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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첫째
내 이름이 나오자 강지환의 웃음이 굳었다. 얼굴에서 순식간에 온기가 사라졌다.

"채원한테까지 들어가게는 하지 마."

친구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껄껄 웃었다.

딸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걱정하지 마. 엄마는 모를 거야. 귀가 안 들리잖아."

안에서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문밖에서 굳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얼마 뒤, 뒤에서 다가온 직원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세요?"

그 말에 별실 안이 뚝 조용해졌다.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특히 강지환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서윤의 허리에 둘렀던 손을 황급히 떼더니 시선을 피했다.

왜 돌아왔느냐고 수어로 물으며, 차서윤은 그저 학교 후배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정작 자기 입가에 차서윤의 립스틱이 잔뜩 묻어 있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차서윤의 손도 여전히 그의 허리를 꼭 감싸고 있었다.

나를 향한 차서윤의 눈빛에는 은근한 비웃음과 뻔뻔함이 배어 있었다.

떠날 마음을 굳혔는데도, 막상 눈앞에서 보니 숨이 막히도록 아팠다.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열쇠 주러 왔어. 재밌게 놀아."

열쇠를 탁자에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는 돌아보지 않았다.

거리는 오가는 차들로 붐볐다. 양옆으로 번쩍이는 불빛 속에서 나만 홀로 추웠다.

어디로 가야 할지 보이지 않았다. 귀에도 아무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문득 칠 년 전, 막 연애를 시작했을 때 함께 인적 드문 산으로 여행을 갔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는 길을 잃고 꼬박 하루 낮과 밤을 걸었다.

아무 소리도 없는 적막 속에서 내가 붙잡고 있던 건 강지환의 손뿐이었다.

그때 강지환은 두 손으로 말했다. 함께 죽는 것도 우리 사랑의 끝으로는 나쁘지 않겠다고.

늘 그랬다. 죽을 때까지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이제 사랑은 끝났고, 우리도 끝에 다다랐다.

집에 돌아오자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웠다.

머릿속이 텅 빈 채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지환을 처음 만난 건 채용 박람회였다.

첫눈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그날부터 누구나 알 만큼 강지환을 쫓아다녔다.

얼음처럼 차가운 사람이었다. 누가 마음을 고백해도 예외 없이 거절했다.

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매일 찾아가 먼저 말을 걸고, 밥을 사겠다고 졸랐다. 그렇게 삼 년을 끈질기게 다가갔다.

몇 번을 거절당해도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밤, 해고당한 직원이 술에 취해 회사 앞에서 강지환을 가로막았다.

사람들이 뿔뿔이 달아날 때 나는 강지환 앞으로 뛰어들었다.

그 직원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강지환과 나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았고, 결국 의식까지 잃었다.

그 일로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게 됐다.

그제야 강지환도 내게 마음을 열었다.

피투성이인 나를 꼭 끌어안았다. 두려움에 떨며 꺼낸 말은 청혼이었다.

"양채원, 우리 결혼하자."

함께하게 된 뒤에도 내 사랑은 줄지 않았다. 강지환은 나보다 더 나를 사랑했다.

그런데 딸은 자라면서 귀가 안 들리는 나를 줄곧 싫어했다. 강지환은 딸에게 밤낮없이 수어를 가르쳤다. 나와 조금이라도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철컥, 도어록이 열리는 소리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옆으로 돌아누워 잠든 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곧 강지환의 두 손이 내 몸을 더듬었다. 뜨겁고 습한 숨이 목덜미에 닿았다.

욕정이 오른 것이다. 나는 그 신호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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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 없이 말하는 이별   제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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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 없이 말하는 이별   제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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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 없이 말하는 이별   제8화

    날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곳곳을 함께 걸었다.가끔 예전 친구들에게서 편지가 왔다.내가 떠난 뒤 강지환과 딸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고 했다.날마다 친구들을 찾아가 내 행방을 캐묻고 있었다.몇 번이나 담당 기관 사무실까지 찾아가 소란을 피웠지만, 끝내 아무 소득이 없었다고 했다.강지환은 차서윤과 헤어지고 배 속의 아이도 지우게 했다고 했다. 온 도시 사람들 앞에서 내게 사과까지 했다.바람을 피우지 말았어야 했다고. 내가 사랑해 준다는 이유로 그렇게 멋대로 굴어서는 안 됐다고.딸은 매일 울며 이제 사탕을 먹지 않겠다고, 엄마 말을 안 들어서 잘못했다고 했다.두 사람을 향한 온 도시의 시선이 순식간에 달라졌다.냉정한 대표였던 강지환에게 이제는 아내를 배신한 쓰레기라는 낙인이 찍혔다.딸도 은혜를 모르는 아이라며 누구에게나 손가락질을 받았다.회사까지 영향을 받아 주가가 폭락했다.그래도 강지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온 도시의 광고 공간을 사들여 내게 사과했다.내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했다.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스스로 배신을 택해 놓고, 이제 와서 왜 그렇게 사랑하는 척하는 걸까?친구들은 한 번 만나 제대로 이야기해 보라고 권하기도 했다.하지만 이미 분명히 말했었다. 배신하면 완전히 떠나겠다고.복잡한 생각을 떨쳐 냈다.아름다운 호숫가를 바라보아도 속은 답답했다.손 닿는 곳의 돌을 집어 호수에 던졌다. 퐁, 물결이 둥글게 번졌다."표정이 안 좋아 보여요. 괜찮으면 저한테 말해 볼래요?"샘물처럼 맑은 목소리에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정지후가 옅게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짙은 갈색 눈을 바라보다 잠시 넋을 놓았다.사랑 때문은 아니었다. 호수처럼 맑은 눈빛에 빠져들었을 뿐.빤히 보는 게 쑥스러웠는지 정지후가 고개를 돌렸다.내가 실례했다는 생각에 얼른 미안한 웃음을 지었다.사과하려는데 정지후가 내 옆에 앉았다.거리가 가까웠다.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느껴질 만큼."여기는 마을 사람들이 소중하

