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41. 붙잡힌 사람

Author: 지호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7 16:15:25

해가 진 뒤, 도성 서문 앞에 짐보따리를 멘 사내 하나가 나타났다.

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성문을 지키던 군졸들은 낮부터 드나드는 사람의 얼굴과 통행패를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사내는 문 앞에서 한참 머뭇거렸다. 그러다 군졸 하나에게 다가가 품에서 패를 꺼냈다.

“고향에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오늘 안에 나가야 합니다.”

군졸이 통행패를 받아 들었다.

“이건 사흘 전 패다.”

“새것을 받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늘은 누구도 나갈 수 없다.”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잠깐만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은전 두 닢이 놓여 있었다.

군졸은 은전을 보지 않았다.

“그 손 내려라.”

“나리.”

“내리라고 했다.”

사내가 황급히 손을 거두려는 순간이었다.

“잡아라!”

성문 옆 그늘에 서 있던 백건의 사람이 달려들었다.

사내는 곧장 몸을 돌려 달아났다. 짐보따리가 땅에 떨어지고, 안에서 옷가지와 마른 떡이 흩어졌다.

사내는 성벽 아래 좁은 길로 뛰어들었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52. 서로의 죄

    다음 날 아침, 대전 바닥에는 붉은 비단 꾸러미와 문서 뭉치가 놓여 있었다.윤정명의 인장과 병조의 관인이 나란히 놓인 모습에 대신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임금은 문서 한 장을 들어 올렸다.“세자를 폐하고 새로운 국본을 세운다.”낮게 읽은 문장이 대전 안에 떨어졌다.“윤정명의 인장과 병조의 관인이 함께 찍혔다. 누가 이 문서를 만들었는지, 오늘 여기서 밝히겠다.”나장이 조필규와 최 내관을 차례로 끌고 들어왔다.조필규는 밤새 심문을 받은 듯 얼굴이 푸석했다. 최 내관은 무릎을 꿇자마자 바닥에 이마를 댔다.“최 내관.”임금이 불렀다.“네가 귀비전 약재 창고에 인장을 숨겼느냐.”최 내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그, 그렇습니다.”대신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귀비전의 내관이 직접 인정한 이상, 귀비를 향한 의심도 피할 수 없었다.“누구의 명이었지.”최 내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운이 문서 한 장을 그의 앞에 던졌다.“이 글을 보아라. 네가 숨긴 인장으로 세자를 폐하겠다는 문서를 만들었다. 그래도 누구의 명인지 말하지 못하겠느냐.”“읽었습니다. 하지만 그 문서를 제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이운이 차갑게 물었다.“읽고도 윤정명 대감의 인장과 함께 숨겼군.”최 내관의 어깨가 움찔했다.채원이 앞으로 나왔다.“조필규가 네게 건넸지.”최 내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대답해라.”“예.”“언제.”“초여드레 밤입니다.”“어디에서.”“후원 서쪽 길입니다.”조필규가 고개를 들었다.“거짓입니다. 저는 최 내관에게 인장을 건넨 적이 없습니다.”“네가 거짓말을 한다.”최 내관이 처음으로 조필규를 보았다.“네가 붉은 비단에 싸서 내게 주지 않았느냐. 귀비전 창고에 잠시 두라고 했잖느냐.”“내가 왜 그리하겠느냐.”“약속한 돈도 주지 않았습니다!”최 내관이 다급하게 말을 쏟아 냈다.“사건이 끝나면 내게 은전 백 냥을 준다 했습니다. 인장은 잠시만 맡기면 된다 했고, 일이 끝나면 가져가겠다 했습니다.”조필규의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51. 귀비전의 인장

    “궁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느냐.”임금의 물음에 신태오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그 인장을 누가 받아 갔는지 보았느냐.”“보았습니다.”대전의 시선이 다시 신태오에게 쏠렸다.“말해라.”“귀비전의 최 내관이었습니다.”내관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와 있던 임금의 손이 멈췄다.이운이 물었다.“조필규가 직접 넘겼지.”“예. 궁 서쪽 후원 길입니다. 조필규 나리가 붉은 비단 꾸러미를 내밀었고, 최 내관이 받았습니다.저는 그 곁을 지나가다 보았습니다.”“그 뒤 어디로 가져갔는지는.”“귀비전 쪽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보았습니다.”김태겸이 굳은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전하, 죄인의 말 하나로 귀비전까지 뒤지는 것은 무리입니다. 최 내관이 무엇을 받았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채원이 김태겸을 바라봤다.“출궁 장부를 고친 자의 말이라서 못 믿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귀비전에서 나올 물건이 두려우신 겁니까.”“세자빈마마.”“대감은 박칠성의 말 한마디로 제 사가를 뒤졌습니다. 그때는 증거가 충분했습니까.”김태겸의 입가가 굳었다.채원은 임금에게 시선을 돌렸다.“신태오의 말만 믿자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의 명으로 확인하자는 것입니다.인장이 없다면 귀비전의 억울함도 그 자리에서 풀릴 일입니다.”임금은 잠시 말이 없었다.그러다 내관을 불렀다.“금군을 보내라. 귀비전의 최 내관을 잡아들이고, 전각과 창고를 모두 봉하라.”“예, 전하.”“세자와 세자빈도 함께 가 보아라. 의금부 당상을 보내고, 수색한 물건은 누구 손에도 건네지 말고 내 앞에 가져오라.”이운이 고개를 숙였다.“명을 받들겠습니다.”귀비전의 문이 열렸을 때, 귀비는 이미 뜰에 나와 있었다.소식을 들은 모양이었다.귀비는 급히 끌려 나온 사람이 아니었다.옷매무새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손에는 아직도 향이 밴 비단 손수건이 들려 있었다.“전하께서 제 전각을 뒤지라 하셨다지요.”“그렇습니다.”이운의 대답은 짧았다.귀비는 채원을 바라봤다.“빈궁이 드디어 내 전각까지 발을 들이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50. 신태오의 말

