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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Author: 서은월
강시아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모두 달라져 있었다. 그녀도 한때 세자의 침소에 오르고 아이를 품음으로써 겨우 첩이 된 게 아니었나?

주온청이 다시 입을 열려 했으나 주은혜가 억지로 팔을 끌며 나섰다.

“언니, 어서 갑시다! 언니가 끼어든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들 자매는 모두 서녀였다. 셋째가 송하윤을 두둔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실부인의 눈 밖에 났는데 이제 또 명옥의 일까지 거든다면...

그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들의 혼사도 정실부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주종현 또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인파 뒤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강시아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 손을 높이 들어 명옥의 뺨을 후려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통함이 가득했다.

“나는 너를 자매로 여겼다. 항상 너를 생각했었는데 감히 이런 짓이나 저지르다니! 나는 속여도 좋다. 헌데 너를 좋아하는 연아에게는 부끄럽지도 않으냐!”

명옥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던졌다. 이게 정말 예전의 겁 많고 소심하던 강시아란 말인가.

강시아는 곧장 무릎을 꿇어 주종현에게 애절히 호소했다.

“명옥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서방님께서 그녀가 첩실을 섬긴 지난 삼사년의 정을 생각하시어 한 번만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주종현의 눈에는 오히려 더 큰 분노가 치솟았다.

“네가 나더러 그녀를 살려 달라고?”

“그렇습니다.”

강시아는 곧장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러다 이내 눈가가 젖으며 눈물을 흘렸다.

“명옥은 본디 작은 마님께서 직접 뽑아 제 곁에 붙인 아이입니다. 저를 시중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억울했을 터인데…”

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명옥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강시아를 밀쳐 넘어뜨렸다.

“네가 뭔데! 그런 가식적인 말은 필요 없다!”

강시아는 놀란 듯 두 눈이 커졌다. 그녀의 표정은 믿기지 않는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명옥은 이를 악물고 독기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

“네가 뭐라고! 고작 세탁방에서 일했던 계집 따위가... 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주종현이 발길질로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그 순간, 강시아는 눈물이 멈출 뻔했다. 늘 차갑고 냉정하기만 했던 그가 오늘처럼 분노를 터트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게 누구 없느냐!”

“여기 있습니다!”

총관이 땀을 훔치며 종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명옥은 입이 막힌 채 억지로 끌려나갔다. 주종현이 몸을 굽혀 강시아를 번쩍 안아 올리자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팔꿈치가 긁혀 피가 배어 나왔던 것이다. 그녀는 낮은 침상에 조심스레 눕혀졌다. 그 위의 작은 탁자에는 아직 덮이지 않은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만 참거라.”

주종현이 그녀를 흘깃 보았을 때, 소매가 걷힌 팔 안쪽에 붉은 상처 자국이 또렷이 드러났다.

강시아는 이미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몸이라, 이런 자잘한 상처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아픔이 아니라 연민이었다. 강시아는 입술을 깨물며 나직하게 말했다.

“첩… 첩이 스스로 돌아가 약을 바르겠습니다.”

“움직이지 말거라.”

주종현은 단단히 그녀의 팔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 앞을 가로질러 작은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크고 작은 약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연위영의 도통(都统:고위 군사 및 행정 관직)이라 훈련장에서 부상을 입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니 그의 방에는 상비약이 늘 구비되어 있었다.

순간,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흘러 지나갔다. 강시아는 멀쩡한 한 손으로 침상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이 방은 예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였다. 자신이 분가하여 따로 지내게 된 뒤로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았던 곳. 늘 그가 그녀의 작은 뜰을 찾아오곤 했었다.

명옥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본래 분명 세탁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계집이었다. 그러다 상 상궁에게 자수를 배우고 난 후 비로소 수방에 들어가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자의 얼굴을 본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처지였다.

만약 그날, 새로 지은 옷을 들고 왔을 때 세자가 술에 취해 실수하지 않았다면…

명옥이 품은 불만은 그럴 법했다. 세자 댁에서 곁을 모시던 하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세탁방 계집인 그녀가 먼저 기회를 거머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제 사사로운 욕심으로 그녀의 아이까지 해치려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디흰 가루가 상처 위로 뿌려졌다. 싸늘한 자극에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강시아는 늦게나마 낮게 신음을 흘렸다.

“읏…”

“이제야 아픈 줄 아는구나. 그러니 왜 공연히 남의 일에 끼어든 것이냐.”

