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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이라 부르지 마
삼촌이라 부르지 마
Author: 삼계절

제1화

Author: 삼계절
귀국 첫날, 강이라는 약혼자에게 바람을 맞았다.

비행기에서 막 내렸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를 건 사람은 심초연이었다.

초연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터질 듯했다.

[나 오늘 하늘엔터 대표랑 협업 이야기하다가 들었어. 네 약혼자 최지범, 그 회사 신인 여배우 소아영을 끼고 스카이클럽으로 갔대. 곧 약혼을 앞둔 사람이 여배우랑 그렇게 붙어 다녀도 돼? 진짜 뻔뻔해.]

초연은 분이 안 풀리는지 한마디를 더 보탰다.

[기본이 안 됐어.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봐.]

최지범은 경울시 부동산업자의 아들이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성정은 업계 사람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최씨 집안이 경울시에서 졸부로 분류된다고 해도 부자들의 모임에는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지범이 아무리 방탕해도 최씨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지범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걸 알아도 그 곁으로 가까이 가려는 여자는 끊이지 않았다.

지범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스캔들 역시 계속되었다.

스카이클럽은 경울시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회원제 클럽이었다. 돈과 권력이 모이는 곳이고, 상류층 자제들이 밤을 밝히는 곳이었다.

지범이 여자를 데리고 그런 곳에 갔다면 목적은 뻔했다. 방을 잡으려면 사생활 보호가 확실한 곳이 좋으니까.

“그런 집 아들들은 노는 것 좋아하잖아.”

이라는 한 손으로 캐리어를 끌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쥔 채, 북적이는 입국장을 지나갔다.

목소리에는 이상하리만큼 담담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

“며칠 더 신나게 놀게 내버려둬.”

지범의 끊이지 않는 여자 문제에 대해, 이라는 늘 모르는 척했다.

초연은 이라의 쿨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2년이 됐지만, 약혼자의 바람을 왜 이렇게 쉽게 넘기는지 알 수 없었다.

이라는 예쁘고 눈에 띄었다. 해외 명문대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따라다니는 남자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이라가 왜 최지범 같은 남자와 약혼하려 하는지, 초연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초연은 이라가 별일 아니라는 듯하자 화제를 바꿨다.

[참, 우리 대본 산 세아픽처스 대표 박동혁도 오늘 스카이클럽에 있대.]

“그래?”

이라가 무심히 물었다.

“거기까지 가려면 꽤 돈을 썼겠네.”

“그렇지. 오늘 투자 유치하려고 TC캐피털 대표를 초대했대.”

그 말을 듣자,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던 발걸음도 잠시 멈췄다.

이라의 숨이 짧게 멎었다.

TC캐피털.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투자금융사이자, 금융업계 최상단에 자리한 곳이었다.

그리고 TC캐피털의 대표는 ‘고’ 씨였다.

경울시 최상류층 재벌가로 꼽히는 고씨 집안의 둘째 아들, 고은후.

그 이름을 듣자 이라는 온몸이 작게 떨렸다.

핸드폰 너머 초연의 말이 이어졌다.

[업계 사람들이 그러더라. 박동혁이 석 달 동안 그 사람 눈에 들려고 별짓을 다 했대. 겨우 투자계에서 손 하나로 판을 움직인다는 그분을 모셨나 봐. 투자가 확정되면 우리도 덩달아 숨통이 트이는 거 아니야?]

1년 전, 이라가 아직 해외에서 유학 중이라 졸업도 하지 않았을 때, 같은 학교 선배였던 초연이 함께 ‘에코’라는 작은 콘텐츠 회사를 차려 보자고 했다. 주로 드라마와 영화 대본을 취급하는 회사였다.

그동안 이라는 해외에서 대본 작업을 맡았고, 회사의 크고 작은 일은 초연이 도맡았다.

최근 몇 달 동안 수익은 좋지 않았다.

자금 사정이 빠듯했고, 이라는 초연이 받는 압박을 알고 있었다.

이라는 생각을 거두고 하이힐 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었다.

“잘됐으면 좋겠네.”

‘고은후... 까다롭고, 차갑고, 상대하기 힘든 사람이야.’

