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다섯 손가락을 펼치며 정이에게 말했다.“알파카 한 마리에 5점을 더해줄게!”반진경은 파리를 먹은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알파카를 잡으면 점수를 더 준다고 말해줬어야지... 그럴 줄 알았다면 알파카를 잡아 점수를 더 받는 건데...”반진경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들은 알파카를 보기만 해도 무서워 피했던 그들은 알파카를 잡으면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잡지 않았을 것이다.반진경은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반연주의 명패를 2위 자리에 놓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선생님은 정이의 이름 옆에 점수를 업데이트했다.강윤정: 40점.반연주: 30점.그리고 다른 선생님이 민이의 점수를 발표했다.“반현민 어린이는 0점이에요.”반현민은 마이바흐에서 내렸을 때 멋있었던 것만큼 지금 낭패해졌다.그의 LV 모자는 이미 알파카에게 물려 벗겨졌고 옷깃도 비뚤어졌다. 옷에는 알파카의 침이 묻어 있어서 냄새가 역했기에 그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강나현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는 이미 흐트러졌고 아웃도어 재킷의 지퍼는 반쯤 열려 있었다. 그녀는 떠돌이처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선생님이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한 강나현은 승복하지 않고 소리쳤다.“어떻게 0점일 수 있어요? 점수 계산을 잘못한 게 아니에요?”선생님은 화를 참으며 말했다.“당신들은 종점에 도착했을 때 무와 배춧잎은 물론 이것을 담은 통마저 없어졌어요. 그러니 제가 어떻게 점수를 잘못 계산했는지 말해보시죠?”강나현은 빈손으로 서 있는 민이를 바라보았다.“통은 어딨어? 무는? 혹시 배추 한 잎도 지키지 못했어?”강나현이 묻자 민이는 얼굴을 찌푸렸다.“너무 두려웠어요. 알파카들이 통째로 가져갔어요.”그런후 민이는 오히려 씩씩거리며 강나현에게 따져 물었다.“왜 저를 지켜주지 않았어요?”강나현이 말했다.“난 페달을 밟았잖아. 자전거를 타는 이 일은 원래 너에게 기대하지 않았어. 민이야, 넌 사내잖아. 어떻게 통 하나도 지키지 못했어?”선생님이 계속해서 말했
강나현은 민이를 데리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행히 그녀는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다.그녀는 알파카의 침으로 더러워진 옷을 벗은 후 옆으로 내팽개쳤다.그녀가 혼자 옷을 갈아입자 민이가 말했다.“내 옷도 더러워졌어요.”강나현은 접이식 의자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가방 안에 네 옷이 있어.”민이는 삐쭉거리며 말했다.“나 스스로 옷을 갈아입어야 해요?”집에서 가정부가 옷을 입혀주고 밥을 먹여주는 생활에 익숙해진 그는 밖에 나오면 당연히 강나현이 옷을 갈아입혀 줄 것으로 생각했다.강나현은 젖은 티슈로 머리를 닦느라 바빴다. 그녀는 지금 기분이 매우 나빴는데 그저 빨리 샤워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머리를 깨끗이 씻고 싶었다.그러니 민이를 돌볼 겨를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민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어떤 엄마는 아이에게 물을 주었고 또 땀을 닦아주며 옷을 갈아입혀 주는 엄마도 있었다.강민아는 정이의 머리를 다시 빗겨주고 있었다.민이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작년 가족 활동에서 그는 게임을 하며 땀을 많이 흘렸는데 강민아는 세심하게 그의 옷을 갈아입혀 주었을 뿐만 아니라 땀수건을 등에 받쳐주며 얼굴도 깨끗이 닦아주었다.그가 목마르다고 말하기 전에 강민아는 물병을 그의 입가로 가져다주었다.하지만 강나현은 이런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민이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냄새 나는 옷과 더러운 신발을 바라보았다.강민아가 있을 때만 그는 매우 깨끗한 아이였다.강나현은 그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아빠 옷 좀 갈아입혀 줄래요? 땀을 많이 흘렸어요.”민이는 반하준에게 물었다.“스스로 해.”반하준의 쌀쌀한 대답이 돌아왔다.항상 아버지를 두려워하던 민이는 반하준이 거절하자 어쩔 수 없이 쭈그리고 앉아 책가방에서 옷을 꺼냈다.강나현은 자신을 정리한 후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민이야, 나에게 감자칩 한 봉지 열어줘.”민이는 스스로 하지 못하냐고 반박하려 했지만 오늘 강나현을 가족 활동
