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무슨 일이지.”
규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채원의 목에 머물러 있었다. 붉게 부어오른 흔적을 바라보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저 상처는 무엇입니까.”
이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규현의 시선이 최 상궁에게 향하자 그녀는 난처한 얼굴로 이운을 바라봤다. 그 짧은 움직임만으로도 무언가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설마…… 마마께서 스스로 목을 매신 겁니까?”
방 안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규현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채원을 바라보던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지고, 옆으로 내려뜨린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윤 대감이 죽었습니다. 윤태경도 죽었고…… 재경이도 죽었습니다.”
마지막 이름에서 목소리가 갈라졌다.
채원은 가만히 규현을 바라봤다. 처음 듣는 이름들이었지만 누구를 말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윤서아의 아버지와 두 오라버니. 이미 자신도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규현은 그들의 죽음을 단순히 전해 들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이름을 입에 올린 뒤에는 한동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하루아침에 셋이 목이 잘렸습니다. 그런데 이제…….”
규현의 시선이 다시 채원에게 향했다.
“서아까지 이 꼴이 됐는데…….”
“조규현.”
차갑게 떨어진 목소리에 규현의 입이 다물렸다.
이운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소리를 높인 것도 아니었고 자리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던 규현이 처음으로 말을 멈췄다.
“네가 지금 누구 앞에 있는지 잊었느냐.”
규현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자빈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려?”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채원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세자가 세자빈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 신하를 꾸짖는 것은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순히 법도를 지적하는 것처럼 들리지만은 않았다.
규현 역시 곧바로 사과하지 않았다. 한동안 이운을 바라보던 그가 겨우 시선을 내렸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굳어진 얼굴까지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규현은 천천히 숨을 고른 뒤 다시 채원을 바라봤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채원은 잠시 규현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규현의 표정이 멈췄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예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규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채원을 바라봤다. 입술이 몇 번 움직였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마께서 정말…… 저를 모르십니까?”
채원은 규현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봤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름을 듣기 전까지는 조규현이라는 사람의 존재조차 몰랐다.
그런데 규현 쪽은 달랐다. 윤서아가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했고, 목의 상처를 발견하자 얼굴이 굳었다. 윤서아의 가족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고, 급기야 세자 앞에서 세자빈을 이름으로 불렀다.
이 남자는 윤서아와 꽤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채원이 대답하자 규현의 얼굴이 굳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가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그만.”
이운의 목소리가 먼저 떨어졌다.
규현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마마께 더 묻지 마라.”
“저하.”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박 의녀에게 이미 들었다. 지금은 쉬어야 한다.”
단호한 말에 규현은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채원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규현은 세자인 이운 앞에서도 윤서아의 일에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데 이운은 그런 규현의 태도 자체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화를 낸 것은 규현이 윤서아의 이름을 직접 불렀을 때뿐이었다.
규현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하다가 결국 몸을 돌렸다. 문 앞에 다다른 그가 잠시 걸음을 멈췄지만 이번에는 돌아보지 않았다.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규현이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힌 뒤에도 채원은 잠시 그쪽을 바라봤다. 규현이 왜 윤서아의 일에 저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지는 알 수 없었다.
채원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이운이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사람이랑…….”
채원이 잠시 말을 골랐다.
“저랑 많이 가까웠나요?”
