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03화

Author: 송진
성유리의 모습은 아주 평온했다.

사실, 박한빈은 이때 성유리가 기억을 잃은 것이 어쩌면 더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예전의 성유리였다면 사하나에 대한 감정 때문에 지금처럼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었다.

“너는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

박한빈이 성유리에게 되물었다.

성유리는 그런 그와 잠시 눈을 맞춘 후,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거리의 네온사인이 성유리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박한빈은 성유리의 미세하게 찡그려진 미간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성유리의 손을 본능적으로 더 세게 잡아줬다.

“만약 제 생각이 맞다면... 박한빈 씨는 지금 복수를 계획하고 계시겠죠?”

순간, 성유리가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록 성유리가 과거의 일을 잊었고 박한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한빈의 계획은 바로 성유리의 추측대로였다.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성유리의 대답에 박한빈은 조금 놀랐다.

“하지만 박한빈 씨는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겠죠?”

성유리가 다시 박한빈에게 물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어.”

“네.”

성유리가 말을 마친 후에도 박한빈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확실히 탐구하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

박한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에 성유리 또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사실 저도 궁금해요.”

“뭐가 궁금한데?”

“제가 기억을 잃기 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

...

길이 막히는 바람에 박한빈과 성유리가 도착했을 때, 사씨 가문 사람들은 이미 다 도착해 있었다.

박한빈은 도착하고 나서야 그 장소에 연정우도 초청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모습은 마치 사씨 가문에서 태어난 친아들처럼 보였다.

그리고 병원에서 성유리와 연정우가 만난 일이 떠오르면서 사씨 가문 사람들도 아마 성유리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거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04화

    박한빈은 평소답지 않게 아주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의심스럽고 불안하게 만들었다.그러나 사민혁과 류수미는 훨씬 차분했는데 박한빈을 따라 술잔을 들어 올리며 대답했다.“괜찮습니다. 사람만 무사히 찾았으면 됐죠.”“많이 감사드립니다, 사 대표님.”두 사람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고 잔을 비운 후, 박한빈은 다시 성유리를 힐끔 쳐다보았다.한편, 성유리는 아주 집중한 얼굴로 사씨 부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떠오른 듯, 혹은 그냥 열심히 그 무언가를 생각해 내려고 애를 쓰듯 말이다.성유리의 이런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류수미는 몹시 불안해 보였다.그녀는 술잔을 쥐고 잠시 망설인 후, 성유리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그럼 그동안 왜 연락이 없었니? 박 대표님이 여기서 널 얼마나 찾고 있었는지 알아? 네가 연락이 안 된 게... 혹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니?”류수미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그녀는 성유리의 표정을 살피며 뭔가를 알아내려고 했다. 비록 성유리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은 이미 연정우에게서 들었지만 그 이야기는 아직도 불확실했다.류수미는 사건의 진위를 확신할 수 없었고 더 걱정스러웠던 건 성유리가 사실 연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성유리는 류수미에게 하나도 숨기지 않고 말했다.“저는 과거의 일들을 다 잊었어요. 만약 박한빈 씨가 저를 찾아주지 않았다면 지금도 제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을 거예요.”“그렇지만 이 도시에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요즘... 몇 가지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어요.”그 말에 류수미의 낯빛은 더욱 창백해졌다.“뭐가 기억난 건데?”류수미의 그 다급하고 혼란스러운 목소리는 무언가를 드러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기 남편에게 시선을 돌렸다.사민혁도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손을 뻗어 류수미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저도 잘 모르겠어요.”성유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억이 나지 않아 고통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그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05화

