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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Author: 코코넛 서고
연기준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서늘한 눈빛으로 서인경을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공기 속에 어색한 정적이 흐르자 경조부윤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오는 길에 다 들었습니다. 왕비마마께서 다치지 않으셨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부디 왕야와 왕비마마께서는 먼저 환궁하시지요. 여기는 신이 책임지겠습니다.”

그제야 연기준은 천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민가의 여인을 강제로 빼앗고 몰래 불법을 저질러온 곳이 만춘원이 아니더냐? 네가 이 도성의 수령인데 어찌 한 점의 기미도 눈치채지 못했단 말이냐?”

서인경은 그제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연기준은 이미 단 가의 더러운 짓을 전부 알고 있었던 것인가?

경조부윤은 그저 시시껄렁한 유흥 시비를 정리하라고 자신을 부른 줄 알았다. 하지만 오는 길에 상왕비가 현장에 있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가 지끈리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상왕이 직접 목소리를 높이니 발뺌하기는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부랴부랴 의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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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055화

    “폐하, 변통을 나르는 내시 소양자가 돌아와 전했습니다. 그 큰 인물께서 몇 번이나 당부했다고 합니다. 연기준과 서인경은 계략이 많은 사람들인데 그녀가 감히 궁연을 연다는 것은 어쩌면 연기준이 아예 궁을 떠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의 계획도 바뀌어야 한답니다. 모든 일은 모레 정오 궁연이 끝난 뒤 상황을 보고 다시 정하겠다고 했습니다.”태상황의 얼굴이 어둡게 굳었다. 또 기다려야 한다니. 그는 이미 충분히 오래 기다려 왔다.서인경이 자신의 침상 곁에 있던 여인까지 서슴없이 죽이는 모습을 본 뒤로 그는 하루라도 더 기다리는 일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사람의 도움 없이는 태상황 혼자서는 서인경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분노를 억누른 채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좋다. 하루 더 기다리겠다. 그자가 짐을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그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다음 날.늘 고요하던 후궁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수레바퀴 소리, 이별의 인사, 짐을 옮기는 소리들이 후궁 곳곳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태황태후는 불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이 서인경이라는 계집이 끝내 우리 진국 황실 자손들을 경성 밖으로 내쫓아 황실의 복을 흩어 놓으려 하는구나! 대체 무슨 속셈이냐!”옆에 있던 유모가 슬그머니 말을 보탰다.“태황태후 마마, 우리 진국 황실은 원래 자손이 번성하고 복이 이어지던 집안이었습니다. 헌데 그녀가 이렇게 뒤흔들어 놓으니 폐하께서는 이제 비빈은커녕 통방 시녀 하나도 없습니다. 이대로라면 진국의 강산을 이을 사람이 결국 그녀의 아들 하나뿐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태상황의 열다섯 째 황자를 태자로 세우도록 밀어 준 것이겠지요. 겉으로는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 하지만 실은 앞으로 자기 아들과 경쟁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열다섯 째 황자는 지금 의지할 세력도 없으니 훗날 태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도 결국 그녀 손에 달린 셈이지요.”태

