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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مؤلف: 희나리K
last update تاريخ النشر: 2026-05-28 20:10:27

다음날도 어김없이 시작된 학교생활.

우주는 한결같이 동생 은하의 등교를 챙겼고, 교문을 지나던 은하는 커다란 은행나무를 보며 생각했다.  

 

‘이틀이나 잘 해왔잖아. 이대로만 하면 돼.’ 

다행히 은하의 생각대로 오늘은 별일 없이 무난한 시간이 끝나가는 듯 했다. 

수업이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자, 각자 맡은 구역을 청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은하는 이번 주, 교실 청소 담당이었다.

표정 없이 칠판을 닦고 있던 은하가 잠시 손을 멈추고 손에 묻은 분필 가루를 털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쾅—!’

누군가 철제로 된 청소 도구함 문을 힘껏 닫았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철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

순간 은하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이 저릿하게 얼어붙는 느낌과 함께 귀에서는 둔탁한 울림이 퍼졌다.

은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면서, 손 끝이 강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분명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철문이 닫힌 소리였을 뿐. 

하지만, 그 단순한 소리 하나가, 은하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듯 불안한 요소였다. 

“은하야?”

누군가의 목소리에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민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괜찮아?”

“응….”

대답과 동시에 빠르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떨리는 손으로 서둘러 가방을 열고, 가방 안쪽 깊숙이 숨겨둔 작은 약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고, 손바닥 위에 알약 하나를 올려놓는 내내 심장이 계속해서 두근거렸다.

이 거지 같은 감각은 매번 예고 없이 찾아온다. 끔찍하리만큼 서늘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는 감각 말이다.

손에 쥔 약을 바라보던 은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 후, 입 안으로 넣어 꿀떡 삼켰다.

민희는 그런 은하의 곁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어디가 안 좋아? 왜 그래 갑자기.”

두 사람은 몰랐지만, 교실 뒷문 너머로 두 개의 시선이 은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이현. 그의 입꼬리는 희미하게 올라가 있었다. 눈빛에는 확실한 흥미가 서려 있었다.

‘뭐야? 전학생? 설마… 이깟 문 닫힌 소리에 놀란 거야?’

동시에 은하의 손끝이 부르르 떨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꺼낸 작은 약통. 물 한모금 없이 익숙한 동작으로 알약을 삼키는 모습까지. 

새로운 호기심이 피어오르는 이유는 대체 뭐지?

이현의 옆에 서 있던 태하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너무도 순수한 걱정으로 은하를 바라보는 눈빛.

은하의 손끝이 흔들리는 걸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한 표정을 보았을 때, 태하는 재미가 아닌 위험을 느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백이현.”

“왜?”

“하지 마. 네가 하려는 게 뭐든.”

애석하게도 이현의 시선은 이미 은하에게 박혀 있었다. 그는 눈앞에서 더 알고 싶어지는 존재가 생겼을 때, 절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태하는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백이현의 발걸음이 교실 안으로 향했다. 태하는 제 자리에 서서 이를 악물었다.

‘백이현. 제발….’

역시나 그의 바람은, 백이현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꺾기엔 터무니 없었다.

자리에 힘겹게 서서 숨을 가다듬고 있던 은하는 목을 타고 내려간 약 효과가 부디 빨리 나타나길 바랐다. 손끝의 미세한 떨림이 멎기를 기다렸다. 

그 순간,

‘쾅—!’

“…!”

백이현이 보란 듯이 청소 도구함 문을 세게 닫아버린 것.

그 소리는,  알량한 호기심과 흥미가 담긴 행동이었다는 걸 너무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은하는 귀가 멍해졌다. 물 안에 갇힌 듯한 이명과 동시에 심장은 방금 전보다 더 빠르게 뛰어댔다.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 자신이 서있는 이 공간이 대체 어딘지 금방이라도 잊어버릴 것만 같은 상태.

“은하야…?”

민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려 책상 모서리를 힘겹게 붙잡았다. 오로지 책상만을 의지한 채 필사적으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이현은 그런 은하를 빤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이상한 상황.