    박한빈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먼저 사민혁에게 물었다.“사 대표님, 오늘 저희를 부른 이유가 단지 저희를 걱정하기 위해서만은 아니겠죠?”그의 말에 사민혁은 잠시 멈칫하다가 입술을 오므렸다.“저는 이미 지화 그룹의 상황을 다 알고 있습니다.”박한빈이 곤란해하는 사민혁을 보며 계속 말했다.“비록 약육강식, 이 사회의 법칙은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하지만 대표님, 혹시 주변의 협력자들을 신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이 말에 연정우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 그러나 그는 곧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박한빈에게 물었다.“박 표님, 지금 그게 무슨 의도로 하시는 말씀이시죠? 저희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건가요?”“갈라놓다니요?”박한빈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천천히 대답했다.“연정우 씨는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한 일들, 제가 갈라놓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엉망이 돼버렸을 텐데요.”연정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무슨 반박이라도 더 하려던 참에, 박한빈은 다시 사민혁을 보며 말했다.“사 대표님께서는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시겠죠? 하지만 내일 신문을 보면 아실 겁니다. 사실, 당신들이 전에 인수한 지화 그룹의 주식은... 생각하시는 만큼 가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두 달 전, 저는 지화 그룹 대부분을 이미 이전했습니다. 사업이 너무 오래되다 보니 자신이 공로자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회사에서 먹고 살고 있었죠.”“지화 그룹 같은 대기업은 그런 사람들이 발목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새 회사를 설립하고 지화 그룹의 이익을 그곳으로 이전했죠.”“물론, 전부는 아닙니다.”박한빈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남은 것들은... 아마 사 대표님과 연 대표님이 앞으로 많이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박한빈의 말은 간단해 보였지만 그 무게는 그 짧은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방식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수단이었다.만약 이게 다 우연이라면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06화

    극심한 통증이 배에서 전해지자 연정우는 너무 아파 박한빈 앞에 무릎을 꿇을 뻔했다.그가 이를 악물고 머리를 들었을 때, 박한빈은 이미 일어나서 성유리를 자신의 뒤에 세워둔 상태였다.박한빈의 날카로운 시선은 연정우를 향해 있었는데 눈빛에는 경멸의 감정과 결국 자기가 이겼다는 당당함이 담겨 있었다.“지금 연정우 씨가 찾아가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닌 사 대표님입니다. 이 일들이 어떻게 된 건지, 대표님께 어디 한번 잘 설명해 보시죠.”박한빈이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며 사민혁을 힐끔 쳐다봤다.한편, 사민혁의 얼굴은 이미 잿빛으로 변했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듯 가슴은 격렬하게 오르내렸다.나이도 있는 탓에 사민혁은 마치 곧 실신할 것 같았다.하지만 박한빈은 더 이상 그에게 신경 쓰지 않고 성유리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성유리는 박한빈을 따라가는 와중에 연정우를 잠깐 쳐다봤다.연정우는 여전히 이를 악문 채 성유리를 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그 눈빛... 성유리는 그것이 낯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눈빛이었다.성유리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민혁과 류수미를 쳐다봤다.그러나 그녀가 자세히 보기도 전에, 박한빈은 이미 성유리를 데리고 그곳을 나섰다.결국, 성유리가 참지 못하고 먼저 박한빈에게 물었다.“저 안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걱정 마. 내가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알렸어. 사민혁 씨에게 정말로 일이 생기면 병원에 데려갈 사람들이 있을 거야.”그의 말에 성유리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리고는 무언가 떠오른 듯 박한빈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그래서... 이게 박한빈 씨가 오늘 밤 류수미 씨와 한 약속의 목적이었어요?”박한빈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되물었다.“너도 잘했어. 방금 사민혁 씨를 속인 거야? 아니면 정말로 뭔가 떠오른 거야?”“음...”“음이 뭐야? 진짜 뭔가 기억났어?”성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요. 전 그냥 그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이제 너도 알았겠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07화

    잠깐 흐르던 적막을 깨며 성유리가 먼저 물었다.“아까 너 밥도 별로 안 먹었잖아. 그래서 너랑 같이 매운탕 먹으러 가려고.”“매운탕?”성유리는 갑자기 웬 매운탕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쳐다봤다.마침 그때, 박한빈이 성유리를 손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응. 예전에 정말 좋아했잖아. 가고 싶어?”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옅은 미소가 떠 있었는데 아까 연정우와 사씨 가문과 대화할 때의 차가운 표정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하지만 이런 모습은 성유리에게 낯설지 않았다.이런저런 생각이 든 성유리가 진지한 얼굴로 박한빈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쳐다봤다.“응?”성유리는 그제야 박한빈이 자신의 의견을 묻고 있다는 것이 떠올라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차는 그렇게 다른 길로 들어서더니 마지막엔 어느 한 쇼핑몰 앞에 멈춰 섰다.오늘은 마침 주말이라 쇼핑몰 안은 꽤 사람이 많았다. 그 바람에 박한빈과 성유리가 매운탕 집에 도착했을 때, 사람이 너무 많아 대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직원의 말에 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그는 고개를 돌려 성유리에게 다른 집으로 갈지 물어보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려 앞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그곳엔 아늑한 분위기의 케이크 가게가 있었는데 입구에는 귀여운 모양의 솜사탕이 한 줄로 진열되어 있었다.“솜사탕 먹고 싶어?”박한빈이 묻자 성유리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곧 자신이 이제 그런 걸 먹을 나이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다시 고개를 저으려 했다.그러나 성유리가 말릴 틈도 없이 박한빈은 이미 케이크 가게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성유리는 멍한 상태로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잠시 후, 박한빈은 손에 솜사탕 하나를 든 채로 성유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는데 핑크색과 귀여운 곰 모양은 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그가 걸어오는 동안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몽땅 박한빈에게 집중되었지만 그는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 듯 자신 있게 성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08화

