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혼례날 밤, 연화는 도망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망칠 생각은 사흘 전부터 하고 있었다. 백 년에 한 번 산신에게 바칠 신부를 뽑는 제비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왔던 바로 그날부터였다. 연화는 스물두 살이었다. 아직 혼인도 하지 않았고, 좋아하는 사내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아주 많이 남아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적어도 그 빌어먹을 제비를 뽑기 전까지는 그랬다. “연화야, 고개를 조금만 들어 보거라.” 늙은 침모가 그녀의 턱을 손끝으로 들어 올렸다. 연화는 얌전히 고개를 들었지만 시선만큼은 연신 창밖을 향했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산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지기 시작했으니, 이제 반 시진쯤 지나면 산신에게 바칠 혼례 행렬이 출발할 터였다. “참으로 곱구나. 산신께서도 흡족해하시겠어.” 침모는 연화의 머리에 금빛 장식이 달린 족두리를 얹으며 감탄했다. 연화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붉은 비단 위로 금실로 수놓은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있었고, 치맛자락에는 구름과 산봉우리 문양이 겹겹이 새겨져 있었다. 혼례복만큼은 어느 양반가 규수의 것보다도 화려했다. 문제는 그 옷을 입고 가는 곳이었다. 보통 혼례를 치르는 신부라면 남편이 될 사내의 집으로 가겠지만, 연화가 가야 하는 곳은 청운산 꼭대기였다. 그것도 살아 돌아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산신의 거처였다. ‘이걸 좋아해야 하나?’ 연화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예쁜 옷을 입혀 주고, 머리에 금비녀를 꽂아 주고, 마을에서 가장 귀한 음식을 차려 주는 이유가 모두 자신을 산신에게 바치기 위해서라니. 차라리 평소처럼 낡은 저고리에 흙 묻은 치마를 입고 약초나 캐러 다니는 편이 백배는 나았다. “침모님.” “왜 그러느냐?” “산신께서는 정말 신부를 잡아먹으신대요?” 침모의 손이 멈췄다. 방금 전까지 혼례복이 곱다며 웃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침모는 잠시 문밖을 살피더니 연화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 불경한 말을 입에 담는 것이 아니다.” “그럼 안 잡아먹으신다는 뜻인가요?” “그것은…….” “아니면 잡아먹으시긴 하는데 물어보면 안 된다는 뜻인가요?” 침모가 난처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였다. 연화는 대답을 기다렸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한숨뿐이었다. “신의 뜻을 인간이 어찌 알겠느냐. 그저 네가 얌전히 산에 올라가면 마을에는 복이 내릴 것이다.” 연화는 더 묻지 않았다. 어차피 누구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산신의 뜻이다. 마을을 위해서다. 선택받은 것은 영광이다. 그 말들 가운데 정작 연화가 살아 돌아올 수 있는지에 관한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 ‘영광이면 본인들이 가지.’ 연화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말을 꺼냈다가는 혼례도 치르기 전에 마을 어른들에게 혼쭐이 날 게 뻔했다. 침모가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방을 나가자 연화는 곧장 치맛자락을 들어 올렸다. 화려한 붉은 비단 아래에는 움직이기 편하도록 고쳐 입은 짧은 속바지가 있었다. 발에는 비단신 대신 오래 신어 발에 익숙한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혹시라도 달리다가 옷자락에 걸려 넘어질까 싶어 치마 안쪽에도 미리 작은 칼집을 내 두었다. 품속에는 말린 육포 세 조각, 작은 물주머니, 약초를 갈아 만든 연고, 그리고 날이 잘 선 소도가 들어 있었다. 완벽했다. 아니, 거의 완벽했다. 연화는 머리 위에 얹힌 족두리를 만지작거렸다. “이건 좀 무겁네.” 도망칠 때 버리면 그만이었다. 연화는 거울을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신부 노릇을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 혼례복이 더러워지든 족두리가 망가지든 알 바 아니었다. 그때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연화야.” 아버지였다. 연화는 반사적으로 치맛자락을 내려 품속의 소도를 감췄다. “아버지.” 평소라면 약초 냄새를 잔뜩 묻히고 들어왔을 아버지는 오늘따라 말끔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만큼은 사흘 사이 십 년은 늙은 사람처럼 수척했다. 연화는 아버지의 손을 바라보았다. 약초를 캐느라 굳은살이 박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말 가야 하느냐.” 아버지가 물었다. 연화는 어이가 없어 잠시 눈을 깜빡였다. “제가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아세요?” “아비가 못나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연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은 거칠고 차가웠다. 자신을 홀로 키우느라 고생한 사람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로 아버지는 연화가 굶는 일이 없도록 새벽부터 밤까지 산을 오르내렸다. 연화 역시 그런 아버지를 도우며 약초를 배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다. 제비를 뽑은 날, 아버지는 촌장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신 자신을 보내 달라고 빌었고, 평생 모은 돈을 모두 내놓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은 산신이 원하는 것은 신부이지 늙은 약초꾼이 아니라며 그의 청을 거절했다. 연화는 그날 아버지의 등이 얼마나 작아 보였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지, 제가 언제 얌전히 남의 말 듣고 산 적 있어요?” “연화야.” “걱정하지 마세요. 