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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가 선택했습니다

last update Veröffentlichungsdatum: 10.09.2026 07:04:42

방으로 돌아오는 길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황궁 복도는 분명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근무하는 기사들이 멀찍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벽마다 켜진 마법등도 일정한 간격으로 흔들림 없이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평소 같았으면 눈에 들어왔을 것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손을 맞잡은 채 내 옆을 걷는 레오나르드의 체온이 지나치게 선명했고, 손가락 사이로 닿는 그의 손마디 하나하나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각인해도 돼?

조금 전 들은 질문이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원해요.

내가 직접 한 대답까지.

어쩐지 그 두 문장만 계속 머릿속을 오갔다.

“세리아.”

갑자기 이름을 불려 고개를 들었다.

“네.”

“괜찮아?”

레오나르드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내 얼굴을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나는 순간 무슨 뜻인지 몰랐다가 뒤늦게 알아챘다.

“긴장한 것 같아요?”

“조금.”

“티 나요?”

“나한테는.”

나는 괜히 입술을 다물었다.

레오나르드는 잠시 나를 보더니 손에 힘을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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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여기 사는 사람들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열일곱 사람의 대답은 모두 같지 않았다.리시안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황실 재산관리국에 요청서를 보낸 지 나흘째 되는 아침이었다.그동안 북쪽 제방에는 보수용 석재가 도착했고, 열세 번째 가구의 지붕에는 임시 방수포가 먼저 씌워졌다. 본격적인 지붕 보강은 이틀 뒤 시작될 예정이었으며, 메이라 홀튼이 제출한 과거 수선비 자료도 절반 이상 확인됐다는 중간 보고가 왔다.리시안은 그 서류들을 하나씩 진행 중 묶음으로 옮겼다.그러나 네 번째 날 도착한 봉투는 그동안 받은 것들과 조금 달랐다.두꺼운 보고서 대신 얇은 종이 열일곱 장이 따로 묶여 있었다.첫 장 상단에는 리시안이 며칠 전 직접 적어 보냈던 문장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었다.상속권자 요청에 따라 현재 거주자 및 사용자의 의견을 행정 판단보다 앞서 첨부함.리아가 그 문장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진짜 먼저 붙여줬네.”“그러게.”“오빠가 해달라고 해서?”“그렇겠지.”리시안은 봉투를 완전히 열었다.열일곱 장 모두 형식이 같았다.이름.현재 거주지.거주 기간.계약 상태.그리고 세 가지 질문.현재 거주를 계속 희망하십니까?향후 소유권 또는 관리 주체가 변경될 경우 희망하는 방식이 있습니까?에르반가 상속권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의견이 있습니까?리아가 마지막 질문을 읽고 오빠를 봤다.리시안도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왜 저런 것도 물어봤지?”“오빠가 의견 먼저 달라고 했잖아.”“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의견을 달라고 했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을 물어봐달라고 하진 않았는데.”“비슷한 거 아니야?”“안 비슷한 것 같은데.”그러면서도 마지막 질문이 있는 장을 빼지는 않았다.첫 번째는 메이라 홀튼이었다.현재 거주를 계속 희망하느냐는 질문에는 희망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적어도 막내아이가 현재 학교 과정을 마치고 어머니의 다리 치료가 안정될 때까지는 지금 집에 살고 싶다고 했다.두 번째 답은 조금 더 길었다.가능하다면 현재 계약을 유지하고 싶지만, 에르반가가 해당 부지를 직접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이름을 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황실 재산관리국의 전수 조사 결과는 예상보다 두꺼웠다.리시안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책상 위에는 전날까지 없었던 갈색 서류철 하나가 놓여 있었다. 봉인 위에는 황실 재산관리국의 문장과 담당관 아델라 로웬의 이름이 찍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작게 에르반 구 영지 내 장기 거주 및 사용 현황 1차 조사 보고라고 적혀 있었다.리시안은 외투를 벗다가 그대로 멈췄다.“왔네.”뒤따라 들어오던 리아가 그의 어깨 너머로 서류철을 봤다.“그거야?”“응.”“열일곱 집?”“아마.”리아는 곧장 책상 앞으로 가려다가 리시안을 돌아봤다.“지금 볼 거야?”리시안은 시계를 확인했다. 재활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손은 이미 봉인 가까이까지 가 있었다. 엄지로 봉인 가장자리를 한 번 문지르던 리시안이 그대로 손을 거뒀다.“재활 끝나고.”리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진짜?”“왜.”“예전 같으면 지금 뜯었을 것 같아서.”“예전의 내가 언제인데?”“한 사흘 전?”“너 나를 너무 성급한 사람으로 보는 거 아니야?”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리시안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웃으며 서류철을 책상 오른쪽 끝으로 밀어두었다. 그런데 두 걸음쯤 문으로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봐. 역시 뜯으려고—”리시안은 서류를 뜯는 대신 그 위에 다른 종이 한 장을 엎어놓았다.“자꾸 보이잖아.”“그게 더 신경 쓰는 사람 같은데.”“가자.”리아가 웃으며 먼저 나갔다. 리시안도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고 뒤따랐다.갈색 서류철은 그대로 남았다.⸻그날 치료사는 네 걸음을 허락했다.첫 번째 네 걸음을 성공한 뒤 며칠 동안 세 걸음과 휴식일을 번갈아 거쳤고, 오른쪽 다리의 반응도 안정적이었다. 추가적인 감각 저하도 없었고 마력 역류도 나타나지 않았다.그렇다고 훈련량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오늘은 네 걸음 한 번입니다.”치료사가 말했다.“한 번.”리시안이 확인했다.“네.”“기립은요?”“보행 후 상태를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거절한 기록도 남아 있었습니다