  • 소리 없이 말하는 이별   제7화

    그런 악순환이 오래 이어지면서, 이곳은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처럼 됐다.교장 선생님은 칠 년 만에 자원해서 찾아온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고 했다.문득 죄책감이 들었다.순전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서 온 게 아니었으니까. 강지환과 딸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을 뿐이었다.교장 선생님을 따라 학교에 갔다. 형편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칠판은 말뚝으로 고정한 커다란 돌판이었다.옆에는 글씨를 쓸 숯 조각들이 놓여 있었다.수업은 사방에서 바람이 새어 드는 작은 나무집에 대강 자리를 마련해 진행하고 있었다.해진 옷을 입은 아이 몇이 앉아 있었다. 교탁 앞의 어르신은 비틀거리며 온 힘을 다해 글씨를 썼지만, 칠판에는 흐릿한 자국만 남았다."부모들은 날마다 일하느라 바빠요. 낮에는 아이들을 여기 맡겨 공부하게 하죠.""저녁에 돌아와서 데려가고요.""교육 봉사를 하면 이력서에 한 줄 더 쓸 수 있으니까 오는 거겠죠. 알아요.""하지만 여기서는 버티는 것부터가 힘들어요."학교보다는 아이들을 맡아 주는 곳에 가까웠다.나조차 포기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마음은 잠깐이었다. 남기로 했다.주눅 든 아이들의 눈길을 받으며 천천히 칠판 앞으로 갔다. 숯을 집어 들고 돌판에 내 이름을 썼다."양, 채, 원. 선생님 이름은 양채원이야.""이제부터 선생님이 너희를 가르칠 거야. 선생님 이름이 뭔지 말해 볼 사람 있어?"용기를 북돋우려 아이들을 바라보았다.배우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었다. 문제는 그 눈에 밴 두려움이었다. 수없이 거절당하며 스스로 움츠러든 마음.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도 서두르지 않고 계속 웃으며 기다렸다.이윽고 온몸이 지저분한 아이 하나가 손을 들었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선생님은 양, 채, 원. 양채원 선생님이에요.""맞았어. 다른 친구들은? 이제 알겠니?"한 아이가 말하자 다른 아이들도 곧 따라 했다."양, 채, 원. 양채원 선생님이에요."저마다 먼저 대답하겠다며 나서는 아이들을 보며 웃고 고개를

  • 소리 없이 말하는 이별   제6화

    말을 마친 차서윤이 발뒤꿈치를 들고 강지환에게 입을 맞췄다.강지환은 밀어내려다 몇 번 버텼지만 이내 받아들였다.두 사람을 본 딸이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왔다.딸이 돌아오는 걸 보고 나도 구경을 그만뒀다.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 거실에 앉아, 아무 일도 없었던 척했다.딸이 무심코 사탕 하나를 까 입에 넣으려다 뭔가 생각난 듯 작은 소리로 물었다."엄마, 하나 먹어도 돼?"딸은 사탕을 좋아했다. 하지만 치아가 좋지 않아 많이 먹으면 아파했으므로, 내가 자주 못 먹게 했다.나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었을까?고개를 끄덕였다."마음껏 먹어. 이제 말리는 사람 없을 테니까."딸은 의아한 눈으로 나를 한 번 보더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신나게 먹었다.곧 강지환이 들어왔다. 입에 사탕을 가득 넣은 딸을 보고 의아해했다."채원아, 요즘 회사 일이 좀 많네. 한 번 더 나가 봐야겠어.""집에서 기다려. 걱정 말고. 이것만 끝나면 며칠은 집에서 꼬박 같이 있을게."내 대답을 잔뜩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 기대를 채워 줄 일은 없었다."가 봐. 네 일 해.""채아야, 아빠 따라 회사 놀이방에 가서 놀아. 엄마도 할 일이 좀 있거든."딸이 멍하니 나를 보았다. 내 목소리에는 더는 딸을 귀여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바라보는 눈길에도 애정이 사라져 있었다.강지환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바깥에서 빵, 경적이 울렸다.차서윤이 재촉하는 소리라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나는 고개를 숙여 케이크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두 사람도 완전히 안심한 듯했다.더는 의심하지 않고 손만 흔든 뒤 나갔다.입 안의 쓴 케이크를 쓰레기통에 뱉고 입가를 닦았다.교육 봉사 승인서와 미리 싸 둔 여행 가방을 챙겨 문밖으로 향했다.문 앞에 다다르자 강지환에게서 문자가 왔다.[채원아, 나랑 딸이 깜짝 선물을 준비했어. 분명 마음에 들 거야.]문자를 보고 웃음이 났다.'처음에는 차서윤, 그다음에는 그 여자 배 속에 네 아이까지.''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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