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다섯 번째 방울 끝에 말발굽이 박자를 보탰다.북문 쪽 먼지가 갈라지고 말 세 필이 장터로 들어왔다. 선두의 연도하는 오른손을 가슴에 묶은 채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있었다. 뒤 수레에는 검은 천을 덮은 들것과 상단 의원 둘이 실려 있었다.선우현이 우물가에서 몸을 일으켰다.“이번에는 혼인 소문도 없이 오는군.”“환영치고는 낡았소.”연도하는 말에서 내리다 오른발이 등자에 걸렸다. 예전 같으면 몸을 가볍게 틀었을 사람이 어깨부터 땅으로 기울었다. 선우현이 팔을 내밀었고, 연도하는 잠깐 보다가 그 손을 잡았다.“다리는 멀쩡하오.”“손을 받았지 다리를 받았소?”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 들것 위 천이 안쪽에서 젖어 들고 있었다.운설이 천을 걷었다.“마르간.”삭월 궁의 창고지기는 눈을 감은 채 이를 악물고 있었다. 셈이 하나 어긋나면 밤을 새우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계속 무언가를 세었다. 목에서 가슴까지 검은 물줄기가 번졌고, 침통에 있어야 할 달 걸쇠가 살 아래에서 불룩하게 움직였다.“어디서 찾았어요?”“북쪽 약재창고. 물목을 맞추다 갑자기 쓰러졌소. 깨어나서는 가 본 적 없는 남쪽 수뢰의 기둥 수를 말했지.”“여기까지 며칠 걸렸어요?”“말 둘을 바꿔 타고 나흘. 셋째 말은 지금 나보다 성질이 나쁘오.”“손은요?”“오는 동안 붙어 있었소.”운설이 대꾸 없이 그의 묶인 오른손을 한 번 보았다. 새끼손가락은 여전히 아래로 처져 있었고 약지 끝은 고삐에 쓸려 피가 맺혔다. 연도하는 치료를 재촉하지 않았다. 들것의 숨이 먼저라는 것을 알았다.선우현이 수레바퀴에 묻은 흰 진흙을 긁었다.“곧장 온 길은 아니군.”“두 번 쫓겼소. 한 번은 황실 관졸, 한 번은 얼굴을 가린 삭월 무사들이었지. 서로 싸우느라 우리를 놓쳤고.”명주가 감은 눈을 떴다.“언니가 사람을 보냈군요.”명주가 혈비를 언니라 부른 것인지, 안의 다른 목소리가 누구를 부른 것인지 아무도 묻지 못했다.연도하가 왼손으로 봉한 꾸러미를 내놓았다. 안에는 반쯤 검게 변한 쇠고리
두레박 줄을 잡은 사내 셋이 동시에 손을 놓았다.우물에서 올라온 물이 햇빛 아래서 검었다. 먹물을 푼 듯 흐린 빛이 아니었다. 바닥이 보이도록 맑은데도 물을 들여다본 사람 얼굴만 검게 비쳤다.“마시지 마세요!”운설이 외쳤다.이미 늦은 집이 있었다. 새벽에 물을 길어 밥을 지은 아낙은 죽은 언니가 다녀갔다고 했고, 국밥집 주인은 자기가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수뢰의 긴 복도를 그렸다. 행상 둘은 서로의 꿈을 보았다며 상대 어머니 이름을 불렀다.왕철은 우물마다 흰 천을 묶고 빈 항아리를 장터에 모았다. 서문 마부들은 남쪽 개울에서 물을 실어 왔고, 장꾼들은 말에게 먹일 물부터 사람 그릇으로 옮겼다. 어제 명주를 내주자던 집도 자기 우물만 감추지는 못했다.복례는 이름 한 글자를 잊은 채 떡 찌는 물을 전부 내놓았다.“오늘 하루 떡 안 먹는다고 죽나. 물 못 먹으면 죽지.”황실 관졸들이 북쪽 우물을 막고 있었으나 남쪽 개울까지 손댈 명은 없었다. 사람들은 공문에 쓰이지 않은 좁은 길로 물을 날랐다.잠들었던 여섯은 모두 눈을 떴다. 그러나 복례만 다른 기억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길수는 약재를 저울질하는 손놀림을 보였고, 서문 마부는 없는 수문 열쇠를 허리춤에서 찾았다. 몸은 집으로 돌아왔으나 낯선 날들이 안쪽에 붙어 있었다.황실 사자는 우물 앞 붉은 끈을 가리켰다.“어제 병인을 내주었다면 이 물을 마실 일도 없었소.”길수의 아우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선우현은 사자를 감싸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 갈라진 지팡이를 세웠다.“물을 막은 손과 물을 검게 만든 손이 같은지 아직 모르오.”“저자들 편을 들겠다는 거요?”“한데 묶으면 둘 다 놓치오.”선우현은 사자에게서 등을 돌려 수레가 오갈 틈을 만들었다. 갈라진 지팡이로 진흙 바닥에 세 길을 그었다. 깨끗한 물이 들어오는 길, 검은 물을 버릴 길, 쓰러진 사람을 약방으로 옮길 길이었다.검신대라면 한 줄로 움직였을 사람들이 저마다 할 수 있는 곳에 섰다. 길수의 아우는 포승을 잡았고 윤석의 아내는