    박한빈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그날 밤, 사민혁은 정말로 병원에 실려 갔다.사실 그들의 작전이 실패할 것을 사민혁은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이렇게 감정적으로 흔들리게 만든 것은 바로 믿었던 연정우의 배신이었다.사민혁이 연정우를 얼마나 신뢰했는지는 주변 사람들 거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그는 이미 아내와 몰래 상의했었다. 앞으로 두 사람이 떠난 후, 남은 재산을 연정우에게 넘기겠다고.어차피 자식도 먼저 떠나보냈으니 자신이 그토록 믿는 연정우에게 남겨주는 것이 나쁜 선택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결국 사하나는 떠났고 만약 연정우가 아니었으면 그들이 그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기에 그들에게 연정우는 더 이상 그들의 아들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민혁은 자신이 그렇게 신뢰한 사람이 결국 뒤에서 칼을 꽂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사민혁이 병상에 누워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류수미는 모든 분노와 불만을 연정우에게 쏟아냈다.“어떻게 네가 이럴 수 있어? 나랑 우리 남편이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그녀는 거의 목이 터져라 외쳤다.그때 류수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회사는 이제 완전히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다.모든 것이 마치 천천히 기울어지는 빌딩 같았고 그들은 곧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그럼에도 류수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어머님,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연정우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오해? 지금도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 모든 일, 네가 다 계획한 거잖아! 항공권도 네가 예매했지?”“하지만 저는 한 번도 혼자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연정우의 대답에 류수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제가 전에 그랬죠. 저는 하나 씨와 친구였다고. 하나 씨가 떠나면 남겨진 부모님을 잘 돌보겠다고요. 그런 제가 어떻게 두 분을 버리고 홀로 떠날 수 있겠어요?”연정우의 말에 류수미는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09화

    “근데... 성유리는 과거의 일을 다 잊지 않았니?”“누가 유리가 정말 잊었는지, 아니면 연기인지 알겠습니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유리가 정말 잊었더라도 하나 씨가 하늘이를 구하려다 죽은 것은 사실이잖아요?”“그렇긴 하지...”“지금 성유리가 돌아서서 박한빈 씨와 함께 어머님과 대표님께 대적하려고 하는 게 과연 맞는 일입니까?”류수미는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아니면 어머님이 가셔서 성유리와 얘기 좀 해보시겠습니까?”연정우가 다시 묻자 류수미는 그를 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지금 밖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주주들이 대표님에게 해명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표님께서 지금 이런 상황에서... 어머님, 정말 두고만 보실 겁니까?”연정우의 마지막 물음에 류수미는 금세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렇긴 하지.”“걱정 마십시오. 여기서 저는 대표님을 돌봐드릴 겁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박한빈 씨의 움직임을 막는 일이죠.”류수미는 연정우를 한 번 더 바라본 후, 병상에 누워 있는 사민혁을 쳐다보았다.충격이 너무 컸던 탓인지 사민혁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의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지만 언제 깨어날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사실 류수미는 지금 당장 떠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연정우의 말도 맞다.지금은 박한빈의 행동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사업적으로 그와 대립하는 것은 불가능했다.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연정우가 말한 대로 성유리에게 접근해서 그녀를 설득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연정우의 말처럼 사하나가 이미 세상을 떴는데 성유리가 이제 와서 박한빈이 사씨 가문을 공격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 아닌가?류수미는 생각보다 빠르게 실버 포레스트에 도착했는데 성유리도 마침 안에 있었다.가사도우미에게 연락을 받은 성유리는 천천히 위층에서 내려왔다.그녀는 방금 자신 그린 과거 작품들을 보고 있었기에 머리는 대충 묶여 있었고 약간 헝클어져 있기도 했다.아래로 내려온 성유리는 류수미가 왜 여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10화

