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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Author: 서은월

제1화

Author: 서은월
강시아는 다시 태어났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물에 빠져 숨이 막힐 것 같은 질식감이 온몸을 덮쳤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보드라운 목소리가 귓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어머니, 저는 밤 과자가 먹고 싶어요.”

작디작은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꼭 쥐고 흔들었다. 강시아는 눈물이 뿌옇게 번져 생기 가득한 딸아이를 단번에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하늘이 다시 기회를 주었다. 아이는 아직 멀쩡히 살아 있다.

강시아는 초주 사람이며, 어린 나이에 일찍 어머니를 여의였고 열 네 살 되던 해 아버지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심지어 큰오라버니는 병상에서 일어나지조차 못했기에 홀로 막막한 시절을 보내던 그녀는 단 열 냥에 자신을 국공부에 노비로 팔아 버렸다.

그러다 열 여덟 살이 되던 해, 세자 주종현이 술김에 저지른 실수로 인해, 그녀는 딸아이 연아를 갖게 되었다. 그때부터 강시아는 세자의 유일한 첩실이 되었고, 세자는 직접 그녀에게 처소를 내어주며 하인까지 붙여 주었다.

강시아는 스스로 자신의 신분이 미천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송하윤이 국공부 정실부인으로 들어올 때, 자신이 그녀에게 미움을 받더라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대면 때, 송하윤은 일부러 연아를 위해 과자를 챙겨 오며, 자신의 본가로 불러들여 놀게 했다. 그리고 아이를 돌려보낼 때마다 새 옷과 작은 장난감을 손에 쥐여주며 정성을 다해 돌봐 주었다.

그러다 하루는 큰 마님께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녀는 정실의 손에 맡겨야 앞길이 트인다고 말이다.

그 말에 강시아는 잠시 망설였지만 자신에게는 딸의 앞날을 열어 줄 힘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끝내 고개를 숙이기로 했다.

그런데 겨우 1년이 지났을 무렵, 딸의 몸이 날이 갈수록 쇠약해졌다. 이상한 낌새에 그녀는 연아에게 몰래 물어보았는데, 송하윤이 잘 대해 준다 말하면서 눈동자 속에는 감춰지지 않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딸을 다시 데려오고 싶었다.

하지만 기다리던 세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의 처소에 들이닥친 것은 정실이 거느리는 하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침방에서 외간 남자와의 통정이라 꾸며낸 편지와 불의의 사생아를 품었다는 증거가 줄줄이 나왔다.

“천한 첩실 강 씨, 뒷방을 어지럽히고 외간의 씨를 품어 하늘을 속이려 하다니!”

늘 곁을 지키던 하녀 명옥이 흐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마님, 노여워 마시옵소서… 노비가 낙태약을 훔치다 들켜버렸사옵니다.”

이건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조작한 누명에 불과할 뿐.

그러나 송하윤은 강시아에게 변명할 틈조차 주지 않고 세자의 수결을 내밀며 그녀에게 연못에 수장되는 형벌을 내렸다. 왜소한 다섯 살 딸아이가 비틀거리며 달려와 그녀를 감싸안고 애원했다.

“제발, 저희 어머니만은 살려주세요!”

송 씨는 앙상한 딸아이의 턱을 잡아 올리며 눈빛에 엄청난 혐오를 담고 말했다.

“아직도 그녀를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냐? 길러 줘도 보답할 줄 모르는 천한 년 같으니라고! 그래, 차라리 모녀가 함께 가거라. 그럼 황천길에서 덜 외롭지 않겠느냐? 여봐라! 이 자들을 물에 빠뜨리거라!”

“안 돼!”

연아는 비명을 지르며 송 씨의 손을 뿌리치고 죽기 살기로 죽통을 붙잡았다. 깡마른 두 손이었지만 순간적인 힘은 놀라워 두 하녀가 달라붙어도 떼어낼 수가 없었다.

