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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화. 세 개의 문

Author: moominkiller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1 23:03:29

소월백의 발목 사슬은 선덕문 앞에서 풀렸다.

황실 예관이 무릎을 꿇고 마지막 자물쇠에 열쇠를 넣었다. 철이 벌어지자 한 달 넘게 살을 누른 자리에 검붉은 띠가 남았다. 사람들은 환호하려다 그 상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소월백은 풀린 사슬을 중서성 문서 궤 위에 올렸다.

"손목 사슬과 한 벌입니다. 빠뜨리지 말고 황실 기록에 넣으시오."

사인이 난처한 얼굴로 물었다.

"이 물건을 무엇이라 적겠습니까."

"황제가 아우를 알아보기 전까지 채운 것."

붓끝이 잠시 멎었다가 그대로 움직였다. 사슬도 증거가 되어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선덕문 안에는 붉은 융단과 황실 가마가 기다렸다. 악공들이 피리를 들었으나 소월백은 연주하지 말라 했다. 오늘 잔칫쌀을 돌려받은 관평현 사람들의 밥이 다 익기 전에는 귀환 음악을 듣지 않겠다고 했다.

"전하."

온보요가 그를 불렀다.

소월백이 돌아보았다. 쇠사슬 없는 두 손이 낯설게 비어 있었다.

보요는 이틀마다 보내기로 한 짧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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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201화. 한 달

    한 달 뒤.삭왕부 안마당의 살구는 작은 열매를 맺었고, 주칠 대문에는 여전히 황실 봉인이 붙어 있었다.온보요는 창가 소반에 놓인 종이쪽지 열다섯 장을 다시 세었다. 이틀마다 궁에서 나온 글은 한 줄뿐이었다.길은 아직 이어져 있다.처음 다섯 장에는 소월백의 본래 수결이 찍혀 있었다. 다음 다섯 장에는 둘째 황자에게 새로 내린 붉은 인장이 붙었다. 마지막 다섯 장은 궁 안에서만 쓰는 금테 종이였다. 종이는 번듯해질수록 얇아졌고, 글씨는 갈수록 종이 한가운데에 갇혔다.보요가 열다섯 번째 쪽지를 접자 여름 볕이 얇은 치마 위로 내려앉았다. 한 달 전에는 허리띠 아래 숨던 배가 이제는 가벼운 옷 아래에서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진묵은 서책을 읽다가도 그 자락이 조금만 당기면 눈부터 들었다."또 보십니까.""내 아이인데 왜 못 봐.""신첩 얼굴도 좀 보시지요."진묵이 서책을 덮었다."그건 계속 보고 있고."그가 보요를 제 무릎으로 끌어 앉혔다. 감시하는 궁인이 열린 창 너머에 둘이나 있었지만 손은 거리끼지 않았다. 손바닥이 불러오는 배를 누르지 않게 감싸고, 다른 손으로 차가워진 매실차를 치웠다."찬 것은 그만 마셔.""어의는 한 잔까지 괜찮다 했습니다.""그 어의가 네 배를 안고 자나.""왕야."한마디에 진묵은 찻잔을 도로 놓았다. 대신 제 손으로 잔을 데우겠다는 듯 두 손 사이에 품었다. 창밖 궁인 하나가 황급히 눈을 내렸다.그 한 달 동안 온 대인의 옥문은 열리지 않았다. 큰오라비는 사흘에 한 번 기침 소리만 전했고, 남쪽 객사의 증인들은 서로 만나지 못했다. 중서성에 들어간 다섯 고을 원본은 봉인을 뜯지 않은 채 황실 창고로 옮겨졌다.왕부의 하루는 문소리로 나뉘었다. 새벽에는 여의가 들어와 보요의 맥을 짚었고, 낮에는 금군이 창호지를 들어 안채 사람 수를 세었다. 저녁이면 온가 쪽에서 온 작은 약 바구니가 문턱에서 세 번 뒤집혔다. 그 안에 글은 없었다. 방어멈이 싼 말린 매실의 수만 달라졌다. 아버지의 기침이 들린 날에는 셋,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200화. 세 개의 문