저 살 궁리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버지가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 스치는 감정이 이상했다. 놀람과 두려움, 그리고 아주 희미한 기대. “무슨 뜻이냐?” 연화는 대답 대신 웃었다. “제가 누구 딸인데요.”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품속에서 작은 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이것을 가져가거라.” “뭔데요?” “네 어미가 남긴 것이다.” 연화의 눈이 커졌다. 어머니의 유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입던 옷가지와 오래된 빗 하나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내민 주머니 안에는 낡은 붉은 끈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예요?” “나도 모른다. 네 어미가 죽기 전에 네게 주라고 했다.” 연화는 끈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오래된 물건인데도 붉은빛이 선명했다. 비단처럼 부드러웠지만 묘하게 차가운 감촉이 있었다. 끈 한쪽 끝에는 알아볼 수 없는 문양이 작은 매듭으로 엮여 있었다. “왜 이제 주셨어요?”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연화의 손을 꼭 쥐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한다.”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연화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버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자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럴 거예요.” 연화는 붉은 끈을 품속 깊이 넣었다. “꼭 살아서 돌아올게요.” 그 순간 아버지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네?” “연화야. 혹시라도 산신께서 너를 받아 주신다면…….” 아버지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연화가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저 몸조심하거라.” 연화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밖에서 혼례 행렬을 준비하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더 물을 시간도 없었다. 청운마을에는 오래된 전설이 있었다. 백 년에 한 번, 청운산의 산신이 신부를 맞이한다. 산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인간이 아니며, 그 얼굴을 본 여인은 다시는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만약 신부를 바치지 않으면 산의 짐승들이 미쳐 날뛰고, 계곡이 마르며, 마을에는 역병이 돈다고 했다. 연화는 어릴 때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다.연화는 한 걸음 다가갔다. “너 아까부터 이상한 말을 자꾸 해.” “…….” “나를 처음 봤다면서 왜 돌아왔다고 했어? 그리고 이번에도라니, 그건 무슨 뜻이야?” 백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소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연화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이곳에는 자신과 관련된 비밀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비밀이. “백령아.” 연화가 조용히 불렀다. “너 나를 알아?” 백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화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나를 예전에도 본 적 있어?” 백령의 눈가가 붉어졌다. “마님…….” 그때였다. 궁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렸다. 댕—. 백령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안 됩니다.” 연화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 “지금은 나가시면 안 됩니다.” “왜?” 백령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늘 밤은…….” 그 순간 연화의 손목이 뜨거워졌다. “아!” 그녀는 반사적으로 소매를 걷었다. 꽃잎 모양의 붉은 반점이 다시 빛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선명했다. 금빛 선이 피부 위로 퍼지더니 작은 연꽃 문양을 이루었다. 그리고 눈앞의 문이 다시 움직였다. 끼이이익.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너머에는 산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연화는 숨을 삼켰다. ‘열렸어.’ 정말 열렸다. 이제 저 길로 달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백령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그녀의 손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소년이 중얼거렸다. “마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연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뜻이야?” 백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산신궁의 문은…….” 그때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백령.” 연화는 돌아보았다. 무현이었다. 그는 언제 나타났는지 복도
