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그날 밤, 엘레나는 다락방에서 촛불을 켜고 전생에서 터득한 약초 제련법을 이용해 특제 환약과 정화액을 제조했다.
궁정 의관들이 고전하고 있는 괴질은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궁정 어원의 특수한 독초 포자가 공기 중에 희석되어 생긴 호흡기 염증이었다. 스노우 드롭의 뿌리와 정제한 민트 추출물을 적절한 비율로 섞으면 단 한 번의 복용으로도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다음 날 새벽, 엘레나는 계모의 눈을 피해 가벼운 차림으로 저택을 빠져나왔다.
수도 중앙 광장 게시판에는 예고했던 대로 왕실 의료청의 인재 채용 공고가 붙어 있었다.
'왕궁 의녀 및 약초 조제사 선발 공고. 자격 제한 없음. 왕궁 내부의 질병 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뛰어난 약초 지식을 가진 자를 선발함.'
사람들이 게시판 앞에 모여 웅성거렸다.
"왕궁 의녀라니? 웬만한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니면 서류조차 안 받아줄 텐데."
"게다가 궁 내부에 흉흉한 병이 돌고 있다잖아. 잘못 들어갔다가 병만 얻어 나오는 게 아닐까?"
엘레나는 망설임 없이 접수처로 걸어갔다.
접수를 담당하는 궁정 하급 관리관이 낡은 옷차림의 엘레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아냥거렸다.
"이봐, 허드렛일이나 하는 평민 처자인가 본데, 여긴 왕궁이다. 아무나 기웃거리는 곳이 아니야."
엘레나는 품속에서 어제 제조한 정제액 병과 상세한 약초 효능 설명이 적힌 서찰을 내밀었다.
"현재 궁정 내부에서 유행하는 환자들의 증상은 어원의 독성 포자로 인한 기관지 염증입니다. 이 약은 그 포자의 독성을 중화하는 정제액입니다. 의학관의 최고 수석 의관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만약 거짓이라면 제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
엘레나의 말투에는 당당함과 범접할 수 없는 품위가 서려 있었다. 하급 관리관은 그녀의 기개에 눌려 어안이 벙벙한 채 약병을 받아 들었다.
"이, 이건…… 얼른 최고 의관님께 가져다드리겠다. 잠시 기다려라!"
약 1시간 후, 왕궁 외곽의 의료청 어원 근처 회랑.
엘레나는 조용히 회랑 끝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때, 회랑 건너편에서 차가운 정적을 깨며 제복을 입은 기사들과 한 남자가 걸어왔다.
칠흑처럼 검은 머리채, 조각처럼 빚어진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차갑고 이성적인 푸른 눈동자.
칼릭스 폰 오르세 왕자였다.
전생에서 엘레나가 마법의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장에서 손을 잡았던 남자.
전생의 칼릭스는 준수하고 냉철한 통치자였으나, 사람의 마음을 읽는 데에는 서툴렀다. 그래서 비안카의 거짓 눈물과 구두 하나에 속아 넘어갔고, 끝내 자신을 진심으로 대했던 진짜 구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비극을 방관했던 자였다.
칼릭스 왕자가 수석 의관과 함께 약병을 들고 엘레나가 있는 회랑으로 다가왔다.
"전하, 이 처자가 바로 이 독성 중화제를 제출한 자입니다. 수석 의관께서 시험해 본 결과, 효능이 놀라울 정도로 탁월하다고 하셨습니다."
관리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칼릭스의 차가운 푸른 눈동자가 엘레나에게 머물렀다. 전생의 기억이 오버랩 되며 엘레나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지만, 그녀의 표정은 완벽하게 침착했다.
칼릭스는 엘레나를 오랫동안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 묘한 낯설음과 혼란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고, 초라한 차림의 여인이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울림이 일렁였던 것이다.
'이 여인은 뭐지?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두려움도, 환희도, 순종도 없다. 마치 나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한…… 차가운 눈빛이다.'
칼릭스가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누구냐? 이 정도 수준의 약학 지식은 왕궁 수석 의관들조차 쉽게 도달하지 못한 경지다. 누구에게 배웠지?"
전생의 엘레나라면 왕자의 위엄 앞에 고개를 숙이고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엘레나는 그를 향해 차분히 허리를 숙여 예의를 표할 뿐이었다.
"저는 단지 의학을 독학한 몰락 귀족의 딸일 뿐입니다, 전하. 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지식을 썼을 뿐이니,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몰락 귀족이라…… 이름이 무엇이냐?"
