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민희는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한참을 입을 다문 우주가 이현과 태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잠깐 나가자.”“네? 은하는요?”“약 기운 때문에 한참 동안 잘 거야. 나가서 얘기 하자.”조심스레 병실을 나와 병원 한 켠에 위치한 휴게실로 향했다. “장례식장에서 은하가 어떻게 쓰러졌는지,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어?”태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처음에는 그냥… 힘들어하는 것 같았어요. 서연이 영정사진을 보고 나서부터, 은하 얼굴이 점점 하얘지더라고요.”이현이 말을 이었다.“그러다 갑자기 한참을 움직이지 않더니, 손을 떨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확실히 이상했어요.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그동안 은하가 힘들 때 보이던 반응이랑 비슷했어요.”우주의 표정이 더욱 더 심각해졌다.“은하가 아무래도, 기억을 떠올린 것 같네.”“네? 무슨 기억이요?”“아마도 부모님에 대한 기억 일거야… 지금은 어디까지 떠올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부모님 사고와 관련된 무언가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아.”“형님, 단순한 사고가 아니셨던 거에요?”“아니, 사고 맞아. 다만, 은하가 자책할 만한 사고인 건 분명해.”이현과 태하가 눈살을 찌푸렸다. 부모님의 사고를 왜 강은하가 자책을 해? 말이 안 되잖아.“…그게 무슨 뜻이에요?”“형님…?”한참을 고민하던 우주는 결국 모든 걸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은하가 사건 이후 많이 힘들어했어.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그때부터 부모님 사이에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어. 어머니는 하루빨리 정신과 진료라도 받기를 원하셨고, 아버지는 은하가 그것조차 싫어하니까 시간을 좀 갖자고 하셨고. 그리고 그날… 결국 동료 의사분께 상담이라도 받아보시겠다고 급하게 나가신 거야.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거든.”“그래서 비 오는날 천둥 소리를…”우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 은하가 유괴 당하던 날도 비가 많이 왔어.”비 오는 날, 천둥이 치는 날. 은하가 두려워했던 요소들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
서연이의 빈소가 차려졌다.학교 앞의 혼란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이곳은 조용했다.아니, 차라리 무겁게 가라앉아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았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만이 가슴을 치며 울고 계셨다.“아이고, 우리 서연이… 우리 착한 서연이…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 이 나쁜 놈들아… 우리 서연이가 뭘 잘못해서… 도대체 그 착한 아이를 왜….”비통한 광경에 그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담임 선생님이 말없이 할머니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할 뿐이었다.네 사람은 꺽꺽거리며 서연이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귀여운 얼굴. 도무지 이 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내 친구 서연이.은하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서연아….”한참을 흐느끼며 서연이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무언가 익숙한 장면이 은하의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그건 어릴 적, 이곳의 분위기와 비슷한 장례식장의 모습이었다.검은 옷을 입은 어른들, 눈물을 쏟아내며 자신을 안아주던 사람들.그게 다가 아니었다. 옆에서 흐느끼던 오빠의 모습은 물론, 환하게 웃던 부모님의 얼굴이 담긴 영정사진까지 또렷해졌다.'뭐지….'이상했다.납치, 부모님의 죽음. 어린 시절의 기억은 물론 그 해의 기억은 마치 삭제된 듯 없어져 버렸는데. 하필이면 지금, 장례식장 분위기가 전해주는 그 분위기를 느낀 순간. 모든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서늘한 감각이 빠르게 온몸을 덮쳐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하지만 한 번 떠오르기 시작한 기억은 멈추지 않았다. 또 다시 다른 기억으로 빠르게 연결되었다. ***유괴 사건 이후, 은하는 말을 잃었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혼자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다. 부모님은 그런 은하를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게 했지만 은하는 그 역시도 거부했다.그리고 그때부터였다. 부모님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던 건.그날 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밤.부모님은 처음으로 격한 목소리를 쏟아내며 말다툼