민이는 마음속의 불쾌함을 꾹 참았다. 그는 반씨 가문의 막내 손자이고 할머니의 귀염둥이이다.그는 고개를 들어 강민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강민아도 그들 쪽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역시 그가 이렇게 하면 강민아의 주의를 끌 수 있었다.신이 난 민이는 강나현을 도와 오징어의 포장을 뜯었다.강나현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말했다.“먹여줘.”민이는 안색이 좀 일그러졌지만 강민아가 또 그를 보지 않자 포장 봉투에서 오징어 한 올을 꺼내 강나현의 입에 넣어줬지만그의 시선은 강민아에게 고정했다.‘빨리 고개를 돌려 나를 봐요!’민이가 마음속으로 소리치고 있었다.그가 강나현에게 이렇게 잘하니 강민아는 틀림없이 질투할 것이다.강민아가 엄마가 되는 걸 포기 것이니 영원히 그가 주는 오징어를 먹을 수 없을 것이다.반진경은 혀를 내두르며 놀라워했다.“민이야, 네가 나현이에게 오징어를 먹여주다니, 너 정말 친절하구나!”그녀의 말투는 과장되어 날카로운 목소리가 아주 멀리 전해졌다.강나현은 다리를 꼬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이게 뭐가 그리 놀랄 일이라고 그래요? 연주는 언니에게 간식을 먹인 적이 없어요?”그러자 반진경이 대답했다.“나는 연주의 엄마야, 우리는 달라!”강나현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뭐가 달라요? 저는 하준 오빠의 형제고 민이의 형님인데!”반진경은 가볍게 코웃음 쳤다.‘이게 무슨 엉망진창인 관계란 말이야?’강나현이 18살 때 반진경은 반하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렸다.반유하만 순진하게 강나현이 반하준에 대해 순수한 형제들의 정이라고 생각했다.반진경은 반하준 쪽을 바라보았다.민이가 강나현을 이렇게 따르면 반하준도 필연적으로 강나현을 예뻐하게 된다.반진경이 입술을 살짝 감빨며 반하준과 강나현이 뒤엉키기를 간절히 바랐다.연진숙은 지금 강나현에 대해 점점 반감을 보이는데, 강나현이 강민아의 친여동생으로서 여전히 반하준과 함께 놀고 있으니 반하준의 명성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반하준이 강민아와 이혼하더
민이는 치욕을 씻기 위해 서둘러 자루 속으로 들어갔다.강나현도 자루 안으로 들어가며 민이의 뒤에 서서 말했다.“하준 오빠, 빨리 들어와!”강나현이 재촉했다.반하준이 자루에 들어가자마자 강나현은 그에게 기대려고 하자 그는 즉시 눈살을 찌푸렸다.강나현은 기대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하준 오빠, 우리 세 사람은 꼭 붙어 있어야 해. 그래야 캥거루 점프를 할 때 같이 힘을 낼 수 있어.”그러면서 그녀는 반하준의 손을 잡았다.“손을 앞으로 가져와 자루를 꽉 잡아야 해.”이러면 반하준의 팔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어 마치 그녀를 안은 것처럼 할 수 있었다. 가족 활동을 통해 반하준과 스스럼없이 접촉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나현은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그녀가 민이의 초대를 받아들여 가족 활동에 참여한 것은 바로 강민아와 기타 명문가 부모들의 앞에서 반하준과의 관계가 얼마나 좋은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그러나 강나현은 반하준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만지지도 못했고 도리어 그녀의 허리가 갑자기 반하준에게 밀렸다.반하준은 서둘러 그를 불편하게 한 이 자루에서 나왔고 강나현은 관성에 의해 몸이 옆으로 넘어졌다.그녀는 손으로 바닥을 짚어 중심을 바로잡아서야 너무 비참하게 넘어지지 않았다.“하준 씨, 뭐 하는 거야!”강나현은 고개를 돌려 화를 내며 따졌다.‘이 남자는 정말 여자를 아낄 줄도 모르네.’그런데 이때 그녀는 반하준이 강민아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아챘다.육성민이 먼저 자루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는 혼자서 자루를 거의 다 채웠다. 강민아도 자루에 들어가 육성민과 마주 보며 섰고 그런후 정이도 자루 속에 들어와 샌드위치 속 햄처럼 그들 속에 끼었다.이렇게 하면 시합할 때 정이의 작달막한 키가 어른들의 점프 속도와 거리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었다.그런후 강민아는 육성민의 뒤에 있는 자루 가장자리를 잡으며 힘을 합쳐 자루를 들어 올렸다.반하준은 숨이 막혔다. 그의 시각에서 강민아는 육성민의 가슴에 기대어 있는 듯했고 두 손은 그의
