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토요일 오전, 제이는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지난주보다 엄마의 걸음이 조금 무거워 보였다. 검사 전날부터 금식을 한 탓인지, 얼굴에 핏기도 덜했다.
"배고파 죽겠다. 이거 끝나면 뭐 좀 먹으러 가자."
"그래,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말은 가볍게 주고받았지만, 제이의 속은 그렇지 않았다.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옆자리 환자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리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이름이 불리고, 엄마가 검사실로 들어갔다. 제이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꽉 맞잡았다.
내시경실 앞 의자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손에 쥔 휴대폰 화면을 몇 번이나 켰다 껐다.
간호사가 이름을 불렀다.
"환자분 보호자, 안으로 들어오세요."
제이는 벌떡 일어나 안내를 따라 들어갔다. 회복실에 누운 엄마는 아직 마취가 덜 풀린 얼굴로 눈을 껌뻑였다.
"다 끝났어?"
"네, 다 끝났어요. 이제 좀 쉬셔도 돼요."
잠시 후 의사가 들어와 화면에 사진 몇 장을 띄웠다.
"위 점막 쪽에 조직 변화가 조금 있어서, 그 부분만 조직 검사를 같이 진행했어요. 결과는 일주일쯤 걸릴 겁니다."
제이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많이 안 좋은 건가요?"
"크기는 작고, 초기 단계로 보입니다. 이 정도면 발견이 꽤 빠른 편이에요. 결과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너무 걱정하실 단계는 아니에요."
발견이 빠른 편. 그 한마디가 제이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2년 뒤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이른 단계에서 걸려낸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가 의아한 얼굴로 제이를 봤다. 보호자가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드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이는 그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회복실 침대에 앉아 정신을 차린 엄마가 제이의 손을 슬쩍 잡았다.
"왜 그렇게 울 것 같은 얼굴이야. 별거 아니라잖아."
"그냥, 다행이라서 그래."
"별걸 다 걱정하네. 배고픈데 얼른 나가서 뭐 좀 먹자."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 채 태연하게 웃었다. 지난 생에서는 이 웃음을 다시는 못 볼 뻔했다는 걸, 엄마는 알지 못했다.
병원 근처 식당에서 엄마는 오랜만에 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금식 뒤라 그런지 평소보다 입맛이 좋아 보였다.
"이제 좀 살겠다. 밥이 이렇게 맛있을 일이야."
"많이 드세요. 부족하면 더 시켜줄게."
"됐어, 됐어. 너 요즘 왜 이렇게 나한테 다 해주려고 그래."
엄마의 물음에 제이는 뭐라 대답할 말을 고르지 못했다. 그냥,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은 아직 꺼낼 수 없었다.
엄마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나서야, 제이는 겨우 숨을 돌렸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이번엔 안 늦었어.
지난 생에서는 이 말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다. 증상을 참고 참다가, 이미 손쓸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병원 문턱을 넘었다. 이번엔 달랐다. 조직 검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적어도 시작점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월요일, 회사로 출근한 제이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수정이 다가와 어깨를 톡톡 쳤다.
"표정이 왜 그래요? 주말에 무슨 일 있었어요?"
"엄마 내시경 검사받으셨거든요. 결과 기다리는 중이에요."
"어머, 많이 안 좋으신 거예요?"
"아직 몰라요. 그래도 빨리 발견한 거래서, 그거 하나는 다행이에요."
"다행이다. 너무 걱정 말아요."
제이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던 무거운 돌덩이는 확실히 가벼워졌다.
퇴근 무렵, 도일이 다가와 낮게 물었다.
"아까 수정 씨랑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어머니 검사 받으셨다고."
"아, 네. 주말에 다녀왔어요."
"결과는 언제 나온대요?"
"다음 주에나 나온다는데... 그래도 빨리 발견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다행이네요. 진짜."
도일의 표정에는 가식이 없었다. 진심으로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전혀 다른 기억 하나가 불쑥 치고 올라왔다.
돌도 안 된 아이를 등에 업고 마당에 쪼그려 앉아 배추 백 포기를 혼자 절이던 겨울이었다.
시어머니는 사다 놓기만 하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이는 절대 못 봐준다는 말만 반복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몇 정거장을 헤매고 다니며 겨우 자리가 남은 가정어린이집을 찾아냈고, 그 새벽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했다가 밤 여덟 시가 돼서야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가는 하루가 매일같이 반복됐다.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철인 3종 경기였다.
그 시간 동안, 도일은 단 한 번도 그녀의 상태를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때도 이 사람은 이렇게 다정한 표정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을까. 그렇다면 왜 그 시절엔 그 다정함이 그녀에게 한 조각도 닿지 않았을까.