“황련 세 돈, 백작약 두 돈.”물그릇 속 목소리가 약재를 불렀다.명주는 잠들어 있었고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수면에 작은 글자 같은 주름이 생겼다. 운설은 붓을 잡지 않고 왕철에게 들리는 대로 쓰게 했다.“당귀는?”“넣지 마. 피를 끌어올리면 빌린 기억도 함께 붙는다.”처방을 말하는 이는 약을 아는 사람이었다. 황련의 쓴 기운으로 남의 물길을 누르고 백작약으로 제 몸의 피를 붙드는 법까지 짚었다.운설은 그대로 달이지 않았다. 황련을 두 돈 반과 세 돈으로 나누고 물의 양도 세 그릇으로 달리했다. 잠든 길수의 입술에 한 방울씩만 묻혀 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았다.세 돈짜리 약이 닿자 서련이라 말하던 길수의 혀가 굳었다. 두 돈 반에서는 자기 아우 이름을 불렀다.“세 돈이라 했잖아.”물그릇 속 서련이 성을 냈다.“당신 몸에는 세 돈이 맞았겠지요. 길수 몸에는 많아요.”“약을 바꿀 셈이냐?”“받는 사람에 맞출 겁니다. 당신 처방이었다는 줄은 지우지 않고요.”물결이 한동안 거칠게 흔들렸다. 이윽고 서련이 백작약을 반 돈 줄이라고 했다. 자기 처방을 빼앗겼다고 여기지 않으려는 듯, 바뀐 양을 세 번 되뇌었다.운설이 물었다.“복례의 잃은 글자를 돌릴 수 있어요?”“내가 가져간 것이 아니다.”“그럼 누구에게 있어요?”“강이 지나가며 빈 데를 바꿔 놓았다. 돌아올 길은 안다.”마지막 약재는 말하지 않았다. 물그릇 가장자리에 붉은 물 한 방울이 맺혔다.명주가 눈을 떴다. 잠든 동안 한 말을 듣지 못했으나 붉어진 물을 보자 자기 손목을 내밀었다.“제 피가 필요합니까?”“서련에게 먼저 확인할게요.”“제 몸에 든 사람이 제 피를 달라고 했잖아요.”“그 사람 처방이어도 피는 당신 것이니까요.”명주는 한참 손목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운설은 손가락 끝만 찔러 한 방울을 받았다. 물에 닿은 피가 퍼지지 않고 가느다란 붉은 길을 만들었다.복례는 그 약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다.“남의 피를 먹고 이름을 찾느니 그
“누가 손을 들었는지 세지 마세요.”느티나무 객주 한가운데 선 고명주가 먼저 말했다.밤을 새울 등잔은 열둘이었고 모인 사람은 마흔을 넘었다. 우물을 쓰는 아낙, 북쪽 상로로 먹고사는 장꾼, 잠든 여섯의 가족, 약방에서 외상 약을 받아 온 사람들까지 벽과 문턱을 메웠다.길수의 아우가 주먹으로 상을 쳤다.“그럼 어쩌자는 거요? 한 사람 때문에 고을이 굶게 생겼는데.”“제가 물건이면 손을 세어 넘기면 됩니다. 사람이면 제가 말할 차례도 있어야 하고요.”“우리 형 몸은 네가 쓰고 있잖아.”명주의 오른발이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왼발은 제자리에 남아 몸이 비틀렸다. 운설이 일어서려 했으나 명주가 손바닥을 펴 보이며 스스로 중심을 잡았다.“그래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여섯 사람이 제 이름을 버리고 자기 이름으로 집에 갈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그 뒤에는?”“다시 제가 고르겠습니다.”사람들 사이에서 욕과 탄식이 함께 나왔다. 누구는 황실에 넘겨야 우물을 연다고 했고, 누구는 고윤이 딸까지 그릇으로 쓴 자라면 공문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복례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부축해 일어섰다.“우리 어머니가 잃은 글자부터 돌려줘요. 그러면 나는 당신 말을 한 번 더 듣겠소.”명주는 고개를 숙였다.“제가 할 수 있다면.”“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 때문에 우리가 버티라고?”“모른다고 말하는 의원도 여기 있잖아요.”시선이 운설에게 쏠렸다.운설은 명주를 살리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잠든 여섯이 온전히 돌아온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제가 아는 것은 넷의 맥이 한 몸에서 싸운다는 것뿐이에요. 명주를 보내면 그 싸움이 끝나는지, 다른 사람 몸으로 옮겨 가는지도 모릅니다.”“그럼 의원님은 어쩌자는 겁니까?”“해 뜰 때마다 잃은 것과 돌아온 것을 공개하겠습니다. 명주는 혼자 두지 않고, 지키는 사람은 가족과 장꾼이 함께 고르세요. 떠나겠다고 하면 붙잡지 않되 황실 사람과 단둘이 보내지도 않겠습니다.”길수의 아우가 선우현을 가리켰다.“저 사람이 지키면 결
