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우주의 바램과는 달리 이현과 태하의 부모님은 그들을 호출했다. 말도 안되는 저급한 소문에 아들들이 엮인 게 불편했던 것.태하는 독서실 대신 본가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버지의 짧고 명확한 한마디가 들려왔다.“정태하, 이게 무슨 일이야?”“아, 게시판에 친구들에 대한 헛소문이 올라와서요.”“거기에 네가 왜 변호를 하고 나서?”“당연히 바로 잡아야죠. 사실이 아니니까요.”아버지의 턱이 단단하게 다물렸다. 아들의 반응은 예상했지만, 그렇게까지 나설 일은 아니었다는 판단이었다.“이현이야 그렇다 쳐도, 강은하. 그 애랑은 왜 자꾸 엮이는 거지?”“은하도 이현이처럼 친구입니다.”“앞으로 불필요한 일에 괜히 휘말리지 마라.”“네. 주의하겠습니다.”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나서 얼어붙은 분위기를 재빨리 정리했다.“태하야, 오랜만에 같이 저녁 먹고 가.”“네.”같은 시각, 이현이 역시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본가로 향했다.거대한 서재 안에서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 아버지의 미간엔 이미 깊은 주름이 잡혀있었다.“부르셨어요?”“학교에서 들었다.”“네. 알고 있습니다.”“고작 이까짓 소문에 휘말리려고 나간 것이냐?”“소문은 소문일 뿐이잖아요. 작정하고 낸 소문을 저보고 어쩌란 말이에요.”반항적인 대답에 아버지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괜히 그런 애랑 얽혀 있으니까, 이딴 저급한 소문이 시작 된 거라는 걸 아직도 모르는 거냐?”이현이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그런 애요? 오히려 저 같은 애랑 만나줘서 고마운데요?”“정신도 온전치 못한 애랑 도대체 왜 어울려 다니는 건지.”이현의 입술이 순간적으로 비틀어졌다. 주먹을 쥔 손등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아버지는 누구 편이신지를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제가 괜한 기대를 했나 봅니다.”“네가 직접적으로 얽혀 있으니, 이번 일은 나 또한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지내는 것도 올 해가 끝이라는 건 알고 있겠지.”“그러시겠죠.”그저 형식적인
쭈뼛거리며 의자에 앉자마자, 선생님은 노트북 화면부터 돌려 보였다. 이미 아침부터 시끌시끌 했던 글이 여전히 홈페이지 상위에 떠 있었다.교무실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줄래?”“사실이 아닌데요?”“그럼 사진 속 상황은 뭐야? 너희 둘이 같은 집으로 들어가는 사진이 찍혔잖아.”“저는 태하랑 같이 강은하 옆집에 살고요. 저녁마다 은하 오빠 분이 저녁을 차려주세요. 그게 다예요.”선생님들은 이현의 말을 듣고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옆집이라고?”“네. 태하랑은 이미 반년 넘게 같이 지내고 있고, 이건 부모님들께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그 말에 선생님들의 태도가 살짝 누그러지는 듯했다.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은하가 입을 열었다.“죄송합니다. 괜히 이런 소문이 학교에 퍼져서….”“일단 이현이랑 태하 부모님께 확인 먼저 해볼게. 아, 은하 오빠랑도.”“네. 그리고 선생님. 이번 일은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명백한 명예훼손 같은데요?”순간 교무실 안이 조용해졌다.선생님들도 이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했다.“이현아, 일단 아니라니까 됐어. 선생님도 더 확인 해 보고 조치를 취할게.”“학교측에서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시면, 한성 그룹에서 움직일 겁니다.”선생님들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버렸다. 누구보다 이현이 어떤 집안의 아들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너희도 조금만 기다려 줘. 일단 교실로들 돌아가고.”그렇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판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태하 역시 그들이 교무실을 간 사이 학교 게시판에 자신의 이름으로 로그인을 했다.당연히 목적은 반박글 업로드. [제목: 동거? 지랄들을 하고 자빠졌어.]어제부터 계속 올라오는 글들. 읽어 보니까 진짜 개소리들의 향연이더라.동거설? 지금부터 팩트 체크 들어간다.이현이랑 나는 한 집에서 자취 중이고, 강은하는 옆집에 살 뿐.매일 저녁 은하 집에서 저녁을 먹는 건 맞는데, 그건 은하 오빠가 걱정하는 마음에 차려주시는 거고. 아, 그리고 공황
그렇다고해서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오히려 상황이 꽤 재미있어졌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저장된 사진을 바라보는 눈동자는 또렷했고,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이걸 어떻게 써먹지?’그냥 들이대는 건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이현 선배가 더 까칠하게 반응할 수도 있고, 그건 분명 역효과가 될 것이다.순간, 확실한 파장이 훨씬 더 효과적이는 생각이 들어버렸다.그래야 사람들의 반응이 빠르게 나타나고, 그들 사이에도 균열이 생길 테니까. 집으로 돌아온 소라는 밤 늦게 까지 한참을 고민한 후, 결국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을 열었다. 아이디를 따로 만들 필요 없이 익명으로 게시글을 작성할 수 있는 자유 게시판.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게시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제목: 우리 학교 커플, 동거설 실화냐?]얘들아, 나만 몰랐냐?3학년 백이현, 그리고 강은하 같이 사는 거 실화임?이거 학원 끝나고 두 사람 같이 집 들어가는 거 직접 보고 찍은 사진임.이 정도면 그냥 사귀는 게 아니라 진짜 동거 아님?(첨부 파일: 사진 1장 업로드됨)마지막으로 글을 검토한 뒤, 곧바로 ‘등록’ 버튼을 눌렀다.딸깍.그 순간, 학교 게시판에 새로운 글이 올라갔다. 