반하준은 육성민이 자루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정이와 강민아를 들어 올렸다.강민아는 정이를 꼭 안고 육성민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그들 두 사람이 흔들려 육성민의 착지 중심에 영향을 줄까 노심초사했다.곧 그들 일가가 크게 앞섰고 오늘 넘어지지 않은 유일한 가족이었다.“오빠. 뭐하는 거야? 시합이 시작되었어!”강나현이 민이를 데리고 걸어왔다.반하준은 지금 팔뚝까지 핏줄이 불끈 솟았다.만약 예년에 그가 이런 활동에 참여했다면 강민아와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은 그였을 것이다.만약 눈빛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는 벌써 육성민의 등에 구멍을 냈을 것이다.그가 어떻게 모를 수 있겠는가, 육성민이 강민아에 대한 감정은 이미 남매의 정을 초월했다는 것을.다만 강민아가 그를 오빠로 여겼기 때문에 그는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었다. 강민아가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면 다시는 강민아에게 이런 완전한 신뢰를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오빠? 내 말 못 들었어?”강나현이 목소리를 높였다.반하준은 그제야 냉담하게 대답했다.“난 이 게임 기권할 거야.”“왜?!”강나현과 민이가 동시에 소리 질렀다.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예전과 다름없이 강한 기세로 말했다.“재미없어.”민이는 울기 시작했다.“하지만 이 게임에 참가하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야 해요!”반하준이 대답했다.“이 게임이 끝나면 또 다른 게임이 있어.”세 번째 게임에서 1등을 하면 그들은 7점이 되는데, 그가 어떻게 자기 아들을 굶길 수 있겠는가.강나현은 장기명이 반진경 위로 넘어지는 것을 보았다. 반진경은 애교 섞인 비명을 지르며 화를 내는 척하지만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강나현은 입술을 꽉 물었다.만약 그녀와 반하준이 캥거루 점프 게임에 참가할 수 있다면 그녀도 부주의로 넘어지고, 반하준은 그녀의 몸에 넘어졌을 것이다.이런 생각을 한 강나현은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괘씸해!’반하준이 아마 이 게임에 참가하면 항상 넘어지니 이미지에 영향이 간다고 생각해서 참가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추
말하면서 그는 방석을 들여 육성민에게 건졌다.그가 육성민을 보는 눈빛은 경멸로 가득 차 있었다.그러자 옆에 서 있던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반 대표님, 방석을 추가하면 등에 있는 사람이 잘 앉지 못하게 할 수 있어요. 그러니 방석을 추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방석을 추가하는 것은 난도를 높이기 위한 거예요. 방석을 하나 더 추가하면 1점을 더 얻을 수 있는 거죠.”반하준은 이미 게임 룰의 제정자가 되었다.선생님들은 속으로 도대체 누가 선생님이고 누가 가장인지도 모른다고 투덜댔다.그때 강나현이 입을 열었다.“방석을 추가하지 않아도 되죠?”그녀는 직접 반하준의 몸에 앉고 싶었다.그러나 남자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난 점수가 필요해.”선생님들은 반하준이 점수가 뒤떨어졌기 때문에 자신에게 난도를 높이고 싶은 것으로 생각했다.그때 한 선생님이 말했다.“그럼 반현민 아버님의 말씀대로 방석을 추가하면 1점을 더 얻을 수 있는 거로 해요.”그러자 정이가 바로 물었다.“방석 두 개를 올리면 2점을 추가할 수 있어요?”강민아는 안전성을 고려하여 정이에게 말했다.“우리는 방석을 추가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이 1, 2점이 부족하지 않잖아.”반하준은 이 말을 듣고 화가 났다.“왜 이렇게 오빠 허리에 직접 앉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강민아는 웃으며 말했다.“반 대표님 최근에 입주민 단체에 가입했어? 이렇게 오지랖이 넓어? 당신 허리에 앉은 것도 아닌데 입 좀 다물어!”그녀는 오늘 반하준과 민이가 자주 그녀에게 시선을 보내는 것을 발견했는데 무시하고 싶어도 어려웠다.남자는 도도한 표정으로 비웃더니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을 보내며 실눈을 떴다.“나를 욕한 거야?”사랑이 깊으면 미움도 깊다는 말이 있는데 욕은 그녀가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생각하며 반하준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육성민은 요가 매트에 엎드려 두 팔로 자신의 몸을 받치고 강민아에게 말했다.“방석을 올려. 세 개정도 올려도 돼. 내가 균형 잘 잡을게.”