그때, 강시아는 깨달았다. 정실은 국공부에 시집온 지 일 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은 이미 연아를 둔 뒤이고, 심지어 이번에는 남자아이도 품었다.

정실은 서출의 아들이 자신의 아이보다 먼저 태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할 리 없었다. 자신은 이미 죽을 운명. 남은 건 딸의 목숨을 구걸하는 길뿐이었다.

“마님, 천한 첩이 죄를 인정합니다. 그러니 부디, 연아만은 살려주십시오. 지난 1년간 길러온 정을 봐서라도…”

강시아는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을 죽통 속에 파묻고 땅에 머리를 박았다.

“살려주라고?”

송하윤은 그녀의 아랫배를 노려보며 손수건을 찢어지도록 움켜쥐었다.

“내가 국공부에 들어온 지 꼬박 1년이 되도록 기척 하나 없었는데, 네 년은...!”

말끝을 꺾고 깊은 숨을 내쉰 후 그녀는 다시 단정한 미소를 지었다.

“됐다. 그래도 서방님을 모셨던 성의를 봐서라도 모녀가 함께 길을 떠날 수 있게 하락해 주지.”

그 순간, 연아가 거칠게 기침을 하더니 입안 가득 붉은 피를 토해냈다. 그녀의 동그란 두 눈은 휘둥그레져 혼이 빠져나간 듯 허공만 응시했다.

그때, 강시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날마다 본가에서 보내오던 보양우유이다. 연아가 그토록 마시기를 거부했던 이유는 이미 오래전부터 독이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연아!”

그녀의 절규는 죽통에 갇혀 허공에 메아리쳤다. 송하윤은 역겨운 듯 한 발 물러서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렸다.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느냐? 어서 끝내거라!”

“송하윤, 네 년은 천벌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차가운 물결이 콧속을 파고들며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고, 강시아는 마지막 힘을 다해 고개를 들어 어린 딸이 하녀들 손에 의해 거칠게 밀려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울부짖음 속에 차갑고 날카로운 물이 목구멍 깊숙이 쏟아져 들어왔다. 힘이 점점 빠져가며 시야는 어둡게 잠겨갔다.

그 순간,

“어머니, 왜 울고 계십니까?”

작은 손이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더니 소매로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강시아는 질식할 것 같은 회억에서 겨우 현실로 돌아왔다. 눈앞의 아이 얼굴은 통통하게 피가 돌고 생기발랄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딸아이에게 속삭였다.

“나는 울지 않는다. 기뻐서 그런 것이야…”

“마님, 송 아가씨께서 오셨사옵니다.”

하녀 명옥이 발을 들이며 울고 있는 모녀를 보고 의아한 눈빛을 드리웠다.

“두 분께서는 왜 함께 울고 계시옵니까?”

“아무 일도 아니다.”

강시아가 눈물을 훔치던 손길을 멈추며 되물었다.

“송 아가씨라고?”

그 순간, 뇌리에 번뜩 떠오른 것은 그녀를 수장시켰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강시아의 손톱은 깊숙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뼈마디가 하얗게 드러났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무너져 내릴 듯한 분노를 간신히 억눌렀다.

“마님, 무슨 일이시옵니까?”

그러자 명옥이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강시아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눈동자 속의 끝없는 원한은 이미 숨겨져 있었다.

“송 아가씨를 모시거라. 연아는 안쪽에 들어가 글을 쓰게 하고.”

잠시 뒤, 송하윤은 시녀 소영을 데리고 손에 음식 바구니를 든 채 들어왔다. 그녀는 허리를 꼿꼿이 핀 채로 방 안을 대충 둘러본 후, 손수건을 부채 삼아 가볍게 흔들었다. 비좁은 이 방은 그녀의 화려한 옷자락조차 담기 버거운 듯했다.

시녀 소영이 바구니를 내밀며 말했다.