주종현은 여전히 냉담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그가 자신의 부상에 분노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강시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세자 저하, 명옥은 오랫동안 저와 연아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그의 굳은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너는 참 마음이 곱구나.”

“첩은 연아의 어미로서, 몸도 재산도 가진 것이 없으니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 그저 한 줌의 선한 마음뿐입니다.”

주종현은 몸에 힘이 다 빠진듯, 끝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지나친 선의는 반드시 화를 부르는 법이다. 연아는 나의 딸이기도 하니 그 아이의 앞날은 범상치 않을 것이다.”

강시아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래도 연아에게는 아버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아이는 안전하게 클 것입니다.”

주종현은 두눈 가득 자신만을 비추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옳다. 내가 아이를 평생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너 또한... 평생 지켜 주겠다.”

강시아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으나 그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눈빛 깊숙이 증오가 스쳤다. 지난 생애, 연아는 송하윤과 함께 그의 뜰에서 지냈다.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한 번도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그가 말하는 보호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손이 허리에서 위로 미끄러져 내려오자, 강시아의 몸이 번개처럼 침상에서 튀어 올랐다.

“아악!”

주종현은 턱을 감싸 쥔 채 허리를 굽혔다. 정수리를 감싸 쥔 강시아의 눈가에 눈물이 솟구쳤다.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황급히 말을 내뱉었다.

“첩, 달거리 중이라!”

주종현은 얼굴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몸이 불편하면 일찍이 쉬면 될 것을, 한밤중에 어딜 어슬렁거린단 말이냐!”

그는 소매를 휙 휘두르며 곁방으로 사라졌다. 강시아는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져 내실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와 그녀에게 수발을 들라 하다니.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내일이면, 부내에는 반드시 소문이 퍼질 것이다. 세자가 첩을 위해 분노를 터트렸고 침소를 넘보려 한 시녀를 발매했다는 소문으로 말이다.

그녀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송하윤. 지난 생에는 내가 지나치게 고분고분했지. 이번 생에는 과연 네가 얼마나 참고 견딜 수 있는지 보자.’

설강은 세자가 강시아를 안고 데려가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몸을 돌려 작은 뜰로 돌아갔다. 좋은 구경은 이미 끝났고 이번 일로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강시아는 분명 세자의 마음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정실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첩들도 들여오겠지.

설강은 스스로 다짐했다. 장우는 비록 가난하나 재능이 빼어나고 사리에 밝은 사내이니, 차라리 가난한 집의 아내가 될지언정 부귀한 집의 첩은 되지 않으리라고!

이튿날, 강시아는 일부러 늦잠을 잤다.

그리고 작은 뜰로 돌아왔을 때, 연아는 회랑 난간에 앉아 턱을 괴고 중얼거리며 멍하니 있었다가, 그녀를 보는 순간 눈이 반짝 빛났다.

“어머니!”

포탄처럼 뛰어든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이고, 내 새끼.”

강시아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아이를 받아안았다.

“어머니, 연아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침에도, 저녁에도, 늘 생각했습니다!”

강시아는 눈가가 휘어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나, 누굴 닮아 입이 이리도 달콤할까. 어미가 뽀뽀해 주어야겠구나!”

연아는 어머니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자랑스럽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설강 언니가 가르쳐 주었어요.”

그러고는 무언가 떠올린 듯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앗, 설강 언니가 말하지 말랬는데…”

강시아는 아이의 귀여운 얼굴을 내려다보다 불쑥 나온 작은 배를 손끝으로 톡 찔렀다.

“그럼, 알겠다. 어미는 방금 네가 한 말을 다 잊어버리마.”

설강은 말소리를 듣고 곁방에서 나왔다.

“마님, 고 유모께서 다녀갔사옵니다. 큰 마님께서 마님을 부르셨사옵니다.”

그러곤 무언가 말하려다 머뭇거리며 입만 달싹였다.

강시아는 딸을 내려놓으며 모르는 척 웃음을 띠었다.

“곧 가겠다고 전하거라. 마침 서수의 머리 부분을 다 수놓았으니 큰 마님께 보여 드려야겠구나.”

설강은 그녀가 수틀에서 자수를 꺼내드는 것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문가에서 그녀를 불러 세웠다.

“마님.”

강시아가 돌아보았다.

“응?”

설강은 잠시 망설이다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오늘 송 가의 아가씨께서 오셨다고 하옵니다. 그녀는…”

설강은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힘주어 말을 이었다.

