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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서은월
강시아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모두 달라져 있었다. 그녀도 한때 세자의 침소에 오르고 아이를 품음으로써 겨우 첩이 된 게 아니었나?

주온청이 다시 입을 열려 했으나 주은혜가 억지로 팔을 끌며 나섰다.

“언니, 어서 갑시다! 언니가 끼어든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들 자매는 모두 서녀였다. 셋째가 송하윤을 두둔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실부인의 눈 밖에 났는데 이제 또 명옥의 일까지 거든다면...

그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들의 혼사도 정실부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주종현 또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인파 뒤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강시아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 손을 높이 들어 명옥의 뺨을 후려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통함이 가득했다.

“나는 너를 자매로 여겼다. 항상 너를 생각했었는데 감히 이런 짓이나 저지르다니! 나는 속여도 좋다. 헌데 너를 좋아하는 연아에게는 부끄럽지도 않으냐!”

명옥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던졌다. 이게 정말 예전의 겁 많고 소심하던 강시아란 말인가.

강시아는 곧장 무릎을 꿇어 주종현에게 애절히 호소했다.

“명옥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서방님께서 그녀가 첩실을 섬긴 지난 삼사년의 정을 생각하시어 한 번만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주종현의 눈에는 오히려 더 큰 분노가 치솟았다.

“네가 나더러 그녀를 살려 달라고?”

“그렇습니다.”

강시아는 곧장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러다 이내 눈가가 젖으며 눈물을 흘렸다.

“명옥은 본디 작은 마님께서 직접 뽑아 제 곁에 붙인 아이입니다. 저를 시중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억울했을 터인데…”

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명옥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강시아를 밀쳐 넘어뜨렸다.

“네가 뭔데! 그런 가식적인 말은 필요 없다!”

강시아는 놀란 듯 두 눈이 커졌다. 그녀의 표정은 믿기지 않는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명옥은 이를 악물고 독기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

“네가 뭐라고! 고작 세탁방에서 일했던 계집 따위가... 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주종현이 발길질로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그 순간, 강시아는 눈물이 멈출 뻔했다. 늘 차갑고 냉정하기만 했던 그가 오늘처럼 분노를 터트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게 누구 없느냐!”

“여기 있습니다!”

총관이 땀을 훔치며 종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명옥은 입이 막힌 채 억지로 끌려나갔다. 주종현이 몸을 굽혀 강시아를 번쩍 안아 올리자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팔꿈치가 긁혀 피가 배어 나왔던 것이다. 그녀는 낮은 침상에 조심스레 눕혀졌다. 그 위의 작은 탁자에는 아직 덮이지 않은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만 참거라.”

주종현이 그녀를 흘깃 보았을 때, 소매가 걷힌 팔 안쪽에 붉은 상처 자국이 또렷이 드러났다.

강시아는 이미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몸이라, 이런 자잘한 상처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아픔이 아니라 연민이었다. 강시아는 입술을 깨물며 나직하게 말했다.

“첩… 첩이 스스로 돌아가 약을 바르겠습니다.”

“움직이지 말거라.”

주종현은 단단히 그녀의 팔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 앞을 가로질러 작은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크고 작은 약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연위영의 도통(都统:고위 군사 및 행정 관직)이라 훈련장에서 부상을 입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니 그의 방에는 상비약이 늘 구비되어 있었다.

순간,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흘러 지나갔다. 강시아는 멀쩡한 한 손으로 침상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이 방은 예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였다. 자신이 분가하여 따로 지내게 된 뒤로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았던 곳. 늘 그가 그녀의 작은 뜰을 찾아오곤 했었다.

명옥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본래 분명 세탁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계집이었다. 그러다 상 상궁에게 자수를 배우고 난 후 비로소 수방에 들어가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자의 얼굴을 본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처지였다.

만약 그날, 새로 지은 옷을 들고 왔을 때 세자가 술에 취해 실수하지 않았다면…

명옥이 품은 불만은 그럴 법했다. 세자 댁에서 곁을 모시던 하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세탁방 계집인 그녀가 먼저 기회를 거머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제 사사로운 욕심으로 그녀의 아이까지 해치려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디흰 가루가 상처 위로 뿌려졌다. 싸늘한 자극에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강시아는 늦게나마 낮게 신음을 흘렸다.

