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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도발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그녀의 도발에 나는 완전히 마음을 접었다

بواسطة:  꽃냥이مكتمل
لغة: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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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송지현과 결혼한 지 8년. 그녀가 집으로 데려온 남자는 어느덧 아흔아홉 명에 달했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백 번째의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던 그가 송지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누나, 이 사람이 그 쓸모없다는 남편이에요?” 송지현은 의자 등받이에 툭 기댄 채 나른하게 한마디 던졌다. “그래.” 젊은 남자가 내게 다가와 볼을 톡톡 치더니 비웃듯 말했다. “오늘 밤 똑똑히 들어봐요. 건강한 남자가 침대에서 여자를 제대로 만족시키는 법이 뭔지!” 그날 밤, 나는 거실에 갇힌 채 밤새도록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들을 견뎌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송지현은 평소처럼 당연하다는 듯 내게 아침을 만들어 오라고 시켰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녀는 잊은 모양이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그저 계약 결혼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오늘은 그 계약이 끝나는 날까지 고작 사흘을 남겨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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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أول

제1화

내가 거절하자 송지현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 8년 동안 내가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송지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고성준, 어제 충격이라도 받은 거야? 머리가 어떻게 됐어?”

나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내 시선 때문에 송지현이 짜증스럽게 쏘아붙였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징그럽게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 짜증 나게!”

말을 마친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집사를 불러 아침을 준비하라고 시켰다.

그때 어제 그 젊은 남자가 실실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형님, 어제 들을 만했어요? 자극 좀 됐나?”

남자가 한마디 더 거들려 하자 송지현이 남자의 팔을 확 낚아채며 말렸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씻고 아침이나 먹어.”

남자는 나를 향해 눈썹을 찡긋거렸다. 눈빛에는 우월감과 승리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식탁에 앉은 송지현과 그 남자는 깨가 쏟아지게 굴며 아침을 먹었다.

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내 팔을 툭 쳤다.

고개를 들어 보니 송지현이 찌푸린 얼굴로 옆에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의아해하며 바라보자 송지현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나는 잠시 망설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생각 중이었어.”

그 말을 들은 송지현이 혀를 쯧 차며 코웃음을 쳤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집안 청소하고 밥하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있기나 해?”

나를 무시하는 말을 너무나 당연하게 내뱉는 그녀를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일지 않았다. 이런 언사에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진 모양이었다.

결혼 후 8년 동안 나는 송지현을 수발들기 위해 개인적인 삶을 전부 포기하다시피 한 채 그녀 중심으로 살아왔다. 꿈으로 가득 차 있던 옛날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8년 전, 어머니가 위독하셔서 급하게 목돈이 필요했다. 속수무책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던 내 앞에 송지현이 나타났다.

그녀는 내게 10억을 주겠다고 했다.

단, 조건은 계약 결혼이었다. 송씨 가문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데 협조할 것.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지난 8년 동안 나는 그녀가 수많은 남자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며 견뎌냈다.

어느 날, 송지현이 술에 취해 지나치게 진지한 눈빛으로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고성준, 나는 너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어. 그러니까 나한테 쓸데없는 마음 같은 거 품지 마.”

나는 줄곧 송지현이라는 여자가 그저 누군가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작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첫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어제 그녀가 집으로 데려온 남자는 세상을 떠난 그 첫사랑과 이목구비가 절반쯤 닮아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 아침 송지현이 그 남자를 식탁에 앉혀 두고 애정 행각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놀라기는커녕, 도리어 언제 집을 나가는 게 가장 깔끔할지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송지현은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댔다.

그제야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나 나가서 일이라도 구해 볼까 해.”

