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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Penulis: 서은월
강시아에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모두 달라져 있었다. 그녀도 한때 세자의 침소에 오르고 아이를 품음으로써 겨우 첩이 된 게 아니었나?

주온청이 다시 입을 열려 했으나 주은혜가 억지로 팔을 끌며 나섰다.

“언니, 어서 갑시다! 언니가 끼어든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들 자매는 모두 서녀였다. 셋째가 송하윤을 두둔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실부인의 눈 밖에 났는데 이제 또 명옥의 일까지 거든다면...

그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들의 혼사도 정실부인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주종현 또한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인파 뒤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강시아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 손을 높이 들어 명옥의 뺨을 후려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통함이 가득했다.

“나는 너를 자매로 여겼다. 항상 너를 생각했었는데 감히 이런 짓이나 저지르다니! 나는 속여도 좋다. 헌데 너를 좋아하는 연아에게는 부끄럽지도 않으냐!”

명옥은 화끈거리는 뺨을 감싸 쥐며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던졌다. 이게 정말 예전의 겁 많고 소심하던 강시아란 말인가.

강시아는 곧장 무릎을 꿇어 주종현에게 애절히 호소했다.

“명옥이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서방님께서 그녀가 첩실을 섬긴 지난 삼사년의 정을 생각하시어 한 번만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그러나 주종현의 눈에는 오히려 더 큰 분노가 치솟았다.

“네가 나더러 그녀를 살려 달라고?”

“그렇습니다.”

강시아는 곧장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쳤다. 그러다 이내 눈가가 젖으며 눈물을 흘렸다.

“명옥은 본디 작은 마님께서 직접 뽑아 제 곁에 붙인 아이입니다. 저를 시중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억울했을 터인데…”

그 말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명옥의 가슴을 후려쳤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강시아를 밀쳐 넘어뜨렸다.

“네가 뭔데! 그런 가식적인 말은 필요 없다!”

강시아는 놀란 듯 두 눈이 커졌다. 그녀의 표정은 믿기지 않는 충격으로 일그러졌다. 명옥은 이를 악물고 독기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

“네가 뭐라고! 고작 세탁방에서 일했던 계집 따위가... 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주종현이 발길질로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그 순간, 강시아는 눈물이 멈출 뻔했다. 늘 차갑고 냉정하기만 했던 그가 오늘처럼 분노를 터트린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게 누구 없느냐!”

“여기 있습니다!”

총관이 땀을 훔치며 종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명옥은 입이 막힌 채 억지로 끌려나갔다. 주종현이 몸을 굽혀 강시아를 번쩍 안아 올리자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팔꿈치가 긁혀 피가 배어 나왔던 것이다. 그녀는 낮은 침상에 조심스레 눕혀졌다. 그 위의 작은 탁자에는 아직 덮이지 않은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만 참거라.”

주종현이 그녀를 흘깃 보았을 때, 소매가 걷힌 팔 안쪽에 붉은 상처 자국이 또렷이 드러났다.

강시아는 이미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몸이라, 이런 자잘한 상처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아픔이 아니라 연민이었다. 강시아는 입술을 깨물며 나직하게 말했다.

“첩… 첩이 스스로 돌아가 약을 바르겠습니다.”

“움직이지 말거라.”

주종현은 단단히 그녀의 팔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 앞을 가로질러 작은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크고 작은 약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는 연위영의 도통(都统:고위 군사 및 행정 관직)이라 훈련장에서 부상을 입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니 그의 방에는 상비약이 늘 구비되어 있었다.

순간,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흘러 지나갔다. 강시아는 멀쩡한 한 손으로 침상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이 방은 예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였다. 자신이 분가하여 따로 지내게 된 뒤로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았던 곳. 늘 그가 그녀의 작은 뜰을 찾아오곤 했었다.

명옥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본래 분명 세탁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계집이었다. 그러다 상 상궁에게 자수를 배우고 난 후 비로소 수방에 들어가 일을 맡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자의 얼굴을 본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처지였다.

만약 그날, 새로 지은 옷을 들고 왔을 때 세자가 술에 취해 실수하지 않았다면…

명옥이 품은 불만은 그럴 법했다. 세자 댁에서 곁을 모시던 하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겨우 세탁방 계집인 그녀가 먼저 기회를 거머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제 사사로운 욕심으로 그녀의 아이까지 해치려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희디흰 가루가 상처 위로 뿌려졌다. 싸늘한 자극에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강시아는 늦게나마 낮게 신음을 흘렸다.