한쪽 입꼬리를 말아올린 채, 장난처럼 툭 내뱉은 말.

“아, 미안. 놀랐어?”

은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현은 보았다. 

책상을 붙잡은 손이 여전히 떨리고 있다는 걸, 그 떨림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다는 걸.

그 모습에 이제야 조금 놀란 듯 했다. 표정에선 장난기가 씻은듯이 사라졌다. 

‘뭐야 진짜…? 고작 이 소리가 뭐라고…?’

평범한 사람에겐 그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소리일 뿐이잖아. 근데, 전학생 반응은 왜 이러냐고? 

금방이라도 넘어질것 같이 위태로운 몸. 붙잡아 줘야 하나, 아니. 사과가 먼저인가?

뭐냐고 대체. 어떡해야 되는 거냐고.

지금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건, 단순한 놀람이 아니었다. 마치 더 깊은 곳을 두드리며 올라오는 본능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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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35화

    캠퍼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현과 은하는 잠시 벤치에 앉아 숨을 골랐다.늦은 밤의 교정은 고요했고, 저 멀리 불이 꺼지지 않은 건물들이 도시의 숨결을 대신하고 있었다.이현이 주머니에서 작은 캔 하나와 그 캔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핑크색 빨대를 꺼냈다.“짜잔.”은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이게 뭐야?”“숙취해소제.”곧장 캔 뚜껑을 따고, 빨대를 꽂아 손에 덥석 쥐여주는 이현의 모습에 은하는 심장이 쿵쾅거렸다.“고마워, 이건 또 언제 샀어?”“안 봐도 비디오지. OT날은.”이상했다. 평범한 것 같은 이런 배려 하나가 술보다 더 몽롱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근데, 아까 옆에 앉아있던 그 안경 쓴 놈은 뭐냐?”“3학년이래. 강진우랬나.”이현의 눈썹이 단단하게 모였다.“어디 그런 능글맞은 눈빛으로 감히. 안경을 확 부숴 벌라.”그 말에 은하가 피식, 그리고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렸다.“푸흐… 너 진짜 왜 이렇게 웃겨.”“웃기려고 말한 거 아닌데? 진짜 부셔 버리고 싶었거든?”짧은 정적.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스며 있었다.농담 같지만 진심이 들어 있는 말. 웃음 속에 파묻힌 질투와 깊고도 깊게 박혀버린 마음. 이현은 은하의 얼굴을 한 번 더 확인하듯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걸을 수 있겠어?”은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반 박자 느린 움직임에 이현의 팔이 허리를 감아 지탱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서두르지 않고, 말도 많지 않은 길을 나란히 걸었다.걷는 내내 그의 온기가 너무도 따뜻해서, 은하는 일부러 조금 더 천천히 걷곤 했다. 그렇게 기숙사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은하가 한밤의 불빛 속에서 이현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오늘도 고마워.”“별말씀을요. 당연한 걸 가지고.”“얼른 들어가. 내일 보자.”“으응. 강은하. 잘자. 사랑해.”“내가 더.”매번 '나도' 라고 튀어나오던 대답이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기숙사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선 은하.은은한 센서등이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34화

