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해 그녀는 한주에서 살길을 찾으려고 현지 사투리까지 일부러 스승을 모셔 배웠다. 상인회 일을 그만두고 그곳의 꽤 큰 이국 물산 상단에서 통역 일자리를 구할 생각도 진지하게 따져 봤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서이현이 불쑥 되돌아왔고, 오래 준비해 온 그 계획은 그대로 접히고 말았다.
이제 두 사람은 완전히 연이 끊긴 사이니, 그녀도 더는 아무것도 꺼릴 필요가 없었다.
"한주는 정말 좋은 곳이지요."
강사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맞장구쳤다.
저녁을 마친 뒤, 윤서린은 강사가 어머니를 위해 대신 내준 진료비와 약값이 떠올라 먼저 갚겠다고 말을 꺼냈다.
그 일로 두 사람은 전령 신표를 서로 주고받아 앞으로 연락하기 편하게 해 두었
이튿날, 서이현은 관아로 돌아왔지만 안색은 여전히 무시무시하게 어두웠다.마침 두 고을 간 상거래가 걸린 큰일을 논의해야 했다. 원래라면 그가 직접 상대 고을로 가야 했지만, 지금 그가 어디를 가겠는가?그래서 그는 기어이 상대를 서신 왕래 속에 붙들어 두었다. 역참을 통해 공문을 급전으로 오가게 하며, 그 자리에서 일을 매듭짓겠다고 고집을 부렸다.두 고을은 멀리 떨어져 있어 서신이 오가는 데 시간이 걸렸다. 몇 차례 협상을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자시 말까지 이어졌다.중간에 쉰 건 겨우 두 각뿐이었다.진정은 분부대로 푸짐한 야식을 미리 마련해 두게 했다.김이 모락모락 나는 해물죽, 정교한 궁중 과자, 따뜻한 인삼차, 막 구워 낸 구운 새고기와 생선까지, 없는 게 없어서 자리에 있는 사람들 입맛을 두루 챙겼다.그런데 하필 윤서린의 안색은 최악이었다.오늘따라 월사가 막 시작되어 아랫배가 욱신욱신 당겼고, 손발은 얼음처럼 차가웠다.그해 눈 오는 날 서우를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 한 탓에 병이 남았다. 월사 때마다 한참을 앓았고, 심하면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그녀는 억지로 뜨거운 죽 두 숟갈을 넘기고는 더는 힘이 없어 숟가락을 살며시 내려놓았다."서린아, 얼굴이 왜 이렇게 하얘? 혹시…… 그거 시작했어?"이수연이 낌새를 채고 바짝 다가와 작게 물었다.윤서린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해 그녀는 한주에서 살길을 찾으려고 현지 사투리까지 일부러 스승을 모셔 배웠다. 상인회 일을 그만두고 그곳의 꽤 큰 이국 물산 상단에서 통역 일자리를 구할 생각도 진지하게 따져 봤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서이현이 불쑥 되돌아왔고, 오래 준비해 온 그 계획은 그대로 접히고 말았다.이제 두 사람은 완전히 연이 끊긴 사이니, 그녀도 더는 아무것도 꺼릴 필요가 없었다."한주는 정말 좋은 곳이지요."강사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맞장구쳤다.저녁을 마친 뒤, 윤서린은 강사가 어머니를 위해 대신 내준 진료비와 약값이 떠올라 먼저 갚겠다고 말을 꺼냈다.그 일로 두 사람은 전령 신표를 서로 주고받아 앞으로 연락하기 편하게 해 두었다.지난번 맞선 자리와 강씨 집안이 혼담을 넣을 뜻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두 사람 다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도 먼저 입에 올리지 않았다.식사 뒤 강사는 직접 마차를 몰아 세 식구를 작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오는 내내 서우는 졸려서 눈을 뜨지 못하고 엄마 품에 기대 꾸벅꾸벅 졸았다.집 앞에 닿자 강사가 먼저 내려, 이미 잠든 서우를 안정적으로 안아 들고 윤서린 모자를 문 앞까지 직접 데려다주었다.윤서린은 웃으며 아이를 받아 안고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했다."오늘 정말 폐를 많이 끼쳤어요, 강 총관님. 조만간 꼭 찾아뵙고 인사드릴게요.""별말씀을요, 윤 낭자."강사는 가볍게