북문 종이 세 번 울리자 우물 두레박부터 사라졌다.관졸들이 줄을 풀어 수레에 싣고, 우물 가장자리에 붉은 끈을 둘렀다. 물을 막겠다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아낙들은 빈 동이를 든 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황실 사자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약방 앞에 이르렀다. 말 열두 필과 검은 가마 하나, 봉한 공문을 받든 아전 둘이 뒤따랐다.붙잡아 둔 추적자는 그를 보자 무릎을 꿇었다. 혀 아래 용문이 드러난 사내를 보고도 사자는 놀라지 않았다.“수고했다.”“저자가 장터에서 칼을 뽑았소.”선우현이 말하자 사자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달아난 병인을 잡는 중 생긴 일이니 관가에서 다스리겠소.”“누구 관가요?”사자의 입가가 굳었다. 선우현은 길을 막지 않았다. 약방 문 한쪽에 기대어 지팡이의 갈라진 끝만 손으로 쓸었다.아전이 공문을 펼쳤다.“북로감찰사 고윤 대감의 명이다. 관에 매인 병인 고명주는 황실의 약전과 수정관을 훔쳐 달아났으며, 그 몸에 든 물길은 북방 토벌에서 얻은 전리다. 이를 감춘 자는 같은 죄로 다스린다.”문 앞 사람들의 시선이 약재방으로 쏠렸다.명주는 스스로 걸어 나왔다. 포승은 손에 들었으나 몸에 감지 않았다. 맨발 상처에는 운설이 감은 흰 천이 둘러져 있었다.사자가 가마 문을 열었다.“아씨, 돌아가시지요. 대감께서 기다리십니다.”“제가 훔친 약전의 이름을 말해 보세요.”“그것은 수뢰에 돌아가서 밝히시면 됩니다.”“수정관은 몇 개였지요?”사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명주의 입에서 짧은 웃음이 새었다가 곧 다른 사람의 기침으로 바뀌었다.운설이 공문을 받아 들었다. 종이 아래쪽에는 백로진이 명주를 내주지 않을 경우 우물 셋과 북쪽 상로를 봉한다는 줄이 있었다.길수가 욕을 삼켰다. 상로가 막히면 짚신을 팔 수 없었다. 약재를 실어 오는 수레도, 곡식을 나르는 말도 같은 길을 썼다.“이 여인이 관에 매인 까닭은 무엇입니까?”운설이 물었다.“황실 약재와 의원의 손으로 목숨을 이었기 때문이오.”“약값을 갚지 못해서요?”
장터의 소리가 세 번 비었다.첫 번째는 생선 장수가 칼을 씻으러 갔을 때였다. 두 번째는 북문 수레가 약방 앞에서 바퀴를 고쳐 끼울 때였고, 세 번째는 국밥집 솥뚜껑이 닫힌 뒤였다.선우현은 빈 소리 사이에 남은 발을 들었다.짐꾼 차림 사내 하나가 같은 자리에서 짚신만 비볐다. 엿장수는 아이들이 달려들어도 가위질을 하지 않았다. 약방 맞은편 베 장수는 오전 내내 천 한 필을 펼친 채 손님 얼굴보다 문을 보았다.“다섯이오.”선우현이 왕철에게 말했다.“무엇이 다섯이오?”“우리를 보지 않는 척하는 자들.”예전 검신대가 집 한 채를 에워쌀 때 쓰던 자리였다. 수레로 달아날 길을 막고, 장사치로 출입을 세며, 가장 늦게 사라지는 행인이 문을 확인했다. 검신이라 불리던 때 선우현이 직접 짠 포위였다.그때는 집 안 사람을 지킨 적이 없었다. 세 방향을 막고 한 방향만 비워 두면 쫓기는 자는 스스로 열린 길을 골랐다. 그 끝에 활잡이를 숨겨 두는 식이었다.선우현은 북쪽 골목을 보았다. 다섯 중 누구도 그쪽에 서지 않았다.“열린 길 끝에도 둘이 더 있을 거요.”“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압니까?”“내가 그렇게 했으니까.”왕철의 얼굴이 굳었다. 선우현은 지난 솜씨를 자랑하지 않았다. 자기가 만든 나쁜 길을 알아보는 사람처럼 장터 바닥만 훑었다.운설은 약재방의 명주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포승을 푼 뒤에도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 두었다. 손목에는 선우현과 같은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사람들을 돌려보낼까요?”“그러면 저들이 원하는 대로 길이 비오.”선우현은 장터 사람을 몰아내지 않았다. 오히려 왕철에게 오늘 외상 약값을 받지 말라고 했다. 복례의 며느리에게 떡판을 약방 앞에 펴게 하고, 서문 마부에게는 바퀴 빠진 수레를 골목 한가운데 세우게 했다.“싸움판을 만들 셈이오?”왕철이 물었다.“장사판을 지킬 셈이오.”사람이 늘자 숨어 있던 다섯은 서로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선우현은 장꾼들에게 빈 놋그릇을 나눠 주고 수레 주위에서 차례로 부딪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