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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or: 복덩이
강나현이 비닐봉지를 들고 개조된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딱 붙는 요가 바지를 입은 여자를 본 경비원의 표정이 거의 넋이 나갔다.

강나현은 풀어헤친 긴 머리를 흩날리면서 경비원에게 인사를 건넨 후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

미리 반현민의 반을 알아본 그녀는 담임 선생님을 보자마자 웃으며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민이한테 왁스 병 캔디를 주러 왔어요. 듣자 하니 다른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다면서요?”

담임 선생님이 강나현을 훑어보며 물었다.

“혹시 현민이한테 왁스 병 캔디를 준 게 당신이에요?”

강나현이 신난 얼굴로 말했다.

“네. 제 친구가 만든 건데 최고급 식용 왁스로...”

“당신이었군요. 당신 때문에 우리 아들이 질식할 뻔한 거 알아요?”

그녀의 뒤에 있던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강나현이 돌아서자마자 찰진 소리와 함께 뺨 한 대를 얻어맞았는데 그 순간 눈앞이 다 캄캄해졌다.

“왜 때려요?”

“당신 때문에 우리 애가 죽을 뻔했다고요.”

남에게 얻어맞고 가만히 있을 강나현이 아니었다. 입가에 묻은 피를 핥더니 몇몇 학부모들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다.

...

어린이집 하원 시간, 반우정은 데리러 온 강민아에게 강나현이 얻어맞던 광경을 아주 실감 나게 묘사했다.

강나현이 얻어맞는 걸 보고 반현민이 도와주려 하자 반우정이 반현민의 옷깃을 붙잡고 끌고 갔다고 했다.

얼굴이 퉁퉁 붓고 멍이 든 강나현은 반현민을 데리고 선생님에게 조퇴를 신청했다.

다른 어머니들도 강나현을 알아보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들이 무슨 욕을 하는지 반우정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험한 욕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반우정이 카시트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을 바라봤다.

“엄마, 우리 집에 가는 거예요?”

아이의 반짝이던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강민아가 대답했다.

“마지막이야.”

...

“사모님, 아가씨, 드디어 오셨군요.”

오소정은 강민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민아가 집을 나간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저택의 도우미들은 거의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녀가 대답했다.

“나랑 정이 짐을 정리하러 왔어요.”

오소정이 별생각 없이 말했다.

“강나현 씨가 집에 있어요.”

반우정의 손을 잡고 거실로 들어가자마자 욕설을 퍼붓는 강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아줌마들을 상대하고 싶지도 않아. 내가 정말로 마음먹고 싸웠다면 싹 다 뭉개버렸을 텐데. 으악, 아파. 살살 좀 해.”

강나현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반하준이 면봉으로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반현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형, 아파요?”

“난 튼튼해서 안 아파. 으악. 하준 씨, 너무 세게 누르지 마.”

강나현이 얼굴을 찡그리더니 반하준의 허벅지를 걷어차려고 발을 들었다. 반하준이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

그녀의 얼굴에 상처가 난 걸 본 반현민은 점점 죄책감이 들었다.

“다 내 잘못이에요. 나 때문에 현이 형이 다쳤어요.”

반현민이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반하준의 눈치를 살폈다.

예전에 강민아가 데었거나 과일을 깎다가 손을 베어 피가 많이 났을 때도 반하준은 걱정한 적이 없었고 직접 붕대로 감아준 적은 더더욱 없었다.

하지만 강나현이 다치자 바로 소매 단추를 풀고 직접 면봉을 들고 약을 발라주었다.

하여 반하준에게 있어서 강나현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때 강민아와 반우정이 들어왔다.

“흥.”

두 사람을 본 반현민이 화를 내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말도 섞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강나현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더니 옆에 앉은 반하준에게 바짝 붙었다.

“민아 언니, 드디어 왔구나.”