“그런데 산신님.” “왜?” “산신님은 어디서 주무세요?” 무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화는 방 안의 침상을 가리켰다. “설마 여기서 같이 주무시는 건 아니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백령의 귀가 쫑긋 섰다. 무현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것을 원하느냐?” 연화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니요!” 무현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렇다면 걱정하지 말거라.” “당연히 걱정하죠!” “나는 동쪽 별전에서 지낸다.” 연화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무현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부르지 않는 한 이 방에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연화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말투는 여전히 느긋했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그녀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약속하신 거예요?” “그래.” “밤중에 몰래 들어오시면 안 돼요.” “그러마.” “제가 자고 있을 때도요.” “알겠다.” “그리고…….” “연화야.” 무현이 낮게 불렀다. 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조금 몸을 숙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높이에서 마주쳤다. “나는 네가 싫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연화는 숨을 삼켰다. 가까웠다.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그의 옷깃에 닿을 만큼. 하지만 무현은 더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물러날 수 있도록 충분한 거리를 남겨 둔 채 조용히 기다렸다. 연화는 그 사실을 깨닫고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가 자신을 데려온 방식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고, 이 남자가 감추는 비밀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도 방금 한 말만큼은 믿고 싶었다. 연화는 시선을 피했다. “……그럼 됐어요.” 무현이 작게 웃었다. “편히 쉬거라.” 그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연화는 문이 닫힐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정말
무현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밤의 찬바람이 열린 창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추운 것 같은데.” “저는 원래 더위를 많이 타요!” 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느리게 웃었다. “그렇구나.” 연화는 그 웃음이 몹시 얄미웠다. 분명 무언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치료가 끝난 뒤 무현은 연화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잔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피어올랐다. 연화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끝맛이 쌉싸래했다. 처음 맛보는 차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슨 차예요?” “월화차다.” “월화요?” “달빛 아래에서만 피는 꽃이지.” 연화는 잔을 내려다보았다. “귀한 꽃인가 봐요.” “그렇지.” “그럼 비싸겠네요?” 무현이 웃었다. “그 생각부터 하는 것이냐?” “당연하죠. 귀한 약초는 비싸게 팔리거든요.” “약초를 좋아하느냐?” 연화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좋아해요. 아버지한테 어릴 때부터 배웠거든요. 산에 있는 약초는 웬만하면 다 알아요.” “그렇구나.” “물론 청운산 위쪽에는 처음 와 봤지만요. 여기에는 희귀한 약초도 많겠죠?” “많다.” 연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조금 캐 가도 돼요?” “원하는 만큼.” “정말요?” “그래.” “그럼 제가 약초를 캐서 팔아도 돼요?” “그러거라.” 연화는 눈을 반짝였다. 이 산신, 생각보다 좋은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니, 좋은 신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산신궁에 있는 희귀한 약초를 조금만 가져가도 아버지와 평생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무현이 느닷없이 물었다. “그리 돈이 필요하냐?”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죠. 사람은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내가 모두 마련해 주면?” “그건 산신님 돈이잖아요.” “네게 주는 것이다.” “그래도 제가 번 돈은 아니
“산신님.” “왜 그러느냐.” “혹시 저를 너무 쉽게 믿으시는 거 아니에요?” “어째서?” “제가 금은보화 들고 도망가면 어떡하시려고요?” 무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다시 채워 놓으면 되지.” 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이 남자는 이상했다. 보통 신부가 도망가겠다고 하면 화를 내거나, 적어도 못 가게 막으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현은 그녀가 무엇을 요구하든 대부분 들어줄 것처럼 굴었다. 단 하나. 산 아래로 내려가겠다는 말만 빼고. 그때 궁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끼이이익. 무거운 나무문이 양옆으로 갈라지자 흰 그림자 하나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주인님!” 연화는 깜짝 놀랐다. 하얀 여우였다. 그것도 보통 여우가 아니었다. 몸집은 어린 송아지만큼 컸고, 꼬리는 무려 아홉 개였다. 눈처럼 흰 털이 달빛 아래 반짝였으며, 이마에는 작은 붉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여우는 무현을 향해 달려오다가 그의 품에 안긴 연화를 보고 그대로 멈췄다. “……어?” 연화도 여우를 바라보았다. “……어?” 잠시 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여우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마, 마, 마님!” 연화는 눈을 깜빡였다. “네?” “마님이 돌아오셨다!” 여우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홉 개의 꼬리가 사방으로 흩날리더니 순식간에 연화의 발치로 달려와 납작 엎드렸다. “백령이 인사 올립니다, 마님!” 연화는 황당해서 무현을 올려다보았다. “……얘는 또 왜 이래요?” “백령이다. 이 산을 지키는 신수 중 하나지.” “여우가 말을 하네요?” “신수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긴 한데…….” 연화는 다시 여우를 내려다보았다. 백령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님, 정말 돌아오신 겁니까? 이번에는 오래 계실 거지요? 다시는 백령이를 두고 가지 않으실 거지요?” 연화의 표정이 묘해졌다. “저기,
