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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서은월
강시아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모두 달라져 있었다. 그녀도 한때 세자의 침소에 오르고 아이를 품음으로써 겨우 첩이 된 게 아니었나?

주온청이 다시 입을 열려 했으나 주은혜가 억지로 팔을 끌며 나섰다.

“언니, 어서 갑시다! 언니가 끼어든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들 자매는 모두 서녀였다. 셋째가 송하윤을 두둔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실부인의 눈 밖에 났는데 이제 또 명옥의 일까지 거든다면...

그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들의 혼사도 정실부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주종현 또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인파 뒤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강시아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 손을 높이 들어 명옥의 뺨을 후려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통함이 가득했다.

“나는 너를 자매로 여겼다. 항상 너를 생각했었는데 감히 이런 짓이나 저지르다니! 나는 속여도 좋다. 헌데 너를 좋아하는 연아에게는 부끄럽지도 않으냐!”

명옥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던졌다. 이게 정말 예전의 겁 많고 소심하던 강시아란 말인가.

강시아는 곧장 무릎을 꿇어 주종현에게 애절히 호소했다.

“명옥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서방님께서 그녀가 첩실을 섬긴 지난 삼사년의 정을 생각하시어 한 번만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주종현의 눈에는 오히려 더 큰 분노가 치솟았다.

“네가 나더러 그녀를 살려 달라고?”

“그렇습니다.”

강시아는 곧장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러다 이내 눈가가 젖으며 눈물을 흘렸다.

“명옥은 본디 작은 마님께서 직접 뽑아 제 곁에 붙인 아이입니다. 저를 시중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억울했을 터인데…”

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명옥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강시아를 밀쳐 넘어뜨렸다.

“네가 뭔데! 그런 가식적인 말은 필요 없다!”

강시아는 놀란 듯 두 눈이 커졌다. 그녀의 표정은 믿기지 않는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명옥은 이를 악물고 독기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

“네가 뭐라고! 고작 세탁방에서 일했던 계집 따위가... 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주종현이 발길질로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그 순간, 강시아는 눈물이 멈출 뻔했다. 늘 차갑고 냉정하기만 했던 그가 오늘처럼 분노를 터트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게 누구 없느냐!”

“여기 있습니다!”

총관이 땀을 훔치며 종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명옥은 입이 막힌 채 억지로 끌려나갔다. 주종현이 몸을 굽혀 강시아를 번쩍 안아 올리자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팔꿈치가 긁혀 피가 배어 나왔던 것이다. 그녀는 낮은 침상에 조심스레 눕혀졌다. 그 위의 작은 탁자에는 아직 덮이지 않은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만 참거라.”

주종현이 그녀를 흘깃 보았을 때, 소매가 걷힌 팔 안쪽에 붉은 상처 자국이 또렷이 드러났다.

강시아는 이미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몸이라, 이런 자잘한 상처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아픔이 아니라 연민이었다. 강시아는 입술을 깨물며 나직하게 말했다.

“첩… 첩이 스스로 돌아가 약을 바르겠습니다.”

“움직이지 말거라.”

주종현은 단단히 그녀의 팔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 앞을 가로질러 작은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크고 작은 약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연위영의 도통(都统:고위 군사 및 행정 관직)이라 훈련장에서 부상을 입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니 그의 방에는 상비약이 늘 구비되어 있었다.

순간,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흘러 지나갔다. 강시아는 멀쩡한 한 손으로 침상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이 방은 예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였다. 자신이 분가하여 따로 지내게 된 뒤로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았던 곳. 늘 그가 그녀의 작은 뜰을 찾아오곤 했었다.

명옥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본래 분명 세탁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계집이었다. 그러다 상 상궁에게 자수를 배우고 난 후 비로소 수방에 들어가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자의 얼굴을 본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처지였다.