왠지 모르게 비아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반하준은 강민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나현이 옷이 더러워졌어. 드레스룸에 가서 안 입은 옷 몇 벌 가져와.”

그의 눈과 마음속에는 오직 강나현뿐이었다.

강민아는 반하준의 말을 무시하고 반우정의 손을 잡은 채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결혼식에서 그는 평생 강민아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땐 강민아도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반현민과 반우정이 태어난 후 그들은 각방을 썼다. 시어머니는 그녀에게 분수를 알아야 한다면서 아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돌보라고 했다. 아이들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반하준에게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반하준에게 배즙을 가져다주다가 반하준이 이어폰을 낀 채 하는 말을 들었다.

“오래전부터 각방을 썼는데 걔가 코를 고는지 알 리가 있나.”

반하준의 이어폰에서 강나현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강민아는 조용히 배즙을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나한테 너무 매달려. 걔 가끔 짜증 나지 않아?”

그날 이후 그녀는 오로지 아이들을 키우는 데만 신경을 썼다.

...

강민아의 모습이 2층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강나현이 입을 열었다.

“민아 언니가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아직도 나 때문에 화가 안 풀렸나 봐.”

반하준이 약을 꼼꼼하게 발라주면서 말했다.

“신경 쓰지 마.”

그는 강민아가 반우정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면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돌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강나현이 간 후에 또 비굴한 태도로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쓸 것이다.

반현민이 옆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다 정이 때문이에요. 정이가 날 말리지만 않았어도 현이 형을 지켜줬을 텐데.”

강나현이 반현민을 품에 안았다.

“우리 민이 아직 어리지만 내 눈에는 너도 네 아빠만큼 아주 멋진 남자야.”

반하준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말에 반현민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반하준을 숭배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잠시 후 강민아와 반우정이 내려왔다. 강민아가 28인치 캐리어를 들고 있었고 반우정이 돕겠다고 캐리어 뒷바퀴를 들었다.

반우정이 타고난 힘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강민아는 자기 체중 이상의 물건을 들지 못하게 했다.

반우정이 어깨에 작은 책가방을 메고 있었고 다른 손에 곰돌이 인형을 안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강나현이 놀란 얼굴로 소리쳤다.

“언니, 그 큰 캐리어를 들고 어디 가게?”

반하준의 시선이 캐리어에 향했다. 깊은 두 눈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야?”

강민아가 숨을 헐떡이며 캐리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힘겹게 손에 낀 결혼반지를 빼내 반하준의 앞에 놓인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을 힐끗 보았다. 결혼 7년 동안 결혼반지를 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강민아는 체중이 늘어 약지에 회복하기 어려운 흔적이 생기고 말았다.

반하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고 뱉어내는 숨결마저 차갑기 그지없었다.

“강민아. 그만해, 이제.”

‘친정에 가질 않나, 반지를 빼질 않나. 유치해서 원.’

강민아의 시선이 반하준의 손목에 닿더니 이내 강나현의 손목을 힐끗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둘이 커플 시계까지 했네?”

반하준도 그제야 강나현의 손목을 쳐다봤다. 강나현이 그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여성용 시계를 차고 있었다.

“언니, 커플 시계이긴 하지만 우리한테는 의미가 달라. 이건 우정 시계야.”

강나현이 억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준 씨랑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사이인데 같은 시계 좀 차면 어때서?”

“아, 맞다.”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운동 가방에서 네모난 케이스를 꺼냈다.

“언니가 삐진 거 알고 하준 씨가 언니 선물을 고르라고 특별히 부탁했어. 언니, 선물 받고 생일 파티 때 일은 다 잊어버려.”