이운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을 모두 부르겠다고?”진원군이 명단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위에는 김태겸이 몰락하자 앞다투어 등을 돌렸던 집안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예. 한 사람도 빠뜨리지 말아 주십시오.”“네 아비가 어려울 때 문전박대하던 자들이다. 혼례까지 찾아와 네 얼굴을 보는 것이 즐겁겠느냐?”“즐겁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그들도.”서령의 대답에 진원군의 눈썹이 꿈틀했다.“그런데도 부르겠다는 것이냐?”“그들이 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김씨 집안이 여전히 외면받는다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참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서령은 명단의 한 이름을 짚었다.“이 사람은 아버지께서 곤경에 처하셨을 때 가장 먼저 왕래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혼례에 와서 축하를 올린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김씨 집안이 다시 일어섰다고 생각하겠지.”“그리고 그 집안을 다시 일으킨 분이 누구인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진원군은 서령을 빤히 바라봤다.“나를 치켜세우려고 찾아온 것이냐?”“대감께서 바라시는 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순간 방 안이 조용해졌다.진원군은 얼마 전 이휘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왕실의 혼인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고. 서령은 그 뜻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그렇다면 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도 있겠구나.”진원군은 명단에서 이름 하나를 짚었다.“이자는 네 아비와 등을 진 뒤 내게 찾아와 충성을 맹세했다. 지금은 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지. 그런데 네 혼례에 초대하면 그가 기꺼이 오겠느냐?”“오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까?”“김태겸의 딸 앞에서 지난 일을 떠올려야 할 텐데.”“그렇기에 와야 합니다.”서령은 물러서지 않았다.“그분이 참석하면 아버지를 버린 일을 모두가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참석하지 않으면 대감의 초대까지 거절한 사람이 되겠지요.”진원군의 웃음이 사라졌다.서령은 덧붙였다.“그분께 선택을 맡기십시오. 어느 쪽이든 제게 손해는 아닙니다.”진원군은 잠시 침묵하다가 웃음을 터뜨렸다.“네가 사람을 제법 곤란
진원군이 이휘의 혼례를 앞당기겠다고 밝힌 것은 윤재경에 대한 조사가 조정의 입에 오르내리던 때였다. 세자의 측근을 둘러싼 의혹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진원군은 왕실에 경사가 필요한 시기라며 혼례 날짜를 다시 의논하자고 했다.이휘는 부친의 뜻을 전해 듣고 곧장 찾아갔다. 혼례를 치르는 데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해진 일정을 굳이 바꿀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아버님, 서령과의 혼인을 서두르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조정이 어수선하니 그러는 것이다. 나라에 근심이 있다고 왕실의 경사까지 미룰 필요는 없지 않으냐.”“오히려 이런 때일수록 조용히 치르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진원군은 아들의 말을 듣고도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너는 혼례를 그저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일로만 여기는구나. 왕실의 혼인은 그보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이휘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얼마 전까지 세자의 자리를 입에 올리던 사람이었다. 이 혼례에도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혼례를 빌미로 제게 다른 일을 바라시는 것은 아니겠지요?”진원군의 눈빛이 잠시 차가워졌다.“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혼례를 치르는 일까지 의심한다면 내가 네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이휘는 더 묻지 못했다. 부친은 날짜를 앞당기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혼례 준비를 돕겠다며 사람까지 붙여 주었다.서령에게도 곧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는 혼례가 빨라졌다는 말보다 진원군이 준비에 직접 관여한다는 사실에 더 신경이 쓰였다. 몰락한 김씨 집안의 딸인 자신에게 왕실 혼례를 치를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진원군에게 맡길 생각도 없었다.“혼례에 필요한 물목과 일을 맡을 집안들을 적어 오너라. 빠짐없이 살펴야겠다.”시녀가 가져온 목록에는 예물과 비단을 마련하는 상인들뿐 아니라 혼례 준비를 거들겠다고 나선 관리들의 집안도 적혀 있었다. 서령은 처음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읽었다. 왕실과 혼인하는 만큼 여러