그는 절대 육성민에게 지지 않을 것이다.“토할 것 같아!”민이는 강나현에게 안겨 있었다. 하지만 강나현이 민이를 안고 있는 모습은 강민아가 정이을 안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았다.민이는 오르락내리락하는 흔들림 속에서 현기증을 느꼈다.그는 강나현의 품에 안겨 고개를 기웃하더니 곧 ‘웩’하며 토했다.“아!”아이는 고개를 숙여 강나현의 허벅지에 뱉었다.강나현은 비명을 지르며 직접 반하준의 등에서 뛰어내리고 급히 민이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자신의 바지에 민이의 구토물이 묻은 것을 보았다.그녀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너 왜 내 몸에 토했어!”반하준은 요가 매트에 두 손을 받치고 있었는데 동작이 뻣뻣해지더니 표정이 한껏 어두워졌다.그도 강나현을 향해 소리치고 너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소리치고 싶었다.심판 선생님은 손을 들어 선포했다.“강윤정 어린이 가족이 1등 했습니다!”반하준은 매트 위에 앉았다. 그는 조금 창백해 보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는 가쁜 호흡을 억지로 눌렀지만 여전히 가슴의 기복을 억제할 수 없었다.육성민이 천천히 동작을 멈추자 강민아는 정이를 안고 육성민의 등에서 내려왔다.“큰 삼촌! 정말 대단해요!”육성민은 몸을 똑바로 일으키고 손바닥의 먼지를 가볍게 몇 번 털었다.강민아가 물었다.“힘들지 않아?”육성민은 고개를 저었다.“안 힘들어.”그는 목소리를 낮추고 강민아에게 말했다.“나는 너와 정이를 업고 한 손으로 할 수도 있어.”다만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한 손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는 것이 너무 나대 보인다고 생각했다.육성민은 점잖은 모습을 유지하는 데 습관이 된 사람이었다.선생님은 민이와 정이에게 번호표를 수여했고 정이는 13점을 받았다.반하준은 팔굽혀펴기 경기 2위로 5점을 받았지만 민이는 통을 잃어 3점을 감점당했다. 방석 한 장을 보태도 민이는 결국 3점에 그쳤다.민이는 자신이 여전히 꼴찌인 것을 보고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는 작은 손을 흔들며 불쾌하게 소리 질렀다.“예전에는 엄
민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그럼 어떡해요? 우리 굶어 죽을 거 아니에요?”강나현은 얼른 말했다.“민이야,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야. 우리는 간식을 가져왔으니 간식을 먹자.”그들은 아예 포인트로 점심의 식자재를 바꾸지 않았다. 강나현은 민이를 데리고 간식을 먹었다.민이는 치즈 감자 볼 포장 봉투를 열었는데 이런 간식은 평소 강민아가 대여섯 알만 먹을 수 있도록 했다.그러나 지금 그는 각종 과자를 야금야금 먹을 수 있는데 강민아는 전혀 그를 간섭할 수 없었다.그리고 강나현도 이런 걸 좋아해서 두 사람은 소리까지 내며 간식을 먹었다.그들이 간식으로 허기를 채울 때 맛있는 향기가 풍겨왔다.다른 학부모들은 밥을 하기 시작했다.일부 부모들은 반하준과 친하게 지내려는 의도로 반하준을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밥을 먹으려 했지만 반하준이 전부 거절당하였다.그는 당연히 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갚아야 하므로 그는 다른 속셈이 있는 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와!”“와!”민이는 다른 어린이들이 연신 뱉는 탄성에 매료되었다.그는 즉시 일어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적지 않은 어린이들이 정이과 함께 서서 육성민의 솥을 보고 있었다.불길이 1m 남짓 치솟자 어린이들은 무서워하면서도 흥분했다.그들은 포인트가 가장 많았기에 교환한 식자재도 가장 많았다.육성민은 해야 할 요리가 비교적 많았다. 그는 먼저 시럽을 좀 끓여 딸기를 장미꽃 모양으로 자른 다음 시럽을 뿌려 얼음 사탕 딸기를 만들었다.딸기는 새빨간 장미처럼 설탕물 속에서 응고되었다.육성민은 정이에게 딸기 빙탕후루를 주며 구경하는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다.강민아는 육성민이 밥을 지을 기회를 빌려 솜씨를 크게 발휘하련다는 것을 알아챘다.이렇게 떠벌리는 것은 그가 유지해 혼 점잖은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요리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강민아는 육성민이 준비한 분량이 매우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많은 요리면