강나현이 케이스를 열어 강민아에게 보여줬다. 안에 품질이 별로인 네잎클로버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해맑은 표정을 짓더니 목에 걸고 있던 똑같은 목걸이를 일부러 보여줬다. 물론 그녀의 목걸이는 비싸고 정교한 진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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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9화

    처음에 그의 눈빛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그러나 자신이 갇혀 있는 비좁은 공간과 구석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자신을 바라보는 두 아이를 발견한 순간, 동공이 바늘구멍만 하게 수축했다.남자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하지만 두 손이 묶여 있어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쿵 하고 나동그라졌다.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정이와 반석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의 얼굴 근육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충격과 황당함, 그리고 모든 게 끝장났다는 절망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너희...”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목구멍에서 떨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너희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그때 화물칸이 갑자기 크게 흔들렸다. 정이가 포탄처럼 튀어 나갔다.아직 어린아이였지만, 강민아를 닮아 체격이 다부진 편이었다. 평소 엄마를 따라 요가도 하고 여기저기 뛰어놀며 자란 덕분에 작은 몸에는 힘이 넘쳐흘렀다.게다가 지금은 아드레날린까지 솟구치는 상황이었다.정이는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라 방금 정신을 차린 남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대로 남자의 허리 위에 거칠게 내려앉았다.“으윽!”두 손이 묶인 남자는 제대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마치 작은 산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간신히 일으켰던 상체가 다시 쾅 소리를 내며 철판 바닥에 처박혔다.차갑고 더러운 화물칸 바닥에 얼굴이 짓눌리자 코끝으로 지독한 쇠 냄새가 밀려들었다.정이는 두 다리를 벌려 말을 타듯 남자의 등 위에 올라탔다.그녀는 작은 두 손으로 남자의 뒷덜미를 있는 힘껏 움켜쥐고 머리를 바닥에 짓눌렀다.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관자놀이에는 핏줄까지 불거졌다. 정이는 이를 악물고는 낮고 매서운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움직이지 마. 이 나쁜 사람아. 또 움직이면 때릴 거야.”남자는 놀라움과 분노에 휩싸여, 굴욕감에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40여 년을 살아온 그가 고작 다섯 살짜리 꼬맹이에게 깔려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것도 이렇게 볼썽사나운 꼴로 말이다.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8화

    달리던 차가 갑자기 덜컥 멈춰 섰다. 타이어가 바닥을 긁으며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마찰음을 냈다.관성에 밀린 정이와 반석현은 뒤쪽 철제 벽에 세게 부딪혔다.반석현이 낮게 신음하자, 정이는 다급히 반석현을 끌어안고 그의 머리를 제 어깨에 파묻었다. 벽에 머리를 부딪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두 사람이 미처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엔진이 꺼졌다.세상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차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이름 모를 벌레 울음소리만 남았다.‘벌써 도착한 거야?’두 사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서로를 바라봤다.끼익.짐칸 뒷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더니, 눈부신 햇빛 한 줄기가 칼날처럼 안으로 파고들었다.정이는 눈이 부셔 가늘게 뜬 채 방수포 틈으로 밖을 내다봤다.운전석 쪽에서 회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남자는 다른 사람 하나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는 등에 업힌 사람을 거칠게 짐칸 안으로 내던졌다.쿵!정신을 잃은 남자가 짐칸 안으로 굴러떨어지며 이마를 바닥에 부딪쳤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정이는 놀라 온몸을 움찔했다. 반석현은 재빨리 정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두 사람은 숨조차 멈춘 채 꼼짝하지 않았다.운전자는 문밖에 서 있었다. 역광 때문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케이블 타이를 꺼내 짐칸에 쓰러진 남자의 두 팔을 등 뒤로 꺾어 단단히 묶는 모습만 보였다.그러고는 발로 남자를 걷어차 짐칸 안쪽으로 밀어 넣은 뒤, 문을 거칠게 닫았다.찰칵.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짧고 선명하게 울렸다.다음 순간 엔진이 다시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차체가 크게 한 번 떨리더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자갈길을 짓밟으며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어둠이 다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짐칸 안에 건장한 성인 남자 한 명이 더 늘어나자, 공기마저 한층 답답해진 듯했다.기름 냄새와 곰팡내가 뒤섞인 공기 사이로 희미한 피비린내까지 스며들었다.정이와 반석현은 방수포 아래에서 몸을 굳힌 채 서로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7화

