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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마저

Auteur: moominkiller
last update Date de publication: 2026-07-22 16:36:10

사자의 행렬은 해가 지기 전에 물러갔다.

배웅의 격식이 끝나고, 왕부가 조복을 벗고 제 숨을 되찾는 저녁이었다. 온보요는 침소의 등불을 정리하다가, 문이 닫히는 소리에 돌아보았다.

사내가 문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하루 내 조정의 격식을 견딘 낯이 지루함으로 얇게 덮여 있었는데, 그 아래에서 다른 것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아침에 두고 간 두 마디가, 방을 건너왔다.

"마저."

무엇을, 이라고 물을 겨를은 없었다.

거리가 사라졌다. 언제 건너왔는지 모를 걸음이었다. 턱이 들리고, 숨이 겹쳐졌다. 아침의 그것이 서두르지 않는 입맞춤이었다면, 저녁의 그것은 서두를 이유를 아예 태워 버린 입맞춤이었다.

등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번진 것이 등불인지 눈앞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소리가 하나씩 멀어졌다. 화로의 숯 튀는 소리가 먼저 갔고, 창밖의 바람 소리가 그다음이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숨소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제 것인지 사내의 것인지 가려지지 않았다. 가리는 일을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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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30화. 북쪽

    열어야 할 북문 앞에는 금군 오백이 서 있었다.비가 갠 아침, 젖은 갑주들이 성문 안쪽을 가득 메웠다. 허 도위는 붉은 말을 타고 중앙에 섰다. 성벽 위에는 쇠뇌까지 올랐다. 죄수 하나의 유배를 막기에는 전쟁 같은 수였다.진묵의 일행은 수레 여섯뿐이었다. 소월백이 탄 죄수 수레, 온보요의 가마, 의원과 시비 수레, 나머지는 짐과 제수였다. 북강 군졸은 한 사람도 부르지 않았다. 황제가 금한 것도 있었으나, 불러들이면 태후가 기다리던 역모의 그림이 완성될 터였다.온가 식구들이 길가에 나와 있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두꺼운 회색 망토를 둘러 주었다. 봄이지만 북쪽으로 갈수록 밤공기가 찰 것이라 했다. 큰오라비는 진묵에게 술병 하나를 건넸다.사가의 늙은 찬모는 국 항아리를 짐수레에 얹었다. 어젯밤 온 대인이 데워 둔 국이었다. 딸이 끝내 집에서 먹지 못하자 스무 날 길의 첫 끼로 따라온 셈이었다. 온보요는 항아리를 보고도 아버지 쪽은 보지 못했다."누이는 술 냄새도 싫어하니 전하께서 드십시오.""네 누이가 마시지 말라면 못 마신다.""왕야께서도 고생이 많으십니다."처음으로 사위와 처남의 눈이 같은 곳을 보고 웃었다. 온보요는 가마 안에서 못 들은 척 매실을 씹었다.허 도위가 창을 세웠다."태후마마의 명이시다. 황자 사칭범은 경성을 나갈 수 없다. 삭왕 전하께서도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진묵이 황색 교지를 펼쳤다."조사는 끝났다. 눈이 있으면 읽어.""태후의 명이 먼저입니다.""국새보다 먼저인 것은 없지."두 사람 사이로 봄바람이 불었다. 교지의 황색 비단이 펄럭였고, 금군 창끝도 함께 흔들렸다.성벽 위 쇠뇌수 하나가 활줄에서 손을 뗐다. 이어 둘, 셋. 내려간 손들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오래 맞춘 약속처럼 고요했다. 허 도위가 뒤를 돌아봤으나 누가 명을 어겼는지 찾을 수 없었다.장 내관이 황제의 말을 달려왔다. 손에는 같은 교지의 부본과 황제 검이 들려 있었다."성문을 열라! 유배 행렬을 막는 자는 황명을 거역한 죄로 벤다!"수문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29화. 유서

