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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2화

Author: 코코넛 서고
서인경은 예정연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

예쁘긴 했다. 하지만 온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우월감, 그리고 뒤집힌 삼각형 같은 눈매에는 신랄하고 독한 기운이 번뜩였다.

“그대 따위의 용모가 야랑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면 다른 여인들은 얼마나 흉해야 되는 겁니까?”

서인경은 원래 남의 외모를 공격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예정연이 먼저 찾아와 시비를 거니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야량국의 무고한 여자들만 불쌍하지. 원망할 거라면 너희들 공주나 탓하거라.’

자신의 남편을 뺏으러 온 그녀를 문전 박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서인경은 스스로 꽤나 자비롭다고 생각했다.

예정연은 모욕이라도 당한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길고 가느다란 채찍을 휙 뽑아 들고 서인경을 향해 겨누었다.

“감히 저를 모욕하는 것입니까? 제가 상왕을 대신해서 당신을 제대로 가르쳐 주겠습니다!”

예정연이 채찍을 휘두르자 매서운 바람이 서인경을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

봉한설은 꼬막이를 안고 있었기에 움직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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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173화

    호청도 뒤따라 떠났다.촌장 일가는 당연히 서인경 곁에 남았다. 그들은 결국 서인경에게 충성을 바칠 사람들이었고 또한 연기준이 특별히 지시해 실력을 숨긴 채 서인경을 보호하도록 한 이들이기도 했다.부생은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멍해졌다.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였지만 한편으로는 뜻밖의 기쁨이 스며들었다.이간질은 오래전부터 써보고 싶었던 수였다. 원래는 그저 눈엣가시 같던 봉한설 하나 치워낼 생각이었는데 서인경의 성정이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연기준에게까지 손을 올리다니.이제 서인경은 홀로 남은 몸. 오히려 부생에게는 손을 쓰기 더없이 좋은 때였다.다음에 할 일을 머릿속에 정리한 그녀는 곧장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때, 암위들은 이미 출발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연기준은 높은 말 위에 올라앉아 있었고 그 웅장한 체구와 옆모습의 윤곽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그 순간, 부생은 봉한설이 왜 감히 주인의 남자를 탐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이런 남자라면 누가 욕심내지 않겠는가.그리고 머지않아 이런 남자는 그녀 부생의 것이 될 터였다.부생은 말 앞까지 다가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폐하, 봉한설 언니가 떠났습니다. 지금 황후 마마와 대황자 곁에는 시중드는 사람이 한명도 없으니 제가 남겠습니다.”연기준의 표정은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그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고, 부생은 그의 얼굴 절반에 남은 상처를 볼 수 있었다.그 흠집은 오히려 그의 수려한 얼굴에 또 다른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좋다. 수고가 많다. 짐을 대신해 그녀를 잘 달래 보거라. 네 말에 귀를 기울인다면, 돌아왔을 때 후하게 상을 내리겠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주마.”‘무엇이든’이라는 그 한마디에 부생은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그녀는 서인경이 자신의 말을 듣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왜냐하면 그녀는 모든 것을 원했고 그중에서도 황후의 자리를 가장 원했으니까.연기준은 암위들을 이끌고 말을 몰아 떠났다. 객잔은 다시 고요해졌다. 부생은 차를 한 주전자