“읏…”

“이제야 아픈 줄 아는구나. 그러니 왜 공연히 남의 일에 끼어든 것이냐.”

주종현은 여전히 냉담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그가 자신의 부상에 분노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강시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세자 저하, 명옥은 오랫동안 저와 연아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그의 굳은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너는 참 마음이 곱구나.”

“첩은 연아의 어미로서, 몸도 재산도 가진 것이 없으니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 그저 한 줌의 선한 마음뿐입니다.”

주종현은 몸에 힘이 다 빠진듯, 끝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지나친 선의는 반드시 화를 부르는 법이다. 연아는 나의 딸이기도 하니 그 아이의 앞날은 범상치 않을 것이다.”

강시아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래도 연아에게는 아버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아이는 안전하게 클 것입니다.”

주종현은 두눈 가득 자신만을 비추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옳다. 내가 아이를 평생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너 또한... 평생 지켜 주겠다.”

강시아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으나 그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눈빛 깊숙이 증오가 스쳤다. 지난 생애, 연아는 송하윤과 함께 그의 뜰에서 지냈다.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한 번도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그가 말하는 보호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손이 허리에서 위로 미끄러져 내려오자, 강시아의 몸이 번개처럼 침상에서 튀어 올랐다.

“아악!”

주종현은 턱을 감싸 쥔 채 허리를 굽혔다. 정수리를 감싸 쥔 강시아의 눈가에 눈물이 솟구쳤다.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황급히 말을 내뱉었다.

“첩, 달거리 중이라!”

주종현은 얼굴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몸이 불편하면 일찍이 쉬면 될 것을, 한밤중에 어딜 어슬렁거린단 말이냐!”

그는 소매를 휙 휘두르며 곁방으로 사라졌다. 강시아는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져 내실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와 그녀에게 수발을 들라 하다니.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내일이면, 부내에는 반드시 소문이 퍼질 것이다. 세자가 첩을 위해 분노를 터트렸고 침소를 넘보려 한 시녀를 발매했다는 소문으로 말이다.

그녀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송하윤. 지난 생에는 내가 지나치게 고분고분했지. 이번 생에는 과연 네가 얼마나 참고 견딜 수 있는지 보자.’

설강은 세자가 강시아를 안고 데려가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몸을 돌려 작은 뜰로 돌아갔다. 좋은 구경은 이미 끝났고 이번 일로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강시아는 분명 세자의 마음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정실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첩들도 들여오겠지.

설강은 스스로 다짐했다. 장우는 비록 가난하나 재능이 빼어나고 사리에 밝은 사내이니, 차라리 가난한 집의 아내가 될지언정 부귀한 집의 첩은 되지 않으리라고!

이튿날, 강시아는 일부러 늦잠을 잤다.

그리고 작은 뜰로 돌아왔을 때, 연아는 회랑 난간에 앉아 턱을 괴고 중얼거리며 멍하니 있었다가, 그녀를 보는 순간 눈이 반짝 빛났다.

“어머니!”

포탄처럼 뛰어든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이고, 내 새끼.”

강시아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아이를 받아안았다.

“어머니, 연아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침에도, 저녁에도, 늘 생각했습니다!”

강시아는 눈가가 휘어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나, 누굴 닮아 입이 이리도 달콤할까. 어미가 뽀뽀해 주어야겠구나!”

연아는 어머니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자랑스럽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설강 언니가 가르쳐 주었어요.”

그러고는 무언가 떠올린 듯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앗, 설강 언니가 말하지 말랬는데…”

강시아는 아이의 귀여운 얼굴을 내려다보다 불쑥 나온 작은 배를 손끝으로 톡 찔렀다.

“그럼, 알겠다. 어미는 방금 네가 한 말을 다 잊어버리마.”

설강은 말소리를 듣고 곁방에서 나왔다.

“마님, 고 유모께서 다녀갔사옵니다. 큰 마님께서 마님을 부르셨사옵니다.”

그러곤 무언가 말하려다 머뭇거리며 입만 달싹였다.

강시아는 딸을 내려놓으며 모르는 척 웃음을 띠었다.

“곧 가겠다고 전하거라. 마침 서수의 머리 부분을 다 수놓았으니 큰 마님께 보여 드려야겠구나.”

설강은 그녀가 수틀에서 자수를 꺼내드는 것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문가에서 그녀를 불러 세웠다.

