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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태평성대
강채원의 등장은 박도현의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박도현이 했던 말 역시 강채원의 예상 밖이었다.

앞서 박도현은 천만 원을 선뜻 가불해주었고 그의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으며 병원까지 데려다준 데다 좋은 의사까지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방금 그가 한 말까지 더해 생각해 보면 앞뒤가 맞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렇게까지 도와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강채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준이 아버님과는 고작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대체 언제부터 나한테 마음을 주기 시작한 거지?’

그때 박도현이 강채원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박도현의 목소리에 비로소 생각에서 깨어난 강채원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육 선생님을 만나러 왔어요.”

아버지의 입원 서류를 작성해준 사람이 바로 응급의학과의 육상우였다.

입원 병동 쪽에서 검사 항목 중 하나가 필요 없다면서 환불받으려면 육상우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육상우를 찾아왔다가 문 앞에서 박도현의 말을 들은 것이었다.

더욱 뜻밖인 건 박도현이 육상우와 아는 사이였다는 사실이었다.

“저를요?”

육상우가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앞으로 나섰다.

그사이 박도현이 강채원의 앞에 흩어진 물건들을 주워 그녀에게 건넸다. 강채원은 감사의 인사만 전할 뿐 박도현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육상우가 강채원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호흡이 흐트러졌고 반응마저 평소보다 늦었다.

박세중이 이상한 기색을 바로 눈치챘다.

“박도현, 아까 한 말도 거짓말이지? 아직도 날 바보 취급하는 거야?”

“아직 저 혼자 마음에 품은 상태지, 본격적으로 대시한 게 아니에요. 계획이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제대로 흘러가고는 있어요.”

박도현이 강채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그녀는 박도현이 육상우 얘기를 꺼내기 전까지 계속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의사를 만나러 왔다면서요?”

놀란 바람에 강채원의 반응이 아주 느렸다. 그 모습이 나름 귀엽긴 했다.

“네. 육 선생님 만나러 왔어요.”

박도현의 말을 듣고서야 여기에 온 이유가 떠오른 강채원이 검사 서류를 육상우에게 내밀었다.

“선생님, 이 검사 말인데요. 입원 병동에서 필요 없는 검사라고 해서요. 번거로우시겠지만 사인해주시겠어요? 그래야 환불받을 수 있거든요.”

“아, 그런 거였군요. 사인해드릴게요.”

육상우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하고 검사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그러면서 강채원을 몇 번 더 살펴보았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얼굴은 화장기 없이 깨끗하고 앳된 느낌이었으며 피부도 희고 고왔다. 박도현에게 어떻게든 접근하려고 온갖 수를 쓰는 여자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박도현이 본인의 스타일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육상우가 서명하는 사이 박도현이 입을 열었다.

“네가 입원 절차를 진행한 환자니까 채원 씨 아버지 좀 신경 많이 써줘.”

“그거야 어렵지 않지.”

육상우가 검사 서류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환자 이름은 강정호이고 현재 신경내과에 입원해 있었다.

신경내과는 육상우의 제자가 담당하는 과였기에 신경 좀 써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서명을 마친 육상우가 검사 서류를 강채원에게 돌려주었다.

“이걸 가지고 수납 창구로 가시면 돼요.”

“네.”

강채원이 대답하자마자 박도현이 성큼 다가가 그녀의 옆에 섰다.

“같이 가요. 마침 채원 씨와 할 얘기도 있고요.”

“네...”

강채원은 긴장감에 제정신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박도현과 강채원이 함께 응급실을 나섰다.

박세중도 곧바로 두 사람의 뒤를 따라나섰다. 다만 나가기 전 육상우를 매섭게 노려봤다. 눈빛에 노골적인 경고가 담겨 있었다.

육상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네? 이런 오해를 다 받다니. 골치가 아파서 원.’

한편, 박도현과 강채원은 이미 응급실 밖 복도에 나와 있었다.

그는 박세중이 따라 나왔다는 것도, 강채원이 지금 얼마나 당황하고 불안해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박세중의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차라리 이 기회를 이용해 한 걸음 나아가는 편이 나았다.

“방금 내가 한 말 다 들었죠?”

박도현이 입술을 적시고 강채원에게 먼저 물었다. 그러자 강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게 답했다.

“들었어요.”

그녀의 어디가 박도현의 스타일인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첫눈에 반했나?’

하지만 한눈에 반할 만큼 빼어난 외모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문득 박이준이 떠오른 강채원이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이준이랑 잘 지내서 그런 거예요?”

“그 점도 어느 정도 차지하긴 하죠. 게다가 채원 씨는 외모도 괜찮고 성격도 좋은 편이니까요.”

박세중이 뒤에서 귀를 쫑긋 세웠다.

박도현이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여 메시지를 보낸 뒤 강채원에게 휴대폰을 확인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돈 조금 더 보냈어요. 우선 아버님 치료비부터 해결해요. 부족하면 언제든지 얘기하고요.”

[협조 부탁해요.]

그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강채원은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박도현이 이렇게까지 도와줬는데 어찌 협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당장 두 사람이 연인인 척한다고 해서 그의 가족들이 믿어 줄 리가 없었다.

강채원이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말했다.

“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과외 선생님으로서 아이와 잘 지내야 하는 건 당연한 거고요. 아빠가 기다리고 계셔서 먼저 가 볼게요.”

그러고는 박도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그녀 역시 이런 말들이 박도현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걱정되어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준이 아버님, 제가 바로 협조해드리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아버님이 너무 성급해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면 오히려 부자연스럽거든요. 우리 천천히 호흡을 맞춰 가요.]

메시지를 확인한 박도현이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이런 식으로 호흡을 맞춰야 빈틈이 없었다.

그때 박세중이 지팡이를 짚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이제 보니까 너 혼자 짝사랑하고 있구나. 손도 한 번 못 잡아 봤겠네, 그럼.”

“마음이 움직이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건 별개죠. 할아버지가 상우랑 저를 오해하지 않았다면 채원 씨가 우연히 그 말을 듣는 일도 없었을 거예요. 그럼 이렇게 급히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요.”

박도현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걸 본 박세중이 그 뒤를 따라갔다.

“이 녀석아, 이제는 아예 내 탓을 하는 거야? 둘이 미리 입을 맞춘 것일 수도 있잖아.”

“맞추지 않았다면요?”

박도현이 걸음을 멈추고 묻자 박세중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더 좋지. 너랑 상우한테 사과하마. 그리고 그 과외 선생도 최고로 예우해서 우리 집안에 들이도록 할게.”

박도현의 머릿속에 문득 그 야한 꿈이 떠올랐다.

짧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보다는 오래도록 이어지는 관계가 더 나았다.

“이건 마음이지, 도박이 아니에요.”

그 말을 남긴 뒤 박도현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

멀어지는 손자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박세중의 머릿속에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

...

한편, 강채원은 수납을 마친 뒤 어머니 최경인에게 생활비를 보냈다. 그런데도 돈이 꽤 많이 남아 있었다.

남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던 그때 최경인이 갑자기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강채원을 한쪽으로 데려갔다.

“채원아, 엄마한테 솔직히 말해 봐. 이 돈 다 어디서 났어? 월급을 가불 받았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돈을 받을 수는 없잖아. 너 혹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건 아니지?”

최경인의 어두운 눈빛을 마주한 강채원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바로 그때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24호 보호자분, 짐 챙기세요. 지금부터 1인실로 옮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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