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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코코넛 서고
“왕야, 부디 제 아들 평안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 당숙께선 제 아들이 출세하는 게 싫으시다고 평안이에게 통령직을 맡기려 하지 않고 계십니다. 어미로서 저는 아들이 평생 전장의 선봉대로 개고생만 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픕니다.”

단 부인 서풍교는 서인경 할아버지의 먼 친척 형님의 딸이자, 단씨 가문의 안주인이며 단은설의 친모였다.

단씨 가문의 외동아들인 단평안은 게으르고 어리석은 자였다.군권은 장악하고 싶은데 밑바닥부터 시작하긴 싫어서 인지 군영에서도 늘 게으름만 부리는 자였다.’

몇 달 전, 할아버지께서 군을 이끌고 출정을 떠날 때 그는 도망병이 되어 경성에 남았다.

군공무로 바쁘신 할아버지께서 여유가 없어 죄를 묻지 않았는데 저쪽에서 먼저 상왕을 찾아와 억울함을 호소할 줄이야.

출정을 나간 할아버지께서 돌아올 때가 되니 어떻게든 처벌을 피해가려고 얕은 수를 쓰는 모양이었다.

‘내가 건너온지 며칠이나 됐다고 우르르 몰려와서 말썽이야?’

서인경이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 때, 연기준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군영의 직위는 노장군께서 결정하실 일이고 내가 끼어들데가 아니다.”

서풍교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왕야께서 한말씀만 해주신다면 당숙께서도 감히 거역하시지 못할 것 아닙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만 난 직권을 남용할 생각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아니될지어다.”

“그… 그건….”

서풍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왕야… 제 딸 은설이랑….”

“어머니, 제발 그만하세요.”

연기준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버리자, 단은설은 다급히 어미의 말을 끊었다.

“그건 왕비께서 오해하신 겁니다. 저도 이 소문 때문에 곤란해 죽겠는데 어머니까지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감히 내 할아버지를 모함해?’

서인경은 성큼 정원으로 발을 들였다.

“고모님,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손자는 궁에 계십니다. 숙귀비 소생의 십오황자님이시죠. 단평안은 단씨이지 서씨도 아닙니다.”

서인경이 안으로 들어서자, 단은설 모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단은설에게 서인경이 변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마주하니 서풍교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네가 상왕비라 할지라도 군중 요직에 관한 일에 여인인 네가 끼어들 수는 없는 일이다.”

서인경은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고모님도 여인 아닌가요? 서가군(고대 장군 가문에서 가문의 성씨로 명명한 군대)의 군공무에 어찌 여인인 고모님께서 감놔라 대추놔라 하십니까?”

“나… 나도 서씨이거늘….”

서인경은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 나라에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은 많고도 많습니다. 그들이 다 고모님처럼 뻔뻔하게 굴면 서가군은 혼잡한 시장바닥 꼴이 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너… 너….”

서풍교는 화가 났지만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상왕비마마, 어머니께서 일시적으로 실언한 것이니 너무 탓하지 말아주십시오.”

단은설이 앞으로 나서더니 친한 척 서인경의 옆으로 다가왔다.

“드디어 저를 만나주시는군요. 저와 왕야 사이는 정말 결백합니다. 이만 의심을 거두어 주십시오.”

서인경은 그녀의 손길을 피해 연기준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고는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넌 예전에 내가 이 사람 저 사람 오해하게 유도했지. 매번 내가 세가 규수들에게 시비를 걸게 이간질한 게 너였어. 그런데 피해자가 네가 되니 이제야 그 기분을 이해하게 됐나 보구나?”

연기준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은설은 겁에 질린 척,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억울하옵니다. 저는 그런 일을 한 적 없어요. 왕비께서 오해하신 겁니다. 왕야,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연기준이 뭐라고 하기 전에 서인경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

“내가 널 의심하는 건데 왜 왕야께 현명한 판단을 부탁하는 거니? 왕야께서 널 혐오하게 돼서 왕비가 되는 길이 막힐까 봐 두려워?”

“서인경!”

갑자기 들려온 연기준의 고함에 놀란 서인경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불여시 참교육 중인데 왜 갑자기 고함을 지르고 난리야?!’

“이만 나가 보거라. 서가군의 군무는 전적으로 노장군의 결정을 따른다. 너희가 폐하께 찾아가서 억울함을 토로해도 내가 나서서 간섭할 수는 없다.”

그 말을 들은 서인경은 의아한 눈으로 연기준을 바라보았다.

‘정인을 감쌀 줄 알았더니?’

서봉교가 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뭐라 하려던 찰나, 서인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고모님께서도 방금 말씀하셨듯, 전장은 험난하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곳입니다. 귀한 외동아들이 전장에 나가서 다쳐서 돌아오기라도 하면 서가군은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없으니, 이만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세요.”