반하준은 고개를 들어 방 문 쪽을 바라보았다.시야의 가장자리가 뿌옇게 뒤덮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눈을 크게 깜빡이자 들어온 여자가 이미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하준 씨.”강나현의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온몸이 그의 위로 쓰러졌다.반하준은 그녀를 밀어내려 했지만 손이 뒤로 묶여 움직일 수 없어 몸을 뒤로 빼기만 했다.강나현은 온몸에 뼈가 사라진 듯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반하준의 몸을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강나현, 뭐 하는 거야!”반하준이 고함을 지르자 강나현이 흐릿한 눈동자로 가슴을 움켜쥐더니 고개를 들어 뜨거운 숨을 뱉으며 반하준을 바라보았다.“나 너무 더워. 온몸이 간지러워.”반하준의 눈가엔 싸늘한 감정만 담겨 있었다.“쓸데없는 걸 먹은 건 아니지?”강나현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그냥 술을 조금 마셨을 뿐인데...”반하준이 불쑥 물었다.“술을 누가 줬는데?”“파티에 있던 웨이터가.”강나현이 고개를 들고 코를 훌쩍거렸다.“이 방 냄새 좋다. 향기로워.”강나현의 말을 듣는 순간 반하준은 온몸에 얼음이 섞인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쓴 느낌이었다.그는 숨을 꾹 참다가 다시 들이쉬는 순간 강나현이 말한 달콤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반하준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젠장!’그는 줄곧 방 안에 있었고 향기가 서서히 퍼졌기에 방금 들어온 강나현처럼 공기 중에 느껴지는 향기를 감지할 수가 없었다.반하준의 시선이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잔에 향했다.그도 조금 전 술을 마셨지만 나중에 두 손이 묶이면서 더 이상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만약 수갑이 채워지지 않았고 이 방에서 갈증을 느꼈다면 그는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저 술을 찾았을 거다.반하준은 어렴풋이 직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말도 안 된다며 부정했다.그는 강나현에게 물었다.“누가 널 들여보냈어?”강나현은 볼이 붉게 물든 채 손을 들어 화끈거리는 이마를 만지작거렸다.“응? 기억이 안 나. 하준 씨, 나 취한 것 같아.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강나현이 말하며 다시 반하준에
누군가 다가와 반하준의 귀에 속삭였다. “반 대표님, 부사장님이 단둘이 얘기하고 싶다고 하십니다.”그에게 말을 전하러 온 사람은 강민아 비서였다.멈칫하던 반하준이 잠시 주위를 둘러봤지만 강민아는 보이지 않았다.“민아 어디 있어요?”비서가 말했다.“부사장께서는 바깥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세요.”반하준은 비서를 따라나섰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말도 안 하고 눈길도 안 줬는데 이제 와서 단둘이 만난다고?그 생각에 반하준은 숨이 가빠졌다.참으로 방탕한 여자다. 두 남자를 동시에 만나려 한다니! 심은호 앞에서는 그를 무시하고 또 심은호의 눈을 피해 그와 만나려 하고 있다.남녀관계에서 강민아가 하는 행동은 반하준의 예상을 완전히 넘어섰다.‘방탕하게 살고 싶어서 이혼하자고 한 건가?’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심은호와 윤세현을 양옆에 둔 것도 모자라는가.결혼 생활 도중 그녀가 바람을 피운 적은 없는지 궁금할 정도다.그렇게 생각하며 반하준은 점점 더 짜증이 밀려왔다. 가슴이 무거운 돌덩이에 짓눌린 듯 심장이 아파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직원이 방 문을 열며 안으로 안내했다.방 문 앞에 서 있던 반하준은 지금 강민아가 자존심을 버리고 용서를 빈다면 심은호, 윤세현과 깨끗하게 헤어지게 할 거라 다짐했다.물론 강민아가 기꺼이 그의 곁으로 돌아와 속죄해야만 용서할 거다.“반 대표님, 안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사람이 정신이 팔렸을 때 누군가 옆에서 뭐라고 시키면 생각 없이 따르게 된다.방으로 들어간 반하준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방에 아무도 없었다.‘조금 전 강민아 비서가 뭐라고 했지? 기다리라고?’그를 여기로 불러놓고 기다리게 한다니.강민아가 일부러 못되게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걸까?하지만 오늘은 강승이 정식으로 인수된 날이라 강민아는 분명 할 일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을 거다.먼저 따로 만나자고 했으니 잠시 기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반하준은
“아니야!”반하준은 분노에 미칠 지경이다. 심은호가 어떻게 감히 이런 식으로 그를 모욕할 수 있나.‘이런 악랄한 놈!’“민아야, 날 믿어줘.”반하준은 살면서 이렇듯 비굴하게 누군가에게 애원해 본 적이 없었다.처음으로 막다른 궁지에 내몰리자 그는 고립된 채 가만히 서 있었다.강민아 뒤에 서 있던 재벌가 거물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반하준이 다쳤나? 멀쩡해 보이는데. 오히려 심은호가 엉망진창이네.”“누가 봐도 심은호가 괴롭힘을 당했잖아.”“반하준이 심은호 저격한 게 하루 이틀이야? 전에 심은호를 주먹으로 때린 것도 내가 봤어.”“전에 화장실에서 핸드워시를 심은호에게 뿌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번에도 눈에 거슬려서 와인을 쏟았네.”“강민아를 빼앗아 가려고? 방에 가서 단둘이 상처를 보여주기는 무슨, 누가 봐도 꼬드기는 거지!”“난 심은호 편이야. 심은호는 당당한 남자 친구인데 반하준은 전남편이잖아. 내연남이라도 되고 싶은 건가?”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반하준의 얼굴이 먹물처럼 어두워졌다.“내연남?” 반하준은 억울한 듯 소리를 질렀다.“당신들 미쳤어? 내가 어떻게 내연남이야!”심은호는 웃으며 말했다.