    소월백의 발목 사슬은 선덕문 앞에서 풀렸다.황실 예관이 무릎을 꿇고 마지막 자물쇠에 열쇠를 넣었다. 철이 벌어지자 한 달 넘게 살을 누른 자리에 검붉은 띠가 남았다. 사람들은 환호하려다 그 상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소월백은 풀린 사슬을 중서성 문서 궤 위에 올렸다."손목 사슬과 한 벌입니다. 빠뜨리지 말고 황실 기록에 넣으시오."사인이 난처한 얼굴로 물었다."이 물건을 무엇이라 적겠습니까.""황제가 아우를 알아보기 전까지 채운 것."붓끝이 잠시 멎었다가 그대로 움직였다. 사슬도 증거가 되어 성 안으로 들어갔다.선덕문 안에는 붉은 융단과 황실 가마가 기다렸다. 악공들이 피리를 들었으나 소월백은 연주하지 말라 했다. 오늘 잔칫쌀을 돌려받은 관평현 사람들의 밥이 다 익기 전에는 귀환 음악을 듣지 않겠다고 했다."전하."온보요가 그를 불렀다.소월백이 돌아보았다. 쇠사슬 없는 두 손이 낯설게 비어 있었다.보요는 이틀마다 보내기로 한 짧은 문장을 다시 읽었다."길은 아직 이어져 있다.""같은 문장으로 보내겠습니다.""한 번이라도 끊기면 신첩이 궁으로 갑니다."진묵이 곁에서 덧붙였다."그전에 내가 문을 연다.""왕야는 궁문을 부수지 마세요.""답이 오면 부술 일도 없다."말은 소월백에게 했으나 눈은 보요만 보았다. 진묵은 그녀 회색 겉옷의 매듭을 다시 묶고, 목에 건 문서 궤 열쇠가 옷 안에 잘 감춰졌는지 손등으로 더듬었다.소월백이 헛웃음을 흘렸다."마지막까지 부군인 것을 보이셔야 합니까.""마지막이 아니니 새겨 두라."진묵은 보요의 어깨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거칠고 당연한 손길이었다. 황자의 자리가 생겨도 보요 곁의 자리는 비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큰오라비가 보요에게 온가 가마로 가자 손을 내밀었다. 보요는 그 손을 잡아 인사한 뒤 진묵 곁에 남았다."신첩은 왕야와 삭왕부로 갑니다. 아버님께도 그리 전해 주세요."진묵의 눈매가 순식간에 풀렸다."들으셨지요. 보요는 나와 갑니다.""네 귀에만 들린 줄 알았나. 동생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99화. 아우

    작은 기록문으로 중서 사인 셋이 나왔다.그들은 성밖 돌탁자에 장부를 펼치고 문서 궤를 하나씩 받았다. 봉인이 온전한지, 사본이 몇 장인지, 누가 수결했는지까지 소리 내 살폈다. 온보요는 마지막 궤가 올라갈 때까지 열쇠를 놓지 않았다."청하현 선황 친필 목격서, 원본 하나 사본 열둘.""맞습니다.""회주현 상단 식솔 스물셋 방면 명문, 원본 하나 사본 셋.""맞습니다.""하령현 내관 조복의 매질과 인질 증언, 서로 다른 진술 셋. 서령현 불법 구금 예순넷의 손도장. 관평현 환영곡 반환문."다섯 고을의 이름이 경성 장부 첫 장에 차례로 올랐다.중서 사인이 마지막으로 선황 어새를 살피려 하자 진묵이 빈 병부 주머니에서 보자기를 꺼냈다. 그는 어새를 바로 넘기지 않고 온보요를 보았다.보요가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손이 움직였다."왕야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왕비의 것도 아니다. 그러니 네 뜻을 묻고 내놓는다."어새가 장부 위에 놓였다. 사인이 탁본을 뜨고 다시 보자기에 싸 문서 궤에 넣었다. 원본 접수가 끝났다는 검은 관인이 찍혔다.그 순간 선덕문 위에서 황제의 사자가 나타났다.두 번째 교지는 첫 교지보다 짧았다.짐은 선황의 둘째 아들 소월백이 살아 돌아왔음을 종묘와 천하에 고한다. 짐의 아우를 성 안으로 맞아 예에 따라 자리를 돌려줄 것이다.`짐의 아우`라는 네 글자가 성벽 아래로 울렸다.사람들이 이번에는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소월백만 서 있었다. 발목 사슬이 햇빛 아래 검게 빛났다.그는 절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지 않고 성벽 위 황제의 사자만 보았다. 형에게 예를 올리는 자리도, 백성에게 예를 받는 자리도 아니었다. 이름을 인정한 자와 그 인정의 값을 따지는 자가 처음 마주 선 자리였다.교지는 다섯 고을에서 문서에 이름을 남긴 백성을 황자 귀환을 도운 자로 인정하여 앞선 공모죄를 묻지 않는다고 했다. 서령현 예순넷, 회주현 스물셋, 장터에서 사본을 가져온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죄인 명부에서 빠졌다.황제가 자비를 베푼 모양이었으나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98화. 문 앞의 값