상담실에 들어선 후, 담임 선생님이 어두운 표정으로 문을 닫았다.의자에 앉으면서도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모두의 시선이 선생님에게 집중되었다.“얘들아, 이미 소식들은 들어서 알 테지만… 너희가 서연이랑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었으니까.” 은하가 가장 먼저 힘겹게 입을 열었다.“선생님… 도대체 서연이 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담임 선생님은 한참을 망설이듯 주먹을 쥐었다가 풀다가를 반복했다.“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경찰에서도 이 사건을 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 중이야.”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선생님의 입에서 직접 듣는 순간, 그 사실은 비로소 선명한 현실이 되었다.태하가 물었다.“…사인은요?”“너무나도 잔인하지만, 목이 졸려 살해 당했어. 손 발도 묶인 상태로 발견됐고.”네 사람의 얼굴이 일순간 하얗게 질렸다.차라리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까. 차라리 이 모든 게 그냥 끔찍한 꿈이었으면 좋았을까. 잔혹한 진실이 그들의 가슴을 후벼팠다.“오늘 오후에 부검 결과가 나오면, 장례식이 진행 될 거야.”장례식이라는 단어조차도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서연의 죽음을 더이상 부정할 수 없다는 걸 강제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처절한 단어.“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았으니까, 너희들도 절대 혼자 다니지 말고 꼭 붙어 다니고.”수업이 시작되기 전, 학교 전체에 방송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학생들은 당분간 범인이 검거될 때까지 절대, 밤늦게 혼자 돌아다니지 않도록 주의 하시길 바랍니다.]아이들의 눈빛이 공포와 긴장으로 가득 차 올랐다.***진료실 안,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던 우주는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긴장감을 가라앉히려 깊게 숨을 들이마셨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속이 울렁거렸다. “박 형사님. 안녕하세요. 강우주입니다.”“아 네. 우주 씨. 은하양은 잘 지내고 있나요?”익숙한 목소리였다.9살이던 은하가 유괴를 당했던 당시 사건을 맡았던 형사.부모님 장례식에도 오셨
한참을 앉아 흐느끼던 은하가 우주에게 뛰어가 안기더니,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깜짝 놀란 우주가 은하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손바닥으로 등을 쓸어 내렸다.“은하야… 왜 울어? 응? 무슨 일 있었어?”“오빠… 서연이가….”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기만 하는 은하.우주는 그런 은하를 안아주며 이현과 태하, 민희를 바라보았고 이제야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태하야, 다들 무슨 일이야? 응? 서연이가 왜?”“….”“무슨 일이길래 다들 이러고 있어. 말 좀 해봐.”태하가 입술을 달달 떨며, 한마디를 내뱉었다.“서연이가… 죽었대요.”“…뭐?”우주 역시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도대체 고등학생에 왜, 그 어린 게 왜.은하는 우주의 품에서 여전히 흐느꼈고, 민희는 입을 가린 채 눈물을 떨구었으며, 고개를 돌린 이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태하는 굳은 얼굴로 다시 한 번 현실을 전해주었다.“진짜래요, 진짜로 서연이가 죽었대요….”심장이 쿵 쿵 뛰었고, 숨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답답했다.불현듯 서연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글동글한 안경처럼, 귀엽고 앙증맞은 말간 얼굴. 자신을 보고 쑥쓰럽게 인사하던 그 기어들어가던 목소리까지.“….”이제야 그는, 눈앞의 아이들이 왜 이토록 무너져 있는지 깨달았다.이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은하야, 어떻게 된 거야?”은하는 여전히 울기만 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현이 은하 대신 대답했다.“오늘 강 옆에 둑에서 발견 됐대요. 사고가 아니라… 살해 당한 거라고….”괜히 물었다. 이건, 정말로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잔혹한 대답이었다.이미 아이들의 눈은 붉게 물든 걸 지나쳐 퉁퉁 부어있었다.그리고, 누구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게 분명했다.“얘들아, 일단 우리 집으로 가자. 오늘은 다 같이 있자. 응?”
하루 종일 서연이 걱정에 잠겨 있는 그들. 수업 시간도, 쉬는 시간도. 시간은 흐릿하고 무겁게만 흘러갔다. 결국 학교가 끝나고 다시 모인 그들은 결국 서연이를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지금은 학원 따위가 중요한게 아니었다.“이렇게 기다리기만 할 수 없어.”“이현이네 집 근처부터 한번 싹 훑어보자.”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서연의 모습은커녕,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놀이터, 집 근처, 학교 앞, 학원 거리. 어느 곳에서도 서연이를 본 사람은 없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한참을 찾아 나서던 그때, 민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두가 걸음을 멈춘 채 긴장했다.“여보세요?” 민희는 몇 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고, 모두가 걸음을 멈춘 채 긴장했다.그리고 툭.민희의 핸드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은하가 다급히 물었다.“왜 그래? 민희야? 무슨 일이야?”민희는 대답 대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야..! 정민희! 뭔데 그래?”“민희야…?”숨까지 헐떡이던 민희가 입술을 달달 떨며 겨우 겨우 말을 짜냈다.“서, 서연이가… 서연이가… 죽…죽었대.”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세 사람은 그대로 얼어붙었고, 은하의 목소리가 불안한 듯 떨렸다.“말도 안돼. 그럴 리가 없잖아. 왜 그런 거짓말을 해.”“….”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거짓말이잖아...! 서연이가 갑자기 왜!”“반장한테 전화 왔어… 진짜래… 진짜라잖아….”서연이를 찾았다. 하지만, 그게 그런 의미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은하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조차 어려웠다. 눈앞이 자꾸만 흐려졌다.“어디서.”이현이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은하의 어깨를 감싸며 물었다. “강 옆… 둑에서….”제 귀로 듣고도 믿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엔 모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도대체 왜, 서연이가 둑에는 왜 간 건데.***학교로 다시 돌아온 네 사람은, 곧