“강 마님, 저희 아가씨께서 큰 마님을 뵈러 가시던 중 일부러 아가씨를 위해 덕흥루에 들러 과자를 사오셨사옵니다. 마님께서는 집안일로 바쁘시니 잘 모르실 테지만 덕흥루 과자는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렵사옵니다.”

그 말에 강시아는 속으로 비웃었다. 가식의 가면 뒤에 감춘 것은 뱀과 전갈의 심장. 고작 몇 조각 과자로 스스로의 이름을 높이려 하다니.

“덕흥루 과자라니! 연아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송 아가씨.”

그러고는 바로 바구니를 받지 않고 곧장 손을 뻗어 덮개를 젖혔다.

“에이!”

그러자 자줏빛 소매를 한 소영의 얼굴빛이 변하며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찬합 속의 과자는 몇 조각만 남기고 모두 부서져버렸다.

“어머, 어쩌면 전부 부서졌을까?”

강시아가 놀라움에 입을 틀어쥐었다. 소영은 그녀가 이렇게 무례할 줄은 몰랐다. 물건을 받지도 않고 곧장 뚜껑부터 열어 보다니. 그녀는 얼른 자기 주인의 얼굴빛을 살핀 뒤 먼저 입을 열어 강시아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분명 도착했을 때 까지만 해도 멀쩡했사옵니다. 분명히 강 마님께서 직접 뚜껑을 열다가 잘못 건드려 부서뜨린 게지요!”

강시아는 빙긋 웃었다.

“소영이는 참으로 재밌는 아이구나. 나는 그저 과자가 부서졌다고 말했을 뿐이지, 누구를 탓한 적은 없다. 좋든 나쁘든 모두 송 아가씨께서 연아를 생각해 보내주신 성의 아니겠느냐? 과자야 본래 잘 부서지지는 것이고. 네가 이렇게 반응하니 오히려 나에게 허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처럼 들리는구나.”

송하윤은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녀의 눈에 강시아 따위는 그저 남자들이 잠시 즐기는 장난감일 뿐, 대단치 않은 존재였다. 송하윤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고개를 들어 소영이를 꾸짖었다.

“소영, 바깥에 나왔다고 해서 규칙을 잊었느냐?”

때 마침 문밖으로 키 큰 남자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자 소영은 즉시 땅에 무릎을 꿇었다.

“아가씨의 호의가 헛되이 되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옵니다. 아가씨를 위해 불공평하다 여겨…!”

순간 주종현의 눈길이 그녀에게 닿았다.

“무슨 일이냐?”

강시아가 먼저 나서서 대답했다.

“서방님께서는 노여워 마옵소서. 송 아가씨께서 연아를 위해 특별히 과자를 보내주셨는데 전부 부서져 소영이가 괜히 제 탓을 할까 염려해 한마디 보탠 것뿐이옵니다.”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경계를 늦추어 소영이 곧장 과자를 연아의 손에 쥐여주었고 겨우 세 살이던 아이는 그 무게를 감당 못해 곧바로 떨어뜨렸다. 과자가 산산이 흩어지자 그녀는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기에, 미처 이곳으로 들어오는 세자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소영은 연아의 잘못이 아니라 자기 실수라며 먼저 나서서 얘기했었다.

과자는 우유로 만든 것이었고 연아는 우유를 싫어해 곧바로 울음을 터뜨리며 먹기 싫다고 떼를 썼다. 그러자 주종현은 얼굴을 굳히며 그녀가 딸을 버릇없이 길렀다고, 남의 호의를 헛되이 한다며 차갑게 꾸짖었다.

그 기억이 스치자 강시아의 시선은 곁에서 시중드는 명옥에게로 향했다. 연아가 우유를 싫어한다는 사실은 가까이 모시는 명옥과 유모라면 당연히 알 일이었기 때문이다.

주종현은 흩어진 과자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송하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송 아씨의 정성에 감사하네. 그리고 과자란 원래 잘 부서지는 법이니, 아무래도 상관없네.”