“그날 밤, 자신을 살려 준 사람이 누구였는지.” 담당 관원이 쪽지의 마지막 문장을 읽자 윤재경의 얼굴이 굳었다. 자신이 살아 돌아온 경위를 묻는 것과는 전혀 다른 질문이었다. 누군가 그날 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윤재경,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느냐?” 재경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행방불명되었던 동안의 기억은 온전하지 않았다. 의식을 잃기 전후의 일도 분명하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쪽지를 보낸 자는 자신을 살려 준 사람이 있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소인도 그 뜻을 알지 못하옵니다.” “허면 어찌 그리 놀랐느냐?” “소인조차 알지 못하는 일을 누군가 알고 있는 듯하여 놀랐사옵니다.” 담당 관원은 쪽지를 다시 살폈다. 재경의 대답이 거짓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쪽지를 남긴 자가 실제로 그날의 일을 목격했다면 조사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었다. “증언을 거두겠다는 자를 다시 불러오라.” 잠시 뒤 사내가 끌려왔다. 이름은 박만수였다. 그는 처음 조사에 나섰을 때, 재경이 행방불명되었던 무렵 도성 밖에서 그에게 서찰 한 통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그날의 상황을 자세히 묻자 대답을 흐렸고, 끝내 증언을 거두겠다며 쪽지 한 장을 남겼다. 지금 담당 관원이 읽은 바로 그 쪽지였다. “네가 직접 쓴 것이냐?” “아니옵니다. 어떤 분이 전해 달라 하였사옵니다.” “그자가 누구냐?”“이름은 밝히지 않았사옵니다. 다만 윤재경 나리께 반드시 전하라 하였사옵니다.”담당 관원이 재경을 돌아봤다. 재경은 사내의 얼굴을 살폈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의식을 잃었던 시기가 있었으니 그를 만난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었다.“서찰을 전한 곳이 어디냐?”“도성 서쪽 산길이옵니다. 윤 나리께서 홀로 계셨사옵니다.”“그대가 나를 알아본 까닭은 무엇이오?”“서찰을 맡긴 분께서 용모와 차림새를 일러주셨사옵니다.”재경은 더 묻지 않았다. 사내가 자신을 알아본 것만으로는 거짓을 밝힐 수 없었다
윤재경이 의금부에 모습을 드러내자 기다리던 관리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윤재경. 그대의 생존 경위를 밝히라는 상소가 올라왔소.”“알고 있사옵니다.”“그렇다면 묻겠소.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사람이 어찌 살아 돌아왔소?”재경은 준비해 온 진술서를 내놓았다.“제가 직접 겪은 일은 모두 적었사옵니다. 다만 의식을 잃었던 동안의 일까지 안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사옵니다.”담당 관원이 진술서를 훑었다.“그렇다면 이 기록에 빈 부분이 있다는 뜻이오?”“그렇사옵니다.”“그대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데?”“모르는 일을 안다고 하는 편이 더 큰 죄라 생각하옵니다.”관원은 잠시 말을 멈췄다.재경은 고개를 숙인 채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그대가 살아 돌아온 뒤 세자 저하께서 여러모로 보살피셨다고 들었소.”“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옵니다.”“그뿐이오? 세자빈마마께서는 그대의 누이이기도 하지 않소?”“그렇사옵니다.”“그렇다면 세자 저하께서 그대의 진술을 보증하실 수 있겠구려?”재경이 고개를 들었다.“어찌 저하께서 제 진술을 보증하셔야 합니까?”“그대와 각별한 사이이니 묻는 것이오.”“각별한 사이인 것과 제가 겪은 일을 아시는 것은 다르옵니다.”관원의 눈썹이 꿈틀했다.“그대는 지금 세자 저하께서도 모르는 일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오?”“제가 의식을 잃었던 동안의 일은 저 자신도 모르옵니다. 저하께서 어찌 아시겠사옵니까?”옆에 앉아 있던 다른 관리가 끼어들었다.“허나 세자 저하께서 그대를 믿으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소?”재경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소인의 진술이 거짓이라면 소인을 벌하시면 됩니다. 어찌 저하의 이름을 물으십니까?”순간 조사장 안이 조용해졌다.재경이 말을 이었다.“저하께서 저를 믿으신다는 이유로 제 말이 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믿지 않으신다는 이유로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옵니다.”“말은 잘하는군.”“저는 제 일로 이 자리에 왔사옵니다. 다른 분의 이름을 빌릴 생각은 없사옵니다.”담당 관원이 진술서를 내려