“읏…”

“이제야 아픈 줄 아는구나. 그러니 왜 공연히 남의 일에 끼어든 것이냐.”

주종현은 여전히 냉담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는 그가 자신의 부상에 분노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다.

강시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세자 저하, 명옥은 오랫동안 저와 연아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그의 굳은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다.

“너는 참 마음이 곱구나.”

“첩은 연아의 어미로서, 몸도 재산도 가진 것이 없으니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건 그저 한 줌의 선한 마음뿐입니다.”

주종현은 몸에 힘이 다 빠진듯, 끝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지나친 선의는 반드시 화를 부르는 법이다. 연아는 나의 딸이기도 하니 그 아이의 앞날은 범상치 않을 것이다.”

강시아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래도 연아에게는 아버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아이는 안전하게 클 것입니다.”

주종현은 두눈 가득 자신만을 비추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옳다. 내가 아이를 평생 지켜 줄 것이다. 그리고 너 또한... 평생 지켜 주겠다.”

강시아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으나 그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눈빛 깊숙이 증오가 스쳤다. 지난 생애, 연아는 송하윤과 함께 그의 뜰에서 지냈다.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아이를 눈앞에 두고도 그는 한 번도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그가 말하는 보호였단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그의 손이 허리에서 위로 미끄러져 내려오자, 강시아의 몸이 번개처럼 침상에서 튀어 올랐다.

“아악!”

주종현은 턱을 감싸 쥔 채 허리를 굽혔다. 정수리를 감싸 쥔 강시아의 눈가에 눈물이 솟구쳤다.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황급히 말을 내뱉었다.

“첩, 달거리 중이라!”

주종현은 얼굴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몸이 불편하면 일찍이 쉬면 될 것을, 한밤중에 어딜 어슬렁거린단 말이냐!”

그는 소매를 휙 휘두르며 곁방으로 사라졌다. 강시아는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져 내실로 발길을 돌렸다. 이제 와 그녀에게 수발을 들라 하다니.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내일이면, 부내에는 반드시 소문이 퍼질 것이다. 세자가 첩을 위해 분노를 터트렸고 침소를 넘보려 한 시녀를 발매했다는 소문으로 말이다.

그녀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송하윤. 지난 생에는 내가 지나치게 고분고분했지. 이번 생에는 과연 네가 얼마나 참고 견딜 수 있는지 보자.’

설강은 세자가 강시아를 안고 데려가는 것을 보고는 조용히 몸을 돌려 작은 뜰로 돌아갔다. 좋은 구경은 이미 끝났고 이번 일로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강시아는 분명 세자의 마음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래에는 정실이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첩들도 들여오겠지.

설강은 스스로 다짐했다. 장우는 비록 가난하나 재능이 빼어나고 사리에 밝은 사내이니, 차라리 가난한 집의 아내가 될지언정 부귀한 집의 첩은 되지 않으리라고!

이튿날, 강시아는 일부러 늦잠을 잤다.

그리고 작은 뜰로 돌아왔을 때, 연아는 회랑 난간에 앉아 턱을 괴고 중얼거리며 멍하니 있었다가, 그녀를 보는 순간 눈이 반짝 빛났다.

“어머니!”

포탄처럼 뛰어든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 파고들었다.

“아이고, 내 새끼.”

강시아는 두 팔을 활짝 벌려 아이를 받아안았다.

“어머니, 연아는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 아침에도, 저녁에도, 늘 생각했습니다!”

강시아는 눈가가 휘어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나, 누굴 닮아 입이 이리도 달콤할까. 어미가 뽀뽀해 주어야겠구나!”

연아는 어머니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자랑스럽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설강 언니가 가르쳐 주었어요.”

그러고는 무언가 떠올린 듯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앗, 설강 언니가 말하지 말랬는데…”

강시아는 아이의 귀여운 얼굴을 내려다보다 불쑥 나온 작은 배를 손끝으로 톡 찔렀다.

“그럼, 알겠다. 어미는 방금 네가 한 말을 다 잊어버리마.”

설강은 말소리를 듣고 곁방에서 나왔다.

“마님, 고 유모께서 다녀갔사옵니다. 큰 마님께서 마님을 부르셨사옵니다.”

그러곤 무언가 말하려다 머뭇거리며 입만 달싹였다.

