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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님, 제 집은 산 아래인데요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3 07:31:07

무현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밤의 찬바람이 열린 창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추운 것 같은데.”

“저는 원래 더위를 많이 타요!”

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느리게 웃었다.

“그렇구나.”

연화는 그 웃음이 몹시 얄미웠다.

분명 무언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치료가 끝난 뒤 무현은 연화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잔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피어올랐다.

연화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끝맛이 쌉싸래했다. 처음 맛보는 차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슨 차예요?”

“월화차다.”

“월화요?”

“달빛 아래에서만 피는 꽃이지.”

연화는 잔을 내려다보았다.

“귀한 꽃인가 봐요.”

“그렇지.”

“그럼 비싸겠네요?”

무현이 웃었다.

“그 생각부터 하는 것이냐?”

“당연하죠. 귀한 약초는 비싸게 팔리거든요.”

“약초를 좋아하느냐?”

연화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좋아해요. 아버지한테 어릴 때부터 배웠거든요. 산에 있는 약초는 웬만하면 다 알아요.”

“그렇구나.”

“물론 청운산 위쪽에는 처음 와 봤지만요. 여기에는 희귀한 약초도 많겠죠?”

“많다.”

연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조금 캐 가도 돼요?”

“원하는 만큼.”

“정말요?”

“그래.”

“그럼 제가 약초를 캐서 팔아도 돼요?”

“그러거라.”

연화는 눈을 반짝였다.

이 산신, 생각보다 좋은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니, 좋은 신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산신궁에 있는 희귀한 약초를 조금만 가져가도 아버지와 평생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무현이 느닷없이 물었다.

“그리 돈이 필요하냐?”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죠. 사람은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내가 모두 마련해 주면?”

“그건 산신님 돈이잖아요.”

“네게 주는 것이다.”

“그래도 제가 번 돈은 아니니까요.”

무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화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리고 저는 산 아래에 돌아가야 해요. 아버지도 계시고, 약방도 있고…….”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무현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화는 그의 침묵이 불편해졌다.

혹시 다시는 내려갈 수 없다고 말하려는 걸까.

그런데 무현은 뜻밖의 말을 꺼냈다.

“네 아비는 무사할 것이다.”

연화가 고개를 들었다.

“정말요?”

“그래.”

“산신님이 어떻게 아세요?”

“이 산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연화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아버지가 저 때문에 우시는 것도 아세요?”

무현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연화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혼례를 치르러 올라오던 날, 아버지가 많이 우셨어요. 평생 그렇게 우시는 모습은 처음 봤거든요.”

그녀는 애써 웃었다.

“그러니까 저는 꼭 돌아가야 해요.”

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화는 그가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현은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래도록.

그러다가 낮게 말했다.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는 안다.”

연화는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남았다.

“산신님도 누군가를 그리워하세요?”

무현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래.”

“누구를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린 사람.”

연화는 괜히 가슴이 답답해졌다.

“……많이 좋아하셨나 봐요.”

“많이.”

무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보다.”

그 말은 담담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조금도 담담하지 않았다.

연화는 더 묻지 못했다.

어쩐지 그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밤이 깊어지자 백령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열일곱쯤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에 흰 머리카락을 가진 소년이었다. 하지만 머리 위에는 여우 귀가 쫑긋 솟아 있었고, 등 뒤에서는 아홉 개의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연화는 그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너 사람이 될 수도 있어?”

백령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물론입니다! 백령이는 청운산 최고의 신수니까요!”

“그런데 귀는 왜 그대로야?”

“…….”

“꼬리도 그대로인데?”

백령의 귀가 축 처졌다.

“아직 완벽하게 변신하지는 못합니다.”

연화는 웃음을 터뜨렸다.

백령은 조금 억울한 얼굴을 했지만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자 금세 표정이 풀렸다.

“마님께서 웃으시니 좋습니다.”

연화는 웃음을 멈췄다.

“그런데 백령아.”

“예!”

“나를 왜 마님이라고 부르니?”

백령은 눈을 깜빡였다.

“그야 마님이시니까…….”

“나는 아직 혼례도 안 치렀는데?”

“그, 그것은…….”

백령의 시선이 무현에게 향했다.

무현은 창가에 서 있었다.

백령은 그의 표정을 확인하더니 얼른 말을 바꾸었다.

“주인님께서 모셔 오신 분이니 당연히 마님이시지요!”

연화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그것뿐이야?”

“물론입니다!”

“그런데 아까는 돌아오셨다고 했잖아.”

백령의 꼬리가 굳었다.

“……제가요?”

“응.”

“그, 그랬습니까?”

“그랬어.”

백령은 식은땀을 흘렸다.

연화는 그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이 여우는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숨기고 있었다.

그녀는 더 캐묻고 싶었지만 무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백령.”

“예, 주인님!”

“연화가 쉴 수 있도록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백령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연화에게 다가와 방 안쪽을 가리켰다.

“마님, 목욕물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산의 영천수라 피로를 풀어 주는 데 아주 좋습니다.”

연화의 눈이 반짝였다.

“목욕도 할 수 있어?”

“물론입니다!”

연화는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혼례복은 흙과 먼지로 엉망이었고, 머리카락에는 나뭇잎이 몇 개나 엉켜 있었다. 하루 종일 달렸으니 몸도 찌뿌둥했다.

솔직히 목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럼 씻고 올게요.”

연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무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발목은 아직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제 안 아파요.”

“그래도 조심하거라.”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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