칼릭스가 한 걸음 다가서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함께 알 수 없는 갈증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엘레나는 거리를 두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제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궁정 의녀 선발 시험에 합격한다면, 그때 공식적인 관명으로 불리길 원합니다."
"너는 단순히 재료를 채취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무언가 거대한 비밀을 파헤친 자의 눈빛이었지. 말해라. 무엇을 발견했나?"칼릭스가 엘레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강렬한 존재감과 차가운 체온이 엘레나의 피부에 와닿았다.전생이었다면 그 압도적인 위엄에 숨이 막혔겠지만, 지금의 엘레나는 칼릭스의 푸른 눈동자를 정면으로 직시했다."전하께서 감당하실 수 있는 진실이라면, 말씀드리겠습니다.""감당?"칼릭스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감히 왕자인 자신에게 진실의 무게를 운운하는 여인은 제국 전체를 통틀어 그녀가 유일했다."좋다. 어디 한번 들어보지. 네가 숨기고 있는 그 잘난 진실이라는 것을."엘레나는 품속에서 흑사초 포자가 묻어난 스노우 드롭 뿌리를 꺼내 칼릭스의 눈앞에 내밀었다."이 괴질은 전염병이 아닙니다. 누군가 전하의 왕궁에 풀어놓은 독입니다."칼릭스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의 푸른 눈동자에 거친 파도가 휘몰아쳤다.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적이 얼음처럼 가파르게 팽팽해졌다.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미 전생의 궤도를 벗어나, 더 깊고 위험한 왕궁의 음모 속으로 사정없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흑사초의 그림자달빛이 어원의 유리 온실 돔 천장을 지나 은백색 광채로 부서져 내렸다. 고요한 온실 내부는 습기 찬 흙
"제가 저택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제게 남겨주신 약초 서적 한 권과 제 소지품이 전부입니다. 오히려 묻고 싶군요. 돌아가신 아버님의 유산 상속 서류에 명시된 제 몫의 지분과, 남작가의 연간 수입 중 제게 지급되어야 할 품위유지비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마고 부인의 얼굴이 순간 흙빛으로 변했다."머, 뭐라고? 이 년이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황국 민법 제14조에 따르면, 미성년 영애의 후견인은 영애의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할 수 없으며,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매년 재산 내역을 제국 법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부인께서 지난 3년간 제 이름으로 된 유산을 도박장과 사치품 구매로 탕진하신 장부의 복사본이 이미 제 손에 있습니다."엘레나는 품속에서 정갈하게 정리된 서류 한 뭉치를 꺼내 들어 보였다.전생에서 빈민가로 쫓겨난 후, 엘레나는 남작가의 재산이 어떻게 공중 분해되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었다. 환생한 직후 그 기억을 바탕으로 마고 부인이 서명했던 가짜 장부와 금융 조합의 거래 내역을 머릿속에서 완벽히 복원해 서류로 작성해 두었던 것이다."이, 이딴 가짜 서류로 나를 모함하려 들다니!"마고 부인이 당황하여 서류를 뺏으려 손을 뻗었지만, 엘레나는 차갑게 물러서며 경비 기사들을 바라보았다."기사님들, 황실 채용 보호법에 따라 왕궁에 정식 채용된 의료진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하거나 허위 사실로 모함하는 자는 즉시 체포 대상입니다. 이 두 사람을 왕궁 밖으로 퇴출해 주십시오.""이놈들이 감히 누구에게 손을 대느냐! 나는 브라이트 남작부인이다!"마고 부인이 발악했지만, 왕궁 기사들은 냉정했다. 왕자 전하의 특별 명령으로 엘레나를 보호하라는 지시를 받은 기사들은 마고 부인과 비안카의 양팔을 거세게 짓눌렀다."어머니! 언니, 어떻게 언니가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비안카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회랑에 모인 궁정 귀족들과 의관들의 시선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거짓 눈물 뒤에 숨겨진 그들의 추악한 탐욕이 만천하에 드