    눈이 부실 만큼 강한 손전등 불빛이 차 안으로 훑고 들어와 종이상자와 방수포 위를 거칠게 비췄다.정이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작은 얼굴을 반석현의 어깨에 파묻었다. 두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쥔 탓에 손톱이 옷감 속으로 파고들 지경이었다.그녀는 반석현의 몸도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반석현은 한 손으로 정이의 뒤통수를 감싸 보호하고, 다른 손으로는 방수포 아래에서 태블릿을 꽉 쥐고 있었다.‘절대 들켜서는 안 돼.’“젠장, 냄새 한번 지독하네.”한 남자가 코를 막으며 투덜거렸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차부터 처리해. 괜히 시간 끌었다가 문제 생기면 골치 아파.”먼저 입을 열었던 남자가 계속 중얼거렸다.“젠장, 돈 많은 놈들은 진짜 아까운 줄도 모른다니까. 이 차, 헐값에 팔아도 몇백만은 받을 텐데. 그냥 폐차시키라니. 내 생각엔 차라리...”그러자 다른 남자가 버럭 소리쳤다.“야, 됐어. 시키는 대로만 해. 괜히 일을 더 키우지 말고. 이번에 제대로 한 건 했으니, 빨리 차 처리하고 빠져나가야지.”두 남자는 앞으로 자신들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쾅!차 문이 거칠게 닫혔다.곧이어 금속 잠금장치가 돌아가는 철컥 소리가 들렸다.순식간에 짙은 먹물 같은 어둠이 차 안을 완전히 집어삼켰다.정이는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반석현이 곧바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따뜻한 손바닥에는 긴장으로 맺힌 땀이 살짝 배어 있었다.반석현은 정이의 귓가에서 아주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숨결로 소식을 전했다.‘소리 내지 마.’곧 엔진이 거친 듯한 굉음을 토해 냈다. 곧 차체가 크게 한번 흔들리더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타이어가 깨진 유리 조각과 자갈을 밟고 지나가며 귀에 거슬리는 바드득 소리를 냈다.차체는 폭풍우 속을 헤쳐 가는 작은 배처럼 격렬하게 요동쳤다.정이와 반석현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정이는 얼른 다리에 힘을 주고 자세를 낮춘 채 반석현을 끌어안았다. 그가 뾰족한 상자 모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6화

    정이와 반석현은 철문 틈새로 몸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공장 안에는 코를 찌르는 화학약품 냄새가 남아 있었고, 녹슨 쇠 냄새와 퀴퀴한 곰팡이 냄새까지 뒤섞여 있었다.바닥에는 깨진 유리병과 찌그러진 화학약품 통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누렇게 말라붙은 잡초가 갈라진 시멘트 틈을 비집고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발목을 긁힐 것 같았다.반석현은 쪼그려 앉아 태블릿으로 바닥을 찍었다.“뭐 찾았어?”정이가 다가왔다.반석현은 바닥에 나란히 찍힌 두 줄의 타이어 자국을 가리켰다.흔적은 아주 선명했다.가장자리도 또렷했고 빗물에 씻긴 흔적도 없었다.게다가 타이어 무늬 사이의 간격까지.반석현은 태블릿에서 미리 저장해 둔 사건 관련 화물차 사진을 불러냈다.사진과 자국을 비교한 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민이를 납치한 그 차야.]정이가 목소리를 낮춘 채 다급히 속삭였다.두 줄로 길게 이어진 타이어 자국은 흉터처럼 망가진 바닥을 가르며 공장 깊숙한 곳으로 이어져 있었다.정이와 반석현은 벽에 바짝 붙어 이동했다.본관 뒤편에 산더미처럼 쌓인 폐파이프 더미를 돌아간 끝에, 반쯤 무너진 철제 지붕 아래에서 마침내 목표물을 발견했다.흰색 중형 화물 밴이었다.차량에는 낡은 검은색 방수포가 대충 덮여 있어 뒤쪽 일부만 드러나 있었다.하지만 전에 뉴스에서 경찰이 추격하던 차량과는 달랐다.이 차량의 왼쪽 범퍼에는 새로 생긴 듯한 긁힌 자국이 있었고, 차체에는 바리케이드에서 묻은 것 같은 짙은 붉은색 페인트가 남아 있었다.반석현은 몸을 낮춰 타이어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었다.손끝에 미세한 고무 가루가 묻어났다.그는 태블릿을 들어 화면 속 사진과 꼼꼼히 비교했다.타이어 무늬 간격과 마모 정도까지 시스템에 저장된 두 번째 화물차와 완벽하게 일치했다.틀림없었다.바로 이 차였다!정이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정이는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차 뒤쪽 발판에 올라섰다.그리고 살짝 열려 있는 화물칸 문에 손을 뻗었다.끼이익.금속 경첩이 귀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5화