“송 아가씨는 앙갚음을 잊지 않는 성정이라 하옵니다. 그러니 부디 마님께서도 조심하시기를…”

강시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알겠다. 고맙구나, 설강.”

지난 생에, 그녀와 설강은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그저 송하윤이 시집온 뒤, 설강이 첩으로 올려져 그녀와 함께 열흘 남짓 한 집에 살았을 뿐이었다. 그 시절 설강은 매일 우울했기에, 웃는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설강이 죽던 날,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외간 남자와 밀회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설강이 첩이 된 것은 순전히 큰 마님의 결정이었다. 세자는 그녀의 방에 발을 들인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결국 송하윤은 질투로 그녀의 목숨까지 빼앗은 것이었다.

큰 마님의 뜰에는 새로 파낸 연못이 있었다.

그 안에는 몇 마리의 비단잉어가 헤엄치고 있었고 사람이 지나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몰려들었다. 정청은 널찍했고 옆에는 작은 불당이 붙어 있었다.

그 시각, 불당에서는 경전 읊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송하윤이 큰 마님을 모시며 함께 염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 앞에 이른 강시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큰 마님은 옥관음상 앞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읊고 있었고 그 뒤에 선 송하윤은 몰래 하품을 삼키고 있었다.

고 유모는 안으로 들어가 알현을 고했다. 그러나 큰 마님의 염불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고 유모는는 이내 눈치챘다. 이는 곧 강시아의 기세를 꺾으려는 큰 마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녀의 눈에는 강시아가 예전과 다름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큰 마님보다 더한 것은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은 송 아가씨의 오만한 기세였다. 지금부터 세자의 집안을 주관하려 드는데, 앞으로 강시아의 나날이 평탄치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강시아는 다른 시녀와 함께 문가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빛은 고요했고 파문조차 일지 않았다.

고 유모는 왠지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세자의 곁에 있는 유일한 첩이면서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늘 잊혀지던 인물.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다름없이 차분해 보이면서도 그 작은 자리에서 은근히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목탁 소리가 멈췄다.

“들어오너라. 아니면 정말 내 뜰 앞에 서 있는 연화동자가 되려는 것이냐.”

강시아는 수놓은 작품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들어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첩, 큰 마님께 평안을 드립니다. 이는 지난 며칠 동안 첩이 정성껏 수놓은….”

큰 마님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가져가 다시 수놓거라.”

강시아는 당혹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찌하여…”

송하윤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 눈에 멸시를 담아 그녀의 작품을 흘끗 바라보았다.

“고 조모,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저잣거리 자수방의 수녀들이야말로 몸과 마음이 모두 청결한 아가씨들입니다. 누가 이런 성스러운 예물을 만들기에 더 적합하겠습니까?”

강시아의 미간이 좁혀지며 물었다.

“송 아가씨, 그 말은 곧 국공부가 청백가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제가 언제 국공부가 청백하지 않다 했습니까!”

송하윤은 거의 비명을 지를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말한 건 당신입니다. 강 마님!”

강시아는 일부러 모른 척하며 되물었다.

“제가요?”

지난 생에, 그녀가 본래 수놓았던 것은 만수도였다. 그러나 불당에 올리는 날, 송하윤의 시녀 소영이 향불을 쏟아뜨려 뜨겁게 튀어 오른 향재가 수면을 태워 버렸다. 송하윤은 그 틈을 타 더 복잡한 서수헌도 도안을 들고나와 그녀를 압박했다. 그리하여 강시아는 꼬박 칠 일을 밤낮없이 바늘에 매달려, 태후의 생신 전날 전까지 간신히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생에는 겨우 그녀가 주종현의 뜰에 하룻밤 묵었을 뿐인데, 송하윤이 참지 못하고 벌써 뛰쳐나왔다.

송하윤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태후 마마의 수연에 바칠 예물을 두고 강 마님은 마음을 맑히고 몸을 정갈히 하지 못해 오히려 예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고 조모 저에게 더 좋은 도안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제 골몰하며 생각해낸 도안입니다!”

그녀의 시선은 강시아가 들고 있는 자수 위를 경멸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것은, 그녀가 큰돈을 들여 비단방에서 사 온 도안이었다.

본래는 강시아로 하여금 지금 수놓고 있는 도안을 전부 완성하게 한 뒤 그것을 망쳐 버리고 이 도안을 들고나와 그녀를 곤경에 빠뜨릴 계획이었다.

만약 저 천한 년이 세자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이런 비열한 수법도 쓰지 않았을 것을.