이라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 비행기 착륙한 거야?]

초연이 그제야 주변 소음을 알아챘다.

[내가 데리러 갈까?]

“괜찮아, 선배.”

이라가 택시를 잡았다.

“차 잡았어.”

전화 너머로 이라가 기사에게 말한 주소가 들렸다.

초연은 놀라 물었다.

[너... 스카이클럽으로 가는 거야?]

이라는 뒷좌석에 앉아 귓가에 흐트러진 긴 머리를 넘겼다.

창밖으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거리의 불빛이 흘렀다. 붉은 입술이 부드럽게 휘었다.

“바람난 약혼자 잡으러.”

...

스카이클럽 같은 최고급 회원제 클럽은 순수 가입비만 10억 원부터 시작했다.

그곳에서 하룻밤 쓰는 돈은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까지 올라갔다.

평범한 사람이 발 들이는 곳은 아니었다.

이라는 클럽 입장부터 순조로웠다.

회원 번호 하나를 말했을 뿐인데 직원의 놀란 시선을 뒤로하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자로 받은 룸 번호를 확인한 이라는 살짝 웃었다. 막힘없이 10층 룸으로 향했다.

그 위층부터는 최상류층의 자제들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최지범의 이름값으로도 닿기 어려운 곳이었다.

룸 앞에 도착하자 문틈 사이로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람이 꽤 많았다.

이라는 문을 밀어 열려다 멈췄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자신과 관련된 듯했다.

“지범아, 네 약혼녀 오늘 귀국한다며? 마중 안 나가?”

“우리 지범이가 직접 가긴 뭘 가. 기사도 안 보냈다던데?”

“내가? 왜?”

지범은 노골적으로 이라를 얕보는 말투로 말했다.

“그 여자 외삼촌이 우리 아버지한테 매달리지만 않았어도 최씨 집안 문턱도 못 넘어.”

“맞지. 부모도 없다며? 외가 쪽에서 몇 년 전에 다시 데려왔다던데. 갑자기 최씨 집안으로 시집보내려는 거 보면 딱 보이잖아. 동아줄 한번 잡아보겠다는 거지.”

누군가 바로 맞장구를 쳤다.

“그런 여자가 제일 다루기 쉽지. 뒤에서 받쳐 줄 집안이 없으니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지범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자랑 만났는데도 아무 말 없잖아. 다른 집 딸이었으면 벌써 난리 났지. 그 여자는 해외에서 소심하게 나타나지도 못하고 말도 못 한다니까.”

“야, 야.”

나긋한 여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래도 결혼할 여자를 그렇게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뭐가 그래. 너는 머리카락 한 올도 그 여자보다 낫지.”

지범은 소아영의 뺨에 입을 맞추고, 허리를 잡아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 낮게 웃으며 물었다.

“너는 나랑 결혼해서 최씨 집안 며느리 되고 싶지 않아?”

“난 싫어.”

아영의 말끝은 달콤했다. 손끝으로 최지범의 가슴을 톡 건드렸다.

“결혼은 재미없잖아.”

그 말은 남자의 정복욕을 자극했다.

지범은 아영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짝짝짝-

룸 문이 열리며 맑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

이어 하이힐 굽 소리가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라를 보고 멈칫했다.

들어온 여자는 지나칠 만큼 아름다웠다.

입술을 맞대고 있던 두 사람은 한 몸처럼 붙어 있다가 급히 떨어졌다.

지범은 이라를 보고 눈에 놀람을 띠었다.

“강이라?”

눈앞의 얼굴은 사진으로 보았던 약혼녀와 겹쳤다.

그런데 실제 모습은 사진보다 훨씬 더 눈부셨다.

지범이 이 정략결혼 상대를 확인한 건 사진으로 본 것이 전부였다. 직접 마주한 이라는 사진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피부는 희고, 곧게 뻗은 다리는 시선을 붙잡았다.

갸름하고 단정한 얼굴에는 옅은 화장만 더해졌을 뿐인데도, 분위기가 훨씬 선명했다.

옆에 있던 어리고 예쁜 아영마저 빛을 잃은 듯했다.

“와, 재밌네.”