    은하는 여전히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둘러싸여 불편한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모두가 웃고 떠들며 잔을 기울이는 와중에도, 은하의 얼굴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시간이 지날수록 잔을 든 손끝엔 힘이 없었고, 눈빛은 멍하니 테이블 위를 맴돌았다.분위기가 무르익자, 테이블은 점점 비슷한 분위기의 사람들끼리 무리를 이루기 시작했다.왼편에 앉아 있던 동기가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 선배 진우가 기다렸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여기 좀 앉을게.” 묘하게 일방적인 말투에 은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원래 이렇게 조용한 성격이야?”진우는 잔을 채워주며 다정한 척 말을 건넸지만, 시선은 은하의 얼굴 쪽에 자꾸만 머물렀다.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멀리 밀었다.“네. 근데 저, 술은 더 못 마시겠는데요.”“에이, OT인데 분위기는 맞춰야지?”손끝이 떨렸다. 마치 이 테이블에 있는 것 자체가 다른 세상인 것처럼 낯설게 느껴졌다.문제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선배들과 동기들 역시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것.“가즈아!”“디자인 학과, OT 분위기 죽인다!”“마셔라~ 마셔라~ 마셔라~”술기운에 달아오른 얼굴들, 무작정 흥을 부추기는 손짓과 웃음소리.그 중심에 끼워진 은하는 그저 가면을 쓴 조각 인형처럼 무력하게 앉아 있었다.거절도, 수긍도 못한 채 더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순간.“강은하.”낯익은 목소리와 너무도 선명한 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개를 돌려보니, 이현이 테이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가죽 재킷에 회색 이너, 어두운 슬랙스. 무심한 듯 단정하게 다듬어진 헤어와 살짝 느슨한 재킷 핏. 이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주변 테이블에 짧은 눈인사를 건넸지만, 시선은 오직 은하에게 향하고 있었다.“한성그룹 아들 아니야? 경영학과?”“헐, 실물이 더 잘생겼다.”이현은 그런 수군거림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정확하게 은하의 테이블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그의 시선이 은하의 손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33화

    OT 행사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자기소개, 팀워크 게임, 학생증 발급 안내, 강의실 배치 설명 등… 모든 시간이 정신 없었고, 그만큼 순식간에 지나갔다.그리고 일정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자~ 신입생 여러분! 이제 본 게임으로 들어갑니다!”분위기는 순식간에 들썩였고, 모두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술집으로 이동할 준비를 시작했다.은하는 당황스러운 듯 동기들에게 물었다. “바로 술 마시러 가는 거야?”“응. OT는 원래 이게 메인 이잖아.”“완전 재밌겠다. 근데 선배들, 벌써부터 무게 엄청 잡는데?“아…”걱정이 앞서는 은하와는 달리 주영이와 희정이는 신이 난 듯 보였다. 첫 OT, 처음 만난 사람들, 그리고 수 십 명이 모여 술을 마시는 자리라는 사실이 왜 벌써부터 불편한 건지.하지만 이내 주먹을 꼭 쥐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괜찮아. 익숙해져야지.'***학교 앞, 대형 테이블이 길게 이어진 술집은 딱 봐도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다.전 학번이 섞여 있었고, 이미 몇몇 선배들은 잔을 들고 웃으며 자리를 옮겨 다녔다.은하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 자리를 잡았지만, 곧바로 한 선배가 말을 걸어왔다.“이름이?”단정한 셔츠에 금테 안경, 웃는 입매가 능글맞아 보이는 남자 선배.그는 아무러지 않게 은하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강은하입니다.”“OT때 얼굴은 봤어. 술 잘 마셔?”“…아니요.”“무리하진 말고, 그래도 첫 잔은 마셔야지.”그 말에 같은 테이블 몇 명이 웃었고, 이미 주변 테이블에서는 짠을 외치는 소리들이 거침없이 들려왔다.은하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잔을 들었다.“네. 감사합니다.”차가운 알코올이 기도를 타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자, 속이 알싸하게 반응했다.그렇게 첫 잔을 넘기고 나니 은하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역시나 백이현이었다.[술집 어디야? 혹시 모르니까 위치 찍어 놔.][트레인 호프 3층.][오키. 나도 술 마시러 왔어. 조금만 마셔라. 눈치 봐서 빠지고 데리러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32화