  • 시간을 거슬러   제1172화

    “말도 안 돼!”촌장 부인이 가장 먼저 고개를 저었다.어족의 사람들은 태생부터 수령 일족에 대한 충성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남자 하나쯤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수령이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용두 반지를 꺼내며 주겠다고 해도 어족의 사람들은 결코 그것을 받지 않을 성정이었다.부생은 손가락을 꼬아 쥐며 낮게 입을 열었다.“정말이에요. 황후 마마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 봉한설 언니더러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리겠다고요. 봉한설 언니도 방금 황후 마마께 머리를 조아리면서, 그동안의 주종의 정을 다 갚았다고 했어요.”촌장 부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어족의 사람이 수령과 남자를 두고 다툰다니.연기준이 아무리 뛰어난 인물이라 해도 그렇지, 여자가 목숨을 내걸고 쟁탈할 가치가 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백 년 전, 일불락이 멸망했던 그 참혹한 교훈이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부생의 말은 진심이 담긴 듯 또렷했다. 대장은 그 말을 듣자마자 완전히 믿어버렸다.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혀를 차며 말했다.“이 계집애가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욕심은 크군요. 다음에 만나면 제가 외삼촌으로서 제대로 가르쳐주겠습니다.”그 말에 촌장 부인이 옆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저 정도 머리로 무슨 외삼촌 노릇을 하겠다고. 봉한설이 그를 눈에나 두겠는지 모르겠다.하지만 촌장 부인은 한편으로 새삼 다행이라 여겼다. 예전에 지하흑시를 맡지 않은 것을 말이다.저런 아들을 두고 그 일을 맡았더라면 흑시는 이미 다 말아먹었을 터였다.호청과 연풍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 모두 이 일에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서인경과 봉한설이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그때였다. 위층에서 갑자기 쾅 하는 소리가 울렸다.곧이어 찻주전자 하나가 이층에서 날아 내려오더니 사람들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 시간을 거슬러   제1171화

    이 순간이야말로, 부생이 서인경을 연기준의 곁에서 몰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다. 그녀는 반드시 이 기회를 붙잡아야 했다.폐인이 된 서인경은 부생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태연히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마침 본궁 곁에 사람이 부족하니 남고 싶다면 남아라. 헌데 명심해야 한다. 본궁의 눈에는 모래 한 톨도 용납되지 않는다. 감히 본궁을 배신한다면, 네가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만들어 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부생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저는 황후 마마께 절대 다른 마음을 품지 않겠습니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망설임과 갈등이 뒤섞인 표정이었다.“다만 한 가지 줄곧 말씀드려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일이 있습니다.”서인경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무슨 일이냐. 말해 보거라.”부생이 입을 열었다.“황후 마마께서 이곳에 계시지 않던 동안, 저는 한설 언니와 폐하께서…”부생은 결정적인 순간에 말을 끊었다.서인경은 찻잔을 들고 있던 손을 멈추었다.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부생을 바라보았다.“계속 말해라!”과연, 서인경은 관심을 보였다.부생은 격려를 받은 듯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한설 언니와 폐하께서는 몹시 친밀해 보였습니다. 두 분의 관계는 결코 주종 사이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두 분은 자주 사람 없는 틈을 타 단둘이 계셨고, 한 번 머물면 몇 시진씩이나 함께하셨습니다.”몇 시진이라니. 참으로 대담하게도 말한다.서인경의 눈매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목소리에는 분명한 분노가 실렸다.“그 말이 사실이냐?”부생은 곧장 손가락 세 개를 세워 보였다.“맹세합니다. 제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습니다. 마마께서 저를 거두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차마 마마께서 곁의 사람에게 속고 계신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목숨을 걸고 아뢰옵니다. 부디 마마께서 분별하여 주시어, 소인배가 뜻을 이루어 마마의 자리를 빼앗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그래…”서인경은 의미심장하게 한숨을 내쉬었다.“네 말이 옳다. 분명히 살펴봐야겠지. 가