    류수미가 너무 강한 힘으로 성유리의 뺨을 때린 바람에 그녀의 얼굴은 맞은 즉시 빨갛게 부어올랐다.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사도우미가 잔뜩 굳은 얼굴로 달려들어 류수미를 막아섰다.“다 비켜!”류수미는 여전히 화를 못 이기겠다는 듯 이를 악물며 외쳤다.“성유리, 너는 정말 은혜를 원수로 갚는 악랄한 년이야. 하나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만약 하나가 아니었으면 너는 벌써 죽었을 거야.”“그 몇 년 동안, 너는 개보다 못한 삶을 살았어. 하나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지도 기억 안 나? 우리 하나가 결국은 네 딸을 구하다가 죽었잖아. 그런데 지금 너는 네 딸을 구해준 사람의 부모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거야?”류수미의 감정은 너무도 격해져 있었다.가사도우미는 애써 류수미를 막으며 박한빈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성유리는 그들을 막고 자신이 직접 류수미 앞에 서서 물었다.“사모님.”가사도우미의 얼굴에는 걱정 근심이 가득했지만 성유리는 못 본척하며 류수미에게 다가가 말했다.“뭐 하나만 여쭤볼 게 있어요.”“뭔데? 너...”류수미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성유리가 다시 물었다.“제가 전에 실종되고 다쳤던 일... 사모님이랑 관련이 있는 건가요?”그 짧은 말 한마디는 류수미의 모든 행동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담방이라도 폭발할 듯했던 분노도 한 순간 사그라든 것 같았다.“나...”류수미는 입을 뻥끗거렸지만 이미 낯빛은 새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그러니까 사모님은 다 알고 계셨던 거네요? 아니면... 사모님께서 주동자셨나?”“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내가 무슨 주동자라는 거야? 그건 분명히 사고였어. 그때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나는...”류수미는 급히 부인했지만 금세 깨달았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사실을.그리고 류수미는 성유리가 기억을 잃은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다 잊어버렸다며? 그럼 방금...’“너 지금 나를 떠보려는 거야?”류수미는 불신이 가득한 눈으로 성유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811화

    “그때 박한빈 씨는 사실 당신들을 겨냥할 이유가 없었어요.”성유리의 말에 류수미는 순간 멍해졌다.“뭐... 뭐라고?”“설마 아니라고 생각하세요?”성유리는 의아하다는 듯 류수미를 쳐다보았는데 정말로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마치 정말로 순수한 의문을 품은 아이처럼.“박한빈 씨가 굳이 사씨 가문까지 끌어들인 건 결국 당신들이 연정우라는 사람의 앞잡이가 되었기 때문이잖아요?”“만약 당신 말대로 제가 그저 잘 살아가길 바랐다면 그때 연정우 씨가 절 그렇게 끌고 가도록 두지는 않았을 거예요.”“그래서 박한빈 씨가 당신들을 겨냥하기로 마음먹은 거고... 나중엔 제가 살아 있다는 걸 당신들도 알게 된 게 결과일 뿐이죠.”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듯 말하는 성유리에게 류수미는 더 이상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사하나 씨 일도 전부 알고 있어요. 그리고 하늘이를 구해준 하나 씨에게 감사하고 있고요.”“만약 가능하다면... 하나 씨를 대신해 당신들을 잘 돌볼 수도 있었어요.”“그렇지만 결국 이 은혜는 사하나 씨가 저희 모녀에게 베푼 거죠. 당신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리 깊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당신이 악행에 동참하는 순간 전 그 은혜는 이미 다 갚았다고 생각했어요.”“그리고 지금 사씨 가문의 상황은...  죄송하지만 저는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네요.”류수미는 원래 자신만만한 태도로 성유리를 찾아왔다.그리고 여전히 성유리 앞에서도 늘 당당했다.그녀는 성유리가 사씨 가문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성유리가 내뱉은 말 하나하나는 류수미가 반박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그래서 그때 류수미는 왜 연정우를 막지 않았을까?정말 단순히 그를 믿어서였을까?사실 류수미도 알고 있었다.그게 전부가 아니었다.류수미는 사하나의 일로 성유리에게 원한이 있었다.한 사람의 어머니로서, 평생 이 일을 마음에 품고 살 수밖에 없었다.비록 성유리를 용서했다고 말했지만 밤이 깊어질 때마다 류수미 역시 한순간도 악한 마음이 들지 않은