만약 그날, 새로 지은 옷을 들고 왔을 때 세자가 술에 취해 실수하지 않았다면…

명옥이 품은 불만은 그럴 법했다. 세자 댁에서 곁을 모시던 하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세탁방 계집인 그녀가 먼저 기회를 거머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제 사사로운 욕심으로 그녀의 아이까지 해치려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디흰 가루가 상처 위로 뿌려졌다. 싸늘한 자극에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강시아는 늦게나마 낮게 신음을 흘렸다.

“읏…”

“이제야 아픈 줄 아는구나. 그러니 왜 공연히 남의 일에 끼어든 것이냐.”

주종현은 여전히 냉담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그가 자신의 부상에 분노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강시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세자 저하, 명옥은 오랫동안 저와 연아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그의 굳은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너는 참 마음이 곱구나.”

“첩은 연아의 어미로서, 몸도 재산도 가진 것이 없으니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 그저 한 줌의 선한 마음뿐입니다.”

주종현은 몸에 힘이 다 빠진듯, 끝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지나친 선의는 반드시 화를 부르는 법이다. 연아는 나의 딸이기도 하니 그 아이의 앞날은 범상치 않을 것이다.”

강시아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래도 연아에게는 아버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아이는 안전하게 클 것입니다.”

주종현은 두눈 가득 자신만을 비추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옳다. 내가 아이를 평생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너 또한... 평생 지켜 주겠다.”

강시아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으나 그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눈빛 깊숙이 증오가 스쳤다. 지난 생애, 연아는 송하윤과 함께 그의 뜰에서 지냈다.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한 번도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그가 말하는 보호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손이 허리에서 위로 미끄러져 내려오자, 강시아의 몸이 번개처럼 침상에서 튀어 올랐다.

“아악!”

주종현은 턱을 감싸 쥔 채 허리를 굽혔다. 정수리를 감싸 쥔 강시아의 눈가에 눈물이 솟구쳤다.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황급히 말을 내뱉었다.

“첩, 달거리 중이라!”

주종현은 얼굴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몸이 불편하면 일찍이 쉬면 될 것을, 한밤중에 어딜 어슬렁거린단 말이냐!”

그는 소매를 휙 휘두르며 곁방으로 사라졌다. 강시아는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져 내실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와 그녀에게 수발을 들라 하다니.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내일이면, 부내에는 반드시 소문이 퍼질 것이다. 세자가 첩을 위해 분노를 터트렸고 침소를 넘보려 한 시녀를 발매했다는 소문으로 말이다.

그녀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송하윤. 지난 생에는 내가 지나치게 고분고분했지. 이번 생에는 과연 네가 얼마나 참고 견딜 수 있는지 보자.’

설강은 세자가 강시아를 안고 데려가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몸을 돌려 작은 뜰로 돌아갔다. 좋은 구경은 이미 끝났고 이번 일로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강시아는 분명 세자의 마음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정실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첩들도 들여오겠지.

설강은 스스로 다짐했다. 장우는 비록 가난하나 재능이 빼어나고 사리에 밝은 사내이니, 차라리 가난한 집의 아내가 될지언정 부귀한 집의 첩은 되지 않으리라고!

이튿날, 강시아는 일부러 늦잠을 잤다.

그리고 작은 뜰로 돌아왔을 때, 연아는 회랑 난간에 앉아 턱을 괴고 중얼거리며 멍하니 있었다가, 그녀를 보는 순간 눈이 반짝 빛났다.

“어머니!”

포탄처럼 뛰어든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이고, 내 새끼.”

강시아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아이를 받아안았다.

“어머니, 연아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침에도, 저녁에도, 늘 생각했습니다!”

강시아는 눈가가 휘어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나, 누굴 닮아 입이 이리도 달콤할까. 어미가 뽀뽀해 주어야겠구나!”

연아는 어머니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자랑스럽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설강 언니가 가르쳐 주었어요.”

그러고는 무언가 떠올린 듯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앗, 설강 언니가 말하지 말랬는데…”

강시아는 아이의 귀여운 얼굴을 내려다보다 불쑥 나온 작은 배를 손끝으로 톡 찔렀다.