어쩌면 결혼 전인 지금만, 아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지금만 이렇게 살뜰히 챙겨주는 건 아닐까.
떠오른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제이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어 그 장면을 털어냈다.
"결과 나오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신경 쓰일 것 같아서요."
"...생각해볼게요."
제이는 한 발 물러서듯 짧게 대답했다.
방금까지의 온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다시는 그 지옥 같은 하루로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이 다정함에 마음을 여는 것부터 조심해야 했다.
자리로 돌아가는 길,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그 번호였다.
어머니는 좀 어떠세요?
지난주 병원 로비에서 지나가듯 건넨 안부치고는, 며칠이 지나서도 잊지 않고 다시 묻는 게 낯설었다. 제이는 걸음을 멈추고 화면을 봤다.
덕분에 검사는 잘 받으셨어요. 결과는 다음 주에나 나온대요.
다행이네요. 결과 나오면 알려줘요.
제가 왜 그걸 알려드려야 하는데요?
궁금하니까요.
짧고 단순한 대답이었다. 제이는 그 문장을 보며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뭐라고 되받아치기도 애매한 뻔뻔함이었다.
생각해볼게요.
그 정도로 답을 남기고, 제이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아 다시 진동이 울렸다.
참고로, 저 되게 끈질긴 사람이에요.
제이는 걸음을 멈추고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건 이미 알겠네요.
퇴근길 지하철에서, 제이는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스물다섯의 얼굴, 마흔다섯의 마음.
이 안에 담긴 것들이 하나둘 달라지고 있었다.
엄마의 병을 미리 잡아낸 것도, 도일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것도, 그리고 자기가 누구인지 끝까지 말하지 않는 준호에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삶에서 되돌려야 할 것이 엄마의 건강 하나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놓쳤던 것들을 하나씩 되짚어가는 사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도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지난 생에서는 하루하루가 그저 버텨내는 시간이었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내일이, 그리고 다음 주가 궁금해지는 하루하루였다.
집에 도착해 씻고 나온 제이는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다, 결국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고 불을 껐다.
결과가 나오는 날, 제이는 또 하나의 갈림길 앞에 서게 될 것이었다.
바둑판 위로 흰 돌이 놓였다."거참, 요즘 애들 장사 수완은 도무지 못 따라가겠구나."정 회장이 낮게 웃으며 바둑돌을 매만졌다. 명예회장이 된 지도 어느덧 몇 해, 그는 이제 회사보다 이 작은 바둑판 위의 승부에 더 열을 올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맞은편에 앉은 정지훈이 검은 돌을 내려놓으며 옅게 웃었다."저도 처음엔 걱정했습니다. 회사를 나가서 새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는요.""그러게 말이다."정 회장이 혀를 찼다."콜드체인 사업을 그렇게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정작 자기는 새 사업을 하겠다고 나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느냐."제이가 회사를 나선 건 이 년 전이었다. 콜드체인 시스템을 완전히 안정화시키고, 후임자에게 모든 걸 인수인계한 뒤, 그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사업을 시작했다.전국 각지의 숨은 맛집을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내고, 그 레시피를 밀키트와 간편식으로 재현해 판매하는 프리미엄 미식 브랜드였다. 흔한 반찬가게가 아니었다. 까다로운 품질 검증을 거친 식재료, 쉽게 접하기 힘든 희소한 품종들, 유명 맛집의 시그니처 메뉴를 그대로 재현한 간편식까지, 그녀만의 안목이 담긴 상품들이었다."지난달 실적, 보고받으셨습니까."정지훈이 바둑돌을 굴리며 물었다."봤지. 매출이 벌써 우리 초기 콜드체인 사업 때보다 낫더구나."정 회장이 흡족한 얼굴로 답했다."신선도 유지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더라. 냉장, 냉동, 실온까지 상품 특성에 맞춰 따로 포장해서, 다음 날 새벽이면 문 앞에 도착한다지.""제이 씨답죠."정지훈이 웃으며 답했다."어설프게는 안 하는 성격이니까요."같은 시각, 도심의 한 사무실에서 제이는 신상품 시식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남의 한 소문난 식당에서 삼 대째 이어온 비법을 재현한 국물 요리였다. 그녀는 시식용 그릇을 하나씩 확인하며, 직원들에게 세심하게 지시를 내렸다."이 정도 온도면, 배송 중에도 맛이 흐트러지지 않을 거예요."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예리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저녁, 제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몇 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예식장을 정하고, 청첩장을 돌리고, 자잘한 준비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사이, 어느새 봄이 완연해져 있었다.결혼식 날 아침, 신부 대기실 거울 앞에 앉은 제이는 낯선 얼굴을 바라보듯 자신의 모습을 응시했다.하얀 드레스, 곱게 올린 머리, 살짝 붉게 물든 뺨까지,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창밖으로는 이미 하객들이 하나둘 도착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긴장되세요?"메이크업을 마무리하던 스태프가 화장솜을 정리하며 물었다."조금요."제이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스태프도 그런 그녀를 보며 따라 웃었다.