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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Author: 릴리박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6 09:46:23

3화.

어제 일이 마음에 걸린 민재가 퇴근길에 현주의 집을 찾았다.

“현주야, 저녁 뭐 먹을래?”

“…아무거나.”

“그래. 일단 나가 보자.”

메뉴를 정하지 못한 두 사람은 집 근처 한적한 냉면집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된 자리 한편에 나란히 앉자마자, 민재가 현주 옆에 바짝 붙어 앉으며 그녀의 차가운 손을 감싸 쥐었다. 나도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데 그녀는 오죽할까.

상실감보다, 그보다 더 거대한 아픔을 견뎌내는 현주를 향한 미안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따뜻한 거 먹어야 하는 거 아냐? 다른 것도 시킬까?”

“괜찮아. 그냥 아무거나 먹을래.”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원래가 말이 많은 여자는 아니었지만, 제 앞에서 저토록 생기 없는 표정을 지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괜한 조바심이 민재의 숨통을 조여왔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

“…응.”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야.”

“회사는?”

“새벽에 일어나서 가면 돼. 걱정 마.”

민재의 회사는 차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였다.

평일엔 피곤하다는 핑계로 거의 자고 가지 않았던 그였지만, 오늘 밤만큼은 혼자 남겨진 그녀를 방치할 수가 없었다.

가볍게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 거리에는 완연한 봄바람이 스치고 있었다. 현주의 코끝으로 향긋한 꽃내음이 아찔하게 밀려들었다.

하아, 내가 지금 이런 걸 느껴도 되나.

별것 아닌 일상적인 감각조차 사치처럼 느껴져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억지로 그녀의 손을 잡고 걷던 민재는 흔들리는 현주의 옆모습을 보고는 문득 걸음을 멈춰 세웠다.

“현주야… 내가, 내가 다 짊어지고 갈게. 그러니까… 그렇게 힘들어하지 마.”

맞잡은 손에 절박한 힘이 실렸다.

“…아니야. 오빠만의 잘못이 아니잖아. 나 피곤해. 빨리 들어가자.”

현주는 고개를 푹 떨군 채 앞서 걸어갔다. 가늘게 떨리는 그 가냘픈 어깨가 민재의 시야를 아리게 채웠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말로 다 담지 못할 애잔함과 씁쓸함이 짙게 서렸다.

새까만 어둠이 짙게 깔린, 그 어떤 날보다 고요하고도 차가운 밤이었다.

방바닥에 나란히 깔린 이불 위로 두 사람의 몸이 무겁게 포갰다. 민재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버텨오던 현주의 얼굴이 그의 커다란 손길에 서서히 들렸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엇갈린 숨결이 뜨겁게 엉켰다.

마치 어제의 비극을 온전히 잊기라도 작정한 사람들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미련스레 탐했다. 서로의 타액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러울 만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가 유일한 구원인 듯 엉겨 붙었다.

그의 손이 티셔츠 안쪽으로 거칠게 파고들었다. 마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온몸을 쓸어내리는 힘이 그녀의 여린 살결을 아프게 짓눌렀다. 입술에 가로막힌 잇새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쾌락의 신음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견디는 자들의 처절한 탄식에 가까웠다.

지금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문득 상기되고 젖어 든 제 몸뚱이를 마주하며 현주는 참을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이런 쾌락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혐오스러웠다. 과연 이것이 진정 사랑일까. 아니면 다가오는 지독한 고통과 현실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마비된 감각이 선택한 도피처에 불과할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을 삼킨 채, 떨어질 줄 모르는 두 사람의 입술은 질식할 것 같은 탄식 속에서 밤새도록 어지럽게 뒤엉켜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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