“그럼, 알겠다. 어미는 방금 네가 한 말을 다 잊어버리마.”

설강은 말소리를 듣고 곁방에서 나왔다.

“마님, 고 유모께서 다녀갔사옵니다. 큰 마님께서 마님을 부르셨사옵니다.”

그러곤 무언가 말하려다 머뭇거리며 입만 달싹였다.

강시아는 딸을 내려놓으며 모르는 척 웃음을 띠었다.

“곧 가겠다고 전하거라. 마침 서수의 머리 부분을 다 수놓았으니 큰 마님께 보여 드려야겠구나.”

설강은 그녀가 수틀에서 자수를 꺼내드는 것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문가에서 그녀를 불러 세웠다.

“마님.”

강시아가 돌아보았다.

“응?”

설강은 잠시 망설이다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오늘 송 가의 아가씨께서 오셨다고 하옵니다. 그녀는…”

설강은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힘주어 말을 이었다.

“송 아가씨는 앙갚음을 잊지 않는 성정이라 하옵니다. 그러니 부디 마님께서도 조심하시기를…”

강시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알겠다. 고맙구나, 설강.”

지난 생에, 그녀와 설강은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그저 송하윤이 시집온 뒤, 설강이 첩으로 올려져 그녀와 함께 열흘 남짓 한 집에 살았을 뿐이었다. 그 시절 설강은 매일 우울했기에, 웃는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설강이 죽던 날,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외간 남자와 밀회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설강이 첩이 된 것은 순전히 큰 마님의 결정이었다. 세자는 그녀의 방에 발을 들인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결국 송하윤은 질투로 그녀의 목숨까지 빼앗은 것이었다.

큰 마님의 뜰에는 새로 파낸 연못이 있었다.

그 안에는 몇 마리의 비단잉어가 헤엄치고 있었고 사람이 지나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몰려들었다. 정청은 널찍했고 옆에는 작은 불당이 붙어 있었다.

그 시각, 불당에서는 경전 읊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송하윤이 큰 마님을 모시며 함께 염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 앞에 이른 강시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큰 마님은 옥관음상 앞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읊고 있었고 그 뒤에 선 송하윤은 몰래 하품을 삼키고 있었다.

고 유모는 안으로 들어가 알현을 고했다. 그러나 큰 마님의 염불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고 유모는는 이내 눈치챘다. 이는 곧 강시아의 기세를 꺾으려는 큰 마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녀의 눈에는 강시아가 예전과 다름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큰 마님보다 더한 것은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은 송 아가씨의 오만한 기세였다. 지금부터 세자의 집안을 주관하려 드는데, 앞으로 강시아의 나날이 평탄치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강시아는 다른 시녀와 함께 문가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빛은 고요했고 파문조차 일지 않았다.

고 유모는 왠지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세자의 곁에 있는 유일한 첩이면서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늘 잊혀지던 인물.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다름없이 차분해 보이면서도 그 작은 자리에서 은근히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목탁 소리가 멈췄다.

“들어오너라. 아니면 정말 내 뜰 앞에 서 있는 연화동자가 되려는 것이냐.”

강시아는 수놓은 작품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들어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첩, 큰 마님께 평안을 드립니다. 이는 지난 며칠 동안 첩이 정성껏 수놓은….”

큰 마님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가져가 다시 수놓거라.”

강시아는 당혹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찌하여…”

송하윤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 눈에 멸시를 담아 그녀의 작품을 흘끗 바라보았다.

“고 조모,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저잣거리 자수방의 수녀들이야말로 몸과 마음이 모두 청결한 아가씨들입니다. 누가 이런 성스러운 예물을 만들기에 더 적합하겠습니까?”

강시아의 미간이 좁혀지며 물었다.

“송 아가씨, 그 말은 곧 국공부가 청백가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제가 언제 국공부가 청백하지 않다 했습니까!”