  • 시간을 거슬러   제1170화

    “그래.”서인경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았다.“평이 쪽은 어떠느냐? 소식이 왔느냐?”봉한설은 자리에 털썩 앉아 심드렁한 얼굴로 탁자 위에 놓인 간식을 집어먹으며 대답했다.“왔어요. 어제 안쪽에서 누가 한 번 나왔다가 반나절 뒤에 생사도 모를 여자 하나를 들것에 실어 산속으로 들어갔대요. 그 뒤로 경계가 갑자기 엄청 삼엄해졌고 뭔가 큰일이 터진 것 같다고 했어요. 폐하께서 이 소식 듣고, 맹 장군 쪽 병력을 끌어와 지원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서인경은 곧바로 짐작했다.그 생사불명의 여자는 아마 예정연일 것이다.그날 산 정상에서 서인경의 수정구에 정면으로 맞고 쓰러진 뒤, 산속에 나흘이나 방치되다시피 하다가 이제야 발견된 셈이다.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금수 대장공주는 일불락의 일을 모르지만 덕비는 분명 알고 있다.예정연의 상처를 보면 서인경이 결계술을 사용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했을 것이다.그리고 서인경이 일불락 수장 일족의 능력을 익혔다는 것, 설산에 다녀왔고 다른 부족의 후손들과도 접촉했다는 것까지 분명 알아챘을 것이다.덕비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딸을 연기준과 혼인시켜 금족의 후손을 낳게 하고 그 힘을 마음대로 부리려 했던 계획이 지금은 그 금족의 후손인 연기준이 수장 일족의 후손인 서인경과 혼인해 이미 자식을 낳아버렸다는 사실을.두 사람이 힘을 합쳤으니 강함 위에 또 강함이 더해진 셈이다. 그러니 덕비가 경계하지 않을 리 없었다.*서재 쪽은 한참 동안 아무 소리도 없었다. 사람이 나오는 기척도 없었다.결국 봉한설이 먼저 못 참고 일어났다.“안 되겠어요. 저 둘을 같은 방에 너무 오래 두면 안 돼요. 제가 가서 지켜볼게요.”간식을 내려놓고 그녀는 바람처럼 밖으로 뛰쳐나갔다.그 모습을 보며 서인경은 웃음을 흘렸다.‘저 아이, 나중에 시집이라도 가면 부군을 허리에 묶고 다니겠네.’잠시 뒤, 저쪽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봉한설의 전투력은 역시 기대를 저

  • 시간을 거슬러   제1169화

    모자가 장난치며 노는 모습을 바라보던 연기준은 더 이상 방해하지 않고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그리고 막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부생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폐하, 용서해 주십시오. 아까는 제가 너무 놀라서 마마를 오해했습니다. 마마께서는 보아하니 선한 분이신데 어찌 저를 쫓아내시겠습니까? 모두 제 잘못입니다.”그녀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한층 더 가녀린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폐하께서는 인자하셔서 아직 제게 맡기신 일이 없습니다. 헌데 이렇게 놀고만 있으니, 은혜를 갚지 못해 마음이 불편합니다. 차라리 제가 황후 마마를 모시게 해주십시오.”그 속내가 서인경을 향하고 있었다.연기준은 그녀를 남게 하긴 했지만 서인경을 위험에 노출시킬 생각은 없었다.그는 담담히 말했다.“황후와 대황자는 쉬고 있다. 올라가 방해할 수는 없으니 나를 따라오거라.”연기준은 다시 계단을 올랐다.이층에는 세 개의 방이 있었다.하나는 연기준과 서인경의 방, 하나는 봉한설에게 내어준 방,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연기준이 임시로 쓰는 서재였다.요 며칠 동안, 그는 이곳에서 적지 않은 정사를 처리해왔다.이 서재는 원래 연풍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그런데 지금, 연기준이 자신을 그곳으로 데려가자 부생의 마음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들끓었다.이곳은 서인경조차 들어온 적 없는 곳이었다.연기준은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책상으로 가 붓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벼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할 일이 없다고 했지? 먹을 갈아라.”부생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녀는 곧장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예, 폐하. 앞으로는 반드시 잘 모시겠습니다.”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자 부생의 심장은 요동쳤다.그가 자신을 서재로 들였고 곁에 두고 시중을 들게 했다.그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이 피어올랐다.지금까지 보였던 냉담함은 어쩌면 모두 연기였을지도 모른다고.그도 그럴 것이 이 세상에 자신 같은 여인을 앞에 두고도 흔들리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 시간을 거슬러   제1168화