퇴근 무렵, 윤서린은 옛집 이웃이 보낸 급한 서신을 받았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질주하던 마차에 치여 쓰러지셨다는 것이다!윤서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혼이 달아날 만큼 놀라, 마차를 기다릴 새도 없이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의원까지 내처 달렸다.간신히 진료실로 뛰어 들어가자, 어머니가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쪽 발은 두툼한 흰 천으로 싸매져 있었다. 어린 서우는 그 곁에 얌전히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손에 든 그림책을 넘겨 보고 있었다."엄마! 괜찮으세요? 어디를 다치신 거예요?!"그녀는 단숨에 어머니 앞으로 달려가 급히 몸을 숙이고, 상처를 꼼꼼히 살폈다. 목소리마저 떨렸다.진수화는 딸이 이렇게 다급해하는 걸 보자 오히려 웃으며 그녀의 손을 토닥였다."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긴장하지 마. 마차에 살짝 치였을 뿐이야. 발등에 금이 좀 갔는데, 며칠 조리하면 나을 거래.""그런데 말이다, 강 도령 덕을 톡톡히 봤어! 그 사람이 뺑소니치려던 마부를 제때 붙잡지 않았으면, 벌써 흔적도 없이 도망갔을 거야!"진수화는 고마움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다친 사람이 자기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덧붙였다."이따가 꼭 제대로 인사드려라. 바로 옆집 강씨 아주머니네 막내아들이야!""네
한편, 서이현은 답신을 듣자마자 잘생긴 얼굴이 물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 어두워졌다.그는 서신을 움켜쥐었다. 손마디가 하얘졌다. 잠시 뒤, 마부에게 차갑게 분부했다."황조루로 가라."마차는 쏜살같이 달려 곧 황조루 앞에 멈췄다.서이현은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 호화롭게 꾸민 별실의 문을 밀었다.그 안에서는 심희연, 고신, 남성 세 사람이 요염한 여인 하나와 탁자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주령을 하며 한창 흥겨운 참이었다."넌 먼저 나가 있어."심희연이 그 여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 질문은 아무 예고도 없이 날아왔다.윤서린은 멍해졌다가 곧 웃음을 터뜨렸다."강 총관은 연봉이 천 냥인 데다 인물도 훤칠한데, 어떤 여자가 안 좋아하겠어요?"농담처럼 들렸지만, 도발의 기색은 분명했다.서이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본관이 꼼꼼히 비교해 봤다."그가 몹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그자는 본관보다 키도 작고, 인물도 못하고, 권세는 더더욱 못하다."윤서린: “……”이 사람은 대체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 걸까?그녀는 속으로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였다.물론 당신처럼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요.얼굴에는 오히려 더 환한 웃음을 지었다."그야 당연하지요. 서 사또는 지금 강남에서 권세가 으뜸인 명문 귀공자시니, 강 총관이 어찌 감히 견줄 수 있겠어요."더없이 가식적인 아첨이었다.서이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윤 수행원, 눈을 본관 쪽으로 돌려 보는 게 어떠냐."윤서린은 멈칫하더니 이내 실소했다."사또도 참, 소녀가 어찌 감히요.""해 보지도 않고 감히 못 하는지 어찌 아느냐?"서이현이 몸을 일으켜 한
서 사또가 왜 또 내려왔지?설마 천하의 관리란 관리는 다들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게 취미인가?"예, 서 사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소소가가 황급히 대답하고는 몸을 돌려 다방으로 달려갔다.서이현이 의미심장하게 윤서린을 훑어보았다.윤서린은 영문도 모른 채 마주 노려보았다.뭘 봐?또 시비 걸 거리를 찾는 거야?"본관이 듣기로, 이달 말에 상인회가 나들이를 간다던데?"서이현이 불쑥 입을 열었다."예, 서 사또."윤서린이 사실대로 대답했다."본관도 간다."세 시녀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현령 나리가 직접 상인회 나들이에 간다고?그러면 누가 마음 편히 놀 수 있겠는가. 다들 메추라기처럼 잔뜩 움츠러들 텐데.서이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본관의 명을 전해라. 급한 공무가 없는 한, 누구도 휴가를 낼 수 없다."말을 마친 그의 입꼬리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차가운 웃음이 걸렸다. 그는 걸음을 옮겨 위층으로 올라갔다.얼마 뒤, 소소가가 우려낸 차를 들고 서재에 들어갔다.서이현은 찻잔을 받아 들고도 곧바로 마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