송하윤은 거의 비명을 지를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말한 건 당신입니다. 강 마님!”

강시아는 일부러 모른 척하며 되물었다.

“제가요?”

지난 생에, 그녀가 본래 수놓았던 것은 만수도였다. 그러나 불당에 올리는 날, 송하윤의 시녀 소영이 향불을 쏟아뜨려 뜨겁게 튀어 오른 향재가 수면을 태워 버렸다. 송하윤은 그 틈을 타 더 복잡한 서수헌도 도안을 들고나와 그녀를 압박했다. 그리하여 강시아는 꼬박 칠 일을 밤낮없이 바늘에 매달려, 태후의 생신 전날 전까지 간신히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생에는 겨우 그녀가 주종현의 뜰에 하룻밤 묵었을 뿐인데, 송하윤이 참지 못하고 벌써 뛰쳐나왔다.

송하윤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태후 마마의 수연에 바칠 예물을 두고 강 마님은 마음을 맑히고 몸을 정갈히 하지 못해 오히려 예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고 조모 저에게 더 좋은 도안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제 골몰하며 생각해낸 도안입니다!”

그녀의 시선은 강시아가 들고 있는 자수 위를 경멸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것은, 그녀가 큰돈을 들여 비단방에서 사 온 도안이었다.

본래는 강시아로 하여금 지금 수놓고 있는 도안을 전부 완성하게 한 뒤 그것을 망쳐 버리고 이 도안을 들고나와 그녀를 곤경에 빠뜨릴 계획이었다.

만약 저 천한 년이 세자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이런 비열한 수법도 쓰지 않았을 것을.

그렇다면 이제 그녀에게 고생거리를 주어 세자를 유혹할 겨를도 없게 만들 것이다!

“하윤아, 네가 어찌 시아의 도안을 들고 왔느냐?”

큰 마님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무, 무슨…?”

송하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강시아가 이내 자신의 자수를 펼쳐 보였다.

“비록 송 아가씨께서 어디서 첩의 도안을 얻으셨는지는 알지 못하나 송 아가씨께서 마음에 들어 하셨다니 첩으로서는 더없는 기쁨입니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얼어붙은 송하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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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 포두께서는 지금 당직 중이신 걸로 압니다만, 현아에 계시지 않고 개인 일을 보시는 건 썩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네요.”석 포두의 몸이 굳었다.“그건... 맞습니다.”농민이 뭔가 더 말하려 하자 석 포두는 그를 밀어 밖으로 내보냈다.“구촌 어르신, 저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습니다. 더 기다릴수록 값은 계속 떨어질 겁니다. 다들 상의해서 서둘러 파시지요.”나중에 곡식으로 물건을 바꿔야 할 지경이 되면 그땐 정말 헐값이 될 테니 말이다.구촌 어른은 굳게 닫힌 대문을 한 번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밖에서 기다리던 농민들이 우르르 몰려왔다.“구촌 어르신, 어찌 됐습니까!”“방법이 없답니까?”구촌 어른은 고개를 저었다.“될 수 있는 건 다 해봤네. 우리 집 곡식은 어제 갔던 장 씨 상회에 넘길 생각이네. 곡가가 워낙 불안정하니 그대들은 각자 형편에 맞게 결정하시게.”그 틈에서 구경만 하던 복이 삼촌이 코웃음을 쳤다.“역시 돈 있는 것들이 더 야박하다니까. 다 똑같네. 우리 굶어 죽으라고 버티는 거지. 우리가 솥에 밥도 못 올릴 때쯤 헐값으로 땅까지 사들이려는 거라고.”귀가 얇은 몇몇 사람들의 분노가 단번에 불붙었다.“맞아! 저 여자들이랑 조 씨 집이랑 뭐가 다르다고!”“주부에 고발합시다!”정신이 좀 든 사람이 복이 삼촌을 돌아보며 말했다.“복이 삼촌 말도 웃기네요. 안 사면 다른 데 가서 팔면 되지 않습니까? 조 씨 집은 예전에 곡식을 가져가 놓고 돈을 안 주거나 덜 줬습니다. 지금은 곡식이 다 자기들 손에 있는데 뭘 고발한다는 겁니까? 강제로 못 팔게 됐다고 화풀이하는 겁니까?”복이 삼촌은 이미 벌금도 물었고 올해 농사도 망쳤다. 그 모든 게 다 자기 선택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들을 부추겨 함께 난리를 치려 했다.사정을 꿰뚫어본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곡식을 점검했다. 지금 팔면 큰돈은 못 벌어도 헛수고는 면할 수 있을 터.끝내 깨닫지 못한 소수만이 복이 삼촌 곁에 남았다.“복이 삼촌, 그럼 이제 어찌 합니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7화