    은하는 웃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눈동자만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오늘 하루 종일, 너한테 입 맞추고 싶었어.”“또 위험해지네.”은하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이현은 곧장 은하의 뺨을 감싸 쥐었다.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기어는 여전히 파킹상태.눈동자는 더 이상 장난스럽지 않았으며, 입술은 은하의 입술을 다시 찾아갔다.이번엔 방금 전 입맞춤보다 깊었고, 더욱 더 집요하게 스며들었다.숨이 겹치고, 온도가 닿고, 마음이 들리는 듯한 고요한 충돌에 은하는 금세 눈을 감고 몸을 맡겼다. 그와 이러고 있는 순간은, 꼭 말 없이도 모든 걸 나누는 것 같았다.커다란 손바닥이 목덜미를 감쌌고, 은하의 손은 이현의 어깨를 타고 올라가 목 뒤를 끌어안았다. 차체가 살짝 흔들렸다.“강은하, 네가 먼저 시작한 거다.”“…?”이현은 말없이 등받이를 젖힌 뒤, 자신이 직접 메주었던 안전벨트까지 단숨에 풀어버렸다.“야아!”차 안에서는 입술과 말캉한 살덩이가 뒤엉키는 소리는 물론, 옷깃이 스치는 소리, 거칠어진 숨결이 내는 소리로 가득했다.은하의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다. 숨이 뒤엉키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백이현… 나 지금… 좀 이상해…”“나도.”작은 공간은 결국 뜨거운 사랑이 차오르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김이 잔뜩 서린 차창, 전보다 더 요동치는 차체의 움직임은 한참동안 계속되었다.모든 것이 끝났을 때, 은하의 손끝이 이현의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씨... 이러려고 뽀뽀한 건 아니었는데.""나는 건들면 못참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맨날 건드려줘.""야!"“개강은 못 미루냐. 아, 진짜 가기 싫다.”창에 맺힌 김이 조금씩 걷히고, 차는 천천히 어둠 속 도로를 따라 움직였다.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대신,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있었다. 은하의 손등 위에 이현의 엄지가 조심스레 움직였다.“우리, 기숙사 말고 딴 길로 샐까?”“고만해라아!”“장난이야. 장난.”오늘도 결국 아쉬운 마음을 품은 채 기숙사 앞에 도착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31화

    한 시간쯤 달려 도심을 벗어난 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한적했다. 차는 산 위를 조금 올라 멈춰 섰고, 도착한 곳은 카페라고 하기엔 너무 조용했고, 전망대라고 하기엔 낮고 작았다. 잔디 위로 나무들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로 작은 목제 테이블 하나가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은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테이블 위를 둘러봤다.화이트 린넨 천 위에 놓인 유리병 속 라벤더, 머그잔 두 개.라탄 바구니 안에서는 뭔가 따뜻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이게… 이게 다 뭐야?”“짜잔! 점심 데이트, 백이현 버전.”하아, 방금까지 내내 운전만 해놓고 무슨 또 백이현 버전이야. 박 비서님 버전이겠지.“이런 것 좀 하지 마! 괜히 박 비서님이 고생하시잖아!”“강은하! 진짜 무드 없게 이럴 거야?”은하가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무드는 개풀, 어젯밤이 진짜 무드였지.“알겠어. 알겠어.”“방금 너 앉을 때, 약간 CF 같았어.”“또 시작이다.”“예쁘니까 그러지.”은하는 시선을 피하듯 바구니 속을 들여다보았다. 박 비서님이 얼마나 세심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와 샌드위치잖아? 고기도 들었네?”“그럼 뭐 풀만 먹을 줄 알았냐?”“오, 커피도 따뜻해.”은하의 손이 잔을 감쌌고, 산들바람이 둘 사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문 은하가 오물오물 거리며 말을 이었다.“아, 맞다. 오늘 룸메이트 왔어.”“그래? 어떤 애 같은데?”“예쁘장해. 말도 조리 있게 잘 하고, 걔도 경영학과던데?”“몰라. 알게 뭐야.”“응?”“난 강은하밖에 안 보여. 그래도 룸메가 싸움은 잘 했으면 좋겠다.”“싸움?”"룸메면 되게 친해지잖아. 이왕이면 최약체보다는 싸움꾼이 더 낫지 않을까?"백이현 다운 어이없고 한심한 생각이었다. 살면서 주먹다짐을 할 일이 얼마나 있다고."뭐야? 지금 나는 최약체라는 뜻이야?""굳이 따지자면, 싸움꾼 쪽은 아니지.""그 주먹이 나한테 향하면?""걱정 마, 내가 열 배로 되갚아 줄 테니까."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30화