“마님.”

강시아가 돌아보았다.

“응?”

설강은 잠시 망설이다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오늘 송 가의 아가씨께서 오셨다고 하옵니다. 그녀는…”

설강은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힘주어 말을 이었다.

“송 아가씨는 앙갚음을 잊지 않는 성정이라 하옵니다. 그러니 부디 마님께서도 조심하시기를…”

강시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알겠다. 고맙구나, 설강.”

지난 생에, 그녀와 설강은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그저 송하윤이 시집온 뒤, 설강이 첩으로 올려져 그녀와 함께 열흘 남짓 한 집에 살았을 뿐이었다. 그 시절 설강은 매일 우울했기에, 웃는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설강이 죽던 날,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외간 남자와 밀회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설강이 첩이 된 것은 순전히 큰 마님의 결정이었다. 세자는 그녀의 방에 발을 들인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결국 송하윤은 질투로 그녀의 목숨까지 빼앗은 것이었다.

큰 마님의 뜰에는 새로 파낸 연못이 있었다.

그 안에는 몇 마리의 비단잉어가 헤엄치고 있었고 사람이 지나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몰려들었다. 정청은 널찍했고 옆에는 작은 불당이 붙어 있었다.

그 시각, 불당에서는 경전 읊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송하윤이 큰 마님을 모시며 함께 염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 앞에 이른 강시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큰 마님은 옥관음상 앞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읊고 있었고 그 뒤에 선 송하윤은 몰래 하품을 삼키고 있었다.

고 유모는 안으로 들어가 알현을 고했다. 그러나 큰 마님의 염불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고 유모는는 이내 눈치챘다. 이는 곧 강시아의 기세를 꺾으려는 큰 마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녀의 눈에는 강시아가 예전과 다름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큰 마님보다 더한 것은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은 송 아가씨의 오만한 기세였다. 지금부터 세자의 집안을 주관하려 드는데, 앞으로 강시아의 나날이 평탄치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강시아는 다른 시녀와 함께 문가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빛은 고요했고 파문조차 일지 않았다.

고 유모는 왠지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세자의 곁에 있는 유일한 첩이면서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늘 잊혀지던 인물.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다름없이 차분해 보이면서도 그 작은 자리에서 은근히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목탁 소리가 멈췄다.

“들어오너라. 아니면 정말 내 뜰 앞에 서 있는 연화동자가 되려는 것이냐.”

강시아는 수놓은 작품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들어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첩, 큰 마님께 평안을 드립니다. 이는 지난 며칠 동안 첩이 정성껏 수놓은….”

큰 마님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가져가 다시 수놓거라.”

강시아는 당혹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찌하여…”

송하윤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 눈에 멸시를 담아 그녀의 작품을 흘끗 바라보았다.

“고 조모,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저잣거리 자수방의 수녀들이야말로 몸과 마음이 모두 청결한 아가씨들입니다. 누가 이런 성스러운 예물을 만들기에 더 적합하겠습니까?”

강시아의 미간이 좁혀지며 물었다.

“송 아가씨, 그 말은 곧 국공부가 청백가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제가 언제 국공부가 청백하지 않다 했습니까!”

송하윤은 거의 비명을 지를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말한 건 당신입니다. 강 마님!”

강시아는 일부러 모른 척하며 되물었다.

“제가요?”

지난 생에, 그녀가 본래 수놓았던 것은 만수도였다. 그러나 불당에 올리는 날, 송하윤의 시녀 소영이 향불을 쏟아뜨려 뜨겁게 튀어 오른 향재가 수면을 태워 버렸다. 송하윤은 그 틈을 타 더 복잡한 서수헌도 도안을 들고나와 그녀를 압박했다. 그리하여 강시아는 꼬박 칠 일을 밤낮없이 바늘에 매달려, 태후의 생신 전날 전까지 간신히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생에는 겨우 그녀가 주종현의 뜰에 하룻밤 묵었을 뿐인데, 송하윤이 참지 못하고 벌써 뛰쳐나왔다.

송하윤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태후 마마의 수연에 바칠 예물을 두고 강 마님은 마음을 맑히고 몸을 정갈히 하지 못해 오히려 예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고 조모 저에게 더 좋은 도안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제 골몰하며 생각해낸 도안입니다!”

