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 connecter특히 겨울밤이면 어른들은 산신 이야기를 꺼내며 아이들을 겁주곤 했다.
산신의 눈은 금빛으로 빛난다. 산신의 손은 얼음처럼 차갑다. 산신이 이름을 세 번 부르면 반드시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산 전체가 뒤집혀 도망친 인간을 찾아낸다고 했다. 연화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쳤다. 산신이 그렇게 무서운 존재라면 왜 굳이 백 년이나 기다렸다가 신부를 데려가겠는가. 마음만 먹으면 마을 여자들을 모조리 잡아갈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막상 자신이 신부로 뽑히고 나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신부를 모셔라!” 마을 어귀에서 커다란 북소리가 울렸다. 연화는 붉은 천으로 장식된 가마에 올랐다. 가마 양옆에는 흰옷을 입은 제관들이 섰고, 그 뒤로는 횃불을 든 사내들이 줄지어 따라왔다. 사람들은 길 양옆에 엎드려 머리를 숙였다. 누군가는 울었다. 누군가는 기도했다. 하지만 누구도 연화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저 살아 있는 사람을 장례 치르듯 보내고 있었다. 연화는 가마의 작은 창을 통해 익숙한 마을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소담과 함께 뛰어놀던 우물가, 아버지와 약초를 말리던 마당, 봄이면 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돌담길이 차례로 멀어졌다. 그때 누군가 가마 가까이 달려왔다. “연화 언니!” 소담이었다. 연화는 얼른 창가로 몸을 기울였다. “소담아!” “언니, 이거!” 소담이 작은 보따리를 가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안에는 주먹밥 두 개와 말린 대추가 들어 있었다. “산에 올라가면 배고플 거잖아.” “…….” “산신님이 정말 무서우시면…….” 소담은 말을 잇지 못했다. 연화는 애써 웃었다. “걱정 마. 내가 산에서 길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는 거 알잖아.” “언니.” “혹시 알아? 산신님이 생각보다 괜찮은 분일지도 모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화 자신도 믿지 않았다. 소담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연화는 손을 뻗어 친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울지 마. 얼굴 붓는다.” “언니는 지금 그런 말이 나와?” “그럼 울면서 가야 하니?” 소담이 코를 훌쩍였다. 연화는 보따리를 품속에 넣었다. “잘 먹을게.” 그것이 두 사람이 나눈 마지막 말이었다. 가마가 다시 움직였고, 소담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연화는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산신이 누구든 상관없었다. 신이든 귀신이든, 자신을 잡아먹겠다면 그 전에 도망치면 그만이었다. 산길에 들어선 뒤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횃불을 든 사내들이 떠들며 걸었지만 중산에 가까워질수록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나무가 빽빽해지고 안개가 낮게 깔리자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바람도 이상했다. 분명 가을밤인데 공기는 겨울처럼 차가웠고, 나뭇잎은 흔들리지 않는데 어딘가에서 계속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화는 가마 안에서 귀를 기울였다. 짐승 소리였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늑대인지 여우인지 모를 울음소리가 숲 곳곳에서 들려왔다. 가마꾼 하나가 겁먹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산신께서 벌써 신부를 맞으러 나오신 것 아닙니까?” “입 다물어라.” 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신부를 내려놓고 돌아가야 한다.” 연화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려놓고 돌아간다고?’ 그 말은 자신을 산신에게 직접 인계하는 것이 아니라 산속에 혼자 남겨 둔다는 뜻이었다.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감시하는 사람이 없다면 도망치기도 쉬울 테니까. 연화는 치맛자락 안쪽에 숨겨 둔 소도를 손끝으로 확인했다. 가마 문을 막은 끈만 끊으면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왼쪽 손목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아!” 연화는 저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삼켰다. 손목 안쪽에 있던 붉은 반점이 열을 내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있던 꽃잎 모양의 흔적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오늘은 마치 달군 쇠를 피부에 갖다 댄 것처럼 화끈거렸다. 연화는 소매를 걷었다. 반점 가장자리에 희미한 금빛이 번졌다가 사라졌다. “……뭐야?”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이미 평소의 붉은 흔적으로 돌아와 있었다. 착각이었을까. 연화가 손목을 문지르는 사이 가마가 멈췄다. “도착했습니다.” 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마 문이 열리자 차가운 밤공기가 밀려들었다. 연화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는 오래된 돌계단이 있었다. 계단은 짙은 안개 속으로 이어져 있었고, 양옆에는 붉은 등롱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었다. 이상한 것은 등롱 안에 불을 붙인 흔적이 없는데도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는 점이었다. 계단 아래에는 낡은 비석 하나가 서 있었다. 