    집으로 돌아온 이현은 곧장 방으로 향했다. 보랏빛 커튼이 드리워진 작은 침대 위에 앉아 있으니, 아직 은하의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아 숨을 들이켰다.눈을 감으면 은하의 숨소리, 보드라운 살결, 그리고 오늘따라 온몸을 크게 떨어대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에 번지는 은은한 보랏빛 불빛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진짜 큰일 났다. 또 보고 싶네.”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손가락은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꾹꾹 눌러담았다.[너 없는 공간은 너무 조용해. 라벤더 향기만 나.]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거긴 나랑 같이 들어가야 되거든? 당장 나와줄래?]“하, 진짜.”이제야 이현이 웃었다.얘는 왜 메시지 하나를 보내도, 이렇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거냐고.***은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남은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라벤더 향이 나는 작은 디퓨저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자 어제 밤의 잔향이 아랫배를 간지럽혔다.'진짜 웃겨 백이현, 치이.' 노트북을 켜 학교 홈페이지를 둘러보며 수업 계획표와 학사 일정을 확인하는 사이, 문득 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일찍 왔나 보다.”짧은 단발머리에 세련된 인상과 말투, 은근한 자신감이 풍기는 눈빛까지.아무래도 함께 방을 쓸 룸메이트 같았다.“으응. 안녕.”“어느 학과야? 난 경영학과 박수정 이라고 해.”“아, 나는 디자인 학과. 강은하.”“잘 부탁해.”“나도.”짧지만 깔끔한 첫 인사였다.수정은 곧 캐리어를 끌고 들어와 짐 정리를 시작했고, 은하는 조용히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경영학과? 백이현이랑 같은 학과네….’함께 지낼 룸메이트의 분위기, 그리고 내일부터 펼쳐질 캠퍼스 생활.모든 것이 새로웠고, 조금은 긴장됐지만 이상하게 설레는 감정도 함께 섞여 있었다.점심이 되자 핸드폰 진동음이 책상을 울렸다.이현이였다.“으응. 이제 일어났어?”“어이, 강은하 학생.”“푸흡. 으응.”“개강 전 데이트 할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7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이현이 투덜거렸다.“뭐야, 너는 왜 또 여기 앉아?”“자리가 남길래.”태하는 담담하게 국을 떠먹었다. 태도는 가벼워 보였지만, 그 속에는 '적당히좀 해라' 라는 의미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갑작스러운 태하의 착석에 은하와 민희 역시 적지 않게 놀란 듯 했다.모두가 퍽 어이없는 상황, 이현이 은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야 전학생.”“…….”“넌 좋겠다. 정태하가 매번 나서서 도와주네?”도발적인 말이 떨어지고, 은하보다 태하가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백이현.”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5화

    그렇게 은하의 첫 등교는 큰 문제 없이 지나갔다. 약간의 불편한 상황은 생겼지만 그건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은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은색 차 한 대. 오빠, 우주였다.“끝났어?”하루 종일 바쁜 일정이었을텐데도, 우주는 은하의 첫 등교가 궁금한 탓에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은하는 생각지도 못했던 오빠의 마중에 조금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조용히 끄덕이며 조수석에 올랐다.계절과 다르게 차 안은 따뜻했다. 차창 밖으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오늘, 학교는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4화

    태하는 별다른 감정을 담지 않은 얼굴로, 동시에 확고한 분위기를 풍기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현과 은하 사이에 정확하게 멈춰 섰다. 시선은 은하를 먼저 스쳤다. 짧고도 묘한 무게감이 담긴 눈빛은 곧장 이현을 향해 차갑게 바뀌어갔다.“그만 좀 해.”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현은 태하를 바라보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어어, 밥이나 먹으러 가자.”한쪽 입술을 비틀며 지어 올리는 미소, 아직도 벽에 기댄 채 잔뜩 긴장하고 있는 학생의 얼굴은 이미 창백했다. 이현은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6화

    “어제 그 말, 생각해 봤는데 말이야.”“뭐?”“유치하다는 말, 굉장히 거슬리더라고?”순간, 주변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살짝 커졌다. 몇몇 학생들이 흘끔거리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현은 그런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위기를 즐기는 듯 팔짱을 끼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은하를 지켜보았다.은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와, 볼수록 웃기는 애네. 이거.”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현의 표정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주변 학생들 사이에서도 점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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