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
종이 네 번째로 울렸을 때, 엘리시아는 자신이 죽을 시간을 정확히 알았다.
처형대 아래로 모인 사람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누군가는 신성모독자를 보러 왔고,
누군가는 황제의 연인을 끌어내린 여자를 확인하러 왔으며,
대부분은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훗날 부정할 수 있도록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비가 내린 뒤라 돌바닥은 검게 젖어 있었다.
붉은 천을 덮은 처형대 아래로 빗물이 모여들었다가 계단을 타고 흘렀다.
엘리시아는 맨발이었다.
발목을 감싼 쇠고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축축한 돌을 긁었다.
누군가 그녀의 등을 밀었다.
엘리시아는 넘어지지 않았다.
처형을 집행하는 자들 앞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세우는 손이 몸에 닿을 테고,
지금은 누구의 손도 견딜 수 없었다.
높은 단상 위에는 제국의 문장이 걸려 있었다.
황금 독수리 아래, 검은 제복을 입은 칼릭스가 앉아 있었다.
거리가 멀어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이쪽을 보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한때는 어둠 속에서도 알아보았던 금빛 눈이었다.
엘리시아가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찾아와 창문을 닫아주고,
약 냄새가 밴 손가락에 입을 맞추던 남자의 눈이었다.
이제 그 시선은 증거를 확인하는 황제의 것이었다.
엘리시아는 마지막으로 그를 불러볼 생각이었다.
변명도, 애원도 아니었다.
자신을 한 번만 믿어달라는 말조차 이미 여러 차례 삼켜버렸다.
그저 이름을 부르면,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정말 저 자리에 앉아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술이 열리기 전에 붉은 천이 얼굴 위로 내려왔다.
축축한 천 냄새가 코와 입을 막았다. 세계가 어두워졌고,
종소리가 천 너머에서 둔하게 번졌다.
왼쪽 쇄골 아래의 성흔이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워졌다.
“집행하라.”
칼릭스의 목소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그렇게 믿어야 죽는 순간까지 그를 미워할 수 있을 것 같았는지도 몰랐다.
목덜미에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엘리시아는 붉은 천 아래에서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떠오른 것은 칼릭스의 얼굴이 아니었다.
잠기지 않은 침실 문과, 그 문을 닫으며 내일 다시 오겠다고 웃던 젊은 남자였다.
날이 떨어졌다.
엘리시아는 숨을 들이켜며 상체를 일으켰다.
목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녀는 두 손으로 목을 감싸 쥐었다가 손바닥 아래에서 뛰는 맥박을 느끼고 그대로 굳었다.
베인 상처도 피도 없었다. 손끝에 닿는 것은 식은땀에 젖은 피부와 가늘게 떨리는 숨뿐이었다.
침대 위로 쏟아진 햇빛이 눈을 찔렀다.
붉은 천은 없었다.
머리맡에는 물이 담긴 유리병과 흰 백합이 놓여 있었다.
창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늦여름의 바람이 얇은 커튼을 안쪽으로 부풀렸다.
익숙한 금실 자수가 햇빛을 받을 때마다 엘리시아의 시야를 잘게 갈랐다.
그녀는 이 방을 알고 있었다.
황궁 동쪽 별궁, 결속식을 준비하는 동안 성녀에게 제공됐던 침실이었다.
아직 침대 머리맡에 황실 문장이 새겨지기 전이고,
창가의 작은 책상도 새것처럼 깨끗하던 때였다.
엘리시아는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휘청거렸다.
처형대의 쇠고리가 아직 발목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녀는 침대 기둥을 붙들지 않고 손을 거두었다.
대신 왼손 엄지로 손목 안쪽을 눌렀다.
하나.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둘.
커튼이 흔들리는 방향을 보았다.
셋.
목에 상처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넷.
마지막 숨을 내쉰 뒤에야 발바닥을 바닥에 붙였다.
거울은 침대 맞은편에 있었다.
엘리시아는 그 앞까지 걸어가면서도 자신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거울 가장자리의 금박과 그 아래 놓인 은제 빗,
전날 벗어놓은 듯 가지런한 귀걸이를 먼저 확인했다.
