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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作者: 루루
권유찬이 다짜고짜 질책하자 그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서러움과 고통이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한도희는 이성을 잃지 않고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려고 했다.

“정채윤은 사람을 시켜서 나를 강간하려고 했어. 계단에서 구른 것도 정채윤의 자작극이야. 나는 밀친 적 없어. 못 믿겠으면 지금 내가 있던 룸으로 가봐. 그 노숙자는 아직 거기에 있을...”

그 말을 듣고 정채윤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곧 울먹거리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유찬아. 언니가 먼저 나를 욕했어. 내가 뻔뻔하게 너희 둘 사이에 끼어든 거라면서 말이야. 그래서 나를 계단에서 밀친 거야.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나를 그런 식으로 모함하는 건지 모르겠어.”

권유찬은 두 사람 중에서 정채윤의 말을 믿었다.

권유찬은 정채윤을 품에 안더니 한도희에게 분노를 쏟아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한도희, 어떻게 채윤이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채윤이를 계단에서 밀친 걸로도 부족해서 채윤이한테 누명까지 씌우려고 해? 너는 어렸을 때부터 늘 내 뒤만 따라다녔었지. 나는 집안 어른들 체면 때문에 그동안 너랑 잘 지냈던 거야. 그런데 주제도 모르고 제멋대로 착각하고 이런 짓까지 벌여? 당장 꺼져!”

그 말에 한도희는 마음이 완전히 차게 식었다.

한도희는 권유찬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좋아. 네 말대로 할게. 우리 앞으로는 절대 다시 보지 말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한도희의 냉랭한 태도에 권유찬의 분노가 더 커졌다.

한도희가 절뚝거리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권유찬은 매정하게 말했다.

“앞으로 내 눈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마!”

한도희는 앞으로 권유찬과 마주칠 일은 영영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도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

하루 쉬고 난 뒤 한도희는 달력 위 빨간색으로 동그라미가 쳐진 날짜에 엑스 표시를 그렸다.

캐리어를 챙겨서 차고로 걸어가는데 부모님이 한도희를 불러 세웠다.

“도희야, 유찬이 부모님이 우리랑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고 싶대. 짐을 다 정리하면 바로 오도록 해.”

한도희는 함께 식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권유찬과 아무리 사이가 나빠졌어도 권유찬의 부모님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그래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행히 오늘 식사 자리에 권유찬은 없었다.

권유찬이 집에 없어 권재필과 서연정은 권유찬에게 전화해 집으로 돌아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화를 열 통 넘게 했는데도 권유찬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바라보며 한도희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마 여자 친구랑 같이 있을 거예요.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고 그냥 밥 한 끼 먹는 것뿐인데 굳이 부를 필요는 없어요. 괜히 둘의 데이트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고요.”

식사가 끝나면 곧 공항으로 향해야 했기에 더 기다릴 수도 없었다.

권재필과 서연정은 그제야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얼른 식사하자고 했다.

식사를 하면서 권유찬과 한도희의 부모님은 지난 추억들을 회상했고, 한도희는 그들의 대화를 묵묵히 들으면서 말없이 밥만 먹었다.

식사가 끝난 뒤 그들은 기념으로 마당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오후 한 시, 한도희네 가족은 캐리어를 챙겨 출발했고 권재필과 서연정은 그들을 배웅해 주었다.

공항에 도착한 뒤에도 권재필과 서연정은 권유찬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권유찬은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숨을 내쉬더니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유찬이가 요즘에 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어서 너희가 떠난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어. 잠시 뒤에 돌아와서 떠난 걸 보게 되면 분명 속상해할 텐데...”

한도희는 고개를 저으며 덤덤히 대꾸했다.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네 사람은 한도희의 대답을 듣고 어리둥절해했다.

“응? 그게 무슨 말이니?”

마침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한도희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예의 바르게 권재필과 서연정을 향해 작별 인사를 했다.

한서훈과 조혜민은 주머니 안에서 축의금을 꺼내 권재필과 서연정에게 건넸다.

“유찬이랑 채윤이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됐네. 재필아, 유찬이한테 결혼 축하한다고 꼭 전해줘.”

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오자 네 사람은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옆에 서 있던 한도희는 휴대폰을 꺼내 권유찬의 연락처와 SNS 계정들을 전부 차단하고 삭제했다.

그러고는 부모님의 팔에 팔짱을 끼고 권재필과 서연정을 향해 손을 흔든 뒤 몸을 돌려 탑승구를 향해 걸어갔다.

한도희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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