그녀의 시선은 강시아가 들고 있는 자수 위를 경멸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것은, 그녀가 큰돈을 들여 비단방에서 사 온 도안이었다.

본래는 강시아로 하여금 지금 수놓고 있는 도안을 전부 완성하게 한 뒤 그것을 망쳐 버리고 이 도안을 들고나와 그녀를 곤경에 빠뜨릴 계획이었다.

만약 저 천한 년이 세자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이런 비열한 수법도 쓰지 않았을 것을.

그렇다면 이제 그녀에게 고생거리를 주어 세자를 유혹할 겨를도 없게 만들 것이다!

“하윤아, 네가 어찌 시아의 도안을 들고 왔느냐?”

큰 마님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무, 무슨…?”

송하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강시아가 이내 자신의 자수를 펼쳐 보였다.

“비록 송 아가씨께서 어디서 첩의 도안을 얻으셨는지는 알지 못하나 송 아가씨께서 마음에 들어 하셨다니 첩으로서는 더없는 기쁨입니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얼어붙은 송하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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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mmentare (1)
goodnovel comment avatar
강보연
지가 술취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데 임신시켜놓고 안챙기고. 지딸은 좀 아끼는듯 싶더니. 정실 눈치본거냐고. 정실이 키우게 하고선 애가 말라가는데도 신경안쓰고 학대받는데도 모르고. 뭐 정실이 뭐라고 거짓말을 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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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멍하니 침상 위 장막을 바라볼 뿐이었다.그렇게 하루를 통째로 보내는 날이 다반사였다.저택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아버지와 어머니, 오라버니, 그리고 그녀. 하나도 늘지 않았고, 하나도 줄지 않은 네 식구.그러나 그 누구도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부모는 더더욱 서로를 외면한 채, 눈길 한 번 마주치는 것조차 아끼듯 지냈다.그들은 다시는 한 상에 앉아 밥을 먹지 않았다.아버지는 술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자주 혼자 서재에 틀어박혀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들이켰다.처음에는 그저 침묵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가 되뇌는 이름은 늘 하나였다.“경아... 경아...”그것은 노 마님, 노채경의 이름이었다.술에 젖은 쉰 목소리로 끝없는 후회와 그리움을 실은 채 그 이름은 차갑게 식은 송 가의 공기 속으로 흩어져 사라졌다.어머니는 회랑 아래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언제부터였을까. 희끗한 머리칼이 어느새 관자놀이에 내려앉아 겨울 서리처럼 엉겨 있었다.그녀의 눈은 이미 울 만큼 울어 더는 한 방울의 눈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아무 상관도 없는 낯선 이를 보는 것처럼 그저 텅 빈 채로 바라보고, 듣고 있을 뿐이었다.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술기운에 흐릿한 눈을 한 아버지 앞에 서서 십수 년간 가슴에 묻어 두었던 질문을 조용히 꺼내 들었다.“송문백. 그렇게 그 여자를 사랑하면서 그때 왜 저를 부인으로 맞이한 겁니까?”아버지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딘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녀가 누구인지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입을 벌렸지만 목 안에서 의미 없는 웅얼거림만 새어 나왔다.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어머니는 끝내 답을 듣지 못했다.그 다음 날 아침, 그는 우물에 몸을 던졌다.건져 올렸을 때는 이미 몸이 굳어 차갑게 식어있는 상태였다.어머니는 두 번째로 병이 터졌다.물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877화

