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간호사를 만난 뒤 1주일이 지났다.
은재는 사무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변호사를 검색했다.
'가사소송 전문 변호사', '양육자 변경 소송', '면접교섭 변경'.
검색어를 바꿔가며 후기와 경력, 승소율을 비교했다.
3명의 이름과 연락처, 수임료 범위를 메모장에 정리했다.
출력해서 가방에 넣었다.
퇴근 후 지하철에서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변호사 알아봤어?"
"응. 3명 찾았어. 그중에 한 명은 지인 소개가 있어."
"누가 소개해준 건데?"
"회사 선배 남편이 법조계 쪽이야. 가사소송 전문 변호사를 알고 있대."
"이름이 뭔데?"
"한지오. ○○ 법률사무소."
"한지오?"
"경력이 꽤 된다더라. 양육자 변경 사건을 많이 맡았다고."
"수임료는?"
"상담 때 얘기하기로 했어. 일단 상담 예약은 잡았어."
"언제?"
"다음 주 수요일 오후 4시."
"수요일이면 반차를 써야 하는데."
"반차 쓸 수 있어?"
은재는 달력을 확인했다.
이번 달 반차를 이미 1번 썼다.
"가능해. 고마워."
"같이 갈까?"
"아니. 혼자 갈게."
"또 혼자야?"
"변호사 상담이니까."
"긴장돼?"
"조금."
"가기 전에 서류 챙겼는지 확인해. 이혼심판문이랑 의무기록 사본."
"챙겼어."
"소견서 페이지도?"
"응."
여동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될 거야. 끝나면 전화해."
수요일.
오후 반차를 위해 오전 업무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소모품 발주 확인, 택배 2건 수령, 고객 응대 전화 4통.
점심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를 사서 10분 만에 먹었다.
동료가 은재의 가방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또 반차? 어디 가는데?"
"볼일이 있어서요."
"은재 씨는 참 볼일이 많아."
은재는 가볍게 웃어 보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2시에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을 탔다.
서초구에서 내려 법률사무소가 있는 빌딩을 찾았다.
8층짜리 회색 건물이었다.
1층 로비는 대리석 바닥이었고, 입주 업체 안내판이 벽에 걸려 있었다.
법률사무소 3곳, 세무법인 1곳, 노무법인 1곳.
은재의 일상과는 먼 세계의 업체들이었다.
○○ 법률사무소, 7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출근할 때 입은 블라우스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7층에서 내렸다.
복도 끝에 유리문이 있었고, 문 위에 사무소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은재는 유리문 앞에서 멈춰 섰다.
가방 끈을 고쳐 잡고, 블라우스 옷깃을 만졌다.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이 보였다.
눈 아래 그림자가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
지난주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흔적이었다.
간호사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접수대가 보였다.
깔끔한 인테리어에 왼쪽 벽면에 법률 서적이 꽂혀 있었다.
오른쪽으로 복도가 이어지고, 복도 양쪽에 상담실 문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접수대에 앉은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예약하고 오셨어요?"
"네. 4시에 한지오 변호사님 상담이요."
"성함이?"
"서은재요."
직원이 화면을 확인했다.
"네, 확인됐습니다. 상담 전에 간단한 상담 신청서 작성해주시겠어요?"
직원이 양식을 건넸다.
은재는 이름, 연락처, 상담 유형을 적었다.
상담 유형 란에 '양육자 변경'이라고 쓰고 펜을 멈추었다가, 옆에 '면접교섭'을 추가했다.
"다 쓰셨으면, 이쪽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주세요."
은재는 대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가 사무실 의자보다 푹신했다.
커피 테이블 위에 가사소송 관련 팸플릿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양육자 변경, 면접교섭, 사전처분, 친권 변경.
은재가 5년 동안 법원에서, 서류에서, 인터넷 검색에서 마주해온 단어들이었다.
읽지 않아도 그 안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3시 55분.
5분이 길었다.
은재는 팸플릿을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가방 안의 서류를 확인하고, 다시 가방을 닫았다.
오늘 가져온 것은 이혼심판문 사본, 의무기록 사본, 그리고 소견서 페이지였다.
대기실 맞은편에서 상담실 문 하나가 열렸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나왔다.
여자가 눈을 붉히고 있었고, 남자는 정면을 보며 걸었다.
둘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문이 닫히고 복도에서 엘리베이터 소리가 멀어졌다.
대기실에 남은 건 은재 혼자였다.
은재는 시선을 피했다.
5년 전 자신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가사소송 전문 사무소에서는 매일 반복되는 풍경일 거였다.
"서은재 님."
접수대 직원이 은재를 불렀다.
"3번 상담실로 들어가세요."
은재가 일어섰다.
손바닥을 바지에 닦았다.
가방 끈을 양손으로 잡고 복도를 걸었다.
3번이라고 적힌 문 앞에서 멈췄다.