“…아무래도 상관없다니?”

강시아가 눈을 치켜떴다.

전생에서는 잘못이 아닌 일로도 연아를 꾸짖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설사 아이의 잘못이라 하더라도 고작 세 살배기에게 괜찮다는 한마디조차 아끼던 이가!

송하윤은 고개를 들어 턱을 살짝 치켜세우고 입가에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겨우 천한 첩 하나 때문에 굳이 이 자리에 와야 했을까? 어머니께서는 공연히 괜한 걱정만 한다니까.’

그녀는 더 이상 강시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히 입을 열었다.

“저는 먼저 큰 마님께 가 보겠습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시아는 이를 악물었다. 전생의 불길한 조짐들이 이미 드러났음을 그제서야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었다.

“연아는 어디 있느냐?”

“연아는 안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주종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돌아서는 순간, 강시아는 명옥의 눈가에서 스치듯 지나간 연심을 포착해냈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숙이며 감춰버렸다.

강시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웅얼거렸다.

‘명옥, 벌써 주인을 배반했구나..’

한편, 내실.

어린 연아는 어머니의 당부를 떠올리며 정성껏 글씨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손에 커다란 붓을 쥐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획을 그었다.

주종현은 그런 그녀의 뒤에서 팔을 감싸 안고 커다란 손으로 작은 손과 붓을 함께 잡았다.

“연아야, 글씨에는 항상 시작하는 기세와 마무리의 맺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양이 나지. 이 짧은 한 획을 아버지는 어린 시절 무려 두 해나 연습했단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지! 기세가 무엇입니까?”

그는 딸의 작은 손을 이끌어 한 획 한 획 쓰며 인내심 있게 가르쳤다. 강시아는 환히 웃는 딸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소매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녀와 아이의 앞길은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 송하윤은 결국 이 집안의 정실로 들어올 것이고 자신과 연아는 다시 그 전생의 죽음길로 내몰릴 운명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문득, 탁자 위에 놓인 찬합으로 옮겨졌다. 잠시 후, 그녀는 명옥을 불러들였다.

강시아는 화장대 서랍에서 작은 장신구함을 꺼냈다. 딸랑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아이의 귀를 잡아끌자 어린 연아의 눈망울이 금세 빛이 났다. 주종현은 그런 딸의 정수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글 쓰는데 집중해야지.”

고개를 들자 강시아가 장신구함에서 조금밖에 남지 않은 은전을 꺼내 명옥에게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덕흥루에서 밤 과자를 좀 사 오거라. 우유가 들어간 건 사지 말고. 연아가 싫어한다.”

주종현이 말을 보탰다.

“그깟 은전으로 덕흥루 과자를 살 수 있겠느냐?”

강시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서방님께 안 좋은 모습을 보여 드렸군요. 제가 돈을 벌 길이 없어 평소 모아둔 게 이것 뿐이라….”

주종현은 탁자 뒤에 앉아 있던 딸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연아야, 아버지에게 말해 보거라. 무엇을 제일 좋아하느냐?”

작은 소녀는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눈매가 반달처럼 휘어지며 웃었다.

“밤 과자요!”

그러다 잠시 머뭇하다 덧붙였다.

“우유는 말고요!”

그의 눈가가 부드럽게 젖었다.

“알겠다. 그럼, 우유는 빼고.”

연아는 다시 아버지의 귀에 바짝 다가와 속삭였다.

“아버지, 어머니는 달콤한 두부 꽃을 제일 좋아합니다.”

주종현은 손가락 끝으로 아이의 작은 코끝을 톡 건드렸다.

“작은 요정 같은 것.”

그는 딸을 품에 안고 일어섰다.

“자, 오늘 글씨를 열심히 쓴 상으로 아버지가 직접 데려가 주마. 덕흥루에 가서 먹자구나.”