소라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떨리는 마음으로 반응을 기다렸다.생각보다 빠르게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뭐? 저 둘이 동거한다고? 실화냐?][아니 근데 사진 보니까 ㄹㅇ 같은 집 들어가네;][다들 설레발 그만 치셈. 부모님끼리 아는 사이일수도 있고, 동거라고 치부하기엔 집이 너무 큼. 원룸도 아니고.][참고로 백이현 자취함. 부잣집 도련님이 미쳤다고 좁아터진 원룸을 구했을까~]마지막 댓글이 신의 한 수였다.정말로 자취를 하는 상황이라면, 꼭 동거가 아니더라도 충분한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내일이면 학교 전체에 퍼지겠네.’강은하가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태연할 수 있을까. 그것도 공황 장애 환자 계지배가.그리고, 이현 선배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소라는 왠지 모르게 내일이 너
곧바로 핸드폰을 들어, 방금 전 통화했던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혹시, 그 강은하 선배가 다니는 학원이 어디래?]몇 분 후, 친구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아뜰리에 루미에르.]곧바로 미술학원 위치를 검색했다. 학교와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곧장 부모님이 계신 거실로 달려갔다.“엄마, 아빠. 나 미술 학원 다닐래.”***다음날, 소라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미술 학원으로 향해 빠르게 등록 절차를 끝내버렸다.이미 마음을 정한 이상 더는 미룰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은하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도대체 어떤 사람일까?’백이현 선배가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여자친구라고 말했던 사람.‘사이도 안 좋았다면서 갑자기 왜 좋아하게 된 거지? 그것도 공황 장애가 있는 사람을?’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어딘가 찜찜한 의심마저 들었다.얼마나 특별한 매력을 가지고 있길래. 그것부터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다.수업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학원 문이 열리며 익숙한 실루엣이 포착됐다. 은하는 검은색 가방을 어깨에 멘 채 말없이 학원 안으로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소라는 은하와 최대한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새로 들어온 학생처럼 보였지만, 시선만큼은 계속 해서 은하를 향하고 있었다. 은하는 소라의 존재를 신경 쓰는 기색 없이 자신의 작업에만 집중했다.연필을 쥐고 정확한 선을 그리며 몰입하는 모습.곧 원장님이 다가와 선을 그리는 방법을 알려주었지만, 소라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의미 없는 선 만을 그리며 은하를 지켜보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소라는 결국 직접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저기, 강은하 선배님 맞죠?”은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아무리도 놀라는 표정을 보아하니, 단번에 알아 본 모양이었다.“너는, 그….”“네. 저 이번에 새로 등록한 최소라예요. 잘 부탁드려요.”은하는 잠시 놀라긴 했지만, 그
이현의 손에 이끌려 교실로 향하던 은하가 조심스레 물었다.“뭐야...? 너 고백 받았었어?”“응.”너무도 간단한 대답이었다.하지만 은하는 왠지 모르게 속이 더 찜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야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으니까.“나한테 왜 얘기 안 했어?”“굳이 뭐 하러. 어차피 신경도 안 쓰이는 일인데.”“그래도….”“왜? 말 안해서 서운했어?”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은하는 바로 표정을 굳히더니, 손을 뻗어 이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됐어. 아니거든.”눈치 없는 이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장난기가 고개를 들어버렸다. “맞네! 맞아! 맞구만!”태연한 얼굴로 놀려대는 모습에 은하의 속이 욱 하고 치밀어 올랐다. “나도 고백 받으면 말 안 해도 돼?”이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잠깐만.”머릿속이 복잡해졌다.‘어? 이건 아닌데?’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싫었다. 아니, 그냥 싫은 게 아니라 생각만 해도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누군가 강은하한테 고백을 한다? 그리고 은하는 그 사실을 나한테 말하지 않는다?아씨, 그건 진짜 최악이었다.“강은하, 미안.”“갑자기?”“입장 바꿔 생각해보니까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 진짜 미안해. 잘못했어.”은하는 순간적으로 말을 잃었다. 무슨 인정이 또 이렇게 빨라? 정말로 알 수 없는 캐릭터였다.이현이 다시 한번 단도리를 하듯 목소리를 잔뜩 내리깔았다.“그런 일 있으면 나한테 꼭 말해. 쫓아가서 꿀밤을 콩 때려버릴 테니까.”천천히 숨을 들이마쉰 은하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일단 너부터 좀 맞자.”콩!이현은 꿀밤을 맞고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다시 은하의 손을 맞잡았다. “가자가자요!”***한참을 울던 소라는 결국 눈물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친구들이 아무리 위로해도 가슴 한쪽에 남아 있는 허전함과 씁쓸함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강은하….’이현 선배가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여자친구라고 지칭했던 이름.자신이 1년 넘게 좋아해온 사람의 곁을 떡하니 차지하고