마침내 시선을 들었을 때, 거울 속 여자는 죽기 직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폐병원 지하에서 수십 개의 생체 반응이 동시에 켜졌다는 보고가 올라온 뒤,로스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병원 주변에 사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이미 그 근처에 사람이 없는지 다시 확인하는 일이었다.전날부터 폐병원은 회각충과 수면이끼 때문에 접근금지 상태였지만,장비를 회수하거나 약초를 찾으려고 몰래 들어간 사람이 있을 가능성까지 없다고단정할 수는 없었다. 베른하르트는 최근 사흘간의 출입기록과 북서쪽 순찰보고를 한꺼번에 대조했고, 하겐은 성문 경비대에 사람 이름을 캐묻는 대신 마지막으로그 지역을 다녀온 수레와 발자국이 있었는지만 확인하게 했다.다행히 민간인의 최근 진입 흔적은 없었다.문제는 지하에서 깨어난 것들이 무엇이든, 수면이끼 군락의 습도를 낮추기 위해열어둔 배수판 때문에 활동조건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로스테가 회각충과 생체낭의 이동을 줄이려고 선택한 조치
세레나는 그 사실만 기록했다.실종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확인이 필요했다.그런데 기록 담당자가 장부 마지막 장을 펼쳤다.“그리고 이게 제일 이상합니다.”날짜는 한 달 전.환자 발생이 급격히 늘기 시작하기 전이었다.루멘 성전 북부 지원국에서 제5광산촌 치료소로 보낸 행정 지침 사본.‘은빛 혈관·고열·배뇨 감소 동시 발생 시‘백휘석 노출 의심’ 표현 사용 금지.’그 아래.‘개별 질환으로 분리 기록할 것.’그리고 마지막 문장.
세레나는 반쯤 작성된 긴급 사용 계약서를 봤다.조항 대부분은 이미 확인했다.남은 것은 건물 보험과 회계 감사 주기를 조정하는 정도였다.그녀는 펜을 들었다.“긴급 조항 하나만 추가하겠습니다.”에드윈 펠이 바로 종이를 준비했다.'집단 환자 발생 등 즉시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정식 개원 이전이라도황실 의료감찰원 소속 정식 치료사의 책임 아래 본 건물을 임시 진료소로 사용할 수 있으며,해당 사용은 칼베른 공작가에 대한 개인 채무나 사적 지원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로디언이 없었지만 황실 공증관이 문장을 검토했다.“문제 없습니다.”세레나는 테오도르를 봤다.
“이번에는 아닙니다.”테오도르가 아주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그런데 공작님.”“네.”“방금 안도하셨죠?”테오도르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조금요.”“왜요?”“계약이 당신을 묶고 있지 않다는 걸 듣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세레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지도를 정리했다.그리고 아주 늦게 말했다.“지금은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세레나는 지도를 펼쳤다.“한 광산촌 안에 만들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오기 어렵습니다.그리고 여기서만 운영하면 광산 문제와 치료 기록이 다시 섞여요.”“어디를 생각하십니까?”세레나는 지도 중앙, 칼베른 영지의 오래된 도로가 만나는 지점을 가리켰다.공작저에서 멀지 않지만 저택 울타리 밖.예전에 군의관 교육과 부상병 회복에 쓰다가 비워 둔 작은 의료 별관이 있었다.칼베른 공작가가 소유하고 있으나 현재 사용하지 않는 건물.“이곳을 봤습니다.”테오도르가 위치를 확인했다.“구 군의무별관.”“사용 가능합니까?”&n
폐렴.과로.광산성 열병.약물 부작용.서로 다른 이름으로 흩어져 있어서 하나의 집단 발생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세레나는 바로 ‘백 명의 백휘열 환자’라고 부르지 않았다.“이건 환자 수가 아니라 기록 회수 대상 수입니다.”황실 기록관이 물었다.“그래도 증상 기록은 비슷합니다.”“그렇죠.”세레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러니까 더 빨리 확인해야 합니다.”마지막 새 문서는 더 짧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