강시아는 딸을 내려놓으며 모르는 척 웃음을 띠었다.

“곧 가겠다고 전하거라. 마침 서수의 머리 부분을 다 수놓았으니 큰 마님께 보여 드려야겠구나.”

설강은 그녀가 수틀에서 자수를 꺼내드는 것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문가에서 그녀를 불러 세웠다.

“마님.”

강시아가 돌아보았다.

“응?”

설강은 잠시 망설이다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오늘 송 가의 아가씨께서 오셨다고 하옵니다. 그녀는…”

설강은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힘주어 말을 이었다.

“송 아가씨는 앙갚음을 잊지 않는 성정이라 하옵니다. 그러니 부디 마님께서도 조심하시기를…”

강시아는 부드럽게 웃었다.

“알겠다. 고맙구나, 설강.”

지난 생에, 그녀와 설강은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그저 송하윤이 시집온 뒤, 설강이 첩으로 올려져 그녀와 함께 열흘 남짓 한 집에 살았을 뿐이었다. 그 시절 설강은 매일 우울했기에, 웃는 얼굴조차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설강이 죽던 날,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외간 남자와 밀회를 했다는 누명을 쓰고 맞아 죽었다는 사실을.

설강이 첩이 된 것은 순전히 큰 마님의 결정이었다. 세자는 그녀의 방에 발을 들인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결국 송하윤은 질투로 그녀의 목숨까지 빼앗은 것이었다.

큰 마님의 뜰에는 새로 파낸 연못이 있었다.

그 안에는 몇 마리의 비단잉어가 헤엄치고 있었고 사람이 지나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몰려들었다. 정청은 널찍했고 옆에는 작은 불당이 붙어 있었다.

그 시각, 불당에서는 경전 읊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송하윤이 큰 마님을 모시며 함께 염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 앞에 이른 강시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큰 마님은 옥관음상 앞에 앉아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읊고 있었고 그 뒤에 선 송하윤은 몰래 하품을 삼키고 있었다.

고 유모는 안으로 들어가 알현을 고했다. 그러나 큰 마님의 염불 소리는 끊기지 않았다. 고 유모는는 이내 눈치챘다. 이는 곧 강시아의 기세를 꺾으려는 큰 마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녀의 눈에는 강시아가 예전과 다름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큰 마님보다 더한 것은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은 송 아가씨의 오만한 기세였다. 지금부터 세자의 집안을 주관하려 드는데, 앞으로 강시아의 나날이 평탄치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강시아는 다른 시녀와 함께 문가에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의 얼굴빛은 고요했고 파문조차 일지 않았다.

고 유모는 왠지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다. 세자의 곁에 있는 유일한 첩이면서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늘 잊혀지던 인물.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다름없이 차분해 보이면서도 그 작은 자리에서 은근히 빛을 발하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디어 목탁 소리가 멈췄다.

“들어오너라. 아니면 정말 내 뜰 앞에 서 있는 연화동자가 되려는 것이냐.”

강시아는 수놓은 작품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들어와 공손히 예를 올렸다.

“첩, 큰 마님께 평안을 드립니다. 이는 지난 며칠 동안 첩이 정성껏 수놓은….”

큰 마님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가져가 다시 수놓거라.”

강시아는 당혹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찌하여…”

송하윤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 눈에 멸시를 담아 그녀의 작품을 흘끗 바라보았다.

“고 조모,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 저잣거리 자수방의 수녀들이야말로 몸과 마음이 모두 청결한 아가씨들입니다. 누가 이런 성스러운 예물을 만들기에 더 적합하겠습니까?”

강시아의 미간이 좁혀지며 물었다.

“송 아가씨, 그 말은 곧 국공부가 청백가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제가 언제 국공부가 청백하지 않다 했습니까!”

송하윤은 거의 비명을 지를 듯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말한 건 당신입니다. 강 마님!”

강시아는 일부러 모른 척하며 되물었다.

“제가요?”

지난 생에, 그녀가 본래 수놓았던 것은 만수도였다. 그러나 불당에 올리는 날, 송하윤의 시녀 소영이 향불을 쏟아뜨려 뜨겁게 튀어 오른 향재가 수면을 태워 버렸다. 송하윤은 그 틈을 타 더 복잡한 서수헌도 도안을 들고나와 그녀를 압박했다. 그리하여 강시아는 꼬박 칠 일을 밤낮없이 바늘에 매달려, 태후의 생신 전날 전까지 간신히 완성할 수 있었다.