은하의 심장이 자꾸만 내려앉았다. 점심시간까지도 서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던 그들은 평소처럼 떠들썩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서연이 걱정 뿐이었으니까.태하가 은하를 향해 물었다.“은하야. 아직도 연락 안 돼?”“응. 카톡도 안 읽고, 전화기도 꺼져 있어.”이현이 수저를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어디 아픈 거 아니야?”은하는 그 말에 더욱 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불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교실로 돌아가는 길, 복도에서 담임 선생님이 그들을 불러 세웠다.“얘들아, 잠깐만.”다들 발걸음을 멈췄다. 선생님의 표정은 어딘가 심각해 보였다.“너희 혹시, 어제 윤서연 본 적 있니?”태하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네. 어제 저희랑 같이 있었어요.”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무겁게 말을 이어갔다.“…서연이가, 어제 집에 안 들어 왔다는데?”순간, 모두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민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네? 집에 안 들어갔다고요…?”은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숨조차 쉬는 걸 잊어버린 것 같았다.머릿속에는 함께 영화를 보던 서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 걱정 없어 보였는데. 평소랑 똑같았는데.아니, 집이 아니면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서연이 할머니가 학교로 오고 계셔. 오시면 어제 있던 상황 좀 설명해줄래?”“…네.”모두가 긴장했다. 단순히 어딘가 아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예 귀가조차 하지 않았다니.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잠시 후 상담실로 모인 네 사람.그들 앞에는 손수건을 들고 울먹이는 서연이 할머니, 그리고 동행한 경찰관의 모습이 보였다. 붉어진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할머니의 입에서 목이 메인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얘들아… 우리 서연이를 못 찾겠다.”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민희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태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은하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느낌이었다.이현 조차도 평소와는 다르게 유난히 말이 없었다. 그때, 경찰관 중 한 명이 조용히 노트
조심스럽게 은하를 안아들고 보건실로 향해 걸음을 옮기는 태하. 팔에 안긴 몸은 생각보다 가벼웠고, 숨소리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민희 역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뒤를 따르며 은하의 핸드폰을 꽉 쥐고 있었다.보건실로 향하자마자 은하를 조심스레 침대 위에 내려 놓았다.놀란 보건 선생님이 급히 다가와 은하의 상태를 살폈고, 담임 선생님 역시 소식을 듣고 보건실로 달려왔다.“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큰 소리에 갑자기 놀란 듯 하더니… 가방에서 약을 꺼내 먹었어요.”“약? 무슨 약?”민희는 서둘러 은하의 가방을 뒤적여 은하가 먹었던
뒷문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태하가 은하를 향해 다가왔다. “괜찮아? 보건실 데려다 줘?”목소리엔 왠지 모를 걱정이 담겨 있었고, 눈빛에는 분명한 진심이 서려 있었다. 이현은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느릿하게 입술을 깨물었다.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 뒤에 감춰진 감정은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흥미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아니… 나… 먼저 가봐야겠어. 담임 선생님께 말 좀 전해줘.”그 말과 함께, 은하는 가방을 들고 자리를 피하려는 듯 행동을 취했다. 하지만 태하는 쉽게 수긍하지 않는 표정이었다.“은하야
다음날도 어김없이 시작된 학교생활.우주는 한결같이 동생 은하의 등교를 챙겼고, 교문을 지나던 은하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이틀이나 잘 해왔잖아. 이대로만 하면 돼.’ 다행히 은하의 생각대로 오늘은 별일 없이 무난한 시간이 끝나가는 듯 했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자,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은하는 이번 주, 교실 청소 담당이었다.표정 없이 칠판을 닦고 있던 은하가 잠시 손을 멈추고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털어냈다.그리고 그 순간, ‘쾅—!’누군가 철제로 된 청소 도
잔뜩 인상을 찌푸린 이현이 투덜거렸다.“뭐야, 너는 왜 또 여기 앉아?”“자리가 남길래.”태하는 담담하게 국을 떠먹었다. 태도는 가벼워 보였지만, 그 속에는 '적당히좀 해라' 라는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갑작스러운 태하의 착석에 은하와 민희 역시 적지 않게 놀란 듯 했다.모두가 퍽 어이없는 상황, 이현이 은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야 전학생.”“…….”“넌 좋겠다. 정태하가 매번 나서서 도와주네?”도발적인 말이 떨어지고, 은하보다 태하가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백이현.”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