더 이상 이 집안 사람들의 면상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서인경은 곧바로 관리인을 불러 손님을 배웅하게 했다.

연기준마저 가만히 있으니, 단은설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서봉교를 끌고 돌아갔다.

그들이 떠나자 공기마저 청량해진 기분이었다.

“왜 그런 눈으로… 저를 보십니까?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연기준은 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에는 서씨 가문과 단씨 가문은 가족이라며 가족끼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죠. 그런데 배은망덕한 놈들이 주제를 모르고 날뛰어서 말입니다.”

서인경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결연하게 말했다.

“오늘부로 저와 단씨 가문은 적입니다. 그러니 왕야께서 단씨 가문을 돕고 싶으시다면 저와 이혼하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상왕비의 자리에 있는 한, 매일 오늘과 같은 소란이 벌어질 것입니다.”

평소의 서인경처럼 각박하고 매몰찬 말투에 연기준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내가 아는 서인경이 맞구나.’

그가 아는 서인경이란 시기심 많고 늘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말을 마친 서인경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연기준이 입을 열었다.

“넌 내가 화리서를 써주지 않을 것을 알면서 내 앞에서 수차례 이혼 얘기를 꺼냈다. 목적이 뭐지? 서인경, 나한테 얕은 수작 부리지 말거라!”

“왜 못 써주신다는 건지….”

한바탕 쏘아붙이려던 서인경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원주인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가 폐하께 찾아가 혼사를 청할 때, 서가군은 전장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었고 부모님이 전장에서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전해졌을 시점이었다.

황제는 충신에 대한 인자함과 자비를 만 천하에 보여주기 위해 이 혼사로서 죽은 서가군의 영혼들을 위로하고자 했다.

황제가 그 자리에 있는 한, 이 혼사는 되돌릴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황제를 건너뛰고 이혼하게 된다면 황명을 거역하게 되는 것은 물론, 황제의 명성에까지 누가 될 수도 있었다.

서인경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얼간이가 싼 똥을 왜 내가 치워야 하는 거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황제가 운명하자마자 연기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원주인을 왕비의 자리에서 폐하고 단은설과 혼인했었다.

‘절대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돼. 어떻게든 이혼해야겠어.’

서인경이 말이 없자, 연기준은 그녀가 정곡을 찔려 할 말을 잃었다고 생각해서 경멸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근래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네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 그러니 앞으로 내 관심을 사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말거라. 난 공무가 바쁜 사람이라 너와 놀아줄 여유 따위는 없으니.”

‘이 인간이 지금 뭐라고….’

그러자 서인경이 한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억지로 관용을 베풀려 하지 마시고 오늘 하나하나 따져 보지요. 제가 맹 소저에게 사과한 것이 잘못됐나요? 아니면 왕야의 정인에게 욕을 한 게 잘못되었나요? 아니면 감히 저 따위가 화리서를 요구한 게 존귀하신 왕야의 자존심을 자극했습니까?”

당당하고 거만한 태도에 연기준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 여인은 어떻게 하면 그의 화를 자극하는지 너무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서인경, 난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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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2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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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2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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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2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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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4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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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그 말투가 마음에 걸렸다.아이의 말은 분명 사실이었으나 그 속엔 철부지답지 않은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 마치 어미가 힘을 내지 못하니 뱃속의 아이가 스스로 나서서 자신을 지켜야 된다는 듯한 태도였고 어린 생명이 짊어지지 말아야 할 책임감이 담겨 있었다.이제 겨우 콩알만 한 태아가 이렇게 꿈속에서 그녀와 말을 나누고 있다니.서인경은 사방을 둘러보았다.“여긴 바깥이잖니. 만약 누가 오면 어찌 하느냐?”꼬마는 태연히 대꾸했다.“올 리 없습니다. 여긴 일불락의 옛터라 벌써 눈 속에 묻혀버린 곳이거든요. 여길 오려는 자는

  • 시간을 거슬러   제460화

    서인경은 그가 또 무슨 말을 퍼뜨릴까 걱정되어 달래야 할 건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만약 연강헌의 편지가 애초에 막북 밖으로 나가지 못할 거란 걸 알았다면 그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서인경이 연강헌의 막사 앞으로 다가가던 순간, 쾅 하고 큰 소리가 터졌다. 그러더니 하얀 무언가가 정면으로 날아왔다. 만약 연풍이 재빨리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서인경은 그대로 맞았을 것이다.그 물건이 딱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자 서인경은 그것이 도자기 그릇임을 알아차렸다.“본 황자에게 이런 약을 쓰다니! 아파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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