    북강 유배라는 말 뒤에 황제는 누렇게 삭은 편지 한 장을 내놓았다.봉고의 나무 선반 뒤에서 찾았다고 했다. 못 하나가 새것이라 장 내관이 판자를 뜯었고, 벽과 선반 사이 얇은 틈에 황색 봉투가 끼어 있었다. 겉에는 진규에게, 단 네 글자만 적혀 있었다.봉랍은 반쯤 녹았으나 칼로 자른 흔적은 없었다. 봉투 귀퉁이에는 검은 모래가 두 알 박혀 있었다. 경성 흙이 아니라 북강 강가에서 나는 쇳가루 섞인 모래였다. 부치지 못한 편지가 먼저 목적지를 품고 있었다.진묵은 편지를 받지 않았다."부친에게 간 것을 왜 폐하가 가지고 있지.""부치지 못한 부본이겠지. 원본은 북강에 있을 테고."황제가 편지를 온보요에게 건넸다. 종이는 손끝만 대도 바스러질 듯 얇았다. 그녀는 옥방 상 위에 흰 천을 펴고 그 위에 편지를 놓았다.전 황제의 글씨는 뒤로 갈수록 흐트러져 있었다.내 아들을 살려 보낸 죄를 네게 맡긴다. 귀비의 피와 황자의 이름을 함께 증명할 밀지는 네 칼이 잠든 곳에 두어라. 궁이 무너지기 전에는 열지 말고, 아이가 제 발로 찾아오거든 돌려주라.마지막에는 작은 어새가 찍혀 있었다. 향갑 비단과 같은 도장이었다.'내 아들' 위로 둥근 물자국이 번져 있었다. 떨어진 물인지, 쓰던 이가 흘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황제는 그 얼룩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소월백은 반대로 글자만 보았다. 같은 아버지를 둔 두 사내가 서로 다른 곳을 읽었다.소월백은 옥문 안에서 편지를 읽었다. 포승 자국이 남은 손목이 천천히 굽었다."네 칼이 잠든 곳."온보요가 진묵을 보았다."선대왕의 영묘입니까.""아니다."대답이 너무 빨랐다."그럼 어디입니까.""네가 찾는다 했지.""이 와중에도요?""이 와중이라 더 잘 찾는다.""선대왕의 칼이 마지막으로 부러진 협곡, 처음 피를 묻힌 전장, 북강 왕부의 무기고. 셋 중 하나입니까."진묵은 어느 이름에도 눈을 움직이지 않았다."아니면 검을 뜻하는 게 아니군요."그때 그의 엄지가 검집 입구를 한 번 눌렀다. 아주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28화. 옥문

    옥문은 소월백을 들인 첫날 밤부터 독 냄새를 품었다.저녁으로 들어간 것은 배를 넣은 맑은 탕과 좁쌀밥이었다. 죄수의 상치고 지나치게 정갈했고, 배의 단내 아래 쓴 살구 냄새가 얇게 깔렸다.탕 위에는 대추채와 잣까지 꽃처럼 얹혀 있었다. 독을 숨긴 이가 마지막 모양새까지 살핀 것이다. 소월백은 피식 웃었다. 사람을 죽이는 상이 혼례 다음 날 받던 해장상보다 곱다니, 궁은 역시 장사꾼이 알아먹기 어려운 곳이었다.소월백은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운수 상단은 먼 길에서 상한 씨앗과 독을 가리기 위해 물건 냄새부터 맡았다. 그는 탕그릇을 문에서 가장 먼 자리에 놓았다.잠시 뒤 젊은 옥졸이 들어왔다."황상께서 친히 내리신 상이니 남기시면 불경입니다.""그럼 네가 먼저 맛보지."옥졸의 얼굴이 굳었다. 거절할 수 없어 숟가락 끝으로 국물을 떠 입에 댔다. 두 걸음도 못 가 그릇을 놓쳤다. 백자 깨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소월백이 달려가 턱을 들었으나 이미 숨이 막히고 있었다. 젊은 사내의 입술이 검푸르게 변했다. 죄수를 죽일 탕이 가난한 옥졸 목숨을 먼저 가져갔다.옥문 밖에서 발소리가 몰려왔다.진묵이 자물쇠를 검집으로 부쉈다. 뒤에는 온보요와 노궁인이 있었다. 온보요는 깨진 탕그릇을 보자 소매로 코와 입을 가렸다. 진묵은 그녀를 문밖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먹었나.""냄새만.""코는 쓸 만하군.""왕야만큼은."진묵은 옥졸의 목을 짚었다. 맥이 없었다. 낯이 더 차가워졌다.노궁인이 탕 자국에 은침을 댔다. 은빛이 순식간에 검게 죽었다. 118화 옻합의 침과 같은 빛이었다."태후전에서 쓰던 독이옵니다."상자를 들고 온 내관은 옥문 밖에서 붙잡혔다. 허리 안쪽에 붉은 실 매듭이 있었고, 혀 아래에는 자결환이 숨었다. 일영이 턱을 벌려 먼저 빼냈다."누가 상을 바꿨지."진묵이 물었다.내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묵의 손이 검자루로 내려가자 온보요가 앞을 막았다."살려 두세요. 아침 조정에서 탕을 직접 올릴 사람입니다.""한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27화. 헌상