“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내연남이긴 하지.”반하준의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고, 그는 강민아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 그녀를 돌아보았다.하지만 강민아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심은호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다.“어디 다쳤어요?”“여기요.”심은호가 얼굴을 가리키자 반하준의 동공이 커지면서 소리를 질렀다.“안 때렸어!”강민아는 손을 뻗어 부드럽고 섬세한 손끝으로 심은호의 뺨을 어루만졌다.심은호는 사람 좋아하는 사모예드처럼 고개를 갸웃한 채 강민아의 손길을 느끼듯 천사 같은 미소를 지었다.강민아는 그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반하준은 자신이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강민아, 나 진짜 안 때렸어!”강민아는 심은호에게 말했다.“가서 옷 갈아입어요. 복도로 나가
심은호의 말을 들은 반하준은 얼굴이 일그러졌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과 갈비뼈가 아팠다.지금 강민아에게 온몸을 맡기듯 기대어 있는 저 남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려고 했다.그런데 지금 오염된 브로치를 손에 들고 강민아에게 불쌍한 척을 하고 있었다.해도 해도 너무했다.“강민아, 저놈한테 속지 마!”참을 수 없어 소리를 내지른 반하준은 입안에 온통 피 맛만 감돌았다.그는 복부를 감싼 채 개미 수만 마리가 갉아먹는 듯한 통증을 참고 있었다.바닥에 깨진 유리잔을 바라보며 강민아의 동공은 이미 싸늘해졌다.“심은호 씨 몸에 묻은 레드 와인, 당신이 쏟았지?”묻는 게 아닌 반하준의 짓을 단정하는 어투였다.반하준은 입술을 달싹이며 목구멍에서 진동하는 피 맛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실수로 그런 거야.”심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약한 꽃으로 둔갑했다.“그래요. 반하준은 실수로 그런 거니까 나 때문에 화내지 마요.”반하준은 심은호의 그런 모습에 이가 갈렸다.‘저 개자식은 연기를 왜 저렇게 잘해?’남들 몰래 연기 학원이라도 다니는 건지.“민아야, 저 자식이 일부러 불쌍한 척 연기하는 거야. 아까 날 때리는 거 못 봤지? 내 갈비뼈와 손가락을 부러뜨리려고 했어! 콜록콜록.”반하준의 가슴속에는 차마 내뱉지 못한 뜨거운 열기가 여러 가닥으로 뭉쳐서 이리저리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기침할 때마다 온몸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뼈가 다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심은호는 고개를 숙여 손바닥에 있는 공작새 모양의 브로치를 바라보더니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살짝 붉게 물든 코끝으로 훌쩍이며 칭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반하준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그러더니 자신의 소매로 브로치 표면을 살살 닦으며 브로치에 묻은 와인 얼룩을 닦아내려 애썼다.반하준은 감시 카메라가 있는 방향을 올려다봤다.젠장!그는 심은호를 골탕 먹이기 위해 강나현에게 감시카메라를 끄라고 시켰다.카메라가 켜져 있었다면 강민아가 심은호의 본색
“삼촌, 다 됐어요?”육성민은 체육관 밖 공터에 쪼그리고 앉아 나무 막대기로 타서 재가 돼버린 낙엽을 헤집고 있었다.그는 단열 장갑을 끼고 호일로 감싼 고구마를 불에서 꺼냈다.육성민이 호일을 뜯어내자 뿜어져 나오는 꿀고구마 향에 정이의 입안에는 금세 군침이 돌았다.“빨리 줘요!”정이가 손을 뻗어 가져가려는데 육성민이 말했다.“뜨거워.”그는 쌓아놓은 벽돌 위에 고구마를 올려놓고 숟가락을 생수로 헹군 뒤 정이에게 건넸다.정이는 숟가락으로 고구마를 파서 호호 불었다.서둘러 한입 베어 물던 아이의 두 눈이 휘어지며 통통한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나타났다.정이가 유난히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육성민의 눈가에도 흐뭇함이 가득했다....강승 테크. 인수식이 끝나고 뒤풀이가 진행될 때, 심은호가 화장실에서 막 나오려던 순간 마주 오던 반하준과 부딪혔다.반하준은 한발 물러서고, 심은호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장이 와인으로 얼룩진 게 보였다.장밋빛 붉은 액체가 강민아가 조금 전 선물한 공작 브로치 위로 쏟아졌다.반하준은 자신의 걸작에 감탄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눈이 없어? 자꾸 안하무인으로 굴면 다음에 더러워지는 건 옷뿐만이 아닐 거야.”반하준은 기세등등하게 손가락을 휙 돌려 잔을 아래로 뒤집었다. 남은 레드 와인이 전부 심은호의 신발 끝으로 쏟아졌다.그는 비웃으며 말했다.“복도 카메라는 고장 났지만 민아한테 찾아가 울면서 일러바쳐도 돼. 너 연약한 척 잘하잖아. 어디 계속해 봐. 미리 말하는데 민아는 단순히 호기심에 널 갖고 노는 거야. 하루 종일 자기 뒤에 숨어서 징징거리는 남자를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반하준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심은호는 주먹을 휘둘렀다!주먹이 바람을 일으키며 허공을 가르더니 그대로 반하준의 복부를 강타했다. 갑자기 손을 쓸 줄 몰랐던 반하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손을 뻗어 막으려 했지만 그대로 심은호의 주먹에 맞고 말았다.그 탓에 반하준의 손에 들려있던 유리잔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산산조각