그렇다면 이제 그녀에게 고생거리를 주어 세자를 유혹할 겨를도 없게 만들 것이다!

“하윤아, 네가 어찌 시아의 도안을 들고 왔느냐?”

큰 마님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무, 무슨…?”

송하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강시아가 이내 자신의 자수를 펼쳐 보였다.

“비록 송 아가씨께서 어디서 첩의 도안을 얻으셨는지는 알지 못하나 송 아가씨께서 마음에 들어 하셨다니 첩으로서는 더없는 기쁨입니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얼어붙은 송하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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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강은 약을 다 먹여 안정을 시킨 뒤에야 비로소 연아를 앞으로 내보냈다. 작은 아이는 곧장 어미의 품으로 뛰어들려 했으나 아버지의 팔에 의해 가로막혔다. 아이는 안달 난 채로 두 다리를 허공에서 급히 버둥거렸다.그러자 주종현이 단호하게 말했다.“너희 어미는 몸이 아직 성치 않으니 조심해야 한다.”연아는 울상을 지으며 올려다보았다. 벌써 오랜 세월 어미의 얼굴을 보지 못한 터라 억울함이 눈망울에 가득 담겨 있었다. 주종현은 딸을 품에 안아 침상 곁에 눕히며 이르렀다.“여기서만 조용히 머물거라.”아이는 감히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 대신 토실토실한 작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가락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연아는 어머니가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강시아는 두 팔로 딸을 꼭 끌어안아 여린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다행이구나. 그동안 누구도 널 학대하지 않았구나.”그 지난 나날 속에서 그녀는 자주 아득한 환영에 시달렸다. 때로는 아직 초주에서 소녀였던 시절로, 때로는 전생에서 다시금 죽음을 맞이하던 시절로. 마치 아직도 연아가 송하윤의 손아귀에서 고통받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지금, 아이의 부드럽고 따뜻한 몸이 품 안에 있는 순간에야 그녀는 비로소 실감했다.아직 늦지 않았음을. 아직 살아갈 길이 남아 있음을 말이다. 연아 또한 태어나서 이토록 오랫동안 어미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러니, 간신히 만난 지금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싫어, 싫어!”하 유모가 품에 안아 데려가려 하자 작은 아이는 두 손으로 이불을 움켜쥐고 결코 놓으려 하지 않았다. 강시아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으나 그래도 위험 속에 딸을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연아, 얌전히 기다리고 있거라. 며칠만 지나면 어미가 다시 널 데리러 갈게. 알겠지?”“싫습니다!”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주종현은 딸의 머리칼을 쓰다듬고는 품에 안아 들어 올렸다.“연아, 네가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97화