그 긴장은 두려움이 아니라, 벅찬 설렘에 가까웠다.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대기실 문이 열리고 정 회장이 들어섰다.지팡이를 짚은 걸음이었지만, 그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했다.그는 한동안 말없이 제이를 바라보다가, 눈시울을 붉혔다."참 곱구나."정 회장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졌다."우리 가족이 되어줘서, 고맙다."뒤이어 정지훈이 얼굴을 내밀었다. 오늘따라 그의 옷차림도 평소보다 한층 정갈했다.그의 옆에는 미국에서 건너온 조희진이 함께였다.결혼식 며칠 전,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조희진은 제이의 손을 꼭 잡으며 몇 번이고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었다."예쁘다, 정말."조희진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그녀는 제이의 손을 다시 한번 가만히 감싸 쥐었다."이렇게 좋은 날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정지훈은 그 옆에서 말없이 미소 지었다.식이 시작되기 직전, 준호가 대기실 앞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제이는 마지막으로 거울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향했다.문이 열리자, 턱시도를 입은 준호가 서 있었다.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잠시 숨을 멈춘 듯 굳어졌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사이였지만, 오늘의 그녀는 또 다른 얼굴처럼 낯설고도 눈부셨다."예쁩니다. 정말로."그
퇴원 날 아침, 제이는 병실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며 짐을 정리했다. 며칠 동안 머물렀던 병실이지만, 막상 떠나려니 묘한 아쉬움과 후련함이 동시에 밀려왔다."몸은 좀 어떠세요?"준호가 그녀의 짐가방을 대신 들며 물었다."많이 가벼워졌어요, 정말로."제이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컨디션도 아주 좋고요. 이렇게 빨리 퇴원할 줄은 몰랐어요."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회복도 예상보다 빨랐다. 퇴원 후 몇 가지 생활 수칙을 지키고, 정기적인 추적 검사만 잘 받으면 된다는 의사의 말에, 제이는 그제야 마음 깊이 안도할 수 있었다.간호사가 마지막 퇴원 서류를 건네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다시 한번 짚어주었다. 준호는 그 하나하나를 꼼꼼히 메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를 넘기는 그의 손끝에는 조금의 소홀함도 없었다."당분간 무리한 운동은 피하시고, 식사도 천천히 규칙적으로 하셔야 합니다. 물은 충분히 드시는 게 좋고요."간호사가 웃으며 덧붙였다."보호자분이 더 열심히 들으시네요."준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메모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병원 로비를 지나 정문을 나서는 순간, 제이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전생에서는 이 문을 이렇게 걸어 나가지 못했다.병원 냄새와 약 봉투, 점점 짧아지던 의사의 말. 그 끝에 무엇이 있었는지, 제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혼자 병실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던 그 마지막 계절도.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서늘하고 외로운 시간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제 발로 이렇게 걷고 있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왜 그러세요?"준호가 걸음을 멈춘 그녀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이 스쳤다."아니에요."제이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그냥, 이 순간이 새삼 감사해서요."병원을 나서는 길, 봄바람이 부드럽게 두 사람을 스쳤다."오늘은 집에 가서 쉬셔야 합니다."준호가 단호하게 말했다."드레스 한 벌 보는 것도 안 돼요?"제이가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안 됩니다.""한 시
수술실 앞, 제이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이동 침대에 누워 있었다.형광등 불빛이 눈부시게 그녀의 얼굴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금방 끝날 겁니다."준호가 그녀의 손을 마지막으로 꽉 잡으며 말했다.그의 목소리는 애써 담담했지만, 손끝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저 하나도 안 무서워요, 정말로."제이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아직 마취 전이라 정신은 또렷했다."오히려 준호 씨가 더 많이 긴장한 것 같은데요.""티가 많이 납니까."준호가 멋쩍게 웃었다. 그는 그녀의 손등에 가만히 입을 맞추며 나직이 속삭였다."수술실 밖에서, 결과 나올 때까지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이고 기다리겠습니다.아무 걱정 말고, 편안하게 다녀오세요."간호사가 다가와 이동 침대를 조용히 밀기 시작했다.바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복도에 나직이 울렸다. 제이는 마지막으로 준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금방 다시 만나요."수술실 문 안으로 침대가 들어섰다.밝은 조명 아래, 마스크를 쓴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낯선 기계음과 소독약 냄새가 사방을 채웠다. 마취과 의사가 그녀의 팔에 조심스럽게 주삿바늘을 꽂았다."숫자를 거꾸로 세어보실래요? 열부터요.""열, 아홉, 여덟……."의식이 흐려지는 건 순식간이었다.여섯을 채 세기도 전에, 제이의 눈꺼풀이 힘없이 감겼다.그것이 그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의식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어렴풋이 들려온 기계음만이 희미하게 귓가에 맴돌았다.얼마나 지났을까. 제이는 서서히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마취가 덜 풀린 몸은 여전히 무겁고 나른했다.팔다리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눈꺼풀을 힘겹게 밀어 올리자, 낯선 회복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수술을 마친 환자들이 병실 등급과 상관없이 잠시 함께 머무는 공용 공간이었다.커튼으로 구획된 침상들 사이로, 흐릿한 형체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그녀의 침상 바로 옆, 보호자용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한 남자였다.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친 채, 지친