심은호의 공개 고백에 사람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반하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번개와 천둥이 몰아칠 것처럼 검은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 있었다.강민아는 풍성한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심은호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옆모습은 부드러운 얼굴선과 높은 콧대, 깊은 눈매를 자랑하며 마치 장인이 정성스럽게 조각한 것처럼 보였다.천장에서 비추는 조명이 그의 눈가를 비추자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움직이더니 그가 고개를 돌려 강민아를 바라보았다.남자가 강민아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는 순간, 호수처럼 맑은 그의 눈동자에는 오랜 세월 강민아를 향해 쌓아온 감정이 가득했다.강민아의 숨결 하나하나가 뜨거웠고, 남자의 눈에서 넘쳐흐르는 파도가 밀려와 그녀를 감쌌다.마치 용암이 발밑에 흐르듯 빠르게 위로 올라오는 열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꽉 쥐었고 마른침을 삼키는 그녀의 모습에 남자의 굳게 다문 입술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긴장하지 마요.” 그는 따뜻한 목소리로 강민아를 달랬다.“갑작스러운 고백에 어떻게 긴장을 안 해요?”“미안해요.” 심은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민아가 말했다.“계속 말해요. 듣기 좋으니까.”강민아의 칭찬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심은호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두 눈이 반짝이며 마음을 다잡은 그가 마이크를 마주한 채 아래에 있는 반하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강민아에게 공개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심은호에게만 있었고 이런 기회는 흔치 않았다!“민아 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할 겁니다. 결혼하든, 누군가를 떠나든 무엇을 하든지 늘 뒤에서 지키고 있다가 필요할 때 나타날 겁니다. 전 앞으로도 여전히 민아 씨의 모든 결정을 지지합니다. 태산 그룹에서 정식으로 강승 테크를 인수했으니 두 회사는 더욱 높은 곳을 향해 비상할 겁니다.”반하준은 입가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며 손등에는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갑자기 뚜껑이 열린 탄산음료처럼 동시에 큰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가 마치 그의
“설마 심은호가 부사장이 반씨 가문 사모님일 때부터 좋아한 건 아니겠지?”“왜 그렇게 오랫동안 독신으로 지냈나 했더니, 남의 아내를 탐낸 거였어?”가십거리에 사람들은 흥분하며 가만히 앉아있지 못했다.“설마 강민아가 반하준과 이혼하기 전에 두 사람이 이미...”“어쩐지 둘이 그렇게 빨리 만나더라니.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 시그널 주고받은 거 아니야?”“설마 반 대표가 바람피우는 걸 알고 강민아와 이혼한 건가? 세상에!”다들 저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파격적인 소문에 재벌가 인사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반하준의 어두운 눈동자에 살기가 번뜩였다.심은호가 그의 평판을 망칠 작정이라면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심은호를 끌고 갈 것이다!‘심은호, 너만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감히 내 여자를 노렸으니 너도 똑같이 당해봐.’지유빈은 반하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강민아 씨 말로는 대표님께서 적극 이혼을 원했다고 하던데요. 왜 이혼하고 나서는 강민아 씨가 누굴 만나는지 이렇게 신경 쓰는 거죠?”강민아는 반하준이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했고, 반하준은 지유빈을 우습게 여겼다.“기자로서 아직도 모르겠어? 심은호가 내 아내를 오랫동안 탐냈다고! 5년 전부터 내 아내를 지켜봤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이혼까지 했는데도 왜 계속 아내라고 말하는 거죠? 그 결혼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대표님 혼자인 것 같은데요.”거대한 스피커가 반하준의 몸속에서 울려 퍼지듯 그의 심장을 뒤흔들고 오장육부에 고통을 선사했다.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잘 안다. 강민아가 이혼한 뒤 지유빈은 기자로서 업무 때문에 줄곧 강민아를 지켜봤다.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세 사람의 가십거리에 집중하는 동안 지유빈만 그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다.깊은 곳에서부터 흔들리는 반하준의 눈동자를 보며 남자가 단순히 강민아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그때 반하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무시하고 싶었지만 지유빈의 말에 궁지로 몰린 그는 갑자기 울리는 전화가 구세주처럼