나는 한없이 담담한 눈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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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내가 거절하자 송지현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지난 8년 동안 내가 그녀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송지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고성준, 어제 충격이라도 받은 거야? 머리가 어떻게 됐어?”나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내 시선 때문에 송지현이 짜증스럽게 쏘아붙였다.“하기 싫으면 하지 마! 징그럽게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 짜증 나게!”말을 마친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집사를 불러 아침을 준비하라고 시켰다.그때 어제 그 젊은 남자가 실실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형님, 어제 들을 만했어요? 자극 좀 됐나?”남자가 한마디 더 거들려 하자 송지현이 남자의 팔을 확 낚아채며 말렸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씻고 아침이나 먹어.”남자는 나를 향해 눈썹을 찡긋거렸다. 눈빛에는 우월감과 승리감이 넘쳐흐르고 있었다.식탁에 앉은 송지현과 그 남자는 깨가 쏟아지게 굴며 아침을 먹었다.나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내 팔을 툭 쳤다.고개를 들어 보니 송지현이 찌푸린 얼굴로 옆에 서 있었다.“무슨 일이야?”내가 의아해하며 바라보자 송지현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나는 잠시 망설이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털어놓았다.“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야 할지 생각 중이었어.”그 말을 들은 송지현이 혀를 쯧 차며 코웃음을 쳤다.“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집안 청소하고 밥하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있기나 해?”나를 무시하는 말을 너무나 당연하게 내뱉는 그녀를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의 변화가 일지 않았다. 이런 언사에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진 모양이었다.결혼 후 8년 동안 나는 송지현을 수발들기 위해 개인적인 삶을 전부 포기하다시피 한 채 그녀 중심으로 살아왔다. 꿈으로 가득 차 있던 옛날의 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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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송지현이 비웃음을 터뜨렸다.“너 같은 수준이면 우리 송현 그룹 청소부로 들어가면 딱 맞겠네. 당장 갓 졸업한 지운이 반도 못 따라오면서.”내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 한지운이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지현 누나, 이 옷 어때요? 나랑 잘 어울려요?”한지운이 입고 있는 건 송지현이 해마다 죽은 첫사랑을 위해 사 모으던 옷이었다.얼마 전 집안 청소를 하다 내가 실수로 손을 댔다는 이유만으로 송지현에게 따귀까지 맞게 했던 바로 그 옷.하지만 송지현은 한지운을 한참이나 지그시 바라보더니 눈가에 흡족한 기색을 가득 띤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예뻐. 드레스룸에 있는 옷들 다 마음대로 입어.”한지운은 신이 나서 몸을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일부러 나를 들으라는 듯 쪼르르 다가와 약을 올렸다.“형님, 나 어때요? 잘 어울려요?”나는 그저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응, 잘 어울리네.”예상치 못한 내 반응에 한지운은 순간 흠칫했다.나는 그가 무슨 말을 더 꺼내기도 전에 미련 없이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사흘 뒤면 이 집을 완전히 떠날 수 있으니 이제 서서히 짐을 챙길 때였다....침대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송지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지운이 학교 가야 하니까 차로 좀 태워다 줘.”나는 미간을 찌푸렸다.“집에 전담 기사 있잖아.”오늘 하루에만 내게 벌써 두 번이나 거절을 당하자 송지현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쳤다.“이제 아주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토부터 달지? 부려 먹기가 언제부터 이렇게 힘들었어?”그녀가 더 이상 짜증을 퍼붓기 전에 나는 순순히 알겠다고 대답을 던졌다.그제야 송지현은 만족스럽다는 듯 툭 내뱉었다.“진작 순순히 내 말을 들을 것이지.”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설 때 송지현과 한지운은 이미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서둘러! 지운이 시험 보러 가야 하니까 시간 지체하지 말고.”한지운은 낄낄 웃으며 나를 향해 은근슬쩍 비아냥거렸다.“형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두 사람은 헤어지기 아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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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나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송지현과 결혼해서 사는 건 조금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이다.의사가 나를 수술실로 밀고 들어가기 직전, 송지현이 한지운의 손을 잡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좀 어때?”그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운전을 어떻게 한 거야? 그나마 지운이가 무사해서 다행이지.”