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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황실을 사칭한 자들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5-16 13:40:53

오빠는 열린 발코니 너머로 꽁꽁 얼어붙은 괴한들을 힐끗 보더니,

이내 무서운 살기를 거두고 내게 다가왔다.

​

"놀랐지. 걱정 마라, 버러지들이 결계에 걸려든 것뿐이니까."

​

오빠는 사색이 된 나를 잠시 꼭 안아주었다.

내 몸의 떨림이 멈춘 걸 확인한 후 조심히 안아 침대에 눕히고는 이불을 목 끝까지 꼼꼼하게 덮어주었다.

​

“오빠가 옆에 있으니 안심하고 자거라. 내일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다 치워져 있을 거다.”

​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첫째 오빠의 다정한 목소리와 내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길이 좋았다.

다만, 나는 차마 ‘저기, 오빠! 저놈들 사실 황실 암살자들인데,

아무래도 나를 잡으러 온 것 같아요!’라는 진실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아주 조그맣고 얌전한 막둥이가 되어 눈을 살포시 감아야 했다.

​

칼라일 오빠는 내가 잠들 때까지 침대 곁을 지키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릴 때쯤에야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번쩍 눈을 떴다.

​

‘자겠냐고! 이 상황에 잠이 오겠냐고!’

​

이불을 뻥 차고 일어나 발코니 쪽을 힐끗 보았다.

이미 밖에서는 칼라일 오빠의 차가운 지시가 들려오고 있었다.

​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지하 감옥으로 압송해라.

루체른의 결계를 넘본 버러지들이 누군지 영혼까지 털어서라도 알아내.”

​

오빠의 목소리는 방금 전 나를 달래던 것과는 180도 달랐다.

뼛속까지 시린 냉기가 문틈을 타고 넘어오는 것 같았다.

나는 매트리스 속에 쑤셔 넣은 은 원통을 더듬거렸다.

별 탈은 없는 것 같았다.

​

‘황실 기사단이 직접 움직였다는 건, 황제가 내 정체를 확실히 알았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이 원통을 노리는 건가?’

​

평생을 로판 여주처럼 꽃길만 걷고 싶었는데,

내 인생 장르는 왜 자꾸 ‘본격 가문 멸망 방지 첩보물’로 흘러가는 걸까.

​

​

​

**

​

​

​

막내의 방 앞을 정예 기사들에게 맡기고 집무실로 돌아온 칼라일의 표정은 혹한의 겨울 그 자체였다.

책상 위에는 기사들이 얼어붙은 괴한들에게서 찢어온 검은 천 조각이 놓여 있었다.

​

달빛 아래 비친 문양은 명백했다.

칠흑처럼 오만하게 타오르는 태양인 제국 황실의 문장이었다.

칼라일은 미간을 찌푸린 채, 거칠고 조악한 자수 위로 긴 손가락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

"… 모조품이군."

​

서늘한 목소리가 집무실의 정적을 깨뜨렸다.

암살자의 옷자락에서 찢어낸 천 조각은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은밀히 움직여야 할 자가 황실 문양을 달고 나타난 것부터가 코미디였다.

누군가 루체른과 황실을 정면으로 충돌시키기 위해 던진 가짜 단서임이 분명했다.

​

칼라일의 미간이 좁아졌다.

감히 황실을 사칭해 가문을 모독하고,

게다가 하나뿐인 여동생의 목숨까지 노리다니…

​

14년 전, 사랑했던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열한 살 소년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하지만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칼라일은 누구에게도 우스워 보이지 않기 위해 검을 잡았고,

비명 같은 훈련 끝에 단 1년 만에 소드마스터의 반열에 올랐다.

​

제국 최고의 검사라는 칭호도,

당당한 가주의 자리도

오직 동생들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일궈낸 피눈물의 결과물이었다.

​

제 눈에는 여전히 한참 모자라고 어설픈 동생들이었다.

사고뭉치 카시안도,

세상 물정 모르는 엘리노아도 그저 남들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들에게 티 없는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칼라일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는 길을 택했다.

​

그런데 이제 와서 그가 일군 평화를 감히 깨뜨리려는 불청객이 나타났다.

그것도 가문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막내의 방을 노렸다는 점이 바로 칼라일의 역린을 건드렸다.

​

"이건 단순한 가문 간의 기싸움 수준이 아니다. 생각보다 거대한 무언가가 제국 전체의 판을 뒤흔들려 수를 쓰는군."

​

칼라일은 푸른 눈동자를 서늘하게 빛내며 보좌관을 호출했다.

​

"엘리노아의 방에서 잡은 그 '고드름 쥐새끼들'을 당장 황궁으로 압송해라. 카엘루스 폐하께도 감히 황실을 사칭하며 제국을 어지럽히려는 무뢰배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이 불쾌한 선물과 함께 전해 드려야겠지."

​

보좌관이 경악하며 되물었다.

​

"가, 가주님. 그들을 직접 황궁으로 보내신다는 건… 황제 폐하께 정면으로 항의하시겠다는 뜻입니까?"

"항의가 아니라 공조다."

​

칼라일이 비스듬히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

"누가 감히 황실의 이름을 더럽히고 루체른의 꽃을 탐내려 했는지 폐하께서도 아주 흥미로워하시지 않겠나? 범인이 누구든지 간에 루체른과 황실을 동시에 건드린 대가는 뼈저리게 치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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