    그 미소는 마치 바늘처럼 이미 곪아 터져 진물이 흐르던 어머니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그 순간, 어머니의 몸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아!”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탁자와 의자가 나뒹굴고 도자기가 산산이 깨져 바닥에 흩어졌다. 하녀들의 비명과 울음소리, 그리고 어머니의 광기 어린 절규가 뒤섞여 지붕을 들어 올릴 듯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송하윤은 이 갑작스러운 장면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어머니의 이런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노 마님에게 달려들었다. 손톱으로 긁고, 이로 물어뜯으며, 온몸의 힘을 다해 눈앞의 사람을 산 채로 찢어 버릴 듯 달려들었다.노 마님의 하녀들은 죽을힘을 다해 주인을 감쌌지만 어머니의 손에 붙잡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아버지도 당황했다. 달려들어 어머니를 떼어 놓으려 했지만 어머니는 그대로 그의 손목을 물어뜯었다.피가 쏟아져 내렸다.“미쳤구나! 이 미친 여자!”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아버지는 그대로 어머니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어머니는 낮게 신음하며 몸이 날아가듯 밀려나 다보각에 부딪혔다.청유 화병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모든 사람들이 겁에 질렸다.눈앞의 이 여인은 어디에도 그 단정하고 품위 있던 예부시랑 부인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일 뿐이었다.그때, 오라버니 송이당이 돌아왔다.어머니와 꼭 닮은 봉황 같은 눈매였지만 그 안에는 차갑게 식은 죽음 같은 정적만이 담겨 있었다.그는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인데 떠들썩하던 마당 전체가 보이지 않는 손에 목이 조인 것처럼 순식간에 고요해졌다.아버지는 피가 흐르는 손목을 움켜쥔 채, 수치와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외쳤다.“이당아, 잘 왔다! 네 어머니 좀 봐라, 저… 저건 완전히 미쳐 버렸어!”송이당의 시선이 주위를 한 번 훑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머물렀다.“여봐라.”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차가웠다.“대문을 봉해라.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876화

    그는 알지 못했다.송하윤이 남은 몇 푼의 은전을 털어 뒤뜰의 마부에게서 바꿔온 약을 그 찻잔 속에 섞어 넣었다는 것을.그 마부는 말했다. 그 약은 사나운 말을 다루기 위한 것으로, 그 뿌리를 끊어 다시는 번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사람에게 써도 결과는 같다고.아버지. 이 생에서 당신은 저와 오라버니를 제외하고는 다시는 자식을 얻지 못할 겁니다. 송 가의 모든 것은 오직 우리 남매의 것이어야 하니까요. 너무 원망하지는 마세요. 이건 당신이 우리에게 진 빚이니까.다음 날, 두 대의 마차가 송부의 측문을 빠져나왔다. 서로 정반대의 방향으로 갈라져 멀어졌다.아버지는 노 마님을 데리고 멀고 먼 하주로 향했고 오라버니는 여전히 백록서원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등주 외가로 돌아갔다.한때 웃음으로 가득하던 집은 산산이 흩어졌다.등주에서의 나날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혼수를 전당 잡히며 정성을 다해 그녀를 길렀다.송하윤은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어머니는 늘 가장 고운 머리모양을 손수 빚어 주었고 깊은 밤이면 희미한 촛불 아래에서 봄옷을 한 땀 한 땀 지어 주었다.하지만 그 사랑은 숨이 막힐 만큼 무거웠다.어머니는 그녀에게 지독할 만큼 엄격했다.거문고와 바둑, 글과 그림, 바느질과 자수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능숙해지기를 요구했다.조금이라도 게을러지면 기다리는 것은 어머니의 실망 어린 눈빛과 매서운 꾸짖음이었다.“하윤아, 기억하거라. 여자로 태어난 이상, 얼굴과 가문은 모두 덧없는 것일 뿐이다. 오직 자신의 재주와 수단만이 살아갈 바탕이 된다. 그러니 너는 져서는 안 된다. 너는 내 딸이다. 누구에게도 져서는 안 된다! 특히 그 천한 계집의 아이에게만은 절대 져서는 안 된단 말이다. 알겠느냐?”아버지에게 정말 다른 아이가 있는지조차 어머니는 알지 못했지만 송하윤은 그렇게 복잡하고도 숨 막히는 사랑 속에서 조금씩 자라났다.그리고 열네 살이 되던 해. 경성에서 기쁜 소식이 전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875화