옆에 있던 한지운이 억울하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다 나 때문에 형님이 학교까지 태워다 주다가 발생한 일이에요.”그러자 송지현은 황급히 그를 품에 안고 온갖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기 시작했다.“너 때문이긴 왜 너 때문이야. 너도 다쳤잖아. 내가 맛있는 거 사 줄 테니까 야식 먹으러 가자.”이때 의사가 찾아와 수술 준비가 끝났다고 알려 왔다.송지현은 그제야 조금 의외라는 듯 나를 한 번 바라보았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운이 아프다며 응석을 부리자 그녀의 신경은 다시 온통 그쪽으로 쏠려 버렸다.수술은 다행히 순조롭게 잘 끝났다.간호사가 보호자에게 연락은 했냐고 물어왔다.나는 잠깐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알릴 필요 없어요. 저 보호자 없습니다.”...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간병인을 불렀다.송지현은 한지운을 데리고 이곳저곳 놀러 다니기 바빴다.한지운은 보란 듯이 그들이 놀러 간 사진을 나에게 매일같이 보내왔다.바닷가며 스노클링 포인트, 별빛처럼 반짝이는 바닷속 풍경을 배경으로 온갖 명소마다 입을 맞추고 있는 사진들이었다.그 사진들을 보고도 내 마음은 털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요즘 나는 친구와 함께 바이오 연구 개발 스튜디오를 차릴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지난 8년 동안,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친구의 제품 개발을 꾸준히 도와주곤 했다.친구는 진작부터 같이 사업을 시작하자고 졸랐지만 나는 매번 거절해 왔었다.주변 친구들은 고작 계약서 하나 때문에 8년이라는 금쪽같은 세월을 헛되이 날렸다며 아까워했다.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그때의 나에게는 어머니를 살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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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송지현이 훠궈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건 송씨 가문의 체통을 깎아 먹는 짓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체통을 깎아 먹는다며 금지당한 일은 훠궈를 먹는 것 말고도 수두룩했다.공공장소에서는 크게 웃어서도 큰 소리로 말해서도 안 되었다.지난 8년 동안 나는 마치 감정이라곤 없는 로봇처럼 살아왔던 것 같다.이제서야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실감이 나자 나는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훠궈를 먹고 집에 돌아오니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송지현은 차갑게 식은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었다.오늘 그녀는 십여 차례나 전화를 걸어왔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받지 않았다.“어디 갔었어?”나는 신발을 벗고 손을 깨끗이 씻은 뒤에야 무덤덤하게 답했다.“친구 만나서 밥 먹었어.”송지현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몸에 밴 훠궈 냄새를 맡고는 얼굴을 더 험악하게 구겼다.“내가 훠궈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 냄새 이렇게 풍기고 다닐 거야?”나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곤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한지운이 먹을 땐 괜찮고?”송지현의 얼굴에 노골적인 불쾌감이 감돌았다.“너랑 지운이랑 같아? 그리고 지운이는 송씨 가문 사람도 아니잖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은 아니지만 조만간 그렇게 되겠지.한지운이 그녀에게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는 지나가는 개가 봐도 알 정도였으니까....허재윤은 계약서를 쓰자마자 다음 날 바로 스튜디오 일로 출국했다.그사이 나는 변호사를 찾아가 이혼 합의서를 작성했다.재산 분할 포기라는 글자를 확인하고는 망설임 없이 맨 아래에 내 이름을 사인했다.바로 그때, 한지운에게서 동영상 하나가 날아왔다.영상 속에는 화려하게 꾸며진 호텔 연회장이 담겨 있었다.무대 위 간판에는 ‘송지현과 한지운의 약혼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송지현은 호텔 지배인에게 약혼식 당일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이어 한지운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제가 약혼하고 싶다고 한마디했을 뿐인데 누나는 세상 사람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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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비행기는 쌀쌀한 M국 땅에 착륙했다.나는 옷깃을 바짝 여미며 저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허재윤을 발견했다.다가서자마자 허재윤은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과거 따위 훌훌 털어버린 걸 축하한다!”나는 녀석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곧이어 허재윤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가자. 스튜디오에 처리할 일이 산더미다.”그러고는 말을 이었다.“아, 맞다. 이쪽은 내가 새로 뽑은 네 비서, 곽서연 씨.”그는 뒤에 서 있던 여자애를 소개해 주었다.가볍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나는 쉬지도 못하고 곧장 스튜디오로 끌려갔다.허재윤을 만난 그 순간부터 내 일상은 미친 듯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첫날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야 자취방에 겨우 들어왔고 다음 날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다시 집을 나섰다.그렇게 일주일 내내 집과 스튜디오만 오가는 강행군이 이어졌다.