    처방전에는 태를 안정시키는 약재가 몇 가지나 들어 있었다. 남들은 알지 못하더라도 그녀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그 사실을 입 밖에 내고 나서야 상 유모는 부랴부랴 입을 틀어막았다. 세자조차도 이를 감추려 애쓰는데 자신이 여기서 창호지를 찢듯 폭로하다니. 이건 죽을 길을 스스로 찾는 짓이 아닌가!그녀는 움츠린 목을 움찔거리며 사방을 살폈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안심한 듯, 발걸음을 재촉해 자리를 떴다.“위심, 고작 이런 일에 우리가 둘씩이나 달라붙어야 하느냐?”멀지 않은 지붕 위에는 위심 외에도 한 사람이 더 숨어 있었다.위심이 대꾸조차 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계속 추적하려는 순간, 저 멀리 큰 나무 뒤에서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그 사람은 바로 국공부에 오래 기거해 온 막료였다. 그는 국공 어르신의 신임을 깊이 얻고 있지만, 말수가 매우 적어 위심은 그저 그를 밥값이나 아슬아슬하게 챙기는 자쯤으로 여겼다.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바로 송이당이 몰래 심어둔 심복이라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국공 어르신 곁에까지 들러붙어 있는 것을 보면 제법 수완이 있는 자일 것이다.다행인 건 세자와 국공 어르신은 본래 한길이 아니어서 집안에서는 결코 정사를 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위심은 옆에 있던 이를 툭 치며 속삭였다.“너는 설강을 따라붙어라. 난 저 자를 쫓겠다.”상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이미 그림자처럼 사라져 버렸다.“도대체 의리라는 게 있는 것이냐! 공로는 네가 독차지하면 난 세자 앞에서 무슨 낯으로 서라는 것이냐!”분통이 치밀었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그저 이를 악물고 설강의 뒤를 밟을 수밖에. 혹여 또 다른 심복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위심은 만천보다 무예가 뛰어나지 않았으나 경공만큼은 누구보다 앞섰다.그러므로 늘 이런 미행의 일은 그의 차지가 되었고, 우연히 공을 세우는 일도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세자 곁에 오래 머무르게 된 것이었다.그는 그림자처럼 발자국 소리 하나 없이 지붕 위를 고양이처럼 스쳐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96화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이 없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모든 회상은 전부 여섯 살 이후, 오라비와 아버지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던 나날들 뿐이었다.아버지는 학식이 깊은 만큼 몸도 무척이나 허약했다. 마을 아이들이 모두 그의 무릎 앞에 앉아 글을 배우며 내는 푼돈은 고스란히 약 항아리에 들어갔지만 끝내 그의 목숨을 건져내진 못했다.오라비는 어디를 가든 늘 그녀를 업고 다녔고 먹을 것이 있으면 언제나 먼저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설령 살아가는 일이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그녀는 그것이 괴롭다고 느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강시아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품어 온 그 바람이 이제는 뿌리째 돋아나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그녀는 벌떡 일어나 문 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문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서방님을 뵙고 싶습니다! 서방님을 만나게 해 주세요!”바깥에서는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순식간에 눈물이 범람하듯 터져 나와 그녀는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른 채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그러다 문가에서 갑자기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밀리자 황금빛 저녁 햇살이 방 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주종현의 눈에 비친 강시아는 속옷만 걸친 채 맨발로 바닥에 웅크려 있었다. 피부는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온몸은 예전보다 훨씬 더 앙상해져 있었다. 손목에는 여전히 무거운 팔찌가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헐렁하게 매달려 꼭 잘못 산 물건처럼 보였다.위심은 말없이 물러나 문밖을 지켰다.주종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저들이 네게 밥을 주지 않았단 말이냐?”한참 만에 나직한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첩은 감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먹는다면… 다시는 연아를 볼 수 없을까 두려워서요.”“그럴 리 없다.”주종현은 낮게 한숨 같은 숨결을 흘렸다. 그는 몸을 굽혀 그녀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그 순간, 팔에 안긴 그녀의 몸이 눈에 띄게 가벼워졌음을 뚜렷이 느낄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95화

    송하윤은 이미 이성이 흐려져 있었다. 그런데 영국공부의 대문 모퉁이를 돌기 직전 그녀의 마차가 가로막혀 버렸고, 잠시 후 차가운 바람과 함께 차일이 거칠게 젖혀졌다.송이당이 분노를 감추지 못한 얼굴로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송하윤, 내가 한 말이 우습더냐!”송하윤은 그제야 두려움에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오라버니, 저….”송이당의 눈 밑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이미 이틀 밤낮을 한숨도 자지 못했고, 조정 일만으로도 산더미 같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이제 여동생마저 이렇듯 철없이 사고를 내려고 드니 그의 인내는 이미 바닥에 닿아 있었다.송하윤은 태어나 단 한 번도 이렇게 무력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오라버니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오라버니, 저는 정말 더는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늘 느껴집니다. 주종현은 저에게서 멀리 달아나고 있어요. 그의 몸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매여 있는데 그 끈의 다른 끝은 강시아에게 있고, 그녀가 그를 점점 더 멀리 끌고 가는 것 같습니다.”송이당은 울컥 붉어진 여동생의 눈동자를 오래 바라보다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하윤아, 설령 오늘 당장 강시아가 죽는다 한들, 훗날은 어찌할 것이냐? 너는 송 가의 딸이다. 주종현의 모친은 원래부터 우리 집안과 화합하지 못했다. 네가 들어간 뒤, 그가 다시 다른 여인을 들이지 않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느냐? 지금조차 참지 못하고 안달나 하는데, 훗날 시모의 집요한 압박을 마주한다면 너는 시모의 목도 칠 것이냐?”송하윤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렇게 먼 앞날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바라는 건 눈앞의 가시를 뽑아내는 것뿐이었다.“한데 아직 제가 문도 넘지 않았는데 강시아는 벌써 저와 어머니를 업신여기며 도발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식으로 들어간 뒤면 그녀 곁에는 조 씨가 있을 겁니다. 그때면 저는 진정 홀로 버려진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라버니, 강시아는 훗날 들어올 그 어떤 첩들과도 다릅니다. 그녀는 이미 아이까지 낳았고 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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