Latest chapter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5화

    게다가 여러 번 성씨 저택으로 돌아갈 때마다 윤청하가 온갖 종류의 음료를 억지로 마시게 했기 때문에 성유리는 이제 집조차 돌아가고 싶지 않아 했다.이렇게 되면 원유진은 기회조차 잡을 수 없게 된다..시간이 지날수록 성유정은 점점 초조해졌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만약 정말 성유리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틀림없이 그녀와 박한빈 사이에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 분명했다.박한빈은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그녀의 어머니가 말한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성유리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따라서 그들이 아이를 가지게 되면 정말로 평생을 함께해야 할 것이다.며칠 동안 성유정은 이 일로 인해 초조해했고 윤청하가 다음 달에 그녀를 위한 생일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해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이미 초대장을 보냈단다. 그때 도시 전체의 청년 권사들이 다 참석할 거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엄마한테 말해.”윤청하는 여전히 다정한 눈빛으로 성유정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성유정은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니?” 윤청하가 물었다.성유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윤청하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전 아직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막 졸업했잖아요.”“바보야, 보자마자 지금 당장 결혼하는 게 아니야.”윤청하는 웃으며 말했다. “이건 너희들이 2년 동안 교제할 기회를 주는 거야. 그때 돼서는 약혼을 하고, 그리고 너...”“싫어요!”성유정이 화를 내며 말을 끊자 윤청하는 성유정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처음이라 당황했다.그러자 성유정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곧장 윤청하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엄마, 나 아직 어린데 연애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엄마 곁에만 있고 싶어요.”“바보야, 결혼해도 언제든지 올 수 있잖아.”윤청하는 이렇게 말하며 핸드폰에 있는 사진들을 보여주며 말했다.“일단 한번 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니?”성유정의 마음에는 박한빈밖에 없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4화

    “너 왜 저 여자를 감싸는 거야? 내가 방금 한 말 틀렸어?!”원유진은 성유정이 방으로 끌고 들어갔을 때도 여전히 분노에 차 있었다. “저 여자가 네 모든 걸 뺏어갔잖아!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 여자도 어차피 성씨 가문의 핏줄이니 조금 나눠 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박한빈은 달라! 전에 박한빈과 사귀던 사람은 분명 너였잖아!”“모두가 너희 둘이 한 쌍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결과는 어땠어? 결국엔 김서영을 꼬드겨서 네 약혼자를 빼앗았잖아!”“유진아, 그만해.”성유정은 원래 차분한 태도였지만 원유진이 박한빈에 관한 얘기를 꺼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원유진은 자신이 잘못 말했음을 깨닫고 서둘러 사과하며 말했다.“미안해, 네가 상처받은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됐는데. 하지만 나는 저 여자의 저런 태도를 참을 수가 없었어. 마치 자기가 피해자인 것처럼 굴잖아. 박한빈도 마찬가지야. 분명 널 좋아하면서 왜 굳이 어머니 말만 따르는지...”“유진아, 네가 틀렸어.”성유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와 한빈 오빠는... 이제 가능성이 없어.”“왜?!”원유진이 말했다.“내 생각엔 그렇지 않아. 박한빈이 어머니 말을 따라 성유리와 결혼했다지만 내 생각엔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네가 자리 잡고 있어서 전혀 좋아할 리 없다고.”“그들은 이미 아이가 있어.”성유정이 다시 그 말을 끊자 원유진은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서서히 눈을 크게 뜨며 믿을 수 없다는 듯 성유리를 바라봤다.“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지?”성유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거짓말하는 게 아니야. 이 일은... 우리 두 집안 사람들도 다 알고 있어. 아직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야.”“그래서 내가 말한 거야, 나와 오빠는 불가능하다고.”“예전에는... 난 자신을 속이며 그가 부모님과 박씨 가문의 명예 때문에, 설령 언니와 결혼했다 하더라도 그저 명목상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했어.”“하지만 지금은, 언니가 이미 임신했어. 난 정말... 이제는 자신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3화