    다음 날 리시안은 세 걸음을 걸었다.네 걸음이 아니었다.아침 검사가 끝난 뒤 치료사가 오늘 훈련량을 말했을 때 리시안은 아주 잠깐 입을 다물었다. 어제 네 번째 걸음을 내디딘 다리는 밤사이 충분히 쉬었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특별한 통증은 없었다. 발끝의 저림도 평소 수준으로 돌아와 있었다.그래서 조금은 기대했던 모양이었다.“세 걸음입니까?”“네.”“상태가 나빠졌습니까?”“아닙니다.”치료사는 기록지를 돌려 보여주었다. 어제 네 번째 걸음을 걸은 뒤 오른쪽 무릎의 떨림이 평소보다 오래 지속됐고, 앉은 직후에는 발끝 감각도 일시적으로 둔해졌다. 모두 예상 범위 안에서 회복됐지만 새로운 부하에 몸이 제대로 적응했는지 확인하려면 적어도 하루는 기존 단계로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리시안이 기록지를 한참 들여다봤다.리아가 옆에서 눈치를 살폈다.“싫어?”“조금.”솔직한 대답이었다.치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수 있습니다.”“그래도 세 걸음이죠?”“네.”리시안은 더 흥정하지 않았다. 지지대를 잡고 일어나 호흡을 정리한 뒤 첫 번째 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는 오른쪽 무릎이 흔들리지 않는지 확인하며 천천히, 세 번째는 전날보다 조금 안정적으로 내디뎠다.그리고 멈췄다.어제와 똑같은 재활실이었지만 세 번째 걸음 뒤에 보이는 바닥은 전날과 조금 달라 보였다.저 너머를 한 번 가봤기 때문이었다.리시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네 번째 걸음을 놓았던 자리로 향했다.치료사가 바로 말했다.“오늘은 거기까지입니다.”“압니다.”입으로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한 번 더 바닥을 보는 바람에 리아가 피식 웃었다.“엄청 가고 싶은 얼굴인데.”“가고 싶지.”“그런데 안 가네.”“선생님이 가지 말랬잖아.”치료사가 기록지에 무언가 적다가 고개를 들었다.“아주 훌륭한 판단입니다.”리시안이 미묘한 얼굴로 돌아봤다.“왜 어린애 칭찬하는 것처럼 들립니까?”“어제 네 번째 걸음을 걷고 나서 다섯 번째는 언제 걷느냐고 물어보려던 분이니까요.”“물어보진 않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네 번째 걸음은 허락받고 걷습니다

