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성문 안쪽 빗장을 뽑은 것은 수레꾼들이었다.밤새 서쪽 길을 달려온 공동 소금길 수레가 문 앞에 늘어서 있었다. 설로상단 깃발은 없었다. 흑마장, 약재 창고, 길 식솔 모임의 작은 표식들이 수레마다 따로 걸렸다.연도하가 맨 앞 수레에서 내렸다. 왼손에는 장부, 불편한 오른손에는 고삐 한 줄만 들려 있었다. 하란주가 검은 말 위에서 그를 내려다봤다.“저 사람에게 지휘를 맡긴 적 없습니다.”문지기가 물었다.“그럼 누가 수레를 움직입니까?”“각 수레 주인이요.”연도하는 겨울 궁까지 오는 길과 황실군 빈틈을 설명했을 뿐, 어느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하지 않았다. 수레꾼들은 네 성문 앞에서 스스로 멈췄다.황실 장수가 성 밖에서 소리쳤다.“군량을 들이면 반역에 가담한 것으로 친다!”첫 수레의 늙은 마부가 소금자루를 열었다.“팔러 왔소.”“누구 허락으로?”“내 물건 파는 데 누구 허락이 필요하오?”수레에는 군량만 있지 않았다. 왕가 명부 사본과 황실 열여덟 이름이 소금자루 사이에 들어 있었다. 한 대를 붙잡으면 다른 문으로 세 대가 움직였다.혈비가 연도하를 왕좌 앞으로 부르려 했다. 그는 가지 않았다.“길 식솔들과 계산부터 끝내야 하오.”“왕명이면?”“그 말로 부르면 문밖에 있겠소.”혈비는 왕명을 거두고 장터 빈 상으로 내려왔다. 왕과 전 상단주가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장부를 들여다봤다.연도하는 성 안 창고 열쇠를 요구하지 않았다. 수레 주인들이 어느 집에 얼마를 내릴지 정하게 했다. 황실군에 가족이 징집된 사람에게도 곡식을 팔았다. 적군 가족이라는 까닭으로 굶기면 열린 성의 뜻이 첫날부터 거짓이 될 터였다.운설은 장터에서 그를 만났다. 연도하의 얼굴은 사흘 잠을 못 잔 사람처럼 거칠었다.“왔네요.”“내 길이 여기까지 닿았소.”“당신 길이요?”“벌써 틀렸군. 내가 함께 낸 길.”그가 웃었다. 오래전이면 운설이 웃어 준 한 번을 마음의 빚으로 적었을 사람이었다. 이제는 웃음이 지나가도록 두었다.“그대에게 남겨 달라던 한 치를 기
닫힌 문 너머에서 언니의 목소리가 밤새 갈라졌다.운설은 그 문밖에서 돌아섰다.문 안에서는 대신들과 우물 유족이 밤새 다투고 있었다. 자신이 들어가 어느 한쪽 손을 잡으면 혈비가 그 온기를 답으로 삼을 것 같았다.선우현은 빈 겨울 처소에서 창문을 막고 있었다. 찬바람이 종이를 들썩일 때마다 못 대신 부러진 화살대를 끼웠다.“언니한테 안 갔어요.”“보았다.”“잘한 건지 모르겠어요.”“나도 모른다.”운설은 그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를 안았다. 선우현의 손이 창틀에서 멎었다.“도망가고 싶어요.”“나도 그렇다.”“같이 갈까요?”선우현은 뒤돌아 그녀 얼굴을 보았다.“지금 나가면 새벽 전에 산길에 닿을 수 있어.”운설은 그가 말뿐인 위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원하면 함께 갈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오래 망설였다.“단이 있는 집까지?”