    온 대인의 다음 문초까지 세 시진이 남았다.성 안에서는 황실 가마가 기다리고, 성 밖에는 다섯 고을의 문서 수레가 서 있었다. 문지기는 소월백 한 사람만 들일 수 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문서는 남쪽 공조문으로 보내시오. 조사 뒤 쓸 만한 것은 형부에 올릴 것이오."온보요가 물었다."쓸 만한 것을 누가 고릅니까.""조정에서 정할 일이오.""그럼 쓸 만하지 않다고 제쳐 둔 이름도 남겨 주세요."문지기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문으로 보낸다는 것은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사람 없는 창고에서 고르고 없애겠다는 뜻이었다.성밖 인파가 다시 종이를 들어 올렸다. 원본이 사라져도 사본은 남았지만, 원본이 황실에 접수되지 않으면 조정은 평생 떠도는 소문이라 부를 수 있었다.반대로 원본만 성 안에 넣고 사본을 흩으면 조정은 내용이 다르다 우길 터였다. 안과 밖의 글이 같은 때에 서로를 보고 있어야 했다.소월백은 선덕문 앞 돌계단에 앉았다. 발목의 사슬이 계단 모서리에 부딪혔다."문서가 먼저 들어가기 전에는 나도 들어가지 않겠소."예관이 다급히 다가왔다."전하, 폐하께서 친히 종묘 문을 열고 기다리십니다.""내 아버지의 종묘라면 내 아버지의 글도 함께 들어가야지요.""형부 문초가 시작되면 온 대인의 몸이 버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들어가 폐하께 은전을 청하십시오."사람 하나를 살리려면 증거를 문밖에 두고 혼자 들어오라. 태후가 청하현에서 내밀었던 선택과 모양만 달랐다.온보요는 성벽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의 글이 떠올랐다. 나를 구하려 산 사람의 이름을 내주지 마라."문을 열어 달라고 더 청하지 않겠습니다."그녀는 문서 수레의 궤를 하나씩 내렸다. 청하현의 사본은 동쪽 인파에, 회주현 스물셋의 문서는 서쪽 장사꾼들에게, 하령과 서령 기록은 유생들에게 맡겼다. 원본은 성문 앞에 그대로 두었다."해 질 때까지 접수하지 않으면 여기서 전부 읽겠습니다. 아버님의 문초가 시작되는 때에 맞춰, 성 안에서는 형부가 묻고 성 밖에서는 백성이 답하게요.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97화. 아버지의 글