    상대방은 마침 그녀 앞에 도착했다. 빨간 치마의 디자인은 매우 화려했고 두껍게 바른 립스틱은 그녀를 더욱 젊고 화사해 보이게 했다.이런 차림새는 분명히 병문안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유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성유리를 위아래로 훑어본 후 말했다.“네가 여기 있었네. 나는 사모님이 아주 바쁘신 줄 알고 한 번 얼굴 보려고 해도 예약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원유진은 성유리에 대해 여전히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악의를 드러냈다. 성유리는 원유진과 잠시 눈을 마주친 후 가볍게 대답했다.“어.”그 반응에 원유진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지금 무슨 태연한 척이야? 네가 아니었다면 성유정이 지금 이렇게 되었겠어? 박씨 집안 사모님이 될 사람은 원래 성유정이였어! 왜 돌아왔어?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아갔잖아!”“너는 어젯밤에 성유정이 왜 교통사고가 났는지 알아?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많이 마셨던 거고!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차와 부딪힐 수 있었겠어?!”“성유정이 거의 죽을 뻔했다고, 알아?!”원유진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원유진은 독을 품은 눈빛으로 계속해서 성유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 눈빛을 날카로운 칼날로 만들어 성유리의 몸을 찌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성유리는 다소 의아해하며 말했다.“성유정이 어젯밤에 술을 마셨다고?”“맞아! 바로 네가...”“그렇지만 내가 성유정에게 술 마시라고 한 건 아니잖아.”성유리가 말했다. 가볍게 던진 한마디에 원유진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성유리를 보며 물었다.“ 뭐라고?”“나는 어젯밤에 성유정과 연락한 적도 없고 성유정이 술 마시러 간 것도 전혀 몰랐어. 그 차... 내가 사고를 낸 사람도 아닌데 이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성유리가 원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단순한 질문을 하는 것 같지만 원유진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 자신을 조롱하는 것이었다.원유진이 뭔가 말하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2화

    박한빈은 그곳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진지하면서도 날카로웠고 그녀의 얼굴에서 작은 불만이라도 읽어내려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평온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오히려 그가 서둘러 떠나길 바라는 듯했다.박한빈은 지금까지 자신의 남편을 다른 여자한테 밀어내는 그런 여성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매번 그녀는 그렇게 행동했다. 마치 그가 집안의 결정에 따라 결혼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을까?그녀가 그와 결혼한 것은 어쩌면 성씨 가문과 다투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그녀와 성유정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박한빈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는 아무리 그녀가 진짜 자식으로 태어난 딸이라 하더라도 성씨 집안 부모님 앞에서 성유정의 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원래 그 자리는 본래 그녀의 부모님께 속해야 했기에 그녀가 질투와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박한빈과의 결혼 약속을 받아들인 것은 성유정에 대한 강력한 복수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그녀는 결혼 후에도 그에게 변함없이 냉담했다.그녀는 그가 저녁 몇 시에 돌아오는지 출장은 어디로 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그와 성유정 사이의 친밀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직접 선물을 건넸을 때도 그녀는 조금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도 그녀가 원래 결혼하고 싶어 했던 이는 오히려 진씨 집안의 그 사생아였을지도 모른다. 이때 박한빈은 어젯밤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이빨을 드러낸 모습을 떠올렸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온화하고 순진한 모습과는 다른, 진짜 성유리의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그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진씨 가문의 그 사생아는 어땠을까?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들 사이의 감정은 아주 좋았다고 한다. 만약 그때 자신이 약간의 수를 써서 진씨 가문이 그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녀의 남편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1화

    성유리의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등을 쭉 펴며 몸을 돌렸다.“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내려와서 드세요.”가사도우미의 얼굴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저 공손하게 말할 뿐이었다.성유리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씻고 나가야겠어요.”말을 내뱉자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마치 오래도록 병을 앓은 노파처럼 거칠고 허스키하게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알겠습니다.”가사도우미가 곧장 대답했다.돌아서서 가려던 순간, 성유리가 갑자기 가사도우미를 불러세웠다.“저기... 박한빈은 어디에 있어요?”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도련님께서는 아침 일찍 떠나셨습니다.”가사도우미가 대답하며 덧붙였다. “문 앞 경비원 말로는 새벽에 나가신 것 같다고 하던데요.”말이 끝나자 성유리는 마치 조각상처럼 멍하니 서서 한동안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부인님?”가사도우미가 한 번 더 부르자 성유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가사도우미를 바라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알겠어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앞에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차갑게 식었다.비록 경비원이 모호한 시간을 말했지만 성유리는 그것이 분명히 그들의 일이 끝난 직후임을 알고 있었다.그는 그녀와 함께 자는 것을 그토록 싫어했고 심지어 단 하룻밤조차도 감내하기를 원치 않았다.그렇다면, 그런데도 그는 왜...성유리는 생각하자마자 곧바로 답을 알게 되었다.어차피 그녀는 그저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필요할 때 사용하고 필요 없을 때 버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녀는 오히려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했다. 어젯밤 박한빈이 그녀를 방에서 내쫓지 않았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저녁에 박한빈은 꽤 일찍 돌아왔다.성유리는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그의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들었다.그녀는 순간 멈칫했으나 금방 아무렇지 않은 척 문 앞으로 가방 문을 걸어 잠갔다.문을 잠그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컴퓨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60화