    “그건 네가 그들보다 잘 살고 있기 때문이야.”단낭은 그 말의 뜻을 단번에 알아들었다.“그럼 더 잘 살아야겠습니다. 아주 잘 살아서 숨넘어가게 만들어야겠어요.”“그래야지.”아람은 복동이를 받아안았다.“그런 인간들 때문에 식욕까지 망칠 필요는 없다. 난 아직도 생선살 죽을 기다리고 있거든.”단낭은 아람이 자신을 달래려 일부러 저렇게 말해준다는 걸 알고 있었다.단 씨 집안일로 더는 아람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단비영이 해결하지 못하면 그땐 자신이 단비영을 해결하면 될 일이다. 자기 집안 일로도 모자라 이제는 상단 마님 집안까지 끌어들이고 있으니 말이다.단낭이 남편과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단비영은 주종현과 함께 건주로 떠났다.무슨 일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녹봉이 두 냥이나 올랐다.기뻐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 단 씨 집안이 더더욱 단비영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단 노파는 단비영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집 근처에 올 담은 없었기에 길에서 몇 차례 단낭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단낭은 그때마다 매몰차게 뿌리쳤다.아무리 험한 말을 퍼붓고 화이시키겠다고 협박해도 단낭은 더 단단해질 뿐이었다.그녀의 태도에 단 노파는 분통이 터져 허벅지를 쿵쿵 내리쳤다.깊은 가을이 지나자 날이 부쩍 쌀쌀해졌고 아이들은 눈에 띄게 훌쩍 자라 있었다.아람 상단의 곡물 창고는 가득 찼다. 버티며 팔지 않던 농가들은 곡가가 내려가고 나서야 팔지 못한 것을 깨닫고 뒤늦게 허둥대기 시작했다.아설이 이 소식을 전하자 몇 달 동안 참아왔던 아람은 마침내 속이 후련해졌다.“여인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더니.”아람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냥 네가 알아서 하거라. 지금까지 전부 네가 결정했잖아.”정현에 머문 지 반 년이 넘은 아설은 어느새 제법 큰 상단 주인다운 기세를 갖추고 있었다. 석 포두가 농민들을 데리고 찾아왔을 때, 아설은 단호하게 문전박대를 했다. 예전에 차라리 풀어버리겠다고 했던 쌀을 이제 와서 사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6화