    호출한 차량의 번호판은 반석현의 태블릿에 뜬 정보와 일치했다. 은색 국산 세단이었다.정이가 먼저 뒷좌석 문을 열더니, 작은 포탄처럼 차 안으로 쏙 뛰어들었다. 반석현도 곧바로 뒤따라 탔다. 차에 오르자마자 그는 태블릿을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손가락으로 화면을 빠르게 넘기며 화학공장 주변의 실시간 감시카메라 배치 상황을 확인했다.운전기사는 마흔이 넘은 아저씨였다. 백미러로 인형처럼 예쁘게 생긴 두 아이를 본 그는 순간 멈칫했다.“얘들아, 너희... 어른은 같이 안 가니?”정이는 사람의 마음을 녹여 버릴 것처럼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가지런한 젖니를 드러냈다.“아저씨, 저희는 아빠 찾으러 가는 거예요. 아빠가 화학공장에서 야근하고 있거든요. 엄마가 아빠한테 밥을 가져다드리라고 했어요.”그러면서 손에 있지도 않은 도시락을 흔드는 시늉까지 했다.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반석현마저 고개를 돌려볼 정도였다.운전기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반석현을 바라보았다.반석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맑고 차분한 눈에는 조금도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그는 심지어 살짝 고개까지 끄덕이며 정이의 연기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그런데...”운전기사가 머리를 긁적였다.“거긴 폐쇄된 지 벌써 3년이나 됐어. 라디오에서 그러더라. 어젯밤엔 그쪽에 경찰도 다녀갔다고.”마침 차 안 라디오가 속보로 전환됐다. 여성 앵커의 엄숙한 목소리가 좁은 차 안에 울려 퍼졌다.“부신 그룹의 작은 도련님 반현민 군의 실종 사건의 최신 소식입니다. 경찰은 서교 국도에서 사건 관련 차량을 발견했으나, 현재까지도 아이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정이의 얼굴에 떠 있던 미소가 순간 굳었다.반석현이 좌석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정이가 꽉 움켜쥔 주먹을 살며시 잡았다. 그의 손바닥은 차갑고 땀으로 축축했지만, 이상하게도 정이의 콩닥거리는 심장을 조금 진정시켜 주었다.“우리 아빠는 경비원이에요.”정이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경찰 아저씨들도 아빠가 부른 거예요. 우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614화