    임금은 의금부 당상의 보고를 듣자마자 손을 들었다.“신태오를 대전으로 들라.”잠시 뒤 나장들이 사내 하나를 끌고 들어왔다.신태오는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왼손의 엄지가 잘린 자리와 검지 사이의 붉은 점이 등불 아래 그대로 드러났다.대전 양옆에 선 대신들이 낮게 술렁였다.이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초여드레 밤, 세자빈의 출궁 기록을 네가 적었지.”신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임금의 목소리가 대전을 눌렀다.“궁문 장부를 고친 죄만으로도 네 목숨은 남기기 어렵다. 네가 누구의 명을 받았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 말해라.”신태오의 입술이 잠깐 떨렸다.김태겸이 앞으로 나섰다.“전하, 죄인이 살길을 찾으려 거짓을 꾸밀 수도 있습니다. 장부 하나가 잘못되었다 하여 윤정명 사건을 다시...”“병조판서는 물러서라.”임금의 말에 김태겸의 입이 다물렸다.“지금은 이 자의 말을 듣겠다.”이운은 신태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누가 시켰지.”신태오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조필규의 사람입니다.”“이름을 말해라.”“모릅니다. 밤에 왔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조필규의 사람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그자가 조필규 나리의 명이라고 했습니다. 초여드레 자시 전, 세자빈마마께서 서문을 나갔다고 적으라 했습니다.서문을 지키던 사람들에게는 왕명으로 궁 안쪽의 순찰을 도우라 했고요.”채원이 차분히 물었다.“통행패는.”신태오가 고개를 들었다.“없었습니다.”“수행한 나인은.”“적지 않았습니다.”“그런데도 내 출궁을 장부에 적었다.”“예.”채원의 손이 천천히 쥐어졌다.그날 밤 자신은 궁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장부 속의 윤서아는 서문을 지나 윤정명 사가로 향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김태겸이 다시 입을 열었다.“세자빈마마께서 궁을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과 윤정명 사가에 역모의 물건이 없었다는 사실은 별개입니다.죄인의 장부 한 줄을 물고 늘어져...”“대감께서는 이미 답을 알고 계신 듯 말씀하십니다.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49. 서문의 기록

    내관은 떨리는 손으로 출입부를 바쳤다.“초여드레 자시 전, 세자빈마마께서 서문으로 나가셨다고 적혀 있사옵니다.”대전 안의 시선이 다시 채원에게 쏠렸다.채원은 장부를 보지 않았다. 이 기록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자신은 알 수 없었다.다만 최억쇠가 본 것이라며 외운 날짜와 시각이 이 기록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이운이 내관에게 손을 내밀었다.“내가 보겠다.”그는 출입부를 받아 한 줄씩 훑었다. 붓으로 적힌 글씨 아래에는 서문 당직자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이운의 표정이 달라졌다.“여기 적힌 당직자가 누구냐.”내관이 장부를 들여다보았다.“병조 별감 신태오입니다, 저하.”대전 안에서 웅성거림이 터졌다.신태오는 며칠 전 동궁에서 세자빈을 향해 칼을 뽑았다.그가 나인을 죽이려 한 자객과도 이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의금부에 올라가 있었다.김태겸이 입을 열었다.“신태오가 당직이었다고 하여, 출입 기록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맞습니다.”이운이 말했다.“그러니 기록이 만들어진 절차를 확인해야 합니다.”“세자빈이 자시가 넘어 궁문을 나가려면, 출궁을 허락한 명과 동행한 궁인의 이름이 함께 남아야 하지 않습니까.”임금이 내관에게 물었다.“그러하냐.”“그러하옵니다. 특히 세자빈마마께서는 홀로 궁문을 나가실 수 없사옵니다.”“그 기록에는 무엇이 적혀 있느냐.”내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세자빈마마의 성함과 서문을 나간 시각만 있습니다.”“출궁을 허락한 명은?”“없사옵니다.”“동행 궁인은?”“적혀 있지 않사옵니다.”김태겸의 입가에서 웃음이 지워졌다.이운이 장부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신태오는 세자빈이 나간 것을 확인한 자가 아니라, 세자빈이 나갔다고 적은 자다.”“저하.”“허락도, 동행한 사람도 없는 출궁이 궁문을 통과했다는 말이냐.그 기록을 믿으려면 신태오 하나의 말을 믿어야 한다.”김태겸이 낮게 말했다.“세자빈마마께서 허락 없이 몰래 나가셨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채원이 그를 돌아보았다.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48. 기억나지 않는 외출