세 식구가 문을 나서자 마침 맞닥뜨린 이는 주 가의 셋째 아가씨 주온청과 송하윤이었다.

“어머, 큰 오라버니, 어디 가십니까?”

뒤를 따르던 강시아는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얌전히 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주종현이 가볍게 딸아이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연아야, 인사드려야지.”

연아가 아버지의 품에 안긴 채, 통통한 두 손을 아랫배 앞에서 공손히 모아 합장하듯 예를 올렸다.

“연아, 셋째 고모께 문안드립니다.”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올리자 송하윤의 입매가 은근히 휘어졌다.

“우리 작은 연아는 왜 나한테는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냐?”

연아는 작은 입술을 꾹 다물고 몸을 비비꼬며 한참 망설였지만, 끝내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자 순간, 송하윤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불쾌한 기색이 스쳤지만, 그녀는 곧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삼월 상사절입니다. 종현 오라버니께서는 강 마님과 연아를 데리고 풍수 언덕에 가 철화를 구경하셨는지요?”

그러자 주온청이 곧장 거들었다.

“우리도 가려고 합니다. 큰 오라버니 우리와 함께 가주세요!”

그러고는 곁에 있는 강시아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오늘 풍수 강변에 인파가 얼마나 많은데...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 쉽지 않을 겁니다. 철화라면 상사절에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며칠 후 태후 마마의 수연에도 궁정 가득 불꽃놀이가 펼쳐질 텐데 굳이 지금 나갈 필요는 없죠.”

강시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딸을 받아 안았다.

“셋째 아가씨 말씀이 옳습니다. 서방님께서는 두 아가씨와 함께 다녀오세요. 저는 연아를 데리고 덕흥루에 들를 참이니.”

주종현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대답했다.

강시아는 연아를 안은 채 마차에 올라탔다. 저잣거리를 벗어나 국공부가 더는 눈에 보이지 않을 때 즈음, 그녀는 마차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서성 마시로 가거라.”

그녀는 말을 사고파는 그곳에서 흑시의 출성로 통행증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천자가 다스리는 수도라 해도 바람길은 언제나 뚫려 있는 법이니.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거래가 성사된다. 각 집안과 관부에는 달아난 노비도 있고 본분을 벗어나고픈 귀족 자제도 있다.

출성 통행증은 하나의 거대한 장사였다. 관부에서 내주는 정식 증서 말고도 암암리에 위조된 통행증이 흑시에서 은밀히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비록 전 재산을 몽땅 바치더라도 위조 통행증 두 장을 손에 넣어 반드시 연아를 데리고 이 피비린내 나는 저택을 벗어나리라.

복수할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복수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이었다. 국공부 안에서 그녀는 인맥도, 의지할 힘도 없었다. 지난 생애 연못에 가라앉기 전 그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아, 그녀는 단 한마디의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송하윤이 들어온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서출 딸은 반드시 정실의 교양을 받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연아를 빼앗아 간 것이었다.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자신의 웃음 많고 명랑하던 딸이 점점 말라가고 두려움에 시달리다 기침을 달고 사는 병든 아이로 변해가는 것을. 그녀가 매일같이 입으로 밀어 넣던 보양 우유 속에는 아이의 심폐를 갉아먹는 독이 은밀히 스며 있었다.

강시아는 고개를 숙여 딸의 통통한 작은 손을 꼭 쥐었다.

그러자 전생 연못에서 차가운 물결 속으로 가라앉던 그 참혹한 광경이 눈앞에 겹쳐졌다. 복수는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딸의 목숨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난 생애의 궤적을 따르자면 송하윤이 정실로 들어오기까지는 아직 석 달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전에 벗어나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모녀는 시신조차 건지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배반한 시녀들과 유모들, 그자들에게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바로 그때, 날카로운 남자의 음성이 그녀의 사유를 끊어내듯 울려 퍼졌다.

“말시에는 무슨 일로 가려는 것이냐?”