    “저 좀 놔주세요.”“제발 살살 좀... 박한빈 씨, 제발.”두 달 넘게 억눌러왔던 욕망을 지금 이 순간 남자는 모조리 터뜨리고 있었기에 성유리를 쉽게 놔줄 리가 없었다.성유리는 물에 빠졌다가 막 나온 사람처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이 목과 얼굴에 들러붙었고 붉어진 눈동자 너머로 드러난 얼굴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요염하고 아찔했다.마치 물속에서 기어 나온 아름다운 요괴 같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박한빈은 성유리의 손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꼭 이 순간, 그녀를 완전히 무너뜨리겠다는 듯이.처음에 성유리는 그저 순순히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뱃속의 아이를 무시하는 박한빈의 무심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었다.도저히 참을 수 없던 성유리는 몸을 뒤로 젖히며 박한빈의 어깨를 있는 힘껏 물었다.가지런한 치아 사이로 살짝 튀어나온 왼쪽 송곳니가 그의 피부를 파고들었고 곧 입안에 피비린내가 퍼졌다.갑작스러운 ‘공격’에 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성유리의 턱을 꽉 쥐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날 문 거야?”그제야 성유리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지금까지 박한빈은 늘 순하고 얌전한 그녀만을 봐왔었다.성유리 역시 박한빈에게는 순응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왔지만 이번엔 달랐다.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가자 성유리는 본능적으로 입술을 오므리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이젠 정말 못 참겠어서...”박한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성유리를 바라봤다. 방금 그녀가 화가 난 고양이처럼 자신을 물어뜯던 순간이 떠올랐는데 그 장면이 묘하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박한빈은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고 그녀의 턱을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으며 느긋하게 대답했다.“아직 끝 내기엔 너무 일러. 걱정하지 마. 조금 살살 해줄 테니까.”성유리는 박한빈이 언제 자신을 놓아줬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예전엔 관계가 끝나면 그녀는 꼭 스스로 먼저 방으로 돌아갔었다.박한빈은 누군가와 함께 자는 걸 싫어했으니까.하지만 임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9화

    박한빈은 아내인 성유리에게 한 번도 그런 사실을 얘기해주지 않았었다.“한빈이 왔니?”윤청하는 재빨리 박한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그럼 저녁 같이 먹을까?”“아니요.”박한빈은 차디찬 말투로 대답했다.“회사 일이 좀 바빠서 지금 가봐야 합니다.”바쁘다면서 박한빈은 한 바퀴 빙 돌아 성유정을 집까지 데려다줬다.성유리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숙여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리고 그때, 박한빈이 성유리를 보며 물었다.“아직도 안 갈 거야?”박한빈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불만이 섞여 있었지만 성유리는 원래 거절하고 싶었다.하지만 만약 여기 남아 있으면 윤청하가 계속 이상한 한약을 먹으라고 강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던 성유리는 결국 박한빈을 따라가기로 했다.성씨 저택을 나선 박한빈의 발걸음은 매우 빨랐는데 성유리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거의 뛰다시피 걸어야 했다.이내 차에 도착했을 때, 운전기사는 성유리를 보고 약간 놀라는 것 같았지만 바로 박한빈에게 물었다.“박 대표님, 회사로 가십니까? 아니면...”“회사요.”성유리는 박한빈 대신 대답했다.“가다가 적당한 곳에 내려 주세요.”그녀의 말이 끝났음에도 박한빈은 침묵했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성유리를 쳐다보았다.“회사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하셨죠? 저 혼자 돌아갈 수 있어요.”심상치 않은 시선을 감지한 성유리가 바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박한빈은 그 말에 피식 웃었지만 성유리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그녀는 더 이상 말하기 싫어 차창 밖을 바라보며 몸을 창문 쪽으로 홱 돌려버렸다.그때 박한빈이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집으로 갑시다.”그의 목소리는 짧고 단호했다.그러나 성유리는 왜 집으로 가는지 묻지 않았고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성유리와 박한빈이 함께 집에 돌아오자 저택의 도우미들도 많이 놀란 듯했지만 그는 그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집에 들어서고 성유리가 신발을 갈아 신으려는 순간, 박한빈은 그녀의 손을 붙잡고 그대로 앞쪽으로 끌고 갔다.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8화