연화는 살면서 잘생긴 사내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마을에 약재를 사러 내려오던 젊은 의원도 제법 준수한 얼굴이었고, 봄마다 장터에 나타나는 비단 상인 역시 처녀들이 뒤를 돌아볼 만큼 훤칠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안고 산길을 오르는 남자와 비교하자면,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내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남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산신님.” “말하거라.” “저 무겁지 않으세요?” “아니.” “그럼 팔은 안 아프세요?” “아프지 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안고 가실 수는 없잖아요.” “그렇겠지.” 연화는 그제야 조금 희망을 품었다. 아무리 산신이라도 사람을 품에 안고 산길을 오르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한 곳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테고, 그때 다시 도망칠 기회를 엿보면 되었다. 그러나 이어진 대답은 그녀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도착하면 내려놓으마.” “……어디에 도착하는데요?” “내 처소.” “그게 어디인데요?” “산 위에 있다.” 연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진심으로 물었다. “산신님, 혹시 제 말귀를 일부러 못 알아들으시는 거예요?” 무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그는 대답 대신 그녀를 받쳐 든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연화는 반사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가 곧바로 손을 떼었다. 얇은 옷깃 너머로 전해진 체온이 생각보다 따뜻했기 때문이다. 산신의 몸은 얼음처럼 차갑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그녀의 등을 받친 손바닥에서는 온기가 느껴졌고,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솔잎 향이 났다. 가까이서 보니 금빛 눈동자에는 아주 가느다란 검은 테가 둘러져 있었다. 인간의 눈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기묘할 만큼 아름다운 눈이었다.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그 눈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정신 차려, 연화야.’ 얼굴이 잘생겼다고 목숨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산신을 눈앞에 두고도! 연화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발밑의 땅이 사라졌다. “어?” 몸이 허공으로 기울었다.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절벽이었다. 연화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아아악!”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죽는다. 정말 죽는다. 연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예상했던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허리 아래로 단단한 팔이 감겼다. 누군가 그녀를 공중에서 받아 든 것이다. 연화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바로 눈앞에 금빛 눈동자가 있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연화를 품에 안은 채 절벽 위에 서 있었다. 검은 도포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연화는 자신이 어떻게 절벽 위로 돌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허리를 받친 팔이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사실과, 남자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사실만 선명하게 느껴졌다. “……산신님.” “그래.” “저…….” “또 도망갈 것이냐?” 연화는 입술을 달싹였다. 남자의 얼굴에는 다시 희미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화가 난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금빛 눈동자 깊은 곳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무언가가 어려 있었다. 두려움. 연화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이 떨어지는 순간 남자가 얼마나 놀랐는지도, 그가 자신을 받아 든 팔에 얼마나 조심스럽게 힘을 주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한 가지 사실만 생각했다. 이 산신에게 잡혔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연화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놓아주시면 안 돼요?” 남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왜?” “다시 도망가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남자가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연화는 황당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래.” “제가 도망간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