강시아는 온몸이 굳어졌다.

분명 방금 전 이미 떠나보냈던 그가 다시 돌아와 차 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것이 아니겠는가?

차갑고 길게 찢어진 듯한 눈매가 모녀 둘을 무심하게 훑기 시작했다.

“서… 서방님, 어째서 다시 돌아오신 겁니까?”

강시아는 놀란 숨을 토해내듯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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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아설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 들어왔다.“무슨 일이야?”아람은 고개를 들었다. 아설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고 눈빛은 유난히 빛나고 있었다.“무슨 좋은 일이길래 그렇게 신이 났어?”“큰 장사가 들어왔어요!”아설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십만 석이에요. 곡식 십만 석!”창고 하나가 통째로 비다시피 할 물량이었다.“이 거래가 제대로 자리 잡으면 내년에는 이런 대형 창고를 두 채는 더 지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언니가 배를 샀잖아요. 수매든, 출하든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하지만 아람은 오히려 미간을 좁혔다. 장사가 커지는 건 분명 좋은 일이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소휘의 밑천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이 사람은 누가 소개한 거야?”아설은 고개를 저었다.“소개는 없어요. 스스로 찾아온 겁니다.”아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이 일은 아직 오 관사에게 알리지 말고 뒤에서 우리가 직접 접촉해야 해. 만약 성사되더라도 이 건은 상행 장부로 돌리지 마.”아설은 곧바로 뜻을 알아차렸다.“이 건은 따로 굴려서 큰 고객을 숨기겠다는 것이네요?”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언니, 성왕 전하를 떼어내려는 겁니까?”아람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지금은 돈을 벌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야.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문제지.”“살아남는다고요?”아설은 바깥일을 자주 뛰는 만큼 작은 기류 변화에도 민감해져 있었다.“언니, 무슨 소문이라도 들은 겁니까?”아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다만 성왕 전하의 욕심이 너무 커. 괜히 말해서 네가 불안해질까 봐 그동안 말하지 않았을 뿐이야. 왕야는 아 씨 상행을 발판 삼아 세력을 키우려 하고 있어. 곡식, 배, 약재, 소금까지… 다 손에 넣으려 해.”“소금이요?”아설은 반사적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염매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으니까.성왕은 정말 돈이 된다면 가릴 게 없는 사람이었다.더구나 계약 문서에는 이름도 올리지 않고 뒤에서 자금만 대고 이익만 챙기니 고되고 위험한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8화

    “석 포두께서는 지금 당직 중이신 걸로 압니다만, 현아에 계시지 않고 개인 일을 보시는 건 썩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네요.”석 포두의 몸이 굳었다.“그건... 맞습니다.”농민이 뭔가 더 말하려 하자 석 포두는 그를 밀어 밖으로 내보냈다.“구촌 어르신, 저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더 기다릴수록 값은 계속 떨어질 겁니다. 다들 상의해서 서둘러 파시지요.”나중에 곡식으로 물건을 바꿔야 할 지경이 되면 그땐 정말 헐값이 될 테니 말이다.구촌 어른은 굳게 닫힌 대문을 한 번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밖에서 기다리던 농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구촌 어르신, 어찌 됐습니까!”“방법이 없답니까?”구촌 어른은 고개를 저었다.“될 수 있는 건 다 해봤네. 우리 집 곡식은 어제 갔던 장 씨 상회에 넘길 생각이네. 곡가가 워낙 불안정하니 그대들은 각자 형편에 맞게 결정하시게.”그 틈에서 구경만 하던 복이 삼촌이 코웃음을 쳤다.“역시 돈 있는 것들이 더 야박하다니까. 다 똑같네. 우리 굶어 죽으라고 버티는 거지. 우리가 솥에 밥도 못 올릴 때쯤 헐값으로 땅까지 사들이려는 거라고.”귀가 얇은 몇몇 사람들의 분노가 단번에 불붙었다.“맞아! 저 여자들이랑 조 씨 집이랑 뭐가 다르다고!”“주부에 고발합시다!”정신이 좀 든 사람이 복이 삼촌을 돌아보며 말했다.“복이 삼촌 말도 웃기네요. 안 사면 다른 데 가서 팔면 되지 않습니까? 조 씨 집은 예전에 곡식을 가져가 놓고 돈을 안 주거나 덜 줬습니다. 지금은 곡식이 다 자기들 손에 있는데 뭘 고발한다는 겁니까? 강제로 못 팔게 됐다고 화풀이하는 겁니까?”복이 삼촌은 이미 벌금도 물었고 올해 농사도 망쳤다. 그 모든 게 다 자기 선택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을 부추겨 함께 난리를 치려 했다.사정을 꿰뚫어본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곡식을 점검했다. 지금 팔면 큰돈은 못 벌어도 헛수고는 면할 수 있을 터.끝내 깨닫지 못한 소수만이 복이 삼촌 곁에 남았다.“복이 삼촌, 그럼 이제 어찌 합니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7화

