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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유원
“이제 네가 해원호 전체 감사 권한을 갖고 있다는 건 알아. 이번 조사 요청은 취소하면 안 될까?”

나는 정우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6년 동안 아버지가 남긴 재산에는 관심도 없더니 이제 일이 터지니까 내 권한이 무서워졌어? 너무 늦었어.”

정우진이 통지서를 내려놓는 순간, 처음으로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희서야, 이 조사는 계속 진행하면 안 돼.”

“왜? 승진에 영향 갈까 봐?”

“아니.”

정우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말했다.

“이러면 배 전체 직원이 모두 영향을 받아.”

나는 정우진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제야 배에 당신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생각나?”

정우진이 다가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이번 한 번만 내 말을 들어 줘. 세린이는 내가 알아서 정리할게. 가져간 물건도 전부 돌려받을 테니까 조사 요청은 취소해.”

“취소하면? 그다음에는 또 내 도장을 찍으려고?”

그 순간, 정우진의 얼굴이 잿빛으로 굳었다.

“내가 잘못했어.”

정우진이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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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빼앗긴 이름의 주인   제11화

    서류에 최종 도장이 찍히는 순간, 정우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이혼 절차를 모두 마친 뒤, 나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오래된 결혼반지를 빼냈다. 반지 안쪽에는 우리 두 사람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고 오랜 세월 탓에 글자도 조금씩 닳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정우진은 거친 숨을 내쉬며 말했다.“그 반지는... 나한테 주면 안 돼?”그러자 나는 짧게 대답했다.“안 돼.”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반지를 귀금속 매입점에 팔았다. 큰돈은 아니었지마 난 그 돈으로 서지은에게 원피스 한 벌을 사 줬고 선물을 받은 서지은은 금세 눈시울을 붉혔다.“언니, 저 이거 못 받아요.”“네 남편이 해원호 임시 선장 맡은 기념이야.”그러자 서지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남편은 정 선장님이 사고 친 틈을 타서 자기가 그 자리에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게 싫대요.”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누구 자리를 빼앗은 게 아니야. 실력을 인정받아서 맡게 된 거잖아.”얼마 지나지 않아 혜성 해운의 최종 징계 결과가 공지됐다.정우진은 수석 선장 승진 자격이 취소됐고 6개월간 승선이 정지된 채 재교육을 받은 뒤 해원호에서도 전출됐다.차세린 역시 다이아몬드 세트와 부당하게 받은 지원금, 지난 3년간 가로챈 위문품 상당액까지 모두 반환해야 했고 혜성 해운과 진행하던 항만 협력 사업도 전부 중단됐다.정우진을 통해 손에 넣었던 모든 혜택이 결국 차세린이 갚아야 할 빚으로 돌아온 셈이었다.나는 신혼집을 팔고 항구 근처에 아담한 집을 하나 마련했다. 아침이면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는데 예전의 나는 그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다.정우진이 먼바다로 떠나는 날에도,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도 뱃고동이 울릴 때마다 내 마음까지 따라 흔들렸기 때문이다.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뱃고동은 그저 배가 오가며 울리는 소리일 뿐, 더 이상 내 마음을 붙잡아 두지 못했다.더 이상 내 기쁨도 기다림도 괴로움도 그 소리에 매달려 있지 않았다.얼마 전 서지은과 가볍게 술을 마셨는데 서지은은 여전히 주량

  • 빼앗긴 이름의 주인   제10화

    나는 일단 그러겠다고 했다.고작 30일이었다.그동안 정우진은 하루도 빠짐없이 나한테 무언가를 보냈다. 따뜻한 죽과 꽃, 구급상자, 항구에서 산 기념품까지 가득했다. 나는 받은 그대로 전부 돌려보냈다.숙려 기간이 시작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정우진은 호텔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희서야, 그동안 내가 정말 못 할 짓을 했어.”나는 대꾸하지 않고 정우진을 지나쳤다. 그러자 정우진이 곧바로 뒤따라오며 말했다.“예전에는 내가 무사히 돌아오기만 바랐잖아. 지금 이렇게 육지에 돌아와 있는데 나 한 번만 봐 주면 안 돼?”나는 걸음을 멈췄다.“당신이 무사하길 바랐다고 해서 다시 받아 줘야 하는 건 아니야.”그 순간, 정우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정말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랑도 조금씩 닳아 없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얼마나 남았는지조차 헤아릴 수 없게 된다.차세린도 가만히 있지는 않고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차세린은 자신이 항만 홍보 협력업체 관계자일 뿐인데 선장 가족에게 악의적인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함께 올린 사진에는 보석이 보이지 않도록 잘라 내고 퉁퉁 부은 눈만 드러나 있었다.댓글에는 나를 비난하는 글이 이어졌다.[아내라고 마음대로 난리 쳐도 되는 건 아니죠.][협력업체 사람을 저렇게 몰아가는 건 너무하네요.][원양선 선장은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심한데 가족이 발목까지 잡으면 어떡해요.]나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대신 차세린이 내 이름으로 물건을 수령하는 영상 일부를 캡처해 혜성 해운에 보냈다.그날 바로 회사에서 공식 입장문이 올라왔다. 누구의 이름도 직접 밝히지 않았지만 내용은 명확했다.비가족 관계자가 선장 배우자의 명의를 도용해 지원금과 물품을 수령했으며 해당 협력은 중단하고 부당하게 지급된 비용을 전액 환수한다는 내용이었다.차세린이 올린 장문의 글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고 곧 나한테 개인 메시지가 왔다.[한희서 씨, 꼭 저를 죽을 때까지