    스무 해 검은 묘시가 되자 사가의 서안 위에 남고, 주인은 빈손으로 궁문을 향했다.소월백은 흰옷을 입었다. 숨기기 위해 검은 옷을 입었던 사내가 죄수로 가는 날 제 색을 되찾았다. 눈처럼 흰 도포에 장식은 없었고, 머리에는 백옥 관 하나만 썼다. 목의 옥패는 온보요가 들었다.거리 양편에는 금군과 구경꾼이 가득했다. 포고 속 사칭범이 제 발로 걷자 사람들은 두려워하기보다 숨을 죽였다. 죽은 황자를 닮았다는 말을 할 만큼 얼굴을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죄인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맑고, 상인이라기에는 걸음이 고요했다.채소 광주리를 든 노궁인이 소월백을 보자 무 하나를 길에 떨어뜨렸다. 선귀비를 증언했던 여인이었다. 그녀는 주우려 허리를 굽힌 채 끝내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아이들은 포고에 그려진 흉악한 사칭범이 왜 수레에 실리지 않았는지 어미에게 물었다.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소월백은 그 침묵을 밟고 걸었다. 스무 해 전 궁을 빠져나온 다섯 살 아이가, 이제는 온 경성이 보는 앞에서 제 발로 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진묵은 온보요의 가마 곁에서 말을 탔다. 소월백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대신 군중 속 활 든 손과 지붕 위 움직임을 모두 셌다.궁문 앞에는 두 무리가 기다렸다. 왼쪽은 허 도위의 금군, 오른쪽은 장 내관이 데려온 황제 직속 내관과 익위였다.허 도위가 포승을 들었다."역적을 넘기시오."온보요가 가마에서 내렸다. 소매 안 백옥 패와 전 황제 친필 부본이 함께 움직였다."폐하께 바치러 왔습니다.""금군이 황명을 받들고 있소.""어느 황명입니까."장 내관이 황색 두루마리를 펼쳤다. 사칭범의 신병은 편전에서 직접 심리한다. 황제의 국새가 아침빛 아래 선명했다.허 도위의 포승이 허공에서 멎었다.온보요는 장 내관 앞에 백옥 패를 놓았다."죄인의 물건이옵니다. 궁 옥장방 기록과 맞으니 함께 봉해 주십시오."옥패를 내놓는 순간 죄수는 단순한 사칭범이 아니게 되었다. 황실 물건을 지닌 혈통 용의자. 장 내관은 흰 비단으로 감싸 황제의 봉인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26화. 둘 중 하나