    “그건 네가 그들보다 잘 살고 있기 때문이야.”단낭은 그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들었다.“그럼 더 잘 살아야겠습니다. 아주 잘 살아서 숨넘어가게 만들어야겠어요.”“그래야지.”아람은 복동이를 받아안았다.“그런 인간들 때문에 식욕까지 망칠 필요는 없다. 난 아직도 생선살 죽을 기다리고 있거든.”단낭은 아람이 자신을 달래려 일부러 저렇게 말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단 씨 집안일로 더는 아람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단비영이 해결하지 못하면 그땐 자신이 단비영을 해결하면 될 일이다. 자기 집안 일로도 모자라 이제는 상단 마님 집안까지 끌어들이고 있으니 말이다.단낭이 남편과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단비영은 주종현과 함께 건주로 떠났다.무슨 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녹봉이 두 냥이나 올랐다.기뻐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단 씨 집안이 더더욱 단비영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단 노파는 단비영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집 근처에 올 담은 없었기에 길에서 몇 차례 단낭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단낭은 그때마다 매몰차게 뿌리쳤다.아무리 험한 말을 퍼붓고 화이시키겠다고 협박해도 단낭은 더 단단해질 뿐이었다.그녀의 태도에 단 노파는 분통이 터져 허벅지를 쿵쿵 내리쳤다.깊은 가을이 지나자 날이 부쩍 쌀쌀해졌고 아이들은 눈에 띄게 훌쩍 자라 있었다.아람 상단의 곡물 창고는 가득 찼다. 버티며 팔지 않던 농가들은 곡가가 내려가고 나서야 팔지 못한 것을 깨닫고 뒤늦게 허둥대기 시작했다.아설이 이 소식을 전하자 몇 달 동안 참아왔던 아람은 마침내 속이 후련해졌다.“여인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더니.”아람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냥 네가 알아서 하거라. 지금까지 전부 네가 결정했잖아.”정현에 머문 지 반 년이 넘은 아설은 어느새 제법 큰 상단 주인다운 기세를 갖추고 있었다. 석 포두가 농민들을 데리고 찾아왔을 때, 아설은 단호하게 문전박대를 했다. 예전에 차라리 풀어버리겠다고 했던 쌀을 이제 와서 사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6화

