 실로 천우를 맥 빠지게 했다.큰 산 하나가 가

  • 붉빛미르   사건 일지 (2)

    불을 막으려다 죽고 다친 사람도, 불을 지르려는 범인을 막다 변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어느 농사꾼은 화상으로 팔이 떨어져나간 와중에도 겨우 목숨을 부지했으나,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는 내용도 있었다.지아비를 잃은 그 부인이 수절하면서도 매일 밤낮으로 울음 삼키며 홀로 된 아픔을 견디고 있다는 포청발 소식도 접하고 나니 마음이 심히 좋지 않았다.강 건너 어떤 고을에서는 부모가 모두 화재로 사망하여 일곱 살, 다섯 살 된 형제 둘만 남았는데 칡뿌리를 캐먹겠다고 산에 올랐다 형제 모두 호랑이에게 잡혀간 일도 있었다.방화는커녕, 일평생을 화기(火氣)와 거의 담을 쌓고 지내온 천우였다.밥을 짓거나 화전을 새로 일구어야 할 때, 불씨를 살린다고 장작 크게 넣었다가 불길이 번진 경우야 있었지만, 물을 다룰 줄 아는 천우에게는 손바닥 뒤집는 것만큼이나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불똥이 지붕으로 옮아 붙든, 숲속으로 튀어버리든 천우에게는 해가 되질 않았다.그저 평소에 하던 것처럼 어디 양동이에서 물을 끌어오거나, 시냇물을 가져다가 뿌려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불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구나.’한양에 오지 않았다면 아마 평생 체감하지 못할 사실이었다.비가 오지 않아 바싹 마른 논밭을 걱정하던 사람들만 익히 보아 와서 그런지,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한 터였다.새삼 불을 가벼이 여기던 자신이 반성이 되었다.울컥-갑자기 불이라는 것에 대해 막연한 분노가 솟았다면,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었을까. * * *정신없이 사건일지를 살피다 보니, 어느새 서고 절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햇수로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그러니까 아버지 백사성이 한양 다녀오겠다며 집을 떠났던 그때, 그 시간이었다.‘드디어 아버님이 떠나셨던 2년 전의 기록이다.’천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사건일지에 눈을 고정했다.한양이

  • 붉빛미르   사건 일지 (1)

    ‘관청의 문서를 읽는 것은 처음인데.’천우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건일지를 펼쳐들었다.고향에서 읽던 저열한 서적과는 달리, 좋은 먹물과 종이가 조합을 이룬 정갈한 자료가 한눈에 들어왔다.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지나칠 사안들마저 기록한 현장의 수기(手記)하며, 예상되는 재산상의 피해와 사후 대책까지 마련되어 있었다.어지간히 꼼꼼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흉내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기름이 발화하면서 중등품의 질그릇 4개와 상등품 3개가 박살이 났고, 그 중에서 고쳐서 쓸 수 있을 법한 것은 6할로 추정된다.’‘옆의 유기가게로 옮겨 붙은 불이 천막의 1할을 태웠고, 유기 가게상인이 경상을 입었다.’‘금화도감과 인력 여덟을 동원하여 화재 초기진압을 노렸다. 기름에 의한 화재라 물 대신 흙과 공기차단을 우선으로 두었다.’‘때가 이른 소낙비가 내려 불을 한꺼번에 진압하였다.’‘화재를 일으키고 도주한 범인의 인상착의를 형조에 넘겼다.’‘주요 참고인으로 간주된 1인을 금화도감에서 확보하여 자세한 내막을 조사할 예정.’기록을 살펴보던 천우는 ‘소낙비’라는 표현에 주목했다.때가 이른 소낙비가 내려 화재를 진압했다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관청에 있는 사람들 눈에도 천우가 일으킨 신비는 희한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또한, 범인이라고 지목된 기록도 묵직하게 다가왔다. 얼른 그 곰보 왈패 놈을 체포해야 도둑맞은 기우사의 목걸이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곰보 이 놈…….’한동안 잊고 있었던 곰보의 얼굴이 떠올랐다.워낙 바쁘게 돌아간 지난 이틀 사이에 곰보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는데, 이렇게 다시 되뇌게 되니 끔찍하게 반가웠다.‘포청에도 들러야겠군.’흔한 장신구가 아니니 장물이나 암시장 같은 곳에서 발견됐을 수도 있고, 곰보가 이미 추포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어쨌거나 이포교가 얼른 돌아오고 볼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시간이 더디게 흐릴 것만 같았다.‘그나저나, 여기에 참고인이라고 표기된 사람이 직접 이 기록을 읽고 있을 경우가

  • 붉빛미르   더듬어가는 도화선 (2)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한양 저자는 사람들과 물건들로 일찍이 북적이고 있었다.토목 공사 떠나는 인부들 먹이려는 가마솥 국밥이 펄펄 끓는가 하면, 또 어느 한쪽에서는 공중에 매달아놓은 아낙네들 장신구 따위가 쨍쨍- 소리를 내고 있었다.행인이 제법 있어 부득불 어깨를 접어야했다.이포교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천우를 한양 안쪽 깊숙한 곳으로 이끌었다.“다 왔네. 우리 일터.”길이 넓게 퍼져있고, 주변 가옥들이 모두 지붕이 낮아 탁 트인 곳이었다.한성부 앞에 서 있었다.처음 여기 들어올 때는 끌려오다시피 한터라 제대로 보지도 못하였지만, 다시 보니 널찍하고도 우뚝 솟은 벽이 단단한 요새를 방불케 하는 외관이었다.높게 위치한 누각 위며, 정문에도 장병기로 무장한 군사들이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이곳에서 한양의 많은 행정업무가 처리된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나랏일하는 곳에 왔다는 것이 실감이 되었다.“들어가세.”이포교가 앞장서며 말했다.정문을 지나 관청 안으로 들어간 그들을 곧장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안쪽으로 향했다.일찍 등청한 관원들을 여럿 지나쳤고, 그중에 이포교를 알아본 몇몇과 짧게 인사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관옥이 하나 나왔다.금화도감이었다.다른 관옥에 비해 초라하다 할 만큼 작고 초라했으나, 현판에 쓰인 ‘禁火都監’이라는 네 글자 글귀만큼은 힘이 넘쳐보였다.&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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