  • 빼앗긴 이름의 주인   제9화

    정우진은 입술만 몇 번 달싹였다.“저는 이걸 신청하라고 한 적이 없어요.”그러자 담당자가 곧바로 대답했다.“신청 계정은 정우진 선장님의 명의고 인증 번호도 선장님의 개인 휴대폰으로 전송됐습니다.”정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는 정우진을 바라봤다.“그럼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해온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셈이네?”그러자 정우진이 낮게 말했다.“세린이가 그때 지낼 곳이 없다고 해서 잠깐만 도와주려고 했어.”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내 이름으로?”정우진이 고개를 숙였다.“그냥 지원금 몇 번 받는 정도라서 아무도 확인 안 할 줄 알았어.”담당자의 표정이 굳었다.“정우진 선장님, 말씀 조심하셔야 합니다. 가족 지원금은 별도 예산에서 지급되는 돈입니다. 선장님의 개인 돈이 아닙니다.”그제야 정우진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했다.정우진은 나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희서야, 정말 너한테 피해 주려던 건 아니야.”그러자 내가 물었다.“그럼 내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은 있어?”정우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대로 대답하기에는 진실이 너무 초라했기 때문이었다.그때 회의실 문이 다시 열리고 직원과 함께 차세린이 들어왔다.차세린은 정우진을 보자마자 눈시울부터 붉혔다.“우진아, 지원금을 쓰면 안 되는 줄 몰랐어. 네가 신청해도 된다고 해서 한 거잖아.”정우진의 얼굴이 굳었다.“내가 언제 신청해도 된다고 했어?”그러자 차세린이 다급하게 받아쳤다.“한희서 씨는 이런 건 신경도 안 쓴다고 했잖아. 집에서는 네 말이면 다 듣는다고도 했잖아.”그러더니 차세린은 고개를 돌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이제 만족해요? 결국 우진의 앞길 막고 저한테 받은 거 전부 돌려놓으라고 하려는 거잖아요.”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물건은 돌려줘야 하고 돈도 다 갚아야죠.”차세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담당자가 그 자리에서 통보했다.“차세린 씨, 부당하게 수령한 물품과 지원금은 전액 환수가 될 예정입니다. 혜성 해운과의 협력 자

  • 빼앗긴 이름의 주인   제8화

    “차세린이 먼저 나한테 연락한 거야.”그러자 정우진이 곧바로 받아쳤다.“세린이가 울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그러더라. 네가 녹음으로 협박했다고 말이야.”나는 휴대폰을 꺼내 카페에서 녹음한 내용을 틀었다.차세린의 목소리로 정우진이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정우진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이어 자신은 아무것도 안 해도 정우진의 마음을 얻었다는 대목이 나오자 정우진이 낮게 말했다.“꺼.”나는 그대로 녹음을 껐고 정우진은 소파에 앉은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나는 다시 짐을 챙겼다. 그러다가 정우진이 갑자기 물었다.“어디 가려고?”“나가려고.”“여기는 우리 집이잖아.”“곧 아니게 될 거야.”정우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한희서, 차세린은 내가 정리한다고 했잖아. 대체 뭘 더 원하는 거야?”나는 여행 가방 지퍼를 끝까지 잠갔다.“우진 씨는 차세린을 못 정리해.”“할 수 있어.”“못 해. 못 놓잖아.”그 순간 정우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마침 휴대폰까지 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은 차세린이었다.정우진은 전화를 받지 않은 채 화면만 바라봤다. 전화가 끊겼다가 다시 울렸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나는 여행 가방을 끌고 현관으로 향했고 그제야 정우진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봐. 나 전화도 안 받았잖아.”나는 현관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이미 늦었어.”그날 나는 항구 근처의 호텔로 몸을 옮겼다.혜성 해운의 조사가 시작된 지 사흘째 되는 날, 담당자가 나보고 회사로 와 달라고 연락했다.회의실 테이블 위에는 마르세유항 현지 대리점의 회신과 보급 내역서, 물품 수령 영상까지 모두 놓여 있었다.영상 속의 차세린은 마스크를 쓴 채 물건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서명란에 적은 이름은 차세린이 아니었다.[한희서.]옆에 있던 직원이 가족 확인 도장을 건네주자 차세린은 웃으며 말했다.“정 선장님이 다 말씀해 두셨어요. 사모님도 괜찮다고 하셨대요.”담당자가 다른 서류 한 장을 넘기며 말했다.“