    “송문백. 당신이 인의를 저버렸으니, 제가 의리를 지키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마세요.”아버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 것은 한순간의 후회였다. 그러나 그것은 곧 분노와 짜증에 잠식되었다.“이제 그만 좀 하지 못하겠느냐!”어머니는 몸을 돌렸다.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았다.그의 뒤에 숨어 눈물에 젖은 얼굴로 서 있는 노 마님 역시 다시는 돌아보지 않았다.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송 가의 대문을 나섰다.자신의 마차에는 오르지 않았다. 그저 두터운 고명복을 입은 채 어린 딸의 손을 이끌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대로 어도를 향해 걸어 나갔다.등문고를 칠 생각이었다. 억울함을 상소할 작정이었다.천하 사람들이 모두 보게 하겠다고. 당조 예부시랑 송문백이 어떻게 첩을 총애하고 본처를 내치며 정실을 미치게 만들었는지를.그 소식에 황제는 크게 노했다. 집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덕이 부족하다 꾸짖었다. 한 장의 조서가 내려와 그를 예부시랑 자리에서 끌어내려 하주 통판으로 좌천시켰다.경관에서 지방관으로, 정삼품에서 종육품으로.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멀었다.그렇게 송 가는 무너졌다.송부는 싸늘하게 식어버렸고 노 마님의 뜰만이 사람이 오가며 분주했다.송하윤은 보았다. 아버지가 회랑 아래 서서 직접 하인들을 지휘하며 귀한 서화와 부드러운 비단 이불을 하나하나 마차에 실어 올리는 모습을.그것들은 모두 하주로 가져갈 짐이었다.아버지는 노 마님을 데리고 하주로 부임할 작정이었다.그는 한 번도 그녀와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았다.마치 그들이야말로 이 집의 외인인 것처럼.어머니는 송하윤을 꼭 끌어안았다. 턱을 그녀의 머리 위에 얹은 채 부드럽게 말했다.“하윤아, 이 어미가 너에게 미안하다.”그 목소리에는 짙은 피로와 후회가 배어 있었다.“어미가 무능해서 네 아비를 붙잡지 못했구나.”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더 낮은 목소리로 미세하게 떨며 말을 이었다.“헌데 앞으로 그 사람에게 다른 아이가 생기면 이 집에는 더 이상 너희 남매의 자리는 없을 거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68화

    아설은 여기까지 말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예전에는 밖에 나가 장사하는 건 전부 남자 몫이고, 여자는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아이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남녀가 따로 있나요? 이런 일은 저도 할 수 있는데 괜히 주눅 들 필요 없더라고요!”아람은 반짝이는 아설을 보며 말했다.“아설아, 너 위심에게 시집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그냥 호위만 시키고 언니가 더 좋은 신랑감을 찾아줄게.”아설의 뺨이 단숨에 붉어졌다.“언니 또 그런 말…! 저, 전 연아 학당 알아보러 다녀올게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뛰어나가 있었다.다섯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70화

    오 관사는 돈을 받고 나서야 마음속에 얹혀 있던 큰 돌이 굴러떨어지는 듯 안도했다.“저희는 인원이 부족해서 모든 곡식을 실어 오려면 사흘은 걸릴 겁니다. 제가 직접 마차에 붙어서 곡식 출고에 실수가 없도록 하겠습니다.”상대편 관사는 별말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 관사는 이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돌아섰다.“문희 아가씨, 오늘 고생 많았습니다. 돌아가면 형제들에게 한잔 사겠습니다.”문희는 뒤돌아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넘겨준 곡식을 확인하자 오 관사는 다시 사람들을 데리고 곧장 돌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61화

    아설이 떠난 지 여드렛째였다. 아람은 적막함에 익숙해지지 못했고 연아 또한 매일같이 물었다.“아설 언니는 왜 아직도 안 와요?”수차례 이모라 부르라고 고쳐줬으나 설강 언니에서 아설 언니로 굳어진 탓에 바꾸기 어려워했다. 그래서 아람도 포기하고 그냥 내버려두던 참이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딸은 딸대로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게 두었다. 그때, 문희가 갓 지은 옷을 품에 안고 들어왔다.“아람 아가씨, 들으셨어요? 성문 앞에 방(榜:고려ㆍ조선 시대의 과거 합격자 명부)이 내걸렸다 합니다. 오늘 과거 급제자 명단이 나왔어요.”문희는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54화

    아설은 급히 비키려 했지만 술에 취한 소년이 다짜고짜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설강 누님!”계소만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 있다가 곧바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설강 누님, 누님이 왜 여기 있습니까? 강 누님이 사라져서 대인께서 거의 온 경성을 뒤집어 놓으셨다구요!”아설은 너무 놀라 말까지 가로막혔다. 이 계소만의 손 힘이 이토록 셀 줄이야. 그녀의 힘으로는 도무지 뿌리칠 수가 없었다.“사람 잘못 보셨어요!”“아니에요!”계소만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강하게 풍겼고 정신도 흐릿해 보였지만 그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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