연화는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읽으려 했지만 이끼가 두껍게 끼어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때 촌장이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연화야.” “예, 촌장 어르신.” “이제부터는 혼자 올라가야 한다.” “산신님이 어디 계신지도 모르는데요?” “길을 따라가면 된다.” “혹시 길이 두 갈래로 나뉘면요?” 촌장이 잠시 말문을 잃었다. 연화는 순진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산신님이 저를 못 찾으시면 어떡하죠?” “산신께서는 네가 어디 있든 찾아내실 것이다.” “아, 그래요?”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빨리 도망쳐야겠네.’ 촌장은 그녀의 표정을 오해했는지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워하지 말거라. 네가 산신의 뜻을 따르면 마을은 평안할 것이다.” 연화는 그 말을 듣고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촌장의 손을 보았다. 그는 무언가를 숨기듯 소매 안쪽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연화의 시선이 그곳에 닿자 촌장은 황급히 손을 내렸다. “어서 올라가거라.” 연화는 천천히 계단에 발을 올렸다. 한 계단. 두 계단. 세 계단. 등 뒤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촌장과 제관들은 이미 가마를 돌리고 있었다. “잠깐만요!” 연화가 불렀다. 촌장이 걸음을 멈췄다. “제가 혹시 산신님 마음에 안 들면 돌아가도 돼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연화는 다시 물었다. “아니면 산신님이 저를 싫다고 하시면요?” 촌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절대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그 목소리가 너무 단호해서 연화는 순간 말을 잃었다. “……왜요?” “산신께 바친 신부는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올 수 없다.” “그게 무슨…….” “기억하거라.” 촌장은 연화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산 아래로 내려와서는 안 된다.” 그 말을 끝으로 촌장은 몸을 돌렸다. 횃불이 하나둘 멀어졌다. 가마꾼들의 발소리가 사라지고, 마지막 등불마저 숲 아래로 내려가자 연화는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 그녀는 한동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까 촌장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산신께 바친 신부는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올 수 없다. 그것은 산신이 무서워서 하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말 같았다. 하지만 연화는 곧 고개를 저었다. ‘됐어. 생각은 나중에 하자.’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일이었다. 연화는 주변을 살폈다. 사람은 없었다. 짐승의 기척도 잠잠해졌다. 그녀는 곧장 족두리를 벗었다. “아이고, 살겠다.”연화는 한 걸음 다가갔다. “너 아까부터 이상한 말을 자꾸 해.” “…….” “나를 처음 봤다면서 왜 돌아왔다고 했어? 그리고 이번에도라니, 그건 무슨 뜻이야?” 백령은 입술을 깨물었다. 소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연화는 그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이곳에는 자신과 관련된 비밀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비밀이. “백령아.” 연화가 조용히 불렀다. “너 나를 알아?” 백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화는 한 걸음 더 다가갔다. “나를 예전에도 본 적 있어?” 백령의 눈가가 붉어졌다. “마님…….” 그때였다. 궁의 가장 깊은 곳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렸다. 댕—. 백령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안 됩니다.” 연화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뭐가?” “지금은 나가시면 안 됩니다.” “왜?” 백령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늘 밤은…….” 그 순간 연화의 손목이 뜨거워졌다. “아!” 그녀는 반사적으로 소매를 걷었다. 꽃잎 모양의 붉은 반점이 다시 빛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선명했다. 금빛 선이 피부 위로 퍼지더니 작은 연꽃 문양을 이루었다. 그리고 눈앞의 문이 다시 움직였다. 끼이이익. 문이 활짝 열렸다. 그 너머에는 산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연화는 숨을 삼켰다. ‘열렸어.’ 정말 열렸다. 이제 저 길로 달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백령은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에 질린 얼굴로 그녀의 손목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이.” 소년이 중얼거렸다. “마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연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무슨 뜻이야?” 백령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산신궁의 문은…….” 그때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백령.” 연화는 돌아보았다. 무현이었다. 그는 언제 나타났는지 복도