이번 생에는 겨우 그녀가 주종현의 뜰에 하룻밤 묵었을 뿐인데, 송하윤이 참지 못하고 벌써 뛰쳐나왔다.

송하윤은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태후 마마의 수연에 바칠 예물을 두고 강 마님은 마음을 맑히고 몸을 정갈히 하지 못해 오히려 예물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고 조모 저에게 더 좋은 도안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어제 골몰하며 생각해낸 도안입니다!”

그녀의 시선은 강시아가 들고 있는 자수 위를 경멸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사실 그것은, 그녀가 큰돈을 들여 비단방에서 사 온 도안이었다.

본래는 강시아로 하여금 지금 수놓고 있는 도안을 전부 완성하게 한 뒤 그것을 망쳐 버리고 이 도안을 들고나와 그녀를 곤경에 빠뜨릴 계획이었다.

만약 저 천한 년이 세자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이런 비열한 수법도 쓰지 않았을 것을.

그렇다면 이제 그녀에게 고생거리를 주어 세자를 유혹할 겨를도 없게 만들 것이다!

“하윤아, 네가 어찌 시아의 도안을 들고 왔느냐?”

큰 마님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무, 무슨…?”

송하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러자 강시아가 이내 자신의 자수를 펼쳐 보였다.

“비록 송 아가씨께서 어디서 첩의 도안을 얻으셨는지는 알지 못하나 송 아가씨께서 마음에 들어 하셨다니 첩으로서는 더없는 기쁨입니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놀라움과 당혹감으로 얼어붙은 송하윤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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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연
지가 술취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데 임신시켜놓고 안챙기고. 지딸은 좀 아끼는듯 싶더니. 정실 눈치본거냐고. 정실이 키우게 하고선 애가 말라가는데도 신경안쓰고 학대받는데도 모르고. 뭐 정실이 뭐라고 거짓말을 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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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주연아는 그제야 눈을 들어 올렸다.그 시선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곧장 검은 얼굴 사내를 향해 꽂혔다.“돈 없으면 나와서 먹고 마시지 말아야지. 쪽팔리잖아.”마지막 말은 아주 낮게 흘러나왔지만, 그 울림은 마치 뺨을 세게 후려치는 듯, 검은 얼굴 사내의 얼굴 위로 그대로 꽂혔다.순간, 가게 안이 죽은 듯 고요해졌다.그 사내의 얼굴빛은 붉었다가, 푸르러졌다가, 이내 보랏빛으로까지 변했다.마치 염색집이라도 차린 듯, 요란하게 일그러졌다.“이 자식이… 죽고 싶냐!!”그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며, 들고 있던 주인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돌아섰다.그러고는 곧장 주연아를 향해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그 순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같은 소리가 겹쳐 울렸다.주연아의 뒤에 서 있던 호위들이 동시에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든 것이다.서릿발 같은 칼날이 번뜩이며, 방 안의 공기를 단숨에 식혀 버렸다.가게 안에 있던 열댓 명의 사내들도 거의 동시에 벌떡 일어섰다.탁자와 의자가 뒤엉켜 흔들리며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반쯤이나 되는 가게 안이, 순식간에 검은 물결처럼 빽빽하게 차올랐다.그 순간,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멎어 버렸다.그러나 주연아의 표정에는 단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그녀는 오히려 느긋하게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머금었다.눈앞의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두 무리는 그렇게 마주 선 채,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한쪽은 수가 많고, 기세도 사납고 거칠었다. 반면, 다른 한쪽은 수는 적었지만, 숨죽인 기운 속에 살기가 서려 있었다.그 불쌍한 주인은 계산대 구석에 웅크린 채, 이 광경을 지켜보며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떨고 있었다. 옷자락을 꽉 움켜쥔 손바닥은 이미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뿐이었다.끝났다. 오늘, 이 가게는 정말 끝장이구나.바로 그 일촉즉발의 순간.“모두 멈춰라!!”문 밖에서 힘 있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이내 검은 관복을 입은 관차들이 수화곤을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897화