    반석현은 태블릿에 정이와 나눌 내용을 적었다.[트럭이 마지막으로 사라진 곳은 제3화학공단이야. 그 여자가 분명 그곳에 흔적을 남겼을 거야.][그 여자가 납치범들과 접촉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나, 민이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기록을 찾아야만 잡을 수 있어.]반석현이 태블릿을 내려놓고 정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단호했다.아직 어린 얼굴이었지만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이 묻어났다.정이 역시 그런 반석현의 잘생긴 얼굴을 2초 정도 빤히 쳐다보더니 힘껏 눈가를 문지르며 말했다.“나, 진실을 밝혀내고 말 거야!”정이의 말이 이어졌다.“민이 그 녀석, 가끔은 정말 밉고 나를 화나게 할 때도 많았고 엄마를 맨날 실망시키기만 했지만... 그래도 난 꼭 그 녀석을 찾을 거야. 이렇게 사라지게 둘 순 없어.”정이와 반석현은 서로를 바라봤다. 정이는 손가락 하나를 입술에 갖다 대고 입을 삐죽 내밀며 쉿 하는 소리를 냈다.“내가 민이 찾으러 가는 거, 석현이 너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반석현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사이 정이는 이미 책가방을 메고 있었다.정이가 그에게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반석현은 의자에 앉아 문 앞까지 다가간 정이를 바라보았다. 서재의 이 문은 그에게는 넘기 힘든 거대한 장벽과도 같았다. 그가 이 문을 밖으로 나서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런데 이번에는 정이가 이 문을 나서는 것뿐만 아니라, 민이가 사라졌던 그 위험한 장소로 직접 가겠다고 한다.반석현은 의자에서 내려와 붉은 입술을 꾹 깨물며 정이에게 다가갔다.“왜?”정이가 뒤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반석현은 천천히 정이를 향해 걸어갔다. 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그가 정이에게 손을 내밀었다.정이가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그녀는 반석현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정이도 반석현에게 손을 내밀며 그의 손을 꽉 잡았다.“석현아, 너도 나랑 같이 탐험하러 가고 싶은 거야?”반석현이 정이를 향해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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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아는 반진경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았기에 둘의 시선이 마주치자 허공에 불꽃이 튀며 타는 냄새가 났다.반씨 가문에서도 반진경은 강민아에게 그다지 친절하게 대하지 않았고, 그땐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강민아도 의식적으로 반진경을 피했다.그런데 여전히 자신을 저격하는 그녀의 모습에 강민아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편견이란 게 한번 자리 잡으면 사라지기 어렵고 재벌일수록 원래 외부인을 경멸하는 경향이 강하다.반진경 역시 반하준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진심으로 경멸했다.강민아가 반씨 가문으로 시집온 순간부터 반진경은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423화

    “반석현은 왜 갇힌 거예요?”비서가 목소리를 낮추며 민이에게 물었다.“몰라요.”민이가 대답을 하지 않자 비서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반씨 가문의 경호원 중 한 명이 말렸다.“대표님, 우선 돌아가시죠. 소방관들이 강민아 씨와 석현 도련님을 구하면 제일 먼저 연락드릴게요.”반하준이 차갑게 소리쳤다.“난 여기서 기다릴 거야! 두 사람 보기 전에는 안 가!”“아빠, 엄마가 일부러 안 나오려고 숨어 있는 건 아닐까요?”“무슨 헛소리야!”반하준의 칼날 같은 눈빛은 금방이라도 민이의 작은 몸을 난도질할 것 같았다. 민이는

  • 사라진 아내, 돌아온 나   제342화

    무대에 있던 강민아도 순간 멈칫했다.반진경은 떨리는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감싸며 눈을 크게 떴다.부은 뺨을 만지자 머리카락보다 가는 수백만 개의 바늘이 혈관을 뚫고 피부를 찢는 것만 같았다.반진경은 그제야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왜 날 때려요?”반진경이 빽 소리를 지르자 우경아는 그저 웃었다.눈꼬리가 위로 올라가고 풍성한 속눈썹은 눈가에 내려앉은 나비가 날갯짓하듯 펄럭거렸다.“때리는 거로는 부족하지. 머리에 구멍을 뚫어 구정물을 다 내보내야 하니까.”우경아가 키 172에 15센티 하이힐까지 신으니 그녀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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