마침내 스튜디오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개업식이 열리던 날, 몸은 비명을 지를 만큼 피곤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성취감만큼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것이었다.송씨 가문에 있을 때는 매일 송지현의 눈치만 보며 살았기에 나만의 시간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내 꿈을 펼칠 시간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내가 활기찬 새출발로 희열을 느끼고 있을 무렵, 막 집에 돌아온 송지현의 상황은 완전히 딴판이었다.시간을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내가 전화를 끊어 버리자 송지현은 문득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다시 전화를 걸려던 찰나, 옆에 있던 한지운이 약혼식이 시작된다며 그녀를 불렀다.송지현은 하는 수 없이 휴대폰을 집어넣었다.약혼식이 끝나기 무섭게 한지운은 여행을 가자며 떼를 썼다.가슴속 깊이 묻어둔 그 사람과 꼭 닮은 한지운의 얼굴을 보자 송지현은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그길로 비행기표를 끊어 그와 함께 해외로 떠났다.그리고 일주일 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현관문을 열며 습관처럼 내 이름을 불렀다.하지만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송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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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송지현은 계약서에 적힌 종료 날짜를 확인하자마자, 그 무렵부터 달라졌던 내 태도가 문득 떠올랐다.지난 8년 동안 자기를 향했던 내 모든 정성이 고작 이 계약서 한 장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도저히 믿을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고성준, 내 허락 없이는 나한테서 벗어날 생각 따위 꿈도 꾸지 마.”송지현은 휴대폰을 낚아채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당장 내 행적을 쫓아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라는 지시와 함께 말이다....송지현이 사람을 시켜서 날 찾고 있다는 사실을 먼 M국에 있는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그 시각 나는 곽서연과 신제품 데이터 실적을 검토하는 중이었다.오랫동안 사회와 단절되어 살았던 탓에 처음엔 조금 겉돌기도 했지만 몰아치는 업무량에 치이다 보니 어색함 따위는 느낄 겨를도 없었다.며칠 전 우리 스튜디오가 한 스킨케어 브랜드의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따내는 바람에 나는 매일 곽서연 및 팀원들과 함께 야근을 이어가고 있었다.그녀와 막 한참을 토론한 끝에 결론을 도출해 냈을 즈음, 내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송씨 가문에서 일하던 도우미 중 한 명이었다.내가 집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기도 했다.그는 송지현이 요즘 매일같이 싸늘한 얼굴로 퇴근한다며, 집안 도우미들이 혹시나 불똥이 튈까 봐 숨조차 크게 못 쉬고 있다고 전했다.셰프가 만든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다며 통 먹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송지현이 이틀 동안 내 행적을 샅샅이 뒤지다가 결국 찾지 못하자 깔끔하게 포기해 버리고, 대신 한지운을 집으로 들어오게 했다는 소식도 덧붙였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내 심장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처음 송지현이 사람을 시켜 날 찾았던 건 내가 갑자기 사라지는 바람에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해서였을 뿐이다.이틀이나 지났으니 내 존재 따위는 이미 그 여자 머릿속에서 말끔히 잊혔을 것이 당연했다.나는 송지현에 대한 소식을 그저 남 얘기 듣듯 흘려들었다.하지만 내가 미처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나와 통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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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하지만 송지현은 잊고 있었다. 내가 떠나던 날이 바로 그녀와 한지운의 약혼식이 있던 날이라는 사실을.게다가 애초에 계약서 한 장으로 겨우 유지되던 관계였는데 내가 이제 와서 그녀가 누구와 결혼하든 신경이나 쓸까.그날 이후, 인터넷은 송지현과 한지운의 결혼식 소식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한지운은 이 화제성을 틈타 개인 SNS 계정을 만들고 송지현과의 결혼 준비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했다.허재윤이 이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나는 들고 있던 자료를 내려놓으며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너 요즘 그렇게 한가하냐?”허재윤은 싱글벙글 웃으며 대꾸했다.“재밌는 구경거리가 있길래 같이 좀 보자고 가져온 거지.”나는 녀석의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영상을 슬쩍 흘겨보곤 시선을 돌렸다.“송지현이 저 녀석을 유독 끔찍이 챙기긴 하지.”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허재윤은 재미없다는 듯 혀를 쯧 차더니 나가기 직전 슬그머니 물었다.“근데 너 그 여자랑 이혼은 깔끔하게 끝낸 거 맞냐?”순간 내 손길이 툭 멈추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씁쓸하게 말했다.“방금 변호사한테 연락이 왔는데 송지현이 이혼을 거부하고 있대.”“그 여자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일단 이번 프로젝트 마치고 나면 직접 나가서 해결하려고.”“송지현 그 여자, 너 안 놓아주는 거 아니냐?”