    주연아는 손을 들어, 막 칼을 뽑으려던 정일의 손목을 가볍게 눌렀다.그녀의 눈빛은 고요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관아에 가서 알리거라.”나직한 목소리였지만, 거부할 수 없는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여기는 내가 맡겠다.”정일은 순간 멍해졌다가 주연아의 깊고 잔잔한 눈을 바라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는 알고 있었다. 군주가 한 번 내린 결심은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예!”힘 있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현아문을 향해 내달렸다.주연아는 옷깃을 한 번 단정히 여미고는 한 걸음 내디뎠다.마치 한가롭게 뜰을 거니는 듯한 느긋한 걸음으로, 그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가게 안에는 이미 열댓 명의 사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탁자마다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다리를 벌린 채, 어떤 이는 발을 떡하니 탁자 위에 올려놓기까지 했다.그 태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거칠고 무례했다.주인은 허리를 깊이 굽힌 상태로 계산대 뒤에 서 있었는데, 얼굴은 종잇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주연아가 몇몇 칼 찬 호위와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눈에는 희망이 스치기는커녕 오히려 절망이 더 짙게 내려앉았다.또 한 무리의 성가신 자들이로군!오늘이 대체 무슨 날이기에, 이런 살벌한 인간들이 하나같이 이 작은 가게로 몰려드는 것인가!그는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그 무리 가운데, 선두에 앉아 있던 검은 얼굴의 건장한 사내 역시 주연아 일행을 눈치챘다.그는 방울처럼 둥근 눈을 가늘게 뜨고, 주연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남장 차림이었지만 가느다란 몸선과 고운 얼굴을 본 순간, 그의 눈에 노골적인 경멸이 스쳤다.그는 느릿하게 품속을 뒤적이다가 한참 만에 손에 쥐어 구겨진 은덩이 하나를 꺼냈다.“쨍그랑.”짧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 은덩이는 계산대 위로 내던져졌다.“자, 지난달 밥값이다. 이번 달 술이랑 음식도, 얼른 갖다 놔라!”주인은 그 얼마 안 되는 은덩이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896화

    곧이어, 붉은 옻칠을 입힌 목문이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내며 안쪽에서 밀려 열렸다.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아이들이 마치 즐겁게 지저귀는 작은 새떼처럼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남자아이도 있었고 여자아이도 있었다.많아야 열 살 남짓한 어린 아이들은 이제 막 글을 배울 나이가 된 듯했다.하나같이 얼굴에는 티 하나 없는 천진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그때, 양 갈래로 머리를 틀어 올린 작은 계집아이가 그만 부주의하게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아이와 부딪쳤다.하지만 그 사내아이는 화를 내기는커녕, 입을 활짝 벌려 빠진 앞니 사이로 바람이 새는 이를 드러내며, 그저 바보처럼 해맑게 웃었다.서로 쫓고 웃으며 떠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주연아의 눈빛에는 어느새 더 깊은 미소가 스며들었다.그녀는 문득 떠올렸다.그 옛날, 이 서당에는 여자아이가 그녀와 선아 둘뿐이었다는 것을.그런데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이곳에는 이렇게나 많은 여학생들이 있었다.참 좋다.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감탄을 조용히 삼키며, 돌아서려 했다.그 순간,“산적이 성 안으로 들어왔다!!”날카롭게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마치 거대한 돌덩이가 고요한 호수에 떨어지듯, 순식간에 이 작은 도시의 평온을 산산이 깨뜨렸다.방금 전까지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도망쳐! 빨리!”“문 닫아! 얼른 문 닫아!”웃음이 가득하던 행인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공포로 뒤바뀌었고 너나없이 허겁지겁 달아나기 시작했다.마치 다리가 둘로는 모자라기라도 한 듯, 모두가 정신없이 뛰었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활기로 가득했던 거리는, 순식간에 뒤엉켜 쓰러지고 짓밟히며 엉망진창이 되었다.주연아는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서 있었다.산적?그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지금의 정현은 이렇게나 풍요로운데, 상식대로라면 관아의 통치 역시 더욱 엄격해야 할 터였다.그런데도 산적이, 그것도 대낮에 감히 성 안으로 들이닥친다고?그녀의 시선이 혼란스러운 인파 너머로, 거리 입구를 향해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895화