  • 시간을 거슬러   제1054화

    두 사람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바깥에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 신태비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궁을 떠났다.서인경은 그녀의 뒷모습이 밤빛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다.다음에 다시 만날 날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었다. 내일이 지나면 이 후궁에 남는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상대해야 할 자들뿐이었다.가라. 모두 떠나거라. 언젠가는 여자에게도 여자의 세상이 오기를.전장에 가고 싶은 여자는 전장으로 갈 수 있고, 평생 혼인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여자는 세상의 시선을 무시하고 마음껏 살아갈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초원을 달리고 싶은 여자는 초원의 여왕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다시는 어떤 여자도 이 자금성 같은 궁 안에 원치 않게 갇혀 남자들의 이해관계를 위한 교환물로 또는 권력의 희생양으로 살아가지 않기를.신태비가 떠난 뒤에도 서인경은 계속 곤녕궁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누군가 알현을 청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한 가지뿐이었다.“폐하께서 몸이 편찮으십니다. 황후 마마께서 친히 곁에서 용체를 돌보고 계시니 국사는 당분간 태자께서 대신 처리하실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그 소식이 태상황에게 전해졌다. 그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역시 연기준은 경성에 없군. 어디 한 번 보자. 서인경이 혼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어떻게 감당하는지.”태상황이 손짓하자 곧 한 내시가 다가왔다.“태상황, 무엇을 명하시겠습니까?”태상황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올라갔다.“내일만 지나면 짐은 여전히 진국의 황제다. 감히 말을 잘못하는 놈이 있다면 짐이 그 아홉 족을 모조리 멸하겠다!”내시는 겁에 질려 곧장 무릎을 꿇었다.“폐하, 용서하옵소서! 제가 잠시 말을 잘못했습니다!”그 아첨을 듣자 태상황은 만족한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그 풍덕이라는 놈은 잡아두었느냐?”내시가 대답했다.“이미 사람을 붙여 감시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명만 내리시면 곧바로 잡아오겠습니다.”풍덕. 예전에는 그의 곁을 지키던

  • 시간을 거슬러   제1053화

    옛사람들의 말이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정말로 자애로운 어머니가 자식을 망친다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조금 전 어화원에서 보았던 사람을 떠올린 평이가 급히 입을 열었다.“아, 황후 마마. 조금 전에 어화원에서 신태비를 뵈었습니다. 신태비께서 내일 궁을 떠나신다고 합니다. 오늘 마마를 한 번 뵙고 인사를 올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내일?”서인경이 물었다.“다른 태비들도 모두 내일 궁을 떠나는 것이냐?”평이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그렇습니다. 사실 오늘도 이미 궁 밖에 가족이 있는 태비들은 가족들이 와서 데리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태비들도 모두 내일 궁을 떠날 예정입니다. 내일 밤이 되면 후궁의 궁전 절반은 비게 될 겁니다.”평생을 후궁에 갇혀 살아온 태비들. 자식이 없는 이들은 혹시라도 태상황이 붕어하면 자신들이 순장될까 두려워했다. 자식이 있는 이들 또한 이 감옥 같은 궁을 벗어나 바깥 세상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했다.어차피 태상황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제는 총애를 다툴 이유도 없었다. 궁을 떠날 기회가 생긴다면 누구라도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어 했다.이 궁은 하나의 성과 같았다. 성 밖 사람들은 들어오기를 꿈꾸지만 막상 들어온 사람들은 하루하루 성벽의 벽돌을 세며 살아간다. 그러니 다시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저녁 식사가 끝나면 신태비를 한 번 들게 하거라.”“예, 마마.”평이가 대답했다.그때, 서인경의 동작이 잠시 멈췄다. 무언가 깊이 생각하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무부에 전하거라. 모레 정오에 삼품 이상의 모든 관원과 그 가족들을 궁으로 초청해 연회를 열겠다고. 태상황께서 두 공주를 얻으셨으니 함께 축하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내무부에는 이번 연회를 반드시 성대하고 빈틈없이 준비하라고 말하거라.”평이가 잠시 멈칫했다. 황제가 궁에 없는데 연회를 연다고?“마마, 그때 폐하께서 나타나지 않으시면 들통나지 않겠습니까?”서인경이 담담하게 말