    새벽까지 내린 비는 조정으로 가는 돌길의 먹을 씻지 못했다.온보요는 위조 원본 궤를 들고 편전에 섰다. 기름종이 아래 아버지 수결을 연습한 열두 장, 예부 고 주부의 진술, 태후전 상궁이 내준 붉은 패가 차례로 나왔다.고 주부는 무릎을 꿇은 채 얼굴을 들지 못했다."온 대인의 옛 문서에 종이를 대고 베꼈사옵니다. 허 승상께서 가족을 살려 주신다 하여······."그의 소매 끝에는 마른 소금 자국이 남아 있었다. 끊은 길의 창고에서 끌려 나온 흔적이었다. 온보요가 궤 밑바닥을 열자 나무패 셋이 더 나왔다. 고 주부의 처와 두 아이 이름, 가둔 방과 하루치 물의 양까지 적혀 있었다."고 주부의 입 하나만 겁먹은 것이 아니옵니다. 겁먹게 만든 손도 여기 있사옵니다."황제가 장 내관을 보았다. 장 내관은 말없이 나무패를 받아 사람을 보냈다. 살아 있는 가족까지 편전에 닿아야 고 주부의 진술도 죽지 않을 터였다.태후는 주렴 뒤에서 염주를 굴렸다. 놀라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겁먹은 아전 하나가 살려고 아무 말이나 하는구나. 그렇다 해도 황자 사칭범을 숨긴 죄는 남는다."황제가 원본과 가짜 문서를 겹쳐 보았다. 빛에 비추자 연습한 먹선이 정확히 맞았다. 아버지의 무죄는 드러났지만 소월백의 존재는 더 선명해졌다.허 승상이 입을 열었다."삭왕비께서 사칭범을 내놓지 않으면 온가 전부와 삭왕을 역모로 다스려야 합니다. 북강 군졸까지 조사해야 하고요."둘 중 하나였다. 소월백 한 사람을 내놓거나, 온가와 북강의 문을 함께 열어 주거나.진묵은 편전 기둥 아래 서 있었다. 비에 젖은 머리칼이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한 올이 이마로 내려와 있었다. 손은 검자루에 없었다. 지난밤 약조대로 온보요가 말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온보요가 무릎을 꿇었다."내일 묘시, 황자 사칭범을 궁문으로 데려오겠습니다."조정이 술렁였다.태후의 염주가 멎었다."순순히 내놓겠다고?""온가가 연루되지 않았음을 보였으니, 남은 죄인은 죄인대로 바쳐야지요.""금군이 받겠다."

  • 삭왕은 세작을 총애한다   125화. 젖은 밤

    진묵의 목 안쪽에서 뛰는 맥이 온보요의 손을 먼저 데웠다.그는 그녀의 젖은 장옷을 벗겨 화로 곁에 걸었다. 연회색 천에서는 빗물과 쪽물 냄새가 났다. 속치마 끝도 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진묵은 무릎을 굽혀 젖은 신을 벗기고, 차가워진 발을 마른 이불 위에 올렸다."신첩이 할 수 있습니다.""알아."알면서 하는 손이었다. 비단 버선을 벗길 때 발목을 감싼 손바닥이 오래 머물렀다. 거친 엄지가 복사뼈의 젖은 물기를 쓸었다. 온보요의 발끝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진묵이 화로에 젖은 장작을 넣었다. 불은 붙지 않고 흰 연기만 냈다. 그는 짜증스럽게 장작을 꺼내고, 제 속옷 위에 마른 겉이불을 둘렀다. 온보요까지 끌어 같은 이불 안에 넣었다.두 사람의 젖은 중의가 맞닿았다. 차갑던 옷감 사이로 체온이 천천히 번졌다.진묵의 머리칼에서도 물이 떨어졌다. 한 방울이 목선을 타고 벌어진 중의 안으로 사라졌다. 온보요는 손가락으로 그 길을 따라갔다. 차가운 물끝 아래 살은 뜨거웠다. 손이 가슴 위에서 멎자 진묵의 숨이 깊어졌다."왕야도 추우시잖습니까.""네 손이 차서 그렇다."그는 언제나 제 몸의 일까지 그녀 탓으로 돌리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내일 황상께 소 공자를 바치겠습니다."진묵의 팔이 멎었다."지금 해야 하나.""지금 아니면 말하지 못할 듯해서요.""그럼 하지 마."입술이 내려왔다. 젖은 머리칼 사이 이마, 눈꺼풀, 차가운 뺨. 반박할 곳마다 먼저 입술이 닿았다."황제의 죄수로 만들면 태후가 함부로 죽이지 못합니다. 왕실 혈통의 진위를 가릴 권한은 황제에게 있으니까요.""그놈이 동의했나.""할 것입니다.""둘은 말이 없어도 잘 아나 보지."가시가 입술 끝에 묻어 있었다. 온보요가 그의 젖은 옷깃을 잡았다."왕야께서는 말이 있어도 자꾸 딴소리를 하시고요.""딴짓도 하지."이불 안의 손이 허리 뒤로 돌아왔다. 젖은 중의 고름이 손가락에 감겼다. 당기자 매듭이 빗물 먹은 실처럼 쉽게 풀렸다.온보요가 그의 중의 끈도 잡아당겼다.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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