    “세자빈마마셨습니다.”최억쇠의 말이 떨어지자 대전이 조용해졌다.채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몸에 남은 기억 속의 최억쇠는 마차를 끌던 사람이었다.말이 놀라면 먼저 고삐를 잡고, 어린 서아가 울면 몰래 엿을 쥐여 주던 사람이었다.그런 사람이 지금 자신을 역모의 한가운데 세웠다.이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본 것을 처음부터 다시 말해라. 창고 안에 무엇이 있었지.”최억쇠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칼이었습니다.”“몇 자루였느냐.”사내의 입술이 바싹 말랐다.“서른 자루였습니다.”채원이 고개를 들었다.대전 안의 몇몇 신하도 같은 표정을 지었다.앞서 의금부가 읽은 대장간 장부에는 초아흐레 새벽 칼 서른 자루를 수레에 실었다고 적혀 있었다.그런데 최억쇠가 본 밤은 초여드레였다.“방금 뭐라고 하였느냐.”채원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또렷했다.최억쇠가 대답하지 못했다.“문이 조금 열려 있었고, 상자 하나가 넘어지며 칼집 든 칼이 보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상자 안의 칼이 정확히 서른 자루였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긴 상자가 다섯 개였습니다. 하나에 여섯 자루씩….”“상자를 열어 보고 말 한 것이냐?”“아니옵니다.”“그럼 누가 하나에 여섯 자루라고 말해 주었느냐?”최억쇠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김태겸이 나섰다.“상자 수와 크기를 보고 짐작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마부로 오래 일한 자라면 무기 상자의 모양도 알았을 것입니다.”채원은 김태겸을 보지 않았다.“짐작한 숫자가 공교롭게도 다음 날 대장간에서 나왔다는 칼의 수와 같다는 말씀이군요.”“그 칼만 윤정명 사가에 있었다는 증거도 없지요.”“그렇다면 최억쇠에게 다른 무기를 보았다고 말하게 하셨어야 했습니다.”대전 안에서 짧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최억쇠의 시선이 바닥을 헤맸다.손등은 떨리고 있었다. 채원은 그 손이 예전처럼 고삐를 잡을 때보다 훨씬 작아 보인다고 생각했다.“최억쇠.”임금이 불렀다.“네가 본 칼은 몇 자루였느냐.”사내는 답하지 못했다.“모른다면

  •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47. 두 번째 목격자

    김태겸의 말이 끝나자 대전 안이 술렁였다.“다른 목격자라니.”임금이 물었다.김태겸은 한쪽으로 비켜섰다.“윤정명 사가에서 오래 일했던 자입니다.집안이 무너진 뒤 몸을 숨기고 있었으나, 이번 재조사 소식을 듣고 저를 찾아왔습니다.”“누가 그자를 데려왔느냐.”“의금부에 넘겼습니다. 오늘의 심문에는 의금부 관리들이 함께 지켜보게 하였습니다.”임금이 내관에게 손을 들었다.“들라 하라.”잠시 뒤, 회색 두루마기를 입은 사내가 의금부 나장 둘 사이로 들어왔다.오십 줄은 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옷차림은 남루했지만 허리를 깊이 굽히는 모양은 익숙했다.채원의 눈이 사내의 얼굴에서 멈췄다.낯이 익었다.기억이라기보다, 몸 어딘가에 남아 있던 감각이었다.비가 오던 날 마차를 대령하던 손. 어린 서아에게 말 안장에 오르는 법을 가르치며 웃던 목소리.“이름이 무엇이냐.”“최억쇠라 하옵니다. 윤정명 대감 댁에서 마부로 일했습니다.”사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의금부 당상이 품에서 문서 한 장을 꺼냈다.“윤정명 사가의 옛 호적과 마구간 인부 명단을 대조했습니다. 최억쇠는 십이 년간 그 집 마부로 적혀 있습니다.”임금의 시선이 사내에게 다시 향했다.“네가 달아난 뒤 어디에 있었느냐.”“서문 밖 장터를 떠돌았습니다. 이름을 바꾸고 짐을 나르며 살았습니다.”“그런 네가 어찌 병조판서를 찾아갔지.”최억쇠가 움찔했다.“제가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며칠 전, 저를 아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윤정명 대감 사건을 다시 들여다본다 하여… 제가 본 것을 말하면 되겠느냐 물었습니다.”김태겸이 담담하게 덧붙였다.“그자가 제게 온 까닭은, 예전에 병조에 말을 납품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의금부에 넘겼을 뿐입니다.”채원은 김태겸을 잠시 바라봤다. 너무 매끈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따져 물어도, 최억쇠가 그날 밤 무엇을 보았는지는 사라지지 않았다.“대감이 잡혀가던 날 밤, 겁이 나서 달아났습니다. 저까지 붙들리면 아내와 아이도 죽을까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