건강검진 예약일 아침, 제이는 준호와 함께 서둘러 병원을 찾았다.이른 시간이었지만, 대기실에는 벌써 여러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긴장하지 마세요."준호가 대기실 의자에 나란히 앉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매년 이맘때쯤 받던 거잖아요.""긴장 안 해요, 정말로요."제이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하지만 그녀의 손끝은 미세하게 차가웠다.회귀 전, 이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를 맡을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마흔다섯의 나이로 마주했던 그 진단명, 그리고 이미 손쓸 수 없었던 그 순간이.그때는 증상이 나타나고도 한참을 미루다가, 결국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병원을 찾았었다.이번 생에서는 다를 거라고, 그녀는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매년 거르지 않고 검진을 받아온 것도, 결국 그 오래된 두려움 때문이었다.간호사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제이는 옅게 숨을 고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진료실 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발걸음이 조금씩 무거워졌다."다녀올게요.""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준호가 그녀의 손을 놓아주며 답했다.그의 시선이 그녀가 진료실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그 문을 향해 있었다.내시경 검사가 끝난 뒤, 의사가 화면을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흐릿한 모니터 화면 위로 위 내벽의 사진들이 여러 장 떠 있었다."위 안쪽에서 작은 병변이 하나 발견됐습니다."제이의 심장이 순간 덜컥 내려앉았다. 익숙한 그 단어가, 오래된 두려움을 순식간에 되살렸다."조직검사를 진행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크기나 위치로 봤을 때 초기 단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다행히 증상이 거의 없으셨는데도 이렇게 일찍 발견하신 게, 정말 다행입니다.보통은 이런 초기 병변은 스스로 알아채기가 쉽지 않거든요."제이는 화면 속, 작게 표시된 그 병변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손끝이 저릿하게 떨려왔지만,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대기실로 나온 준호가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다가왔다."어떻게 됐
다음 날 아침 일찍, 제이는 왼손 약지에 낀 반지를 몇 번이고 내려다보았다.어젯밤의 기억이 여전히 꿈결처럼 느껴졌다.창밖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반지 위에 부딪혀 은은하게 빛났다."실감이 안 나요."그녀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준호가 그녀 옆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조심스럽게 건네며 옅게 웃었다."저도 그렇습니다. 몇 번이나 연습했는데도, 막상 그 순간이 되니 머릿속이 하얘지더군요.""연습까지 하셨어요?"제이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럼요. 거울 앞에서 몇 번이나 대사를 맞춰봤는지 모릅니다.그런데도 막상 당신 얼굴을 보니까, 준비했던 말은 다 어디로 가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그냥 말하게 되더군요."준호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제이는 그 모습이 우스워 웃음을 터뜨렸다."준호 씨도 그렇게 긴장할 때가 있으시네요. 평소엔 그렇게 침착하시더니.""당신 앞에서는, 늘 그렇습니다."그날 오후, 두 사람은 정 회장의 본가를 함께 찾았다.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정지훈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이 집을 드나드는 그였다."저희,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준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 회장과 정지훈의 시선이 동시에 두 사람에게 향했다.제이가 왼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반지가 빛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였다.정 회장의 눈이 커졌다."이거…….""어제, 제가 청혼했습니다."준호가 담담히 말했다."제이 씨가, 받아주셨고요."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정 회장의 얼굴에 오랜만에 보는, 환한 웃음이 번졌다.그의 주름진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드디어……."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드디어 좋은 소식을 듣는구나.요즘 이 늙은이한테 이런 기쁜 소식이 연달아 찾아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지훈이가 돌아온 것도, 회사가 이렇게 자리 잡은 것도, 이제 너희 둘까지,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정지훈도 환하게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