“그보다 멀리도.”“그리고 언니 소식은 평생 묻지 않고?”“네가 할 수 있다면.”운설이 이마를 그의 가슴에 댔다.“못 해요.”“나도 네가 못 할 줄 알았다.”“그런데 왜 끝까지 물어봐요?”“네가 남는 일이 내 명령이 되지 않게.”“당신이 가자고 했으면 잠깐은 원망했을 거예요.”“평생은?”“아마 따라가 놓고 매년 겨울마다 언니 탓을 했겠죠.”“그러면 나는 그 탓까지 들었을 거다.”“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 마요.”“아무렇지 않지 않아.”선우현은 운설의 손을 자기 목에 댔다. 긴장할 때마다 굳는 맥이 손가락 아래에서 뛰었다. 그 역시 도망치자는 대답을 바라고 있었다.운설은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그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내일 성문이 닫히거나 황실 화살이 날아들 수 있었다. 마지막 밤처럼 굴지 않기로 했지만, 살아 있는 지금을 아껴 두고 싶지도 않았다.“오늘도 물어봐요.”“나와 함께 있겠느냐.”“오늘은 끝까지.”운설이 입맞춤으로 답했다. 선우현은 한 번 받아들인 뒤 그녀 뒷목을 감싸 더 깊이 끌어당겼다. 추위에 굳은 입술이 금세 뜨거워졌다.“하아…….”숨을 빼앗
망치는 내려오지 않았다.혈비가 왕인을 깨려는 순간 성 밖에서 흰 기가 올라왔다. 황실 장수가 직접 이야기하겠다는 표식이었다.“시간을 끄는 겁니다.” 사백이 말했다.“우리도 시간이 필요해.” 혈비가 망치를 내려놓았다. “듣고 난 뒤 깨도 늦지 않다.”회담은 열린 동문 아래에서 열렸다. 어느 쪽 천막도 치지 않았다. 황실 장수는 갑옷을 입고 왔고, 혈비는 왕관을 썼다. 그 사이 상에는 인장을 찍지 않은 문서가 놓였다.조건은 단순했다. 왕가 명부 원본, 아홉째 피리, 죄인 고윤을 황실에 넘긴다. 야란과 하진은 삭월 환자로 기록해 겨울 궁에 두되 황실 의원의 살핌을 받는다. 그 대가로 황실은 혈비를 삭월왕으로 인정하고 군사를 물린다.문서 아래 작은 글씨에는 다른 조건이 숨어 있었다. 삭월왕은 해마다 수도에 머무는 아이 셋을 보내야 했다. 황실은 볼모라 쓰지 않고 배움을 위한 동행이라 적었다.혈비가 그 줄을 손톱으로 긁었다.“이 아이들도 보호할 셈인가?”“왕국 사이 믿음을 세우는 관례요.”“믿음을 아이 몸에 세우지 마라.”장수는 줄을 지울 수 있다고 했다. 너무 쉽게 물러나는 태도 때문에 다른 숨은 줄이 더 있을 듯했다.“사람 둘까지 문서에 넣었군.” 야란이 말했다.“보호를 명시한 것이오.”“제가 싫다고 하면?”장수는 답하지 않았다.하진은 야란 손바닥에 오래 글을 썼다.“황실 의원을 만나지 않겠습니다. 겨울 궁에 계속 머물지도 제가 정하지 않았습니다.”야란이 그대로 읽었다. 황실 장수는 말을 못 하는 환자의 뜻을 누가 증명하느냐고 물었다. 성문을 연 궁녀 둘과 운설, 소맥의 아비가 각자 같은 손짓을 보았다고 나섰다.“증인이 너무 많으면 거짓을 맞추기도 쉽소.” 장수가 말했다.“한 사람만 믿을 때보다 죽이기 어렵기도 하지.” 흑요가 답했다.고윤이 쇠줄을 끌고 앞으로 나왔다.“나를 데려가면 백도인 기록을 어디에 숨겼는지 말하게 할 생각이겠지.”“죄인은 입을 다물라.”“황실은 내가 죽으면 모든 죄를 내 이름으로 닫을 수 있다.”