    “형님, 이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아직 아이 하나 제대로 못 달래시네요. 제가 할게요. 저는 한 번에 둘이나 낳았거든요.”단낭은 왕수연이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가 손을 뻗어 아이를 빼앗으려 들자 단낭은 깜짝 놀라 몸을 틀어 아이를 안은 채 물러섰다.“왜 여기 온 것입니까!”“제가 왜 왔냐고요?”왕수연이 콧방귀를 뀌었다.“형님께서는 몰래 큰돈을 벌고 있으면서 혼자만 꿀꺽하시는 겁니까?”그녀는 목을 길게 빼고 안쪽을 훑어보았다.“상단 마님은 어디 계십니까?”단낭은 복동이를 달래며 오늘따라 새 옷감으로 단장한 올케를 곁눈질해 보았다. 곧 그녀의 입가에 조소가 스쳤다.“아까 상단 마님께서 직접 문을 열어주셨는데 못 봤습니까?”문밖에서는 아직도 단 노파의 귀신 울음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왕수연의 얼굴이 확 굳었다.“큰일 났네!”그녀는 몸을 돌려 급히 문쪽으로 달려갔다.단 노파는 평생 거친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힘이 얼마나 센지 아람 같은 여자가 떼어낼 수 있을 리 없었다.“이 손 놓으세요! 안 그러면 사람을 부를 겁니까! 감히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이닥치는 겁니까?”아람은 이런 몰상식한 노파를 처음 봤다.“네가 먼저 날 밀쳤잖아. 오늘은 주인댁에 확실히 보여줄 거다! 이렇게 악독한 사람이 어떻게 여기서 일한단 말이냐!”단 노파는 아람의 다리를 악착같이 끌어안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내리면 자기도 삼천 문을 벌 수 있을 테니까. 그 생각에 고함은 더 커져만 갔다.맞은편 집에서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봉변을 당한 줄 안 것이다.“아람 마님, 강세오 대인을 불러드릴까요?”그때 왕수연이 허겁지겁 뛰어나왔다.“어머니! 어서 놓으세요!”그녀는 노파를 끌어당기며 급히 말했다.“이분이 바로 상단 마님입니다.”단 노파는 그제야 손을 풀었다.“아, 아아… 상단 마님이셨군요.”순식간에 얼굴에 웃음을 덕지덕지 붙였다.“이 늙은이가 눈이 어두워 미처 못 알아봤습니다.”아람은 얼굴을 굳힌 채 두 사람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5화

    단비영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게다가 단낭이 얼마를 받든 그건 전부 그 사람 능력입니다.”그때, 문밖에서 냉소 섞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애나 보는 거였습니까? 그게 무슨 능력입니까? 여인이라면 다 하는 건데요.”단비영의 제수, 왕수연과 그녀의 어머니가 안으로 들어섰다.왕 노파가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전 또 큰아주버님께서 무슨 큰 재주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결국 자기 마누라한테 다 몰아준 거였네요.”그녀는 딸을 돌아보며 말했다.“수연아, 팔백 문이면 됐다. 그런 고생은 하지 말거라.”단비영은 예전엔 그나마 말이 통하던 어머니마저 이렇게 변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값은 마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사람을 뽑는 것도 그쪽입니다. 지금 여기서 저를 몰아붙여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상단 주인께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잡일꾼 하나, 녹봉은 팔백 문뿐이라고요. 내일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뽑겠답니다.”그는 더 이상 누구의 반응도 보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단낭은 아람을 마주하기가 몹시 민망했다. 남편은 효심만 앞서고 비바람 맞으며 번 돈은 고스란히 둘째 집안의 입으로 들어가니 말이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고작 집을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잊어버린 것일까?엉망진창인 집안 사정에 마님까지 끌어들이다니. 자기 아우의 성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칫 사람을 다치게라도 하면 자신이 무슨 낯으로 그녀를 본단 말인가?아람은 단낭이 이틀째 웃지 않는 것을 보고 그녀가 아직도 그 일로 속을 앓고 있음을 알았다.“아직도 화났느냐? 그만 생각하거라. 잡일꾼치곤 팔백 문이 좀 센 건 맞지만 네가 삼천 문인데 제수는 팔백 문이잖아. 게다가 이틀이나 지났다. 그러니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단낭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눈가에 서운함이 어렸다.“송구합니다. 괜히 이런 일로 폐를 끼쳐서요.”아람은 단낭의 품에서 복동이를 받아 안았다.“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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