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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밤 전화

Author: YuIm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1 23:28:53

밤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은재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었다.

원룸의 형광등을 끄면 창 너머 가로등 불빛이 천장에 긴 줄무늬를 만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줄무늬가 흔들렸다.

윗집에서 발소리가 나다 멈추고, 다시 조용해졌다.

유치원 앞에서 도하를 본 지 4일째였다.

눈을 감으면 파란 가방을 멘 아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달리다가 멈추고, 고개를 돌리고, 은재를 올려다보던 눈.

'아줌마 누구세요?'

그 목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은 도하를 본 뒤로 더 길어졌다.

낮에는 전화를 받고 서류를 정리하고 택배를 수령하면서 잊을 수 있었다.

밤이 되면 아이의 얼굴이 돌아왔다.

핸드폰이 울렸다.

침대 옆 바닥에 놓아둔 화면이 환하게 빛났다.

모르는 번호였다.

밤 11시에 모르는 번호.

은재는 잠깐 망설이다 수화기 버튼을 눌렀다.

스팸이면 바로 끊으려 했다.

인터넷 쇼핑몰 광고이거나, 대출 권유이거나.

"여보세요?"

"서은재 씨 맞으시죠?"

낯선 여자 목소리였다.

조심스러운 톤이었지만, 은재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누구세요?"

"저는……5년 전에, 서은재 씨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근무했었어요."

은재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이불이 무릎 위로 미끄러졌다.

등이 서늘해졌다.

"병원이요?"

"네. 산후조리 중에 치료 받으셨잖아요. 그때 담당 간호사였어요."

은재의 손이 이불을 쥐었다.

5년 전.

출산 직후 산후우울로 치료를 받았던 시기였다.

병실의 소독약 냄새와 창밖의 비 소리.

기억이 희미한 부분이 많았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간호사가 전화를 해왔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었다.

"……기억은 안 나요."

"당연히 그러시겠죠. 입원 기간이 짧았고, 간호사가 여러 명이었으니까."

"늦은 시간에……무슨 일이세요?"

"번호를 알아내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은재는 이불을 걷어차고 바닥에 발을 내렸다.

맨발이 찬 바닥에 닿았다.

손이 떨려서 핸드폰을 다른 손으로 바꿔 잡았다.

"무슨 일이세요?"

"그 소견, 이상했어요."

은재의 숨이 멈췄다.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았다.

"소견이요?"

"네. 서은재 씨한테 나갔던 의료 소견서요. 저는 그 소견서가 나가는 과정을 봤어요."

"……무슨 뜻이에요?"

"치료 기록하고 소견서 내용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당시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부분이요?"

"전화로는……만나서 말씀드릴게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소견서만이 아니라는 거예요."

은재의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침대 끝에 앉은 채로 벽에 등을 기댔다.

목이 바짝 말라 있었다.

간호사의 목소리가 귓속에서 아직 울리고 있었다.

"왜 지금 연락하신 거예요? 5년이 지났는데."

"5년 동안 고민했어요. 그때는 병원을 그만둔 직후라서, 저도 상황 정리가 안 됐고."

"……"

"증거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어요. 저도 그 병원에서 나온 입장이라, 함부로 나서기가 어려웠고."

"……"

"그런데 최근에 짐 정리하면서, 당시 기록 중에 제가 가지고 있는 게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은재는 싱크대 쪽으로 걸어가 물 한 잔을 따랐다.

컵을 잡은 손가락 관절이 하얘졌다.

그대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컵을 싱크대 위에 내려놓았다.

"기록이요? 어떤 기록이에요?"

"자세한 건 전화로 어렵습니다. 만나서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디서 만나면 될까요?"

"서은재 씨가 편한 곳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연락드릴게요. 번호 저장해도 되나요?"

"네.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혹시 성함이?"

"……지금은 번호만 남길게요. 만나면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은재는 핸드폰을 잡은 채 싱크대에 기대어 서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상했다.'

간호사가 전한 그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소견서가 이상했다고.

5년 동안 은재를 짓눌러 온 서류.

접근 금지의 근거가 되었던, 양육자 변경 기각의 사유가 되었던, 그 소견서가.

이상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치료 기록과 소견서의 내용이 다르다면, 5년 전에 법정에 제출된 그 소견서는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은재의 손가락이 싱크대 가장자리를 잡았다.

손끝이 하얘질 때까지 힘을 주었다.

은재는 핸드폰을 들어 통화 기록을 저장했다.

저장할 이름이 없어서 '간호사'라고만 적었다.

낯선 이름 하나가 연락처에 추가되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핸드폰의 파일 목록을 열었다.

음성 파일 폴더가 눈에 들어왔다.

사진 폴더 아래, 거의 열어보지 않는 폴더.

폴더를 열자 녹음 파일이 하나 있었다.

은재가 임신 중에 혼자 녹음해둔 것이었다.

파일 이름은 '자장가'.

날짜는 출산 9일 전이었다.

이 파일은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옮겨왔다.

클라우드 백업에도 올려두었다.

한 번도 지우지 않았지만, 재생해본 것은 오래전이었다.

듣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은재는 침대 위에 앉아 핸드폰을 들었다.

싱크대에서 닦은 손가락 끝이 아직 젖어 있었다.

재생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가 잠깐 멈추었다.

버튼을 눌렀다.

잠깐의 정적 뒤, 원룸에 소리가 퍼졌다.

은재의 목소리였다.

낮고 부드럽고 조금 떨리는, 배 위에 손을 얹고 불렀던 자장가.

가사 없이, 멜로디만.

녹음 속에서 이따금 거친 숨소리가 섞였다.

8평짜리 빈방이 그 목소리로 채워졌다.

5년 전의 은재가 5년 뒤의 은재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았다.

가로등 불빛의 줄무늬가 천장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침대 맞은편, 아이를 위해 비워둔 작은 방의 문이 닫혀 있었다.

은재는 핸드폰을 가슴에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녹음 파일의 총 재생 시간은 1분 42초.

자장가가 끝날 때까지 은재는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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