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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소송비

Author: YuIm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1-01 23:28:55

은재는 점심시간에 화장실 앞 복도로 나와 핸드폰을 꺼냈다.

간호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만날 수 있을까요?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싶습니다.'

답장은 5분 만에 왔다.

'이번 주 토요일 오후 2시, 종로 근처 괜찮으세요?'

은재는 달력을 확인했다.

토요일은 격주 근무 없는 주였다.

'괜찮습니다. 장소 보내주세요.'

'종로3가역 3번 출구 앞 카페로 할게요. 자세한 건 금요일에 다시 보낼게요.'

은재는 문자를 보낸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하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복도 끝 창밖으로 4월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5년 동안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는데, 이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간호사가 보관하고 있다는 기록이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여동생이었다.

"언니, 그 간호사한테 연락했어?"

"방금 문자 보냈어.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어."

"같이 갈까?"

"아니. 혼자 갈게."

"왜? 위험할 수도 있잖아."

"위험한 건 아닐 거야.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어."

"그래도."

"혼자 가야 해. 간호사가 부담 느끼면 안 되니까."

여동생이 잠깐 말이 없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끝나면 바로 전화해."

"응."

"뭐라고 하든 녹음 같은 건 하지 마. 동의 없이 하면 안 돼."

"알아."

"그리고 변호사 알아보고 있어?"

"알아보고 있어. 수임료 문제가 있어서."

"얼마 정도야?"

"300에서 500."

"……만 원?"

"만 원."

여동생의 입술이 얇아졌다.

"내가 좀 보탤게."

"괜찮아."

"괜찮긴. 엄마한테도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직은. 확실해지면 그때."

"알았어. 토요일에 전화해."

통화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이었다.

남은 김밥 한 줄을 서둘러 먹었다.

편의점에서 사온 800원짜리 참치김밥이었다.

자리에 앉아 입가를 닦았다.

동료가 자리에서 손을 흔들었다.

"은재 씨, 택배 또 왔어요. 5층이래요."

"네, 갈게요."

택배 상자를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5층에 전달하고 내려오는데 내선 전화가 울렸다.

"은재 씨, 2층 프로젝터 안 켜진대. 좀 봐줄 수 있어?"

"지금 갈게요."

2층 회의실 프로젝터는 리모컨 배터리 문제였다.

예비 배터리로 교체하고 작동을 확인했다.

회의 참석자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은재 씨."

"아닙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자리에 메모가 놓여 있었다.

3층에서 복합기 수리 일정을 바꿔달라는 내용이었다.

수리 업체에 다시 전화를 걸어 일정을 조정하고 나서야 자기 업무에 손을 댈 수 있었다.

오후에 고객 응대 전화가 이어졌다.

"배송 지연 건 확인 좀 해주세요. 일주일 넘었어요."

"주문번호 알려주시겠어요?"

"SS-0412-1138이요."

"확인해보겠습니다."

시스템을 조회하니 물류센터에서 반품 처리 중이었다.

"고객님, 해당 건은 반품 후 재발송 예정입니다. 내일까지 출고될 예정이에요."

"알겠어요. 빨리 좀 해주세요."

"네, 죄송합니다."

퇴근 시간이 되자 동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은재는 소모품 예산 정리 파일을 마무리하고 팀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사무실에는 은재 혼자 남았다.

형광등 하나가 꺼져 있어서 자리 주변이 어둑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예산 파일의 숫자를 확인했다.

커피잔의 김이 어둑한 불빛 아래에서 피어올랐다.

건물을 나서며 핸드폰을 꺼냈다.

검색창에 '가사소송 변호사 수임료'를 입력했다.

블로그와 법률 상담 사이트를 번갈아 읽었다.

양육자 변경 소송 수임료는 대략 300~500만 원 사이였다.

착수금 200만 원이 가장 많았고, 성공보수는 별도 협의.

인지대, 송달료, 감정 비용은 추가.

이전 소송 때 들었던 비용이 떠올랐다.

수임료 300만 원을 마련하느라 1년 동안 아침을 거른 적도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기각이었다.

그 돈으로 도하에게 장난감 하나라도 보내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은재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핸드폰 계산기를 열었다.

월급 세후 209만 원.

관리비, 보험료, 교통비, 통신비, 생필품비.

계산기 화면에 하나씩 빼나갔다.

고정 지출만으로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다.

남은 돈에서 식비를 하루 8,000원으로 잡았다.

한 달 24만 원.

거기에 잡비와 비상금을 빼면, 실제로 모을 수 있는 돈은 한 달 30~40만 원.

수임료 300만 원 기준 8~10개월.

500만 원이면 1년 이상.

인지대와 송달료를 더하면 기간이 늘었다.

감정 비용까지 포함하면 더 위였다.

증거 수집, 공증, 교통비까지 더하면 숫자는 계속 올라갔다.

지하철이 도착했다.

은재는 계산기 화면을 지우고 빈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어두운 터널 벽이 지나갔다.

다시 숫자를 쳤다.

법률구조 소득 기준을 확인했다.

기준 중위소득의 125%.

은재의 소득은 기준을 약간 초과했다.

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법률구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

'이번에도 안 되나.'

식비를 하루 5,000원으로 줄이면, 한 달 15만 원.

9만 원을 더 모을 수 있었다.

그러면 6~7개월.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으로 버텨야 하는 6~7개월.

지하철 창밖으로 어두운 터널 벽이 빠르게 지나갔다.

은재의 역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나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원룸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계산기를 열었다.

숫자를 치고, 지우고, 다시 쳤다.

어떻게 계산해도 빠듯했다.

가능하되,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비상금이 바닥나면 한 달 월급이 밀려도 버틸 수 없는 수준.

그래도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었다.

해볼 수는 있었다.

은재는 계산기 화면의 숫자를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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