    리시안이 아버지의 수첩을 펼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누군가 곁에 있을 때도 아니었고, 특별히 마음을 먹고 책상 앞에 앉은 것도 아니었다. 평소처럼 눈을 뜨고 약을 먹은 뒤 하인이 가져다준 따뜻한 물을 반쯤 마셨다. 재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고, 창밖에는 전날 밤 내린 비가 난간 끝에 조금씩 맺혀 있었다.책상 위에는 어젯밤 그대로 두었던 두 가지가 있었다.접어둔 에르반 영지 지도.그리고 아버지의 수첩.리시안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채 한참 그것들을 바라봤다.어제는 지도부터 펼쳤다. 서쪽 제분소 뒤에 메이라 홀튼의 집을 표시하고, 그 옆에 아직 이름도 제대로 외우지 못한 열여섯 가구의 위치를 작은 점으로 남겼다. 그 일을 끝내고 나서야 수첩에 손을 댔지만 결국 열지 않았다.오늘은 반대였다.지도를 건드리지 않고 수첩을 집었다.낡은 가죽 표지에 손가락을 올리고 잠시 기다렸다. 심장이 빨리 뛰는 것도 아니었고 손이 떨리지도 않았다. 이상할 만큼 평범했다.그래서 오히려 첫 장을 넘길 수 있었다.처음 나온 것은 예상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북쪽 제방 보수. 우기 전에 석재 추가 필요.리시안의 눈이 멈췄다.다음 줄.밀 수확량 전년 대비 감소. 서부 농가 종자 지원 검토.그 아래에는 비용으로 보이는 숫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리시안은 눈을 깜빡이고 다음 장을 넘겼다.마구간 지붕 누수.서쪽 우물 수질 검사.도란에게 겨울 장작 배분량 다시 확인할 것.그리고 페이지 아래쪽에 전혀 다른 내용이 하나 끼어 있었다.리시안 검술 수업 또 도망감.“…….”리시안의 표정이 묘해졌다.바로 아래에는 작은 글씨가 덧붙어 있었다.뒤뜰 나무 위에서 발견. 내려오라고 하니 배고프다고 함.리시안이 수첩을 조금 멀리 떨어뜨렸다.기억났다.아주 희미하게.검술 선생이 싫어서 뒤뜰 나무 위로 올라갔던 날이었다. 찾으러 온 아버지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한참 올려다보다가 정말 배가 고프냐고 물었다.그 뒤의 기억은 조금 더 선명했다.아버지가 하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돌아온 사람이 있다고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리아의 빨간 리본은 다음 날 아침에도 침대 옆 탁자 위에 있었다.어젯밤 잠들기 직전에 풀어둔 그대로였다. 아침 햇빛이 창문을 넘어 탁자 끝까지 들어왔을 때 리아는 한동안 그 리본을 바라봤다고 했다. 다시 머리에 묶을까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손가락으로 매듭 자국이 남은 천을 한 번 쓸어보고 방을 나왔다.그 이야기를 굳이 먼저 꺼낸 사람도 리아였다.“오늘은 안 묶을 거야.”아침 식탁에 앉아 빵을 반으로 뜯던 리아가 갑자기 선언했다.리시안은 수프를 한 숟가락 뜨려다 말고 동생을 봤다. 전날 면담에서 돌아온 뒤에도 리아가 꽤 오랫동안 리본을 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 얼굴이었다.“누가 물어봤어?”“아무도.”“그런데 왜 말해?”리아는 뜯은 빵 한쪽을 수프에 적셨다.“내 마음이니까.”리시안의 입술이 한 번 달싹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럼 굳이 왜 말하느냐’고 한마디 더 했을 텐데, 요즘은 동생과 말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그 끝이 어디쯤일지 짐작하는 법부터 배우고 있었다.“……그래.”결국 그것만 말하고 다시 수프를 먹었다.리아는 자기가 이겼다는 듯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내일은 묶을 수도 있어.”“그것도 네 마음이지.”“응.”“미리 말 안 해도 되고.”리아의 숟가락이 그제야 멈췄다.“오빠 요즘 말이 많아졌어.”“누구 때문인데.”“치료사?”“너.”“왜 나야?”“네가 말을 계속 시키잖아.”“나는 대답하라고 한 적 없는데.”리시안이 할 말을 잃었다.맞은편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레오나르드가 찻잔을 입에 댔다. 웃음을 감추려는 것이 너무 뻔해서 나는 식탁 아래로 그의 무릎을 살짝 건드렸다. 황금빛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웃지 말라는 뜻으로 눈짓했는데, 오히려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리아는 그런 우리를 보지 못한 채 리시안의 접시를 내려다봤다.“그런데 오빠 오늘은 다 먹어.”“먹고 있잖아.”“어제는 반 남겼잖아.”“어제는 피곤했으니까.”“오늘은?”리시안은 잠시 자기 몸의 상태를 확인하듯 다리를 내려다

  • 사자와 결혼한 여우의 사정   기다린 마음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습니다

    에르반가에 다녀온 다음 날, 리시안은 늦잠을 잤다. 정확히는 치료사가 깨우지 못하게 했다.“어제 장거리 이동에 현장 확인까지 했습니다. 오늘 오전 재활은 없습니다.”아침 식탁에서 그 말을 들은 리시안은 숟가락을 든 채 굳었다.“아예요?”“아예입니다.”“세 걸음도?”“오늘 오전에는 없습니다.”“그럼 오후에는요?”치료사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상태를 보고 결정하겠습니다.”“걷지 않으면 상태가 좋은지 어떻게 압니까?”“환자분은 걸어야만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리시안의 입이 다물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아가 빵에 잼을 바르며 중얼거렸다.“또 졌네.”“나는 지금 싸우는 게 아니야.”“맨날 지는 사람은 그렇게 말해.”“누구한테 배운 말이야?”“내가 만들었어.”“요즘 네가 만드는 말은 왜 다 나를 공격하지?”“쓸 데가 오빠밖에 없으니까.”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레오나르드도 웃으려다가 리시안과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를 마셨다.“방금 웃으셨죠?”“아닌데.”“웃으셨습니다.”“증거 있어?”리아가 눈을 크게 떴다.“그거 내 말인데.”“좋은 말은 같이 쓰는 거야.”“돈 내요.”“왜?”“내가 만들었으니까.”“얼마?”리아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리시안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둘을 번갈아 봤다.평범한 아침이었다. 어제 십이 년 만에 불탄 집을 보고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리아는 평소처럼 빵을 먹었고, 리시안은 재활을 못 한다고 불평했다. 레오나르드는 리아가 잼을 너무 많이 바른다고 했다가 자기 접시의 고기를 빼앗겼고,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과일 접시를 슬쩍 내 쪽으로 옮겼다.그리고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하인이 편지 한 통을 가지고 들어왔다.“리시안 에르반 님께 황실 재산관리국에서 전달된 서신입니다.”리시안의 표정이 달라졌다.어제도 같은 곳에서 문서를 받았다. 에르반가의 잔존 재산과 작위 및 가문 복원 절차, 그리고 결정을 유예할 수 있다는 안내였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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