“윤재경의 생존 경위를 밝혀야 한다는 상소가 다시 올라왔사옵니다.”내관의 보고에 이운이 눈살을 찌푸렸다.“지난번에도 논의했던 일이 아니더냐?”“이번에는 윤재경을 직접 불러 문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사옵니다.”“문초요?”채원이 벌떡 일어났다.“오라버니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요?”이운은 상소를 펼쳤다. 마지막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세자 저하께서 사사로운 인연으로 윤재경을 비호하신다면 조정의 기강이 흔들릴 것이옵니다.“결국 나를 겨냥한 것이군.”이운이 상소를 내려놓았다.“재경을 동궁으로 들라 하라.”---“제가 직접 나가겠습니다.”재경은 상소를 읽자마자 말했다.“오라버니!”채원이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 줄 알고요?”“그러니 나가야지.”“오라버니는 죄인이 아니잖아요.”재경이 동생을 바라봤다.“서아야. 나도 그걸 안다. 하지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저들은 계속 떠들 거다.”이운이 끼어들었다.“재경아, 네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저들이 무슨 속셈인지 뻔하지 않느냐.”“알고 있사옵니다, 저하.”“그런데도 가겠다는 것이냐?”“예.”재경은 물러서지 않았다.“제가 살아 돌아온 일로 저하께서는 물론 서아까지 공격받고 있사옵니다. 더는 두 분께 짐을 지울 수 없습니다.”“내가 너 하나 지키지 못할까 봐 그러느냐?”“그런 뜻이 아니옵니다.”재경은 잠시 숨을 골랐다.“저하께서 저를 지켜주시려는 마음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허나 이번 일은 제가 감당해야 합니다.”“네가 직접 나선다고 의심이 사라질 것 같으냐?”“그렇지 않을 수도 있사옵니다.”“그걸 알면서도?”“예. 그래도 제 입으로 말하겠습니다.”재경이 이운을 똑바로 바라봤다.“제 삶을 두고 남들이 옳다 그르다 떠드는 동안 저만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사옵니다.”이운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어릴 적부터 네 고집은 알아줬지만, 이번만큼은 말리고 싶구나.”“송구하옵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습니다.”---같은 시각
“세자빈마마께서 죽은 사람을 살려내셨다지?”“죽은 사람이 아니라 세자 저하시잖아. 말조심해!”궁녀들이 물동이를 내려놓고 수군거렸다.“의원들도 포기했다는데 마마께서 저하의 가슴을 마구 누르셨다더라.”“그랬더니 숨이 돌아왔다지 뭐야.”“정말 신통한 재주를 지니신 모양이야.”그때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궁 안에서 입이 그리 가벼워서야 되겠느냐!”최 상궁이었다.궁녀들이 놀라 고개를 숙였다.“송구하옵니다!”“세자 저하께서 아직 회복 중이시다. 근거 없는 말을 퍼뜨리지 말거라.”궁녀들이 흩어지자 최 상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나 소문은 이미 동궁을 넘어 궁 전체로 퍼지고 있었다. ---“제가 신통한 재주를 부린다고요?”채원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최 상궁이 난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하옵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비법을 아신다는 말까지 돌고 있사옵니다.”“그런 비법이 어디 있어요.”채원은 이마를 짚었다.촬영장에서 응급처치 교육을 받을 때마다 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심장이 멈췄다고 무조건 살아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그날 이운이 살아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 모든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소문이 더 커지면 곤란해요. 제가 무슨 신선도 아니고.”“소인이 단속하겠사옵니다.”그때 문밖에서 내관이 아뢰었다.“마마, 의관 한 분이 뵙기를 청하옵니다.”“들어오시라 하세요.”들어온 의관은 예를 올린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마마, 세자 저하를 구하신 일로 의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사옵니다.”“어떤 말입니까?”“마마께서 의원의 진료에 앞서 저하의 몸에 손을 대신 일을 두고 우려하는 이들이 있사옵니다.”채원의 표정이 굳어졌다.“제가 잘못했다는 겁니까?”“그런 뜻은 아니옵니다. 다만 의술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따라 하다가는 도리어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옵니다.”그 말에는 채원도 반박할 수 없었다.“그건 맞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