    골목 어귀에서 주연아가 내밀었던 손은 허공에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머쓱한 기색으로 천천히 거두어졌다.“별난 사람이네.”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며 벌써 꼬르륵 소리를 내기 시작한 배를 살짝 문질렀다.됐다. 사내대장부가 고작 떡 한 조각 때문에 자존심을 굽힐 수는 없지.우주성 안에 맛있는 게 이거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주연아의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갔다.방금 전의 작은 언짢음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고 대신 굶주린 짐승이 먹잇감을 발견한 듯한 들뜬 기운이 번졌다.그녀가 손을 휘둘렀다.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호탕했다.“가자! 정일! 싹 쓸어버리러!”“예? 군주님, 뭘 쓸어버린다는 겁니까?”정일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의 뒤를 따라붙었다.“먹을 거!”주연아의 대답은 힘차게 떨어졌다. 말끝에는 침이 고일 듯한 흐릿함이 묻어 있었다.그렇게 해서, 그날 오후 내내 우주성의 크고 작은 골목마다 주연아의 발자취가 남았다.길목에서 파는 구운 쌀과자부터 골목 끝의 튀긴 쌀 경단, 다리 곁의 쌀묵과 성 남쪽의 새콤한 쌀국수까지.그녀는 마치 지치지 않는 꽃나비처럼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정일과 몇몇 호위들은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들고 뒤를 따랐다.처음엔 난처한 표정이었지만 점점 무감해지더니 끝내는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되었다.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마지막 남은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무렵.주연아는 마침내 만족스럽게 트림을 한 번 하고는 둥글게 부른 배를 토닥였다.우주에서 기억하던 맛은 대충 다 맛본 셈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동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정현의 방향이었다.“가자.”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집’에 한번 가보자.”*십수 년이라는 시간은, 한 장소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주연아가 말을 끌고 정현의 성문 앞에 섰을 때, 순간 아득한 기분에 휩싸였다.기억 속의 그 칙칙하고 소박하던 작은 고을은 이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푸른 돌로 깔린 길은 넓고 반듯했고 길 양옆에는 비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96화

    “언니, 심이 언니랑 할 말이 있대요.”아설이 밥을 다 먹인 뒤, 아람이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위심은 처음 봤을 때보다는 훨씬 덜 흉악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극한의 고통을 참고 있는 중이었다.“아람 마님.”그의 목소리는 몹시도 쉰 상태였다.“죄송합니다. 마님의 행방은 제가 세자께 알려드렸습니다.”아람이 씁쓸하게 웃었다.“그건 나도 알고 있다. 내 모습을 주종현이 보고 완전히 포기하길 바라는 것도 알고 있어.”“맞습니다.”그는 모든 것을 숨김없이 인정했다.“미안해할 것 없다. 잘된 일이지 않느냐? 포기하고, 더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77화

    아설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다섯 날을 꼬박 기다려도, 곡식 창고의 관리와 인부들이 다 돌아온 뒤에도 위심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나타났을 때처럼, 이번에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한편, 천리 밖 경성.주종현은 성벽 위에 홀로 서 있었다. 도시 곳곳에서 폭죽이 터지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밤 공기를 가득 메웠다. 정말이지 온 가족이 모여 한 해를 맞이하는 좋은 날이었다. 외지에 나가 있던 관리들이 대부분 복귀했고 조정도 삼품 이상의 고위 관료만 초하루 행사 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미 휴식에 들어간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93화

    아람은 정현에서 위심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난번에는 기억을 잃더니 이번에는 중독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돌아다니기에 몸이 성할 적이 없는 걸까? 아설은 요 며칠 사이에 겨우 조금 회복이 된 상태였다. 위심을 데리고 돌아갔다가 치유돼서는 또 훌쩍 떠나버린다면 아설은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인가? 아람은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어르신, 치료할 수는 있는 건가요?”약초밭 주인 인 손 할아범이 대답했다.“치료는 가능합니다. 다만 시간이 들 뿐이지요. 일단 얼른 데리고 가세요.”아람은 이백 냥짜리 은표

  •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제283화

    아람은 자기 딸이 인색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강세오가 사다 준 군것질거리도 언제나 골목 아이들과 나누어 먹는 아이였다. 비록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장 아주머니에게서 몇 번이나 들은 적이 있었다. 골목 끝 집 사람들은 무례하고 포악한데 그 집 아들은 못된 기질이 끝이 없다고 말이다.아람은 차갑게 말했다.“당신 집 아이나 잘 단속해요.”주근의 할머니는 골목에서 모를 사람이 없을 만큼 악명이 높았다. 이 골목의 처녀며 새댁이며 늙은 아주머니들 전부 그녀에게 기가 눌려 지고 살았다. 그녀는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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