“네 주인은 누구냐?”혈비가 묻자 사백은 무릎을 편 채 일어났다.“그 물음을 처음 받았을 때는 전하라고 답했습니다.”“지금은?”사백은 왕좌 뒤 창문을 열었다. 성문 앞에서 장부를 베끼는 사람, 하진의 들것을 옮기는 궁녀, 황실군에 갇힌 밭을 보러 성 밖으로 나가려는 농부들이 보였다.“제가 본 사람들입니다.”“백성이라는 말로 나를 버리는 것이냐?”“전하도 그 사람들 가운데 서시면 지키겠습니다.”혈비는 사백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했다. 굶어 쓰러진 소년이 왕가 마구간에서 말을 훔치다 붙잡혔고, 어린 공주는 그의 활 쏘는 손을 보고 살려 달라 했다. 사백은 그 은혜를 목숨으로 갚겠다고 맹세했다.“네 활도 내가 준 것이다.”“맞습니다.”사백은 화살통과 팔 보호대까지 풀어 왕좌 아래 놓았다.“그래서 제 눈까지 전하 것이라 여겼습니다.”“지금 돌려주는 것이냐?”“제 눈만 돌려받겠습니다. 활은 필요하면 백성 앞에서 다시 빌리겠습니다.”혈비는 배신당한 듯 아팠다. 그 아픔을 충성의 증거로 사백에게 돌려줄 수는 없었다.대신들이 칼을 뽑았다. 왕에게 조건을 건 호위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야 한다고 했다. 사백은 피하지 않았다.혈비는 왕패를 꺼내지 않고 대신과 사백 사이에 섰다.“내 목을 지키겠다고 내 눈앞에서 사람을 베지 마라.”“왕법이 무너집니다.”“이미 우물 아래서 무너졌다. 우리가 못 본 체했을 뿐.”대신은 선왕의 법전을 가져왔다. 호위가 왕명을 거스르면 삼족을 묻는다는 줄을 읽었다. 혈비는 법전을 사백에게 건넸다.“찢고 싶으냐?”“아닙니다. 이 법으로 죽은 사람 이름부터 붙이고 싶습니다.”사백은 빈 여백에 첫 이름을 썼다. 왕가 우물을 보았다는 이유로 사라진 빨래꾼의 딸이었다. 성문을 연 젊은 궁녀가 자기 할머니 이름을 둘째로 적었다. 법전은 베이는 대신 죽은 사람들로 채워졌다.대신이 법전을 빼앗아 찢으려 했다. 소맥의 아비가 팔을 붙들었고 궁녀들이 종이를 나눠 가졌다. 대신은 왕을 향해 구원을 청했다.“전하, 신은 왕법
황실의 첫 요구는 성문을 닫으라는 것이었다.열린 문 안으로 군사가 들어오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겨울 궁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 장부를 퍼뜨리지 못하게 하라는 명이었다.혈비의 대신들은 그 명을 따르자고 했다.“사흘만 문을 닫고 왕가 명부를 태우시면 됩니다. 황실은 증거를 얻지 못하고, 전하께서는 삭월을 지킬 수 있습니다.”왕좌 아래 화로가 놓였다. 불길은 작았지만 장부 한 권을 삼키기에는 충분했다. 대신은 원본만 타면 사본은 역적이 꾸민 거짓이라 몰아붙일 수 있다고 했다.“성 밖 사람들은?” 혈비가 물었다.“왕국이 살아남으면 보호할 수 있습니다.”“지금 문밖에 둔 뒤?”“큰일에는 희생이 따릅니다.”대신들은 사본을 쥔 사람도 가려내자고 했다. 우물 유족에게 은을 주고 침묵을 사며, 끝까지 거절하면 황실 첩자로 몰아 성 밖에 내놓자는 말까지 나왔다.하진은 들것에서 그 말을 들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야란 손바닥에 썼다.