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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코코넛 서고
단은설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자고로 상인은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급에 속했다.

그녀가 가장 싫은 것이 상인의 딸이라는 신분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자신의 외모와 학식으로 진작에 상왕부의 안주인이 되었고 멍청한 서인경에게 왕비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속내가 들킬 위기에 처하자 단은설은 곧바로 태세를 바꿔 눈물을 쏟았다.

“왕비께서도 세간의 사람들처럼 상인 가문을 천하다 생각하시는군요. 소녀가 괜히 오지랖을 부린 것 같습니다. 소녀는 단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면 상대도 소녀를 진심으로 대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다 소녀의 착각이었나 봅니다….”

‘쳇, 연기는 끝내주네. 하지만 이 몸에 빙의하기 전에 난 황제의 여인 드라마를 정주행하고 왔다 이 말씀이야.’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면 당연히 상대도 진심으로 너를 대하겠지. 그러나 얄팍한 속임수를 진심으로 가장해서 상대에게 접근한다면 벼락 맞아 죽어도 싸지!”

“서인경!”

단은설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사내가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

“사람에게 그리 각박하게 대하는 버릇은 대체 어디서 배운 것이냐?”

단은설은 이때다 싶었는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왕야, 인경이에게 너무 뭐라 하시지 마십시오. 제가 뭘 잘못했기에 인경이가 기분이 안 좋은 거겠죠. 다만… 저는 제가 뭘 잘못 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서인경은 황제의 여인 여주인공이 흑화할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허리를 곧게 폈다.

“어디 상왕비의 존함을 너 따위가 입에 담는 것이냐? 이번엔 그냥 넘어가겠지만 다음에 또 불경한 태도를 보이면 엄하게 처벌하겠다.”

단은설에게 경고를 날린 서인경은 고개를 돌려 연기준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저에게 교양이 없다고 하십시오. 각박하다는 표현은 상대를 보아가면서 하는 것이지요. 존중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에게는 기어오를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하는 법입니다.”

소문 속 서인경처럼 각박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다만 쓰레기들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비웃듯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연기준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서인경, 내 평소 너에게 너무 관대했던 것 같구나.”

마치 아비가 철없는 자식을 꾸중하는 듯한 말투였다.

서인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더 관대해지셔도 좋습니다. 조금 전 했던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조금 전 부탁이면 이혼?’

한 번도 누구에게 이런 욕설을 들어본 적 없는 상왕이었다.

단은설도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며 눈물을 흘렸다.

“왕비께선 누군가의 이간질을 듣고 저를 오해하고 계신 듯합니다. 나중에 다시 찾아 뵙고 해명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울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원주인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서인경은 단씨 가문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상왕비의 자리 정도로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단씨 가문은 더 큰 것을 바라고 있었다.

‘두고 보자.’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등 뒤에 있는 연기준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화리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연기준은 미련없이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내 관심을 사려고 별 짓을 다하는구나. 가장 친하게 지내던 언니에게마저 등을 돌리다니!’

소문은 빠르게 번져나갔다.

상왕과 상왕비가 이혼 얘기까지 나왔다는 소문은 반나절도 안 되어 온 경성에 퍼지게 되었다.

누군가는 상왕과 맹가의 소저가 밀회를 하다가 왕비에게 들켰다고 말했고 또 누군가는 상왕과 상왕비의 측근이 몰래 정을 나누었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늘 소란을 몰고 다니던 상왕비가 또 한 건 했다는 내용이었다.

상왕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이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소동으로 인해 상왕부의 체면이 깎인 것은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또 어떤 소란이 벌어질지 기대하고 있었다.

그 시각, 상왕부.

서인경은 바깥에 퍼진 소문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잠시는 지켜볼 생각으로 연기준의 서재를 찾았다.

그녀가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반 시진 후, 그녀는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시종이 안으로 들어오며 단은설이 왔다고 알렸다.

서인경은 귀찮은 듯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냥 돌려보내거라. 문지기한테는 앞으로 단은설을 절대 상왕부에 들이지 말라고 전하고.”

잠시 후, 나갔던 시종이 다시 돌아왔다.

“왕비마마, 왕야께서 오셨습니다.”

서인경이 고개를 들자, 정원으로 들어오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오후에 황궁에 다녀오는 길인지, 자색 관복을 입고 있었다.

늠름한 그의 뒤로 후광이 비추듯, 석양이 그를 비춰주고 있었다.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 얼굴만 아니었다면 참으로 희대의 미남자라 칭할 수 있었다.

그는 서인경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다짜고짜 따지고 들었다.