이라의 눈빛은 맑았다. 웃자 이름처럼 입가에 작은 보조개가 패었다.

“내 약혼자가 내 앞에서 실시간으로 바람피우고 있네.”

룸 안이 바로 조용해졌다.

바람이라는 말이 밖으로 나가면 최씨 집안의 체면이 크게 구겨질 일이었다.

지범은 서둘러 소파에서 일어났다. 표정이 차가워졌다.

“언제 왔어?”

“공교롭게도, 다들 내 이야기 시작하기 직전부터.”

이라는 웃으며 손에 든 핸드폰을 살짝 들어 보였다.

“더 공교롭게도, 전부 영상으로 찍었고.”

지범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이라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최지범 씨, 파혼할래? 아니면 공개적으로 망신 당할래?”

지범은 이를 악물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네가 파혼을 하겠다고?”

‘서건오가 우리 집안과 혼사를 맺으려고 얼마나 매달렸는데, 강이라가 파혼을 말한다고?’

“밀당이야?”

지범이 비웃었다.

“나를 협박해서 너만 만나게 하려는 거야?”

지범의 눈이 이라의 예쁜 얼굴과 굴곡진 몸매, 한 손에 잡힐 듯 가는 허리를 훑었다.

저 몸이면 침대 위에서 꽤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못 할 것도 없지.”

지범은 너그럽다는 듯 말했다.

“네가 얌전히 굴고 나를 잘 모시면, 생각은 해 볼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갈색 술이 얼굴 위로 끼얹어졌다.

젖은 술이 지범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강이라!”

지범은 잠시 멍해졌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라는 잔을 뒤집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맑은소리가 났다.

이라는 부드럽게 웃었다.

“내 약혼자가 온 동네에 씨 뿌리는 남자라니, 격이 떨어져서.”

이라는 눈썹을 올리고 손에 든 핸드폰을 흔들었다.

경고의 뜻은 분명했다.

몸을 돌리자, 뒤에서 술잔이 바닥에 내리꽂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룸을 나온 이라는 하이힐 소리를 내며 걸어가면서 문자를 보냈다.

[일 끝났어. 약속한 돈은 보낼게. 다음 작품 여주 자리는 내가 최대한 밀어줄게.]

곧 아영이 보낸 답장이 왔다.

[고마워! 최지범 완전 난리 났어. 나도 빨리 핑계 대고 빠질게.]

이라는 문자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최씨 집안이 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면 이런 소문이 퍼지는 걸 막아야 했다.

지범이 화가 나 미칠 만했다.

이라는 직접 파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지범이 먼저 파혼 이야기를 꺼내게 만들어야 했다.

핸드폰을 넣으려던 때, 시야에 길고 곧은 다리가 들어왔다.

이라는 미처 멈추지 못하고 상대의 가슴팍에 부딪혔다.

급히 뒤로 물러났다.

익숙한 차가운 우드 향기가 코끝으로 밀려와 온몸의 감각을 건드렸다.

이라는 얼어붙었다.

심장이 짧게 멎고, 피가 굳는 듯했다.

방금 전의 당당함은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마에 닿았던 단단한 감촉이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단단하고 매끈한 가슴.

이라가 손끝으로 더듬었던 곳이었다.

그 감촉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검은 정장 바지에 감긴 말도 안 되게 긴 다리도 시야에 들어왔다.

이라는 그 위에 앉아 본 적이 있었다.

한때 이라는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은후의 몸에서 나는 향기를 탐했다.

은후의 몸 어디에든 닿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사랑한다는 감정이 아니라 굶주림에 가까웠다.

그 다리는 잠깐 멈춘 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라의 옆을 지나갔다.

“고 대표님, 혹시 아는 분이세요?”

낯선 남자 목소리가 물었다.