노크를 두 번 했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낮고 평탄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재는 문 손잡이를 잡았다.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문을 열었다.
상담실 안에 책상 하나와 의자 2개가 있었다.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오후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책상 뒤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서류 더미를 읽다가 은재를 보며 고개를 들었다.
짧은 머리.
안경 없이,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접고 있었다.
소매를 접다 만 듯 오른쪽 소매의 접힌 자국이 왼쪽보다 한 칸 높았다.
눈매가 날카로웠지만 표정에 감정이 없었다.
책상 위에는 두꺼운 파일 2개와 노트북, 그리고 만년필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지오입니다. 앉으세요."
은재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양손을 가방 위에 포갰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책상 위의 파일을 비추고 있었다.
상담실 문이 닫혔다.
바깥의 소음이 차단되었다.
은재와 한지오 사이에 책상 하나만이 남았다.
은재의 숨이 짧아지고 있었다.
일주일 뒤 금요일 저녁.은재는 다시 중고 서점에 갔다.도하에게 줄 그림책을 한 권 더 사려는 것이었다.2층 아동 도서 코너로 올라갔다.한지오가 있었다.같은 자리, 같은 선반 앞.이번에는 검은 니트에 면바지 차림이었다.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읽고 있었다.은재가 계단 위에서 멈추었다.한지오가 고개를 들었다."또 왔네요.""또 왔습니다."한지오가 읽던 책을 선반에 도로 꽂았다.은재가 그림책 선반 앞으로 갔다.지난번에 샀던 나무 이야기 옆에 새로운 책이 꽂혀 있었다.구름 위를 걷는 고양이 이야기."그 책 표지 좋네요. 고양이예요?""네. 구름 위를 걷는 고양이 이야기요.""아이가 고양이 좋아하면 괜찮을 거예요.""도하가 뭘 좋아하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파란색 고른 것밖에.""면접 때 물어보세요. 좋아하는 동물이 뭐냐고.""그러려고요. 목록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물어볼 것들."은재가 고양이 그림책을 꺼내 펼쳤다.그림이 수채화풍이었다.구름 위에 앉은 고양이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아래에는 작은 집들이 있었다.한지오가 선반 반대쪽에서 에세이 코너를 보고 있었다.은재가 그림책을 넘기다가 한지오를 보았다.서류를 볼 때의 긴장이 없었다.
금요일 퇴근 후.은재는 집 근처의 중고 서점에 들어갔다.작은 서점이었다.1층에 소설과 에세이, 2층에 아동 도서와 그림책이 있었다.은재는 2층으로 올라갔다.도하에게 줄 그림책을 찾으려는 것이었다.다음 감독 면접이 2주 뒤로 잡혔다.이번에는 간식 외에 그림책을 가져가고 싶었다.5살이 좋아할 만한 그림책을 고를 자신이 없었다.은재가 도하의 취향을 아는 것은 파란색을 골랐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2층은 좁았다.나무 선반 3개가 벽을 따라 서 있었고, 가운데에 낮은 테이블이 있었다.테이블 위에 추천 도서가 쌓여 있었다.은재는 그림책 선반 앞에 서서 제목을 읽기 시작했다.동물 이야기, 계절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족 이야기 앞에서 손이 멈추었다.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알 수 없어서 한 권을 꺼내 펼쳐보았다.아빠와 아들이 산에 가는 이야기였다.은재는 책을 다시 꽂았다.다른 책을 꺼냈다.바다에 사는 물고기가 친구를 찾는 이야기.그림이 부드러웠다.파란색 배경에 작은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었다.가격표에 3,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그 책, 좋습니다."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은재가 돌아보았다.한지오가 서 있었다.평소의 셔츠 차림이 아니었다.면 재킷에 청바지, 캔버스 운동화.은재가 처음 보는 옷차림이었다."변호사님?""안녕하세요."&nbs
수요일 오후.은재가 자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때 총무팀장이 다가왔다."은재 씨, 우편물 와 있어요. 등기."총무팀장이 노란 봉투를 건네주었다.은재의 이름 옆에 회사 주소가 적혀 있었다.발신인은 ○○ 법무법인.등기 우편, 내용증명이라고 적혀 있었다.은재는 봉투를 받아 책상 위에 놓았다.동료가 곁눈으로 봉투를 보았다.은재는 봉투를 서류 밑에 넣었다."감사합니다."총무팀장이 돌아갔다.은재는 점심시간까지 봉투를 열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자 회의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가 문을 닫았다.봉투를 열었다.A4 용지 2장.내용증명 우편이었다.'수신: 서은재 귀하발신: ○○ 법무법인 (권태윤 대리인)제목: 접근 행위에 대한 경고 및 중단 요청'은재가 첫 번째 문단을 읽었다.'귀하는 미성년 자녀 권도하에 대한 피해자보호명령(접근 제한)의 전력이 있는 자로서, 현재 해당 보호명령은 종료되었으나, 자녀의 생활 영역에 대한 접근은 아동의 안정적 양육 환경을 저해할 우려가 있습니다.'은재가 2번째 문단을 읽었다.'귀하가 자녀의 유치원 인근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한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이는 사실상의 감시 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이에 즉각적인 중단을 요청합니다.'3번째 문단.'상기 행위가 지속될