  • 빼앗긴 이름의 주인   제7화

    “이제 네가 해원호 전체 감사 권한을 갖고 있다는 건 알아. 이번 조사 요청은 취소하면 안 될까?”나는 정우진을 바라보며 대답했다.“6년 동안 아버지가 남긴 재산에는 관심도 없더니 이제 일이 터지니까 내 권한이 무서워졌어? 너무 늦었어.”정우진이 통지서를 내려놓는 순간, 처음으로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희서야, 이 조사는 계속 진행하면 안 돼.”“왜? 승진에 영향 갈까 봐?”“아니.”정우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말했다.“이러면 배 전체 직원이 모두 영향을 받아.”나는 정우진을 똑바로 바라봤다.“이제야 배에 당신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생각나?”정우진이 다가와 내 어깨를 붙잡았다.“이번 한 번만 내 말을 들어 줘. 세린이는 내가 알아서 정리할게. 가져간 물건도 전부 돌려받을 테니까 조사 요청은 취소해.”“취소하면? 그다음에는 또 내 도장을 찍으려고?”그 순간, 정우진의 얼굴이 잿빛으로 굳었다.“내가 잘못했어.”정우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나를 상처 입힌 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 손에 자신을 두렵게 만들 무언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며칠 뒤 차세린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장소는 또다시 해온 아파트 1층 카페였다.차세린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나 귀걸이는 하지 않았지만 손목에는 여전히 그 파도 물결 모양의 팔찌를 차고 있었다.“사모님, 생각보다 대단하시네요.”나는 맞은편에 앉으며 대답했다.“차세린 씨도 생각보다 대담하네요.”차세린이 피식 웃었다.“우진 씨가 다 말했어요?”“뭘요?”차세린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우진이는 곧 수석 선장으로 승진해요. 사모님이 지금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면 망가지는 건 우진의 앞날만이 아니에요. 사모님의 인생도 같이 망가져요.”“제 인생은 이미 정우진 때문에 충분히 망가졌어요.”차세린의 표정이 굳었다.“정말 이혼할 생각이에요?”“네.”차세린은 한동안 나를 빤히 바라봤다.“그러면 뭘 원하는데요? 돈? 집? 아니면 우진이가

  • 빼앗긴 이름의 주인   제6화

    그날 밤, 나는 짐을 챙겨 손님방으로 옮겼다.정우진이 문 앞에 서서 말했다.“희서야, 방까지 따로 쓰지 마.”하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짐을 정리했다.“당신은 1년 중 10개월 동안 바다에 있잖아. 원래도 거의 혼자 잤어.”정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한참 뒤에야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했다.“다이아몬드 세트는 세린이한테 돌려받을게.”“이미 더러워졌어.”“그러면 새로 사 줄게.”“필요 없어.”정우진이 방 안으로 들어와 내 손에 들린 이불 커버를 가져가려 했지만 나는 몸을 피했다.그러자 정우진의 얼굴에 짜증이 번졌다.“대체 나한테 뭘 어쩌라는 거야? 나도 많이 양보했잖아.”나는 담담하게 말했다.“이혼해 줘.”정우진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네가 감사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6년을 같이 산 부부야. 꼭 서로 이렇게까지 해야겠어?”나는 베개를 제자리에 놓았다.“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지 마.”정우진은 내가 여전히 홧김에 고집을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코웃음을 쳤다.“현실이 이런데 네가 잠깐 화났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어?”나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내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깨달은 정우진도 더는 설득하지 않고 혼자 배로 돌아갔다.그날 연회 이후로 계속 마음에 걸렸던 모양인지 이틀 뒤 서지은이 나를 따로 만나자고 했다.술 한잔하자며 불러냈지만 이번에는 서지은은 정작 술을 마시지 않았고 대신 USB 하나를 내 앞으로 밀어 놓았다.“언니, 계속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드리는 게 맞을 것 같아요.”“뭔데?”“마르세유항 보급품 인수인계 기록이에요. 그 수령 승인서가 제 남편의 손을 거쳤거든요. 그때 뭔가 이상해서 스캔본을 따로 남겨 뒀대요.”서지은은 컵을 꼭 쥐며 말을 이었다.“오늘 정 선장님이 제 남편을 따로 불렀대요. 배에는 쓸데없이 입이 가벼운 사람이 필요 없다고 했대요.”나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괜히 너희까지 피해 보게 했네.”서지은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언니 때문이 아니에요. 정 선장님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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