심은호가 헤어지겠다는 말에 반하준은 악랄한 눈빛을 드러냈다.비록 연기라는 걸 알지만 저렇게까지 말해놓고 어떻게 수습할지 두고 볼 작정이었다.“심은호, 이미 말했으면 지켜야지.”반하준은 심은호에게 강민아와 헤어지라고 강요할 생각이었다.“난 심은호 씨랑 헤어질 생각 없어.”강민아가 말하며 심은호의 큰 손을 감싸더니 반하준에게 경고하듯 말했다.“당신이 우리 사이에서 수작을 부린다고 심은호 씨와 안 헤어져.”반하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며 심장이 저 깊은 나락으로 던져진 듯했다.“민아 씨...”심은호가 부드럽게 그녀를 부르자 강민아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두 집안 인수식에서 소란을 피운 건 이 사람이에요. 나가도 그쪽이 아니라 반하준이 나가야 한다고요!”심은호는 입꼬리를 씩 올렸고, 반하준은 누군가 몽둥이로 세게 내리치듯 심장 안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심은호는 강민아의 말에 위로받았는지 두 눈이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했다.“민아 씨는 나한테 참 잘해주네요.”강민아의 단호한 말 한마디면 그는 만족할 것 같았다.강민아가 부드럽게 그를 달랬다.“내 남자 친구니까요.”“강민아!”보다 못한 반하준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내가 여기 있는데!’그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강민아와 심은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맞닿은 두 사람의 시선이 끈적했다.“민아 씨, 아직 말하지 않은 게 하나 더 있어요.”심은호는 큰 결심을 한 듯 목소리는 온화했지만 예쁜 두 눈에는 슬픈 기색이 묻어났다.“반하준이 우리 둘을 헤어지게 하려고 병원 시스템을 해킹해 내 진료기록을 훔쳐 갔어요. 내가 병원에 다니는 걸 알고 병이라도 있을까 봐 내 진료기록으로 나한테 헤어지라고 협박했어요!”강민아도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녀가 먼저 심은호에게 반하준이 한 어리석은 짓을 널리 알리자고 제안하기도 했다.지금 심은호는 일부러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이런 말을 하는 거다.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가십거리를 직감한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심은호의
강나현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쳤다.“나 저 사람 알아! 강승 직원이야!”그녀는 연설문이 바뀐 것이 반하준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증명하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그 순간 장면이 전환되고 연설문을 바꾼 사람이 복도에서 반하준과 단둘이 만나는 게 보였다.두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잡혔다.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저마다 수군거렸다.강나현은 표정이 확 바뀌며 말문이 막힌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눈으로 반하준을 돌아보았다.심은호의 연설문이 바뀐 게 정말 반하준과 관련이 있을 줄이야.하지만 반하준이 했다기엔 너무 저급한 수작이 아닌가.강승의 직원을 시켜서 연설문을 바꾼 것도 모자라 감히 회사 안에서 직원과 따로 만나다니.그런 짓을 하면서도 반하준은 카메라를 피할 생각조차 못 했던 걸까.강나현은 놀란 표정으로 반하준을 바라봤지만 남자는 다 들키고도 태연하게 의자에 앉아 있었다.마치 대형 스크린에서 강승 직원과 공모한 사람이 전혀 아닌 것처럼.강민아는 시치미를 떼는 반하준의 모습에 입을 열었다.“그럼 저 직원에게 반 대표님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물어보죠.”카메라에 찍힌 직원은 당황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의 시선을 마주한 채 눈에 띄게 두 다리를 덜덜 떨었다.“부사장님, 반 대표님이 저한테 시켰어요! 저한테 2천만원 줬는데 이 돈 다 드릴게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경악하며 말했다.“정말 반하준이 한 짓이야? 심은호를 노리는 건가?”“심은호와 강민아가 만나니까 전남편이 질투가 나는 건 당연하지. 근데 너무 비열하다.”강민아에게 공개적으로 폭로 당한 반하준은 비웃듯 콧방귀를 뀌었다.“너한테 들킬 줄 알았어. 그냥 네가 어떻게 할지 보고 싶었을 뿐이야. 심은호의 연설문이 바뀐 걸 알고도 아무 말 안 하길래 난 네가...”반하준은 말을 꺼내며 입에서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그는 수치심도 모르는 듯 이렇게 물었다.“그래, 내가 시켰어. 그게 뭐? 강민아, 심은호 때문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