    윤청하가 말한 좋은 물건은 아니나 다를까, 또 출처 불명의 한약이었다.이번 한약의 냄새는 그렇게까지 자극적이지 않았고 윤청하도 성유리에게 이렇게 말했다.“이건 내가 수많은 사람을 찾아가서 겨우 찾은 거야. 모두 말하길 이 한약만 먹으면 남자아이를 낳을 수 있대!”성유리는 자신이 환청이라도 들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 시대에 이런 역설적인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전 안 먹을 거예요.”성유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지금 제 뱃속에 아기가 있는데 이걸 먹는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소용 있어! 그 사람들이 말했어. 만약 첫 6개월 안에 마시면 무조건 효과가 있다니까. 설사 성별이 정해져도 바꿀 수 있다고.”성유리는 순간 윤청하가 미친 사람처럼 보여 바로 반박했다.“전 안 마실 거예요. 그리고 저는 남자아이, 여자아이 모두 괜찮아요.”“너 미쳤어? 박한빈은 박씨 가문의 유일한 혈육이야. 그런 집에서 아들이 나와야 후계자가 되지 않겠어?”“하지만 이 아이는 박씨 가문의 아이일 뿐만 아니라 제 아이이기도 하죠.”“너...”윤청하는 뭔 말을 더하려고 했지만 성유리의 눈을 마주친 후 갑자기 뚝 멈췄다.성유리는 처음에 그녀가 자신에게 설득당한 줄 알았지만 이내 윤청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너는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도 모르겠지?”“너랑 한빈이도 결혼했으니까 이 아이가 여자일지라도 별문제 없을 거야. 너희는 아직 젊고 앞으로 기회가 많을 테니까.”“그런데 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어버렸어? 한빈이도 그걸 아직 모르겠지? 한빈이가 원했던 조건이 그렇게 까다로웠는데 전에 네가...”윤청하의 말은 여기서 멈췄지만 그 말의 의미는 곧 성유리의 안색을 창백해지게 만들었다.“그래서 난 계속 너한테 빨리 임신하라고 재촉했던 거야. 아들이 생기면 너는 박씨 가문에서 당당하게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잖아!”“세상에 감춰진 불씨는 없으니까... 한빈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너는 어떤 결말을 맞을지 알겠지

  •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제957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성유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고개를 숙인 채 눈을 내리깔았다. 마치 이 모든 일이 자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인 것처럼.박한빈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리고 그의 시선은 갑자기 성유리의 손목으로 향했는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역시 이럴 줄 알았어.’박한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서영이 계속 말을 하고 있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그는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고 차에 올라탄 후 곧바로 운전사에게 시동을 걸라고 지시했다.운전기사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고개만 끄덕인 뒤, 빠르게 출발했다.웅장한 저택은 금세 뒤처졌고 몇 개의 거리를 지나니 복잡한 도시가 펼쳐졌다.박한빈은 그 도시의 반짝이는 네온사인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화염이 치솟는 느낌을 받았다.그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넥타이를 풀었다.그때 에릭의 전화가 걸려 왔고 박한빈은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전화를 받았다.이내 들려오는 에릭의 말에 박한빈은 바로 입꼬리를 쓱 올렸지만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한 번이라도 쳐다봤다면 알았을 것이다.박한빈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어떤 감정도 없어 마치 지옥에서 온 악마처럼 보였다.“들어보니까 꽤 흥미롭네.”박한빈이 대답했다.“나도 끼워줘.”“그럼 언제 올 건데?”에릭은 묻다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멈칫했다.“아, 맞다, 너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지? 신혼부부를 떼놓으면 와이프가 싫어하는 거 아니야?”“쯧, 내가 결혼하지 말라고 했지?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건데? 잘 됐다. 지금 아주 그냥 잡혀 살고 있겠지.”박한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세상에서 누가 날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그리고 만약 아버지의 유언이 아니었으면 내가 걔랑 결혼했을까?”박한빈의 대답에 에릭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말했다.“빙고! 이래야 박한빈이지. 그럼 요 며칠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