줄리안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물러섰다. 엘레나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시선들을 뒤로한 채, 더할나위 없는 침착함으로 약제 도구들을 정돈하기 시작했다.'귀족들의 얄팍한 자존심 따위에 흔들릴 시간은 없다.'이곳은 가시덤불이 무성한 왕궁이다. 실력으로 완벽하게 제압하지 않으면 언젠가 뒤통수를 맞게 된다. 전생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배운 가장 잔인한 교훈이었다.한편, 왕궁 중앙 궁전의 깊은 곳에 있는 집무실.높은 아치형 창가에 선 칼릭스 왕자는 손에 쥐어진 보고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근위대장 헥토르가 올린 신원 조사서에는 엘레나의 상세한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다.'몰락한 브라이트 남작가의 외동딸, 엘레나 브라이트.'칼릭스의 푸른 눈동자가 보고서의 문장들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친부 사망 후 계모 마고와 이복동생 비안카에게 학대당함. 저택 뒤편 다락방에 갇혀 하녀와 다름없는 삶을 삶. 소심하고 어두운 성격으로 알려짐.'보고서에 적힌 서술은 칼릭스가 회랑에서 목격했던 여인의 모습과 완전히 판이했다.자신을 바라보던 그 서늘하고 오만한 눈빛. 왕자의 권위 앞에서도 단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선을 긋던 당당한 태도. 도저히 학대받으며 숨죽여 살던 가련한 영애의 모습이 아니었다."전하, 브라이트 남작가의 평판은 그야말로 악명이 높습니다."옆에 서 있던 헥토르 경이 나직하게 보고했다."현 남작부인 마고는 전처의 딸인 엘레나 양에게 남겨진 유산을 가로채고, 사치와 도박으로 남작가를 파산 직전까지 몰고 갔습니다. 이복동생인 비안카 역시 수도 사교계에서 사치스럽기로 소문난 영애입니다.""그런 환경에서 저런 의술과 품위가 나왔다는 뜻인가?"칼릭스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가슴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기묘한 통증과 함께 깊은 호기심이 불길처럼 피어올랐다.회랑에서 엘레나와 눈이 마주쳤던 그 짧은 순간.칼릭스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기괴한 데자뷔를 경험했었다. 마치 아주 먼 옛날, 자신이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던 것만 같은 아
칼릭스는 멈칫했다. 감히 왕자의 질문을 슬쩍 피하며 선을 긋는 여인은 생전 처음이었다. 보통의 여인들이라면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해 안달이 났을 텐데, 그녀는 왕자인 자신을 완벽한 타인처럼 대하고 있었다.'묘하다. 왜 이 여인의 거절이 이토록 가슴을 자극하는가?'칼릭스의 눈빛이 깊어졌다."좋다. 수석 의관, 이 처자를 즉시 왕궁 정식 의녀 보조로 채용하라. 그녀의 능력은 이미 증명되었다.""명령을 받듭니다, 전하!"엘레나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전하."엘레나는 칼릭스의 시선을 뒤로한 채 망설임 없이 돌아섰다.자신을 바라보는 칼릭스의 집요한 시선이 뒤통수에 닿았지만, 엘레나는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칼릭스 왕자. 전생의 당신은 겉모습과 거짓말에 속아 진실을 보지 못했던 피해자였지. 하지만 이번 생에서 당신의 관심이나 구원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의술과 지혜로 비안카와 마고 부인의 죄를 천하에 밝힐 것이다. 그리고 마법도, 왕자의 사랑도 아닌 완전히 독립된 나 자신의 삶을 완성하리라.엘레나의 눈빛이 당당하고 눈부신 빛으로 채워졌다.운명의 수레바퀴는 이제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왕궁의 가시덤불왕궁 외곽에 위치한 의료청 건물 내부에는 짙은 약초 향과 알코올 냄새, 그리고 브레스로 제작된 증류기의 매케한 수증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수석 의관 제럴드 박사는 엘레나를 의료청 중앙 약제실로 안내하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엘레나 양, 그대가 만든 정화액은 그야말로 기적이었소. 근위대장 헥토르 경의 발작이 단 한 번의 복용으로 완벽히 진정되다니! 왕궁 의관 전체가 석 달 동안 원인조차 찾지 못해 애를 먹던 괴질을 단 하루 만에 해독해 내다니 믿기지 않는구려."제럴드 박사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경의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싼 선임 의관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화려한 귀족 가문 출신의 젊은 의관들은 낡고 초라한 옷차림의 엘레나를 힐끔거리며 불쾌한