    온 대인의 왼손 글씨는 줄마다 아래로 기울었다.오른손으로 쓰던 평생의 버릇을 왼손이 따라가지 못했다. 획은 서툴렀지만 문장은 흐트러지지 않았다.황제가 월백을 아우라 부르면 황자의 귀환은 황제가 베푼 은혜가 된다. 피로 타고난 자리를 형이 돌려준 것처럼 꾸미면, 동생이 진실을 말할 때마다 배은한 자가 된다.소월백이 종이를 읽고 오래 침묵했다."형님이 이름을 돌려준 게 아니라, 내 이름에 손잡이를 단 거군.""그래도 거부하면 안 돼."온보요가 말했다."그러면 황제가 내민 틀 안에서 다시 사칭범이 돼. 받되, 누구에게 받은 게 아닌지는 계속 밝혀."진묵이 종이를 내려다보며 코웃음 쳤다."황실 피라는 게 빚문서보다 질기네. 태어날 때 찍힌 도장으로 평생 받아 내니까."두 번째 단락에는 온 대인의 문초가 적혀 있었다.형부는 선귀비의 독살을 증언한 노궁인이 어디 숨었는지 물었다. 나는 모른다 답했다. 그 사람은 살아 있다. 거처는 아직 내 입에서 나가지 않았다.보요의 손끝이 종이에서 멎었다. 노궁인은 이미 독합과 죽은 은침을 황제 앞에 놓았으나, 태후의 칼을 피해 다시 몸을 숨긴 뒤였다. 아버지가 형틀을 견디는 까닭은 새로운 비밀을 품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증인을 두 번 내주지 않기 위해서였다."아버님이 거처를 아십니까."소월백이 물었다.큰오라비가 고개를 저었다."나도 모른다. 아버님은 종이에 쓰지 않으셨다. 아신다는 사실도 형부에는 인정하지 않으셨고."진묵이 말했다."잘했어. 이 종이도 잡힐 수 있으니까."그는 노궁인이 살아 있다는 줄을 등불에 가까이 댔다. 태우려는 손을 보요가 막았다."이미 아버님이 문초에서 그 사람을 드러내셨습니다. 이걸 없애면 형부 기록만 남아요.""그럼 네가 가져."진묵은 바로 손을 거두었다. 보요는 편지를 다섯 관인 문서 사이에 끼우지 않고 제 속옷 안쪽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공적 증거가 되기 전까지는 가족만 아는 말이었다.마지막 단락은 딸에게 쓴 것이었다.나를 구하려 산 사람의 이름을 내주지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96화. 성 밖

    경성 외성 앞에는 환영 인파보다 종이를 든 사람이 많았다.청하현에서 베낀 선황의 친필, 하령현 내관의 이름, 서령현 예순넷의 손도장. 다섯 고을에서 서로 다른 길로 보낸 사본들이 원본보다 먼저 성벽 아래에 모였다. 장사꾼은 장부 사이에, 유생은 책 표지 안에, 의원은 약첩 밑에 숨겨 가져왔다.황실 군졸은 종이를 빼앗지 못했다. 한 장을 뺏으면 옆 사람이 소리 내 읽었고, 두 장을 찢으면 열 사람이 그 문장을 받아 적었다.성벽 아래에는 먹과 종이를 파는 좌판까지 급히 들어섰다. 글을 모르는 이는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한 줄을 청했고, 돈 없는 이는 장부 뒷장을 찢어 썼다. 같은 글이 번질수록 누가 처음 가져왔는지는 흐려졌다. 사람 하나를 잡아 입을 막는 수로는 끝낼 수 없는 소문이 되었다.온보요는 수레 안의 원본과 성밖 사본을 번갈아 보았다. 다섯 고을을 도느라 늦어진 날들이 처음으로 눈앞의 힘이 되어 있었다. 곧은길로 먼저 왔다면 아버지의 옥문 앞에 딸 하나만 섰을 터였다. 지금은 얼굴도 모르는 수백 사람이 같은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소월백이 낡은 수레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절하지 않았다. 먼저 그의 발목 사슬을 보았다. 아우로 인정한다는 교지가 도착했는데도 남겨 둔 쇠였다."문을 열라!"누군가 외치자 함성이 번졌다. 소월백은 손을 들어 소리를 낮추었다."문을 부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안에서 열게 하러 왔습니다."성벽 위 북이 한 번 울렸다. 그러나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인파 뒤에서 온가의 푸른 가마가 밀고 들어왔다. 큰오라비가 팔을 목에 건 채 내렸다. 얼굴은 며칠 사이 야위었고, 붕대 아래로 피가 배어 있었다.온보요가 가마에서 내려 달려가려 하자 진묵이 허리를 받쳤다. 막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보다 반 걸음 앞에서 길을 열었다."오라버니.""천천히 와. 네 몸부터 생각해야지."큰오라비는 한 팔로 동생의 어깨를 감쌌다. 보요는 그의 붕대를 보고, 그는 보요의 창백한 낯을 보았다. 서로 묻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첫 물음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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