허재윤은 그 말을 남기곤 쪼르르 도망쳐 버렸다.나 역시 잠시나마 그런 이유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만 이내 스스로 그 가능성을 잘라냈다.송지현은 지극히 이기적인 사업가일 뿐이었다.내 존재가 자신의 삶을 편하게 만들어 주었기에 돈이나 어떤 조건을 제시해서라도 나를 도로 데려오려 한 것뿐이었다.하지만 내 거절로 체면을 구긴 송지현의 자존심은 나한테 또다시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다.한지운과의 결혼 발표 역시 나를 협박해 돌아오게 만들려는 수작에 불과했다.하지만 나는 더 이상 예전의 고성준이 아니었다. 이런 짓거리 따위는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모든 업무를 끝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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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네티즌들의 호기심이 순간 폭발했다.다들 그 댓글 아래로 몰려들어 자세한 내막을 밝히라며 앞다투어 글을 남겼다.그 네티즌은 나와 송지현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기다렸다는 듯 모조리 털어놓았다.이 폭로는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를 도배했다.분노한 사람들은 그대로 한지운의 계정으로 몰려가 정말 남의 자리를 꿰찬 상간남이 맞냐며 맹공을 퍼부었다.사태가 커지자 한지운은 그날 바로 영상 하나를 올려 대응했다.영상 속 한지운은 붉어진 눈시울로, 제발 송지현을 돌려달라며 자기들의 사랑을 갈라놓지 말아 달라고 내게 빌다시피 하고 있었다.네티즌들의 핵심 질문에는 쏙 빠져나간 채 철저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것이었다.그 간교한 말장난에 낚인 수많은 네티즌은 도리어 나를 두 사람 사이를 방해하는 뻔뻔한 불륜남으로 오해하기 시작했다.한지운의 기막힌 언론플레이에 속으로 기가 차 있던 그때, 송지현이 본인 계정으로 영상 하나를 게시했다. 자신이 바람을 피운 게 맞다며 정면으로 인정한 것이다.그녀의 이 한 방으로 한지운이 상간남이라는 사실에 완벽하게 쐐기를 박았다.방금 전까지 거짓 눈물에 속았던 네티즌들은 배신감에 휩싸여 한지운을 향해 거세게 비난을 퍼부었다.[남의 가정 파탄 낸 주제에 어디서 피해자 코스프레야?][다 큰 사내놈이 상간남 짓이나 하고 앉아 있다니, 진짜 역겹다!]한지운은 송지현이 식장에서 파혼을 선언한 것도 모자라, 외도 사실까지 대외적으로 인정해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는 계속해서 송지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뿐이었다.한지운이 송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했을 때, 집사는 한참 그의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지현 누나는요?”그는 집사의 덜미를 낚아채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집사는 그의 손을 서늘하게 털어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대표님은 집에 안 계십니다. 짐은 다 싸두었으니 가지고 나가시지요.”한지운은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는 듯 황당해서 집사를 노려보았다.“대표님께서 한지운 씨더러 당장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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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나 이제야 내가 진작부터 널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 그러니까 나랑 같이 돌아가자.”나는 의아하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송지현이 막 입을 열어 뭐라 더 말하려던 찰나, 내 뒤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아직 안 퇴근했어요? 이따 같이 저녁 먹을래요?”곽서연이 다가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이분은 누구예요?”나를 바라보는 송지현의 눈빛에는 미세한 기대가 서려 있었다.하지만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그 남자 여럿이랑 바람피운 내 전처예요.”허재윤에게 나와 송지현의 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던 곽서연은 멸시 어린 눈빛으로 송지현을 노려보았다.“후회돼서 다시 시작하자고 빌러 온 거예요?”곽서연의 말투에 노골적인 경멸이 묻어나자 송지현의 얼굴이 어둡게 일그러졌다.“우리 둘 사이의 일인데 그쪽이 무슨 상관이죠?”나는 피식 웃고는 송지현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곽서연을 돌아보며 말했다.“어디 가서 먹고 싶어요? 마침 오늘 재윤이도 없는데.”곽서연은 잠시 머리를 굴리더니 기다렸다는 듯 넙죽 받아서 말했다.“회 먹고 싶어요!”나는 곽서연을 향해 눈썹을 쓱 올려 보이고는 먼저 앞장서서 걸어갔다.등 뒤에서 송지현이 끊임없이 내 이름을 불러댔고 그 목소리에는 점차 젖은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하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식사 자리에서 곽서연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와 송지현 사이에 있었던 일을 물어왔다.나는 음식을 삼키며 지난 일들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이야기가 끝에 다다르자 곽서연은 얼마나 놀랐는지 집어 들었던 음식마저 잊은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이내 그녀는 술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괜찮아요. 다음엔 훨씬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진지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한 그녀의 눈빛을 보니 나는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던 송지현이 이렇게까지 구질구질하게 덤벼들 줄은 정말 몰랐다.다음 날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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