    연기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그 순간, 봉은하가 재빨리 말을 이었다.“마마께 죽을 좀 끓여드리고 제가 담근 장아찌도 곁들이면 어떠십니까?”서인경은 웃으며 답했다.“그럼 부탁드릴게요.”“부탁이라니요, 별것도 아닙니다!”두 사람의 모습이 계단 끝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부생은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봉은하는 부엌으로 가 죽을 끓이러 갔고 노인은 따라가 불을 지폈다.그때, 그 건장한 사내가 부생의 애처로운 모습을 도저히 지나치지 못하고 다가왔다.“부생 아가씨,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다들 아가씨를 따돌리려는 건 아닙니다. 다음에는 상황을 잘 보고 울어야지… 괜히 마마를 곤란하게 만들면 안 되지 않습니까.”그 순박한 얼굴을 보며 부생의 속에서는 혐오가 스멀거렸다. 그러나 드러낼 수는 없었다.지금 이곳에서 자신 편에 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 어수룩한 사내뿐이었다.부생은 고개를 숙인 채, 연약한 척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 대장 오라버니.”그 사내의 이름은 정말로 대장이었다.그의 아버지는 외조부에게 입양된 양자였고 외조부의 성을 따라 모두가 봉씨가 되었다.그래서 그의 이름은 봉대장이었다.미인이 ‘오라버니’라 부르는 순간 봉대장의 마음은 들떠버렸다. 얼굴이 환하게 풀리며 입가가 점점 흐물흐물해졌다.“아이고,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런 일에 무슨 고맙다는 말까지… 너무 격식 차리시는 겁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봉한설은 속이 뒤틀릴 것만 같았다.그녀는 슬쩍 연풍을 노려봤다.남자들은 참.이 일은 평이에게 꼭 알려야겠다. 남자란 존재는, 결국 이런 여우 같은 여자에게 약하다는 걸.연풍은 영문도 모른 채 봉한설의 눈초리를 받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뭘 잘못했지…?’*방 안.연기준은 서인경과 꼬막이를 데리고 들어왔다.“오늘 아침, 그 여자가 밖에 나간 건 연강호 쪽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노무림으로 가 아이들을 구할

  • 시간을 거슬러   제292화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했던 부인은, 서인경이 건네준 해독 환약을 삼킨 뒤 아이가 더는 경련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지금 그녀가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서인경뿐이었다. 그래서 서인경의 물음에 부인은 숨김없이 진실을 말했다.“집에 돌아가 약을 먹이고 또 하나 먹인 것이 있는데... 그건 시어머니께서 주신 탕후루였습니다.”“이 악녀! 헛소리를 지껄이지 말거라!”남자는 고함을 지르더니 손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안포가 재빨리 몸을 날려 부인 앞을 가로막고 그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네 딸이 죽어가는데 너는

  • 시간을 거슬러   제306화

    서인경이 왕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 그녀는 발소리를 죽이며 뜰로 들어섰다. 낭하에 매달린 두 개의 등불만이 희미하게 빛날 뿐 사방은 칠흑처럼 어두웠다.게다가 평이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평이는 늘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기는 상왕부이니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인경의 마음속에는 의아함이 피어올랐다.그녀는 방 문을 밀어 열고 들어섰다. 탁자 위에 놓인 화절자를 더듬어 찾아내고 성냥불을 켜 촛불을 밝혔다. 순간, 방 안은 환히 밝아졌다. 그제야 그

  • 시간을 거슬러   제268화

    연기준의 눈빛에 잠시 짜증이 스쳤다.“머리가… 아프다.”서인경은 그의 손목을 놓고 이마에 살며시 손을 대보았다.“몸속에 아직 독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약을 지어드릴게요. 며칠만 더 복용하면 괜찮아질 겁니다.”아직 독성이 그의 기맥 속을 떠도는 탓일까? 연기준의 눈에는 피로가 깊이 깔려 있었고 말하기조차 귀찮은 듯한 나른한 기색이 번져 있었다. 서인경은 아까 연풍이 말한, 황제가 두 사람에게 조속히 경성으로 돌아오라 명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저는 흑시에 며칠 더 머물러 아이들을 제대

  • 시간을 거슬러   제311화

    서인경이 고개를 돌려 육승에게 물었다.“복래객잔은 어디에 있느냐?”육승은 곧바로 수상쩍음을 감지했다.“왕비 마마, 사태가 석연치 않사옵니다. 누군가 고의로 왕비 마마를 그곳으로 끌어들이려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매복이 있을 수 있으니 신이 먼저 가서 살펴보겠사옵니다.”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시간이 없다. 상대는 분명 나 혼자 오라 했다. 너희는 반 시각 늦게 오거라.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때,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자구나.”육승은 끝내 막아설 수 없었다. 그는 서인경에게 방향만 일러주고 곧장 사람을 시켜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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