“그런데 산신님.” “왜?” “산신님은 어디서 주무세요?” 무현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연화는 방 안의 침상을 가리켰다. “설마 여기서 같이 주무시는 건 아니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백령의 귀가 쫑긋 섰다. 무현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것을 원하느냐?” 연화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니요!” 무현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렇다면 걱정하지 말거라.” “당연히 걱정하죠!” “나는 동쪽 별전에서 지낸다.” 연화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무현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네가 부르지 않는 한 이 방에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연화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말투는 여전히 느긋했지만 눈빛만큼은 진지했다. 그녀는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약속하신 거예요?” “그래.” “밤중에 몰래 들어오시면 안 돼요.” “그러마.” “제가 자고 있을 때도요.” “알겠다.” “그리고…….” “연화야.” 무현이 낮게 불렀다. 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그가 조금 몸을 숙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높이에서 마주쳤다. “나는 네가 싫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연화는 숨을 삼켰다. 가까웠다.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그의 옷깃에 닿을 만큼. 하지만 무현은 더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물러날 수 있도록 충분한 거리를 남겨 둔 채 조용히 기다렸다. 연화는 그 사실을 깨닫고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그가 자신을 데려온 방식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고, 이 남자가 감추는 비밀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도 방금 한 말만큼은 믿고 싶었다. 연화는 시선을 피했다. “……그럼 됐어요.” 무현이 작게 웃었다. “편히 쉬거라.” 그는 몸을 돌려 방을 나갔다. 연화는 문이 닫힐 때까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이 완전히 닫힌 뒤에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아, 정말
무현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밤의 찬바람이 열린 창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추운 것 같은데.” “저는 원래 더위를 많이 타요!” 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더니 느리게 웃었다. “그렇구나.” 연화는 그 웃음이 몹시 얄미웠다. 분명 무언가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치료가 끝난 뒤 무현은 연화에게 따뜻한 차를 건넸다. 잔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피어올랐다. 연화는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끝맛이 쌉싸래했다. 처음 맛보는 차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슨 차예요?” “월화차다.” “월화요?” “달빛 아래에서만 피는 꽃이지.” 연화는 잔을 내려다보았다. “귀한 꽃인가 봐요.” “그렇지.” “그럼 비싸겠네요?” 무현이 웃었다. “그 생각부터 하는 것이냐?” “당연하죠. 귀한 약초는 비싸게 팔리거든요.” “약초를 좋아하느냐?” 연화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좋아해요. 아버지한테 어릴 때부터 배웠거든요. 산에 있는 약초는 웬만하면 다 알아요.” “그렇구나.” “물론 청운산 위쪽에는 처음 와 봤지만요. 여기에는 희귀한 약초도 많겠죠?” “많다.” 연화는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조금 캐 가도 돼요?” “원하는 만큼.” “정말요?” “그래.” “그럼 제가 약초를 캐서 팔아도 돼요?” “그러거라.” 연화는 눈을 반짝였다. 이 산신, 생각보다 좋은 사람일지도 몰랐다. 아니, 좋은 신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산신궁에 있는 희귀한 약초를 조금만 가져가도 아버지와 평생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무현이 느닷없이 물었다. “그리 돈이 필요하냐?” 연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죠. 사람은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내가 모두 마련해 주면?” “그건 산신님 돈이잖아요.” “네게 주는 것이다.” “그래도 제가 번 돈은 아니
“산신님.” “왜 그러느냐.” “혹시 저를 너무 쉽게 믿으시는 거 아니에요?” “어째서?” “제가 금은보화 들고 도망가면 어떡하시려고요?” 무현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다시 채워 놓으면 되지.” 연화는 입을 다물었다. 이 남자는 이상했다. 보통 신부가 도망가겠다고 하면 화를 내거나, 적어도 못 가게 막으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현은 그녀가 무엇을 요구하든 대부분 들어줄 것처럼 굴었다. 단 하나. 산 아래로 내려가겠다는 말만 빼고. 그때 궁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끼이이익. 무거운 나무문이 양옆으로 갈라지자 흰 그림자 하나가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주인님!” 연화는 깜짝 놀랐다. 하얀 여우였다. 그것도 보통 여우가 아니었다. 몸집은 어린 송아지만큼 컸고, 꼬리는 무려 아홉 개였다. 눈처럼 흰 털이 달빛 아래 반짝였으며, 이마에는 작은 붉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여우는 무현을 향해 달려오다가 그의 품에 안긴 연화를 보고 그대로 멈췄다. “……어?” 연화도 여우를 바라보았다. “……어?” 잠시 묘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여우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마, 마, 마님!” 연화는 눈을 깜빡였다. “네?” “마님이 돌아오셨다!” 여우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아홉 개의 꼬리가 사방으로 흩날리더니 순식간에 연화의 발치로 달려와 납작 엎드렸다. “백령이 인사 올립니다, 마님!” 연화는 황당해서 무현을 올려다보았다. “……얘는 또 왜 이래요?” “백령이다. 이 산을 지키는 신수 중 하나지.” “여우가 말을 하네요?” “신수이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긴 한데…….” 연화는 다시 여우를 내려다보았다. 백령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님, 정말 돌아오신 겁니까? 이번에는 오래 계실 거지요? 다시는 백령이를 두고 가지 않으실 거지요?” 연화의 표정이 묘해졌다. “저기,