한지오의 사무실.은재가 상담실에 들어서자 한지오가 서류를 펼치고 있었다.테이블 위에 서류가 3묶음으로 나뉘어 놓여 있었다."조사관 보고서 열람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은재가 맞은편에 앉았다.한지오가 첫 번째 서류를 밀어주었다."면접 보고서입니다. 조사관의 관찰 의견이 기재되어 있어요."은재가 서류를 받아 읽었다.'아동은 신청인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 간식 제공 시 자연스럽게 수용하였으며, 블록 놀이 시 신청인에게 지시하는 등 상호작용이 관찰됨.'은재의 눈이 그 문장 위에서 멈추었다.도하가 블록을 놓으라고 지시한 것이 보고서에 적혀 있었다.'이거 여기.'아이의 짧은 말이 법원의 언어로 '상호작용이 관찰됨'이 되어 있었다."긍정적인 내용인가요?""네. 아이가 울거나 회피하지 않았다는 것이 기록된 것은 중요합니다. 다음 면접을 위한 근거가 됩니다."한지오가 2번째 서류를 꺼냈다."다음은 의무기록 열람 결과입니다."은재가 서류를 받았다.의무기록 사본이었다.은재의 입원 기간 기록 중 담당 의사와 다른 서명이 있는 페이지에 형광펜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다."병원 측에서 의사 명단을 제공했습니다. 이 서명과 일치하는 원내 의사는 없었습니다.""원내 의사가 아니라는 거죠?""맞습니다. 외부에서 온 의사가 기록을 남긴 것으로 보입
월요일.출근 전에 한지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조사관 보고서가 접수되었습니다. 열람 신청하겠습니다.''결과가 좋은 건가요?''보고서 내용을 확인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면접이 중단 없이 진행된 것 자체가 긍정 요소입니다.'은재는 메시지를 읽고 핸드폰을 넣었다.출근길 지하철 안이었다.주말 동안 면접 장면을 수십 번 떠올렸다.도하의 목소리, 블록 쌓는 손, 파란 색연필.떠올릴 때마다 세부가 조금씩 흐려지는 것이 두려웠다.그래서 핸드폰 메모장에 기억나는 것을 모두 적어놓았다.아이가 말한 문장, 아이가 만진 것, 아이가 쳐다본 방향까지.퇴근 후, 은재는 도하의 유치원 근처로 갔다.면접 이후 처음이었다.느티나무가 보이는 자리에 섰다.하원 시간이었다.유치원 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하나둘 나왔다.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도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5분이 지나서 도하가 나왔다.파란 가방을 메고 있었다.면접 때 본 가방과 같은 것이었다.도하의 옆에 여자가 있었다.유세린이었다.세린이 도하의 손을 잡고 있었다.은재가 마지막으로 세린을 본 것은 5년 전 법원에서였다.세린의 머리가 길어져 있었다.묶지 않은 머리카락이 등 중간까지 내려와 있었다.세린이 도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입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도하가 고개
면접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은재는 현관문을 닫고 신발을 벗었다.운동화를 신발장에 넣으려다 멈추었다.아침에 깨끗하게 닦아 신고 나간 운동화였다.면접교섭센터 3층까지 이 운동화를 신고 걸어갔고, 도하와 같은 방에서 1시간을 보낼 때 이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바닥에 얼룩 하나 없었다.신발장에 넣었다.주머니에서 파란 색연필을 꺼냈다.책상 위에 놓고 의자에 앉았다.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색연필의 파란색이 또렷했다.가운데 부분에 아이의 지문이 남아 있었다.작은 손가락의 흔적.은재는 그 자리를 손끝으로 만져보았다.살짝 매끄러운 표면 위의 아이 손기름.닦으면 없어질 자국이었다.은재는 닦지 않았다.'아줌마, 이거.'도하가 색연필을 내밀었을 때의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아줌마.엄마가 아니었다.은재를 부르는 말이 아줌마였다.그것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5년 동안 만나지 않은 사람을 엄마라고 부를 아이는 없다.은재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여동생에게도 말했었다.'안 부를 거야. 나를 모르니까.'그 말이 사실이 되었을 뿐이었다.하지만 아이가 색연필을 건넸다.아이의 손에서 은재의 손으로.12색 중에서 아이의 손이 고른 것이 파란색이었다.도하의 유치원 가방이 파란색이었다.아이가 파란색을 좋아하는지, 우연인지, 알 수 없었다.핸드폰이 울렸다.여동생이었다."어떻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