  • 시간을 거슬러   제1052화

    서인경은 자신을 대전 안에 가둔 채 하루 종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다시 문을 열고 나왔을 때는 이미 해 질 녘이었다. 저 멀리 하늘 끝에서 번진 노을은 궁궐 위로 길게 드리워지며 온 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내일도 틀림없이 맑은 날이 될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로울 날이었다.봉한설과 평이는 문밖에서 하루 종일 지키고 서 있었다. 서인경이 모습을 드러내자 급히 다가왔다.“마마, 하루 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습니다. 어선방에 명해 식사를 올리게 할까요?”“준비하거라.”짐작대로라면 등 뒤에서 움직이는 자들의 세력도 곧 경성에서 행동을 시작할 것이다. 배를 채워 두어야 그들과 맞설 힘도 생긴다.저녁상이 차려졌을 때였다. 꼬막이는 옆에 앉아 있었지만 평소와 달리 밥을 먹는 모습은 축 늘어져 있었다. 예전처럼 음식에 눈을 반짝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서인경은 상 위를 한 번 살폈다. 모두 꼬막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라 더 의아해졌다.“무슨 일이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냐?”꼬막이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 얼굴에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깊은 고민이 드리워져 있었다.“모후 저는 왜 공부를 해야 합니까?”공부?서인경은 문득 떠올랐다. 연기준은 태자의 공부를 가르치면서 꼬막이도 늘 옆에 앉혀 두곤 했다는 것을.서인경은 아이가 아직 어리니 공부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연기준은 반박했다. 어릴 때부터 귀에 익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래서 결국 그냥 두었던 일이었다.사실 꼬막이는 이 문제로 여러 번 강하게 저항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놀고 싶은 나이라 공부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연기준을 이길 수는 없었다.연기준의 눈에는, 남자는 몇 살이든 집을 짊어질 준비를 해야 하는 존재였다. 배우지 않고 어찌 그 짐을 감당하겠는가.그런데 오늘은 하루 종일 연기준이 궁에 없었다.서인경의 의문을 알아챈 듯 꼬막이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태자

  • 시간을 거슬러   제1051화

    무릎을 꿇고 있던 그는 이제 거의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 서인경이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황후 마마,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황후 마마, 살려 주십시오! 제가 잠시 돈 욕심에 눈이 멀어 다른 이에게서 뇌물을 받고 태상황의 말을 몇 마디 전했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이렇게 겁이 많은 자라면 오히려 입을 열게 하기는 쉬웠다.서인경은 일부러 목소리를 한결 부드럽게 낮췄다. 가능한 한 온화하게 들리도록 애쓰며 어린 내시의 긴장을 풀어 주려 했다.“겁내지 말거라. 네가 사정을 몰랐다면 본궁이 너를 탓할 일은 없다.”서인경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태상황이 어떤 말을 전하라 했는지만 얘기하거라. 누구에게 전한 것이냐?”그녀의 말투는 조용하고 부드러웠다. 다른 후궁 주인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그 덕분인지 어린 내시는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서인경의 질문에 답했다.“태상황께서 제게 전하라 명하신 적은 단 두 번뿐입니다. 두 번 모두 같은 사람에게 전한 것입니다.”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한 번은 이렇게 전하라 하셨습니다. 서두르지 말라고. 태상황께서는 아직 폐하와 황후 마마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으니 그 사람이 협력하기만 하면 일이 끝난 뒤 진국의 황위를 두 손으로 바쳐 주겠다고 말입니다.”황위를 바치겠다고? 서인경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굳었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조건이기에 태상황이 스스로 황위를 넘겨주겠다고 했단 말인가?“그럼 두 번째는?”내시가 대답했다.“두 번째는 그 사람한테 폐하를 궁 밖으로 유인할 방법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황후 마마는 반드시 궁 안에 남겨 두라고 했습니다.”국경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이 결국 그 계획을 정확히 이루어 준 셈이었다.그 말을 들으며 육승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지금 그들의 상황은 상대가 예상했던 조건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상대가 무엇을 노리는지 전혀