그날 밤, 엘레나는 다락방에서 촛불을 켜고 전생에서 터득한 약초 제련법을 이용해 특제 환약과 정화액을 제조했다.궁정 의관들이 고전하고 있는 괴질은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궁정 어원의 특수한 독초 포자가 공기 중에 희석되어 생긴 호흡기 염증이었다. 스노우 드롭의 뿌리와 정제한 민트 추출물을 적절한 비율로 섞으면 단 한 번의 복용으로도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다음 날 새벽, 엘레나는 계모의 눈을 피해 가벼운 차림으로 저택을 빠져나왔다.수도 중앙 광장 게시판에는 예고했던 대로 왕실 의료청의 인재 채용 공고가 붙어 있었다.'왕궁 의녀 및 약초 조제사 선발 공고. 자격 제한 없음. 왕궁 내부의 질병 정화에 기여할 수 있는 뛰어난 약초 지식을 가진 자를 선발함.'사람들이 게시판 앞에 모여 웅성거렸다."왕궁 의녀라니? 웬만한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니면 서류조차 안 받아줄 텐데.""게다가 궁 내부에 흉흉한 병이 돌고 있다잖아. 잘못 들어갔다가 병만 얻어 나오는 게 아닐까?"엘레나는 망설임 없이 접수처로 걸어갔다.접수를 담당하는 궁정 하급 관리관이 낡은 옷차림의 엘레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아냥거렸다."이봐, 허드렛일이나 하는 평민 처자인가 본데, 여긴 왕궁이다. 아무나 기웃거리는 곳이 아니야."엘레나는 품속에서 어제 제조한 정제액 병과 상세한 약초 효능 설명이 적힌 서찰을 내밀었다."현재 궁정 내부에서 유행하는 환자들의 증상은 어원의 독성 포자로 인한 기관지 염증입니다. 이 약은 그 포자의 독성을 중화하는 정제액입니다. 의학관의 최고 수석 의관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만약 거짓이라면 제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엘레나의 말투에는 당당함과 범접할 수 없는 품위가 서려 있었다. 하급 관리관은 그녀의 기개에 눌려 어안이 벙벙한 채 약병을 받아 들었다."이, 이건…… 얼른 최고 의관님께 가져다드리겠다. 잠시 기다려라!"약 1시간 후, 왕궁 외곽의 의료청 어원 근처 회랑.엘레나는 조용히 회랑 끝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바로 그때, 회랑 건너편에서 차
'돌아온 것인가? 내가 정말 1년 전으로 돌아온 것인가?'엘레나의 가슴속에서 차가운 소름과 함께 뜨거운 전율이 휘몰아쳤다. 신이 준 두 번째 기회였다."너 지금 내 말을 들은 거냐, 안 들은 거냐? 감히 누구를 그따위 눈빛으로 쳐다봐?"마고가 손을 들어 올려 엘레나의 뺨을 내려치려 했다. 전생의 엘레나라면 눈을 감고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공중에서 마고의 손목이 텁 소리와 함께 찌그러지듯 잡혔다."……!"마고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다. 엘레나는 잡은 마고의 손목을 차갑게 움켜쥐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고 부인?"엘레나의 목소리에는 단 한 점의 떨림도 없었다. 깊은 얼음 호수처럼 가라앉은 안색과 오한이 들 정도로 오만한 눈빛에 마고는 순간 흠칫하며 걸음을 뒤로 물렀다."너, 너…… 감히 양모에게 손대다니 미쳤느냐? 이거 놓지 못해?""양모라니요. 제 아버님께서 살아계실 때 서류에 명시된 법적 후견인에 불과하신 분이 아니었던가요? 부인께서 저를 이 저택의 하녀처럼 부리실 권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엘레나는 손을 툭 털어내듯 놓아버렸다. 마고는 비틀거리며 벽에 등을 부딪쳤다."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년이! 비안카! 비안카, 어서 와서 이 년을 봐라!"소란을 듣고 복도 끝에서 분홍색 드레스를 화려하게 차려입은 비안카가 다가왔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눈빛 속에 담긴 흉물스러운 이기심을 엘레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어머, 어머니. 무슨 일이세요? 엘레나 언니, 또 어머니를 속상하게 한 건가요? 언니는 참…… 불쌍한 처지이면서 왜 자꾸 집안의 평화를 깨뜨리려고 해요?"비안카가 짐짓 안타까운 척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전생에 왕자를 유혹하고, 엘레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악마 같은 이복자매.엘레나는 비안카의 가식적인 얼굴을 정면으로 노려보았다.'그래, 너희는 전생에서 나를 철저히 짓밟고 웃었지.'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다.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