등교를 한 이현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책상 위에 올려진 작은 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 것. 상자를 열어보니 형형색색의 마카롱과 함께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조심스레 편지를 열어 읽어 내려가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선배님. 2학년 4반 최소라입니다. 1학년 때부터 선배님을 좋아했어요. 그동안은 쉽게 다가가진 못했지만, 계단에서 저를 잡아주신 순간 더는 망설이지 않기로 결심 했어요. 졸업하시기 전에 꼭 제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오늘 학교 끝나고 저랑 데이트 어떠신가요? 제 연락처 적어둘게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최소라-]‘아오… 확 잡아주지 말았어야 했나.’말없이 손에 들린 편지를 다시 접었다.딱히 고민할 것도 없었다. 편지를 다시 상자 안에 넣어두고는 그냥 한쪽으로 밀어두었다.그날 이후, 며칠 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범한 일상만이 흐르고 또 흘렀다. 수업 시간엔 졸린 눈을 비비며 칠판을 바라보고, 점심시간엔 늘 그렇듯 장난을 주고받았다.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집중하는 나날만이 이어졌다.이현은 소라의 고백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자연스럽게 지나갈 거라 생각했으니까.하지만 그 믿음은 다음 날 등굣길에서 와장창 깨졌다.태하, 은하와 함께 교문을 지나는 이현을 향해 여학생 세 명이 다가왔다. “저기…”낯선 목소리에 모두가 멈춰섰고, 그들 중 한 명은 익숙한 얼굴인 소라였다.소라는 평소보다 더 단정한 모습으로 이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옆에 선 두 명의 여학생도 비슷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태하가 가장 먼저 한 숨을 내쉬었다.“뭐냐, 이 분위기.”이현은 굳이 감정을 드러내기 싫다는 듯 입술만 움직였다.“뭐야 또?”“선배님, 저랑 잠깐 얘기 좀 하실 수 있으실까요?”은하는 자신도 모르게 이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어느새 그들 사이의 공기는 어딘가 팽팽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할 말 있으면 여기서 해.”소라는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 옆에 있는 친구들을 힐끗 보더니, 다시 이현을
“어제 그 말,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뭐?”“유치하다는 말, 굉장히 거슬리더라고?”순간, 주변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살짝 커졌다. 몇몇 학생들이 흘끔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현은 그런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를 즐기는 듯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은하를 지켜보았다.은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와, 볼수록 웃기는 애네. 이거.”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현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주변 학생들 사이에서도 점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은하는
그렇게 은하의 첫 등교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약간의 불편한 상황은 생겼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은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은색 차 한 대. 오빠, 우주였다.“끝났어?”하루 종일 바쁜 일정이었을텐데도, 우주는 은하의 첫 등교가 궁금한 탓에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은하는 생각지도 못했던 오빠의 마중에 조금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조용히 끄덕이며 조수석에 올랐다.계절과 다르게 차 안은 따뜻했다. 차창 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오늘, 학교는
태하는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동시에 확고한 분위기를 풍기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현과 은하 사이에 정확하게 멈춰 섰다. 시선은 은하를 먼저 스쳤다. 짧고도 묘한 무게감이 담긴 눈빛은 곧장 이현을 향해 차갑게 바뀌어갔다.“그만 좀 해.”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현은 태하를 바라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어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한쪽 입술을 비틀며 지어 올리는 미소, 아직도 벽에 기댄 채 잔뜩 긴장하고 있는 학생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이현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시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강우주.조용한 진료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업무였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정리 하다 가도, 다시금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은하는 괜찮겠지….”정신과 의사인 우주. 사실 그가 정신 의학과라는 길을 선택한 이유도 동생, 은하 때문이었다.은하가 9살이던 그날 이후. 그 어린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가혹했던 사건이 지나간 후, 은하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활기라곤 온데간데 사라졌고, 과거의 기억을 잃었으며, 때때로 보이는 불안한 모습과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