  • 시간을 거슬러   제1050화

    서인경은 요 며칠 동안 모아 온 모든 정보를 하나하나 정리해 눈앞의 융단 위에 늘어놓았다.비둘기 서신으로 연기준을 급히 경성 밖으로 불러낸 일, 마을 학살 명령을 내린 장수 위영의 정보, 국경에서 벌어진 학살의 전 과정, 일불락 사기에 기록된 천 년 전 전쟁의 기록, 맹국공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 서왕부에 드리워진 잠재적인 위기, 그리고 진국과 야랑국.서인경은 이 모든 정보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들을 하나씩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 그 종이들은 점점 늘어나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천천히 두 글자를 적었다.화족.그들이 진국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목적은 대체 무엇일까.꼬막이는 서인경 곁에서 기어 다니며 놀고 있었고 서인경은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그때였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꼬막이의 말랑한 몸이 그대로 서인경의 품으로 넘어져 들어왔다.서인경은 번쩍 눈을 떴다. 눈빛이 순식간에 또렷해졌다.화족이 노리는 것은 진국의 황위였다.막 그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 밖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발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고 곧 육승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마마, 태상황께서 움직이셨습니다.”서인경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문 앞에 서 있는 육승은 거칠어진 숨을 겨우 가다듬고 있었다. 분명 달려온 것이 틀림없었다.“무슨 일이냐?”육승이 말했다.“태상황이 진방옥의 상단 안에 사람을 심어 두었습니다. 진방옥을 따라 야랑국으로 가려 합니다.”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그리고 맹국공부 앞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백성들 가운데에도 태상황이 감정을 선동하도록 심어 둔 간자들이 있습니다.”태상황은 악행을 셀 수 없이 저질러 온 사람이다. 그가 서인경이 장생불사약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이렇게 쉽게 타협해 스스로 연금된 채 늙어 죽기를 기다릴 리가 없었다.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서인경과 연기준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을 붙여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누군가 진

  • 시간을 거슬러   제354화

    그는 그저 고요히 서인경 앞에 서 있었다. 말 한마디 없었으나 한 쌍의 인자한 눈에는 오직 걱정과 아쉬움만이 담겨 있었다.서인경의 배는 이미 불러 있었기에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도 벅찼다. 그녀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서회윤 쪽으로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 화면은 돌연 뒤바뀌었다. 눈앞은 피가 강처럼 흐르는 단두대였다. 그러더니 서 가 위아래 수십 명의 생명이 모두 황천길로 사라져 버렸다. 공기에는 역겨울 만큼 짙고 날카로운 혈향이 가득했다.서회윤은 피바다 한가운데 무릎 꿇고 있었으나 언제 어디서나 그의 허리는 곧추 펴 있었다. 그는

  • 시간을 거슬러   제344화

    병부에 억지로 눌려 앉아 있던 진방옥은 문득 코끝이 간질거려 손을 들어 문질렀다. 앞에 놓인 난해하기 짝이 없는 번문을 확 밀어 버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람이라도 쐬려 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자마자 뒤에 있던 하인이 곧장 나섰다.“도련님, 오늘은 반드시 병부상서의 요구대로 이 문서들을 다 보셔야 한다고 어르신께서 분부하셨사옵니다. 다 끝내기 전에는 나가실 수 없사옵니다.”한참 종이를 들여다보다 어지럼증이 몰려온 진방옥은 순간 화기가 천정까지 치솟았다. 그는 얼굴빛이 검게 가라앉으며 옛날처럼 거드름을 피웠다.“내가 오줌

  • 시간을 거슬러   제335화

    지난번의 끈 달린 얇은 옷보다 이번 잠옷은 훨씬 더 보수적이었다. 서인경은 양옆을 단단히 여며 연기준이 괜한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막아냈다. 그녀는 침상 머리맡에 걸터앉아 발을 물에 담그고 있었다. 은근히 땀이 맺히던 바로 그때, 연기준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평이가 서인경의 발을 닦아주기 위해 막 천을 집어 들려는 찰나, 예기치 않게 연기준의 손이 먼저 다가와 그것을 빼앗았다.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무릎을 꿇더니 서인경의 물기 어린 발을 단단히 붙잡았다.“너는 나가거라. 문은 닫고.”평이는 곧바로 눈치를 채고 조용히 물러났다.

  • 시간을 거슬러   제347화

    만약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지금 연기준의 태도는 분명 서인경으로 하여금 이 사내야말로 믿고 기댈 수 있는 굳은 언덕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은 순간순간 그녀를 찌르듯 되살아나 눈앞의 이 남자를 끝내 온전히 믿게 두지 않았다.“사람에게 기대는 것보다는 스스로에게 기대는 게 낫지요. 저는 제 운명을 제 손에 쥐는 게 좋습니다.”다시금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 예전 같으면 연기준은 노여움으로 화가 치밀었겠지만 지금은 무력감이 더 컸다. “보아하니, 진방옥 말이 맞구나. 여자는 길러줘도 은혜를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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