연화는 살면서 잘생긴 사내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마을에 약재를 사러 내려오던 젊은 의원도 제법 준수한 얼굴이었고, 봄마다 장터에 나타나는 비단 상인 역시 처녀들이 뒤를 돌아볼 만큼 훤칠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을 안고 산길을 오르는 남자와 비교하자면,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내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남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산신님.” “말하거라.” “저 무겁지 않으세요?” “아니.” “그럼 팔은 안 아프세요?” “아프지 않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안고 가실 수는 없잖아요.” “그렇겠지.” 연화는 그제야 조금 희망을 품었다. 아무리 산신이라도 사람을 품에 안고 산길을 오르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한 곳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테고, 그때 다시 도망칠 기회를 엿보면 되었다. 그러나 이어진 대답은 그녀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았다. “도착하면 내려놓으마.” “……어디에 도착하는데요?” “내 처소.” “그게 어디인데요?” “산 위에 있다.” 연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진심으로 물었다. “산신님, 혹시 제 말귀를 일부러 못 알아들으시는 거예요?” 무현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그는 대답 대신 그녀를 받쳐 든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연화는 반사적으로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가 곧바로 손을 떼었다. 얇은 옷깃 너머로 전해진 체온이 생각보다 따뜻했기 때문이다. 산신의 몸은 얼음처럼 차갑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달랐다. 그녀의 등을 받친 손바닥에서는 온기가 느껴졌고,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솔잎 향이 났다. 가까이서 보니 금빛 눈동자에는 아주 가느다란 검은 테가 둘러져 있었다. 인간의 눈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기묘할 만큼 아름다운 눈이었다. 연화는 자신도 모르게 그 눈을 바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정신 차려, 연화야.’ 얼굴이 잘생겼다고 목숨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산신을 눈앞에 두고도! 연화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발밑의 땅이 사라졌다. “어?” 몸이 허공으로 기울었다.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절벽이었다. 연화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잡히는 것은 허공뿐이었다. “아아악!”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죽는다. 정말 죽는다. 연화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예상했던 충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허리 아래로 단단한 팔이 감겼다. 누군가 그녀를 공중에서 받아 든 것이다. 연화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바로 눈앞에 금빛 눈동자가 있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남자는 연화를 품에 안은 채 절벽 위에 서 있었다. 검은 도포 자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연화는 자신이 어떻게 절벽 위로 돌아왔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허리를 받친 팔이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사실과, 남자의 얼굴이 지나치게 가깝다는 사실만 선명하게 느껴졌다. “……산신님.” “그래.” “저…….” “또 도망갈 것이냐?” 연화는 입술을 달싹였다. 남자의 얼굴에는 다시 희미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화가 난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금빛 눈동자 깊은 곳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무언가가 어려 있었다. 두려움. 연화는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자신이 떨어지는 순간 남자가 얼마나 놀랐는지도, 그가 자신을 받아 든 팔에 얼마나 조심스럽게 힘을 주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한 가지 사실만 생각했다. 이 산신에게 잡혔다. 그것도 아주 제대로. 연화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놓아주시면 안 돼요?” 남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왜?” “다시 도망가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남자가 웃었다. 이번에는 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연화는 황당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그래.” “제가 도망간다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