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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Author: 복연
강진혁이 뒤따라왔을 때, 서현아는 이미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들어간 지 2분도 채 되지 않아 서현아는 밖에서 강진혁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벨 소리는 한 번 울리자마자 곧바로 들리지 않았다.

“작은 정원에서 기다려.”

곧 점점 멀어져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서현아는 이곳에서 열리는 수없이 많은 만찬에 참석했기에 내부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정원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서현아는 강진혁이 어디로 가려는지 알아차렸다.

서현아는 화장실을 빠져나와 복도 끝에 있는 창고로 돌아갔다.

창문이 살짝 열린 틈으로 밖을 내다보자, 강진혁이 다급한 걸음으로 그곳에 도착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서연이 강진혁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리고 강진혁은 백서연을 조금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정하게 백서연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마치 그 여자를 자신의 품에 넣기라도 하려는 듯 힘껏 끌어안았다.

“또 날 유혹해? 며칠 전에 침대에서 꼼짝도 못 했으면서 벌써 다 잊었어?”

최근 며칠 동안 강진혁은 줄곧 서현아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서현아는 거의 바로 강진혁이 말한 며칠 전이 언제인지 알아차렸다.

강씨 저택에서 돌아온 그날 밤, 강진혁은 밤새 돌아오지 않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리고 강진혁의 몸에는 키스 자국과 애매한 손톱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백서연은 강진혁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남자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강진혁은 백서연을 2초쯤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거칠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격렬하게 뒤엉켰다.

입술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고요한 작은 정원에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백서연이 일부러 강진혁의 입술 끝을 살짝 깨물자, 강진혁은 갑자기 욕망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입술 끝에서 흘러나온 피를 닦아냈다.

“진짜 혼날래? 눈에 잘 띄는 부분에는 흔적 남기지 말라고 내가 경고했잖아. 현아가 보면 아마 나한테 뭐라고 할 거야.”

백서연은 강진혁의 사나운 모습에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몸을 바짝 밀착하며 강진혁을 유혹했다.

“그냥 적당히 핑계 하나 대면 되잖아. 현아 씨가 의심할 리 없어.”

“난 침대에서 오빠가 이렇게 거칠게 구는 게 더 좋아. 지난번 메이드 의상은 마음에 들었어? 오늘 밤에도 나한테 올래? 이번에는 새로운 걸 준비했는데...”

백서연이 발끝을 세워 강진혁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강진혁은 참기 힘든 듯 마른 입술을 꾹 다물더니 백서연의 턱을 움켜쥐고 다시 거칠게 입을 맞췄다.

서현아는 창문 뒤에 서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창문 틈 사이로 지켜봤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 버리는 것 같았다.

강진혁과 백서연이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그 충격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누군가가 손아귀에 심장을 꽉 움켜쥔 것 같은 느낌에 서현아는 창틀을 짚고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그리고 하마터면 그대로 쓰러질 뻔했다.

서현아가 겨우 마음을 추스른 뒤 창고를 빠져나왔을 때, 강진혁은 이미 백서연과 헤어져 서현아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서현아의 모습을 발견한 강진혁은 이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이마에는 초조함에 맺힌 땀방울까지 보였다.

“아까 어디 갔어? 안 보이길래 나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서현아는 일부러 강진혁의 깨진 입술 끝에 시선을 두었다.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네가 없길래 정원에 잠깐 갔어. 근데 입술은 왜 다쳤어?”

그 말을 들은 강진혁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흔들리더니 이마에는 다시 식은땀이 맺혔다.

“어느 정원에 갔어?”

서현아는 입가에 비웃음 섞인 미소를 띠고 몸을 돌렸다.

“뒤쪽 정원. 사람도 많던데. 왜 그렇게 긴장해?”

서현아는 뒤쪽 정원이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강진혁이 안도의 숨을 내쉬는 것을 똑똑히 봤다.

“아니야. 네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혹시 길이라도 잃을까 봐 걱정돼서 그랬어.”

그때 백서연은 무대 위에서 그동안 강씨 집안이 자신에게 베풀어 준 도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계속 이쪽을 향했다.

강진혁은 사람들 시선 너머에 있는 무대 위의 백서연을 바라봤다.

그러자 조금 전 작은 정원에서 백서연이 오늘 밤 자신에게 선물하겠다고 했던 말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다.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했고, 무심코 입술을 꾹 다물다가 깨진 입술 끝에 통증이 느껴지자 그제야 서현아의 질문에 아직 대답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요즘 좀 피곤해서 입술에 물집이 생겼는데 실수로 터졌어. 별일 아니야.”

서현아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갔다.

“나 피곤해. 먼저 갈게.”

강진혁의 마음속에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치솟았다.

그래서 서현아의 손목을 힘껏 붙잡았다.

“잠깐만. 아버지랑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나도 같이 갈게.”

몇 분 뒤, 강진혁은 서현아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차가 향한 곳은 집이 아니라 강씨 저택이었다.

“어머니가 우리 둘이 저택에서 하룻밤 자고 가길 원하셔. 내일 집에 가자.”

서현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씨 저택으로 돌아와 씻고 난 뒤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며칠째 계속된 육체적, 정신적 피로에 서현아는 침대에 눕자마자 반쯤 잠든 듯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곁에서는 계속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이따금 강진혁이 낮게 웃는 소리도 들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강진혁은 서현아를 살짝 깨운 뒤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가 나 찾으셔서 좀 다녀올게. 무슨 일 있으면 나 불러.”

서현아는 작게 알겠다고 대답한 뒤 몸을 돌려 다시 잠든 것처럼 눈을 감았다.

강진혁이 발소리도 죽인 채 방을 나가자 서현아는 몸을 일으켰다.

발소리를 들어 보니 강진혁과 한정숙은 함께 서재로 향한 듯했다.

잠시 망설이던 서현아는 조심스럽게 서재 밖까지 걸어갔다.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그 틈 사이로 한정숙의 억눌린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현아는 좋은 아이야. 현아를 만났으면 주변에 불필요한 여자들은 다 깨끗하게 정리해야지.”

“그런데 너는 백서연과 점점 더 깊이 얽히고 있잖아. 이제는 주변 사람들까지 그 사실을 알아버렸고.”

“누군가 그 이야기를 현아에게 전해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본 적 있어?”

“진혁아, 너도 이제 다 큰 어른이야. 엄마도 너한테 잔소리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순간적인 자극을 좇다가 나중에 평생 후회할 일을 저지르는 걸 그냥 지켜볼 수는 없어.”

한정숙의 말이 한마디 한마디가 서현아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서현아는 이제 강진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여력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서현아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직접 강진혁과 백서연이 얽혀 있는 모습을 봤을 때보다 가슴이 더욱 아팠다.

알고 보니 강진혁이 저지른 일은 한정숙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한정숙은 강진혁과 함께 자신에게 아들의 불륜을 숨기고 있었다.

게다가 한정숙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강진혁과 백서연 사이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서현아만 순진하게 모든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 채 속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세상에서 유일하게 속고 있던 사람은 서현아뿐이었다.

강진혁에게 조금의 거짓도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혼자만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건넨 축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비꼬듯 나를 구경하며 웃고 있었던 것뿐일까?’

서재 안에서는 여전히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서현아는 더 이상 무슨 말이 오가는지 들리지 않았다.

굳어 버린 다리를 이끌고 방으로 돌아온 서현아는 이불 속에 몸을 웅크렸다.

어떻게든 약간의 온기라도 느끼고 싶었다.

알고 보니 진심도, 사랑처럼 연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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