곧 은후의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이라의 귓가를 스쳤다.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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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촌이라 부르지 마   제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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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촌이라 부르지 마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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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촌이라 부르지 마   제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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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촌이라 부르지 마   제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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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촌이라 부르지 마   제26화

    ‘그렇다면 이라는 왜 이 혼담을 받아들였지?’‘무언가를 대가로 걸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혼을 받아들여야 했을까?’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은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서씨 집안 사람들은 이라에게 어떻게 대했지?”“서건오 부부는 2년 전 해외에서 이라 아가씨를 찾아낸 뒤로, 왕래가 아주 잦은 편은 아니었습니다.”“다만 사람들 앞에서는 이라 아가씨에게 꽤 잘해 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정훈은 말을 마치고 덧붙였다.“다만 그 부부가 사업에는 꽤 능숙합니다. 눈치도 빠르고, 윗사람 비위 맞추는 데도 익숙한 편입니다.”은후는 손끝의 담뱃재를 가볍게 털었다. 더는 말하지 않았다.옆 좌석에는 누런 크라프트 서류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은후는 그 봉투를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낮게 물었다.“자료는 보냈어?”“이미 서아영 씨 메일로 보냈습니다.”정훈은 말을 마친 뒤,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보탰다.“대표님, 이 자료가 오히려 서씨 쪽과 최씨 집안의 혼담을 더 밀어붙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약 이라 아가씨가 정말 약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대표님께서 이 일에 손대신 걸 알고 원망하지 않을까요?”은후가 정훈을 흘긋 바라보았다.“걔가 너보다 똑똑해.”정훈은 말문이 막힌 채 고개를 숙였다.은후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어둡게 가라앉은 시선은 손끝 가까이에 놓인 서류봉투에 머물렀다.“그 자료를 어떻게 써야 진흙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이라는 알아.”...오전 10시.이라는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붉은 스포츠카를 세아픽처스 건물 아래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직원은 박동혁 감독이 회의 중이라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이라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접실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하지만 그 ‘잠시’는 꼬박 한 시간이 다 되었다.직원이 다시 응접실로 들어왔을 때도, 이라의 얼굴에는 초조함이나 짜증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예의 바른 미소만 여전히 입가에 걸려 있었다.“박 감독님 회의는

  • 삼촌이라 부르지 마   제25화

    이라는 초연이 조금 전 하던 말을 이어받았다.“그러니까 세아픽처스 쪽에서 우리한테 작가 크레딧을 넘기라는 건가?”어느 업계든 결국은 이름과 돈을 두고 움직인다.세아픽처스 역시 그 두 가지로 이 대본을 쥐고 흔들려는 속셈이었다.역시나 초연이 엄지를 치켜세웠다.“정답. 세아픽처스는 요즘 영상 업계가 어렵다고 하더라. 작품 하나 만들 때마다 손해가 나서 자금 사정이 빠듯하대.”초연은 말을 이었다.“그러다 TC캐피털이 최근 엔터 쪽 투자를 검토 중이라는 얘기를 들은 거지. 박동혁이 그 소리 듣자마자 TC캐피털 대표한테 투자받아 보겠다고 달려든 거고.”초연은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결과는 너도 알잖아. TC캐피털 대표가 박동혁한테 10분도 안 줬대. 말도 끝까지 안 듣고 나갔다더라.”그 말을 듣자 이라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직접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은후가 박동혁을 어떤 눈으로 보았을지.은후는 원래 그랬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일에는 쓸데없는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그 능구렁이 같은 박동혁이 은후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면, 딱히 억울할 일도 아니었다.“왜 웃어?”초연이 문득 고개를 기울이며 이라의 입가를 바라보았다.“아니야.”이라는 얼른 웃음을 거두었다.“계속 말해.”초연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말했다.“박동혁은 투자를 못 받았고, 다른 작가 팀에서 훨씬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대. 대신 우리 대본을 그 팀 이름으로 올리고 싶어 하는 거지.”상대가 원하는 건 분명했다.‘에코’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둘 중 하나였다.돈을 택하든지, 작가 크레딧을 지키든지.둘 다 가지게 해 줄 생각은 없다는 뜻이었다.이라가 듣고 나서 낮게 웃었다.“그 늙은 여우, 계산 하나는 잘하네.”어느 쪽을 택해도 ‘에코’에게 최선은 아니었다.“그쪽이랑 약속은 잡았어?”이라가 물었다.“오전 10시.”초연이 대답했다.“내가 조금 이따 갈 거야.”“나도 같이 갈게.”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대본은 내가 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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