    “형님, 이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아직 아이 하나 제대로 못 달래시네요. 제가 할게요. 저는 한 번에 둘이나 낳았거든요.”단낭은 왕수연이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가 손을 뻗어 아이를 빼앗으려 들자 단낭은 깜짝 놀라 몸을 틀어 아이를 안은 채 물러섰다.“왜 여기 온 것입니까!”“제가 왜 왔냐고요?”왕수연이 콧방귀를 뀌었다.“형님께서는 몰래 큰돈을 벌고 있으면서 혼자만 꿀꺽하시는 겁니까?”그녀는 목을 길게 빼고 안쪽을 훑어보았다.“상단 마님은 어디 계십니까?”단낭은 복동이를 달래며 오늘따라 새 옷감으로 단장한 올케를 곁눈질해 보았다. 곧 그녀의 입가에 조소가 스쳤다.“아까 상단 마님께서 직접 문을 열어주셨는데 못 봤습니까?”문밖에서는 아직도 단 노파의 귀신 울음 같은 고함이 들려왔다.왕수연의 얼굴이 확 굳었다.“큰일 났네!”그녀는 몸을 돌려 급히 문쪽으로 달려갔다.단 노파는 평생 거친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힘이 얼마나 센지 아람 같은 여자가 떼어낼 수 있을 리 없었다.“이 손 놓으세요! 안 그러면 사람을 부를 겁니까! 감히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이닥치는 겁니까?”아람은 이런 몰상식한 노파를 처음 봤다.“네가 먼저 날 밀쳤잖아. 오늘은 주인댁에 확실히 보여줄 거다! 이렇게 악독한 사람이 어떻게 여기서 일한단 말이냐!”단 노파는 아람의 다리를 악착같이 끌어안았다.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내리면 자기도 삼천 문을 벌 수 있을 테니까. 그 생각에 고함은 더 커져만 갔다.맞은편 집에서 사람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가 누군가에게 봉변을 당한 줄 안 것이다.“아람 마님, 강세오 대인을 불러드릴까요?”그때 왕수연이 허겁지겁 뛰어나왔다.“어머니! 어서 놓으세요!”그녀는 노파를 끌어당기며 급히 말했다.“이분이 바로 상단 마님입니다.”단 노파는 그제야 손을 풀었다.“아, 아아… 상단 마님이셨군요.”순식간에 얼굴에 웃음을 덕지덕지 붙였다.“이 늙은이가 눈이 어두워 미처 못 알아봤습니다.”아람은 얼굴을 굳힌 채 두 사람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425화

    단비영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게다가 단낭이 얼마를 받든 그건 전부 그 사람 능력입니다.”그때, 문밖에서 냉소 섞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줄 알았더니 애나 보는 거였습니까? 그게 무슨 능력입니까? 여인이라면 다 하는 건데요.”단비영의 제수, 왕수연과 그녀의 어머니가 안으로 들어섰다.왕 노파가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전 또 큰아주버님께서 무슨 큰 재주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결국 자기 마누라한테 다 몰아준 거였네요.”그녀는 딸을 돌아보며 말했다.“수연아, 팔백 문이면 됐다. 그런 고생은 하지 말거라.”단비영은 예전엔 그나마 말이 통하던 어머니마저 이렇게 변한 것이 믿기지 않았다.“값은 마님께서 정하신 것이고 사람을 뽑는 것도 그쪽입니다. 지금 여기서 저를 몰아붙여 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상단 주인께서 분명히 말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잡일꾼 하나, 녹봉은 팔백 문뿐이라고요. 내일 나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뽑겠답니다.”그는 더 이상 누구의 반응도 보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단낭은 아람을 마주하기가 몹시 민망했다. 남편은 효심만 앞서고 비바람 맞으며 번 돈은 고스란히 둘째 집안의 입으로 들어가니 말이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고작 집을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잊어버린 것일까?엉망진창인 집안 사정에 마님까지 끌어들이다니. 자기 아우의 성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자칫 사람을 다치게라도 하면 자신이 무슨 낯으로 그녀를 본단 말인가?아람은 단낭이 이틀째 웃지 않는 것을 보고 그녀가 아직도 그 일로 속을 앓고 있음을 알았다.“아직도 화났느냐? 그만 생각하거라. 잡일꾼치곤 팔백 문이 좀 센 건 맞지만 네가 삼천 문인데 제수는 팔백 문이잖아. 게다가 이틀이나 지났다. 그러니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단낭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눈가에 서운함이 어렸다.“송구합니다. 괜히 이런 일로 폐를 끼쳐서요.”아람은 단낭의 품에서 복동이를 받아 안았다.“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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