“내 서재로 가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서인경은 그네에 탄 채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최대한 번체로 열심히 썼고 왕야처럼 똑똑하신 분이라면 알아보지 못했을 리는 없는데 왜 굳이 저에게 물으시는 겁니까?”

번체가 뭔지도 모르는 연기준이지만 비웃음이 가득 담긴 그 말을 알아듣는데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번쩍 치켜들고 화리서를 서인경의 얼굴에 던졌다.

“수작 좀 작작 부리거라. 내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으니.”

화리서를 집어든 서인경은 그의 서명이 없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어차피 저를 마음에 두지도 않으실 거면서 좋게 갈라서면 안 되는 것입니까?”

‘난 그쪽이랑 살기 싫단 말이야!’

연기준의 눈빛이 음침하게 변했다.

“좋게 갈라선다라! 네가 원하면 폐하께 찾아가서 혼인을 시켜달라 조르고 네가 싫증이 났다고 하면 내가 순순히 화리서에 서명을 해야 하는 것이냐? 날 대체 뭐로 보고!”

원주인이 한 행동이 있었기에 서인경도 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합의된 이혼이 싫으시다면 휴서(休書: 고대에 혼인한 사내가 처를 집안에서 내쫓을 시 쓰는 문서)를 써서 저를 내쫓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왕야의 마음도 조금 편해지겠습니까?”

연기준은 싸늘한 얼굴로 대꾸했다.

“꿈도 꾸지 말거라.”

떠나기 전, 연기준은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앞으로 왕비가 내 서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거라.”

이혼 계획이 실패하자 서인경은 그네에 앉아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이혼도 이혼이지만 갑자기 고대로 타임슬립해서 고대 여인에게 빙의된 이 상황이 더 막막했다.

‘남들은 타임슬립하면 치트키 하나쯤은 가지고 온다던데….’

그녀는 조용히 품에서 자색 병 하나를 꺼냈다.

이는 그녀가 타임슬립하기 전에 몸에 지니고 있던 거였다.

안에 든 것은 21세기의 서인경이 교수님과 함께 제조한 해독제였다.

‘열 알밖에 없으니… 아껴 써야겠지? 그런데 이걸 어디에 쓰지?’

그녀는 언젠가는 쓰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약병을 도로 품에 넣었다.

서인경은 문전박대를 당하면 단은설도 좀 조용히 지낼 줄 알았는데 그런 기대는 바로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그날 저녁 식사 후, 시종이 급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왕비마마, 단 소저와 단 부인께서 찾아오셨으니 속히 오시라는 왕야의 부름이 있었습니다.”

‘단은설이 또?’

서인경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데 나는 왜 부르지? 만나고 싶으면 왕야 혼자 만나면 되는데.”

어린 시종은 고개를 푹 숙이고 간청하듯 말했다.

“어서 가보셔요, 마마. 굳이 이상한 사람들이 머리위로 기어오르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서인경은 고개를 들고 흥미롭다는 듯이 시종을 바라보았다.

평이라고 하는 이 시종은 어제 새로 그녀의 처소로 오게 된 사람이었는데 일만 열심히 하고 겁은 많은 아이라 생각했는데 겉모습은 그래도 뚝심은 있는 아이로 보였다.

서인경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내가 상왕비로 있는 한, 누가 내 머리 위로 기어오르는 것은 못 참지.”

그렇게 그녀가 왕부 정원에 도착하자마자 뻔뻔한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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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2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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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력 장수의 막사 안.공기는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연기준은 상석에 앉아 있었고 좌우로는 장졸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몇몇 군의관과 호청도 그 자리에 있었고 심지어 부상 중인 연강헌도 부하들의 부축을 받아 억지로 끌려 나와 있었다.모든 시선은 막사 한가운데 놓인 두 구의 시체에 쏠려 있었다.두 명의 전사는 부상이 채 낫지 않은 상태였고 입가에는 선혈을 흘린 채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둘 다 변방군, 관서윤의 휘하 사람들이었다.“지금은 증거가 명확합니다. 상왕께서는 부디 왕비 편만 들지 마십시오. 밖의 장졸들이 공정을 기다

  • 시간을 거슬러   제488화

    서인경 자신이라면 약왕곡으로 숨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남는 건 한 줌의 영혼뿐이었다. 그녀는 봉한설을 데리고 갈 수도, 이 육신을 지킬 수도, 뱃속의 아기를 품을 수도 없었다.그렇다고 해서 봉한설을 자기와 함께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인경은 통증을 참으며 봉한설을 바깥으로 밀어냈다.“어서 나가거라. 날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란 말이다.”하지만 봉한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서인경을 꼭 끌어안고 불길 속에서 함께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안 됩니다. 전 왕비 마마를 혼자 두고 나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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