“우물도 처음에는 살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야란이 대신 읽자 왕좌 아래가 조용해졌다. 나라를 살리자는 말과 사람을 살리자는 옛말이 같은 입 모양을 하고 있었다.혈비는 화로를 발로 밀었다. 불씨가 붉은 방석 앞에 쏟아졌고 대신들이 달려들어 껐다. 왕좌를 지키는 사람들은 명부보다 먼저 비단에 붙은 불을 걱정했다.혈비는 그 말을 너무 많이 썼다. 왕좌를 되찾는 동안, 무한을 치는 동안, 운설을 살린다며 다른 사람을 미끼로 둘 때마다 큰일을 먼저 세웠다.소맥의 아비가 명부를 가슴에 품고 왕좌 앞에 섰다.“태우려면 내 팔도 함께 자르시오.”대신들이 그를 끌어내려 했다. 성문을 연 궁녀 둘과 빨래꾼이 앞을 막았다. 궁 안 병사들은 어느 명을 따라야 할지 창을 들고 서 있었다.황실 군에서는 두 번째 화살을 보냈다. 화살대에는 해 뜨기 전 문을 닫지 않으면 반역으로 친다는 종이가 묶여 있었다.사백이 성루에 올랐다. 그는 화살 하나로 황실 기수의 목을 꿰뚫을 수 있었다. 활시위를 당기자 성 아래 삭월 사람들이 환호했다. 누군가
하진을 우물 밖으로 옮기는 데 하루가 걸렸다.아홉 바늘을 한꺼번에 뽑지 않았다. 운설이 하나를 느슨하게 할 때마다 하진이 손가락으로 계속할지 멈출지 답했다. 여덟 번째는 스스로 빠졌고, 마지막 바늘은 하진이 야란 손을 잡은 뒤에야 놓였다.몸이 지하 약방 바닥에 눕자 긴 세월이 한꺼번에 오지 않았다. 달무리 부인이 바꾼 열두 숨의 처방이 야란뿐 아니라 아래 물길에도 닿아 있었다. 하진의 맥은 약했지만 자기 한 줄로 뛰었다.첫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야란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자기 이름을 썼다. 야란이 웃으며 울었다.하진은 다음으로 혈비를 가리켰다. 사람들이 긴장했지만 그녀가 쓴 것은 어린 이름 효월의 첫 획뿐이었다. 나머지는 손에 힘이 없어 이어지지 않았다.혈비가 가까이 갈지 물었다. 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혈비는 두 걸음 밖에 앉아 미완의 글자를 바라봤다. 용서도 저주도 아직 나오지 않은 거리를 그대로 지켰다.혈비는 두 사람 곁에 끼지 않았다. 월계단 위로 올라가 왕가 명부를 백성 앞에 펼쳤다.아홉 이름과 몸에 댄 약, 왕가 의원, 명을 내린 사람까지 남아 있었다. 불탄 장은 빨래꾼과 부엌데기, 수레를 몰았던 노인들의 기억으로 채웠다. 기억이 다른 곳은 하나로 고치지 않고 둘 다 적었다.소맥의 아비가 아들 줄을 직접 읽었다. 사흘 생존 뒤 아래 우물로 옮김. 그는 아들이 사흘 뒤 죽은 줄로 알았다. 우물에는 시신도 유품도 없었다.“어디로 옮겼소?”고윤이 왕가 약방 지도를 살폈다.“북쪽 배수로 끝에 뼈를 씻는 방이 있다.”사내가 고윤 멱살을 잡았다.“네가 했나?”“그때 나는 없었다.”“그럼 왜 네가 말해!”“같은 방을 황실에 만들었으니까.”고윤은 맞은 뺨을 돌리지 않았다. 자기가 직접 저지르지 않은 삭월의 죄와, 그것을 베껴 더 키운 자기 죄를 한 줄로 섞지도 않았다.혈비는 왕가 신료들에게 명부를 베껴 장터와 성문, 우물마다 붙이라고 했다. 신료들은 왕가가